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르포

평일엔 노숙인촌 일용직 ‘불금’은 화상 경마장에서

집 나간 가장(家長)들 24시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평일엔 노숙인촌 일용직 ‘불금’은 화상 경마장에서

2/4
노숙인 자활시설인 영등포보현의집 이동길 센터장에 따르면 가장들이 집을 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사업 실패나 실직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가족 보기가 미안해 집을 나오는 경우다. 둘째, 폭력이나 알코올 문제, 가정불화로 가족에게 ‘왕따’를 당한 경우다.

불성실한 태도 탓에 잦은 실직과 이직을 경험한 40대 후반 김모 씨는 아내와 수년간 불화를 겪다 두 달 전 집을 나와 영등포의 한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돈을 벌어도 방비 25만 원을 내고 생활비로 쓰면 남는 돈이 별로 없으니 애 데리고 알아서 살아라”고 아내에게 통고한 뒤 집을 나온 그는 한 달에 두세 번 집에 들어가 옷가지를 챙겨온다. 그때마다 10대 딸과 아내의 냉랭한 태도를 감수해야 하지만 이혼할 마음은 없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왜 아이와 집사람한테 남들처럼 잘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세상 일이 어디 내 맘대로 되나? 눈만 마주치면 부부싸움을 하게 되니 가장으로서 자괴감도 들고 무시당하는 기분도 든다. 차라리 떨어져 지내면서 가끔 보는 요즘이 속 편하다”고 했다.

가출 가장을 포함해 일거리가 없는 노숙인이 평일 낮에 주로 시간을 때우는 곳은 PC방 외에 일명 ‘노숙동산’이라 불리는 영등포공원 내 지역이다. 영등포역 뒤편의 이 공원에 들어서자 한낮 땡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노숙인 대여섯 명이 눈에 띄었다. 며칠 뒤 이곳에서 만난 60대 초반 노숙인은 “8년 전 집을 나와 여인숙과 거리를 전전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도금 관련 사업을 하며 한때 잘나갔던 그는 부도로 한순간에 전 재산을 날렸다. 살던 집에서 가족이 쫓겨날 처지가 되자 그는 집을 나왔고 아내는 결혼한 큰딸이 모셔 갔다. 둘째딸은 자신의 좁은 가게에서 새우잠을 자게 됐다. 그는 “당장 가진 게 없는데 가족한테 연락하면 뭣하나? 자식들이 부담만 가질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50대 중반 이모 씨는 매일 오전 한 차례 중앙지구대에 들른다. 그곳에서 나오는 폐지를 수거하기 위해서다. 영등포의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그는 10여 년 전 사업 부도로 가출했다. 그 뒤 남편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부부관계가 깨졌다. 이미 집을 떠나온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씨는 과거 사용하던 휴대전화 번호를 지금까지 그대로 갖고 있다. 행여 자식한테서라도 연락이 올까 싶어서다. “열심히 일해 몇 백만 원이라도 모으면 노점이라도 하나 차리고 싶다. 그래야 가족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는 그는 차마 자신이 먼저 연락하지 못하고 이제나저제나 가족이 자신을 찾아주길 간절히 희망한다.

자연스레 주민과 섞여



영등포역 왼편에 위치한 영등포역파출소의 정순태 노숙팀장은 6년째 관내 노숙인을 담당한다. 정 팀장은 “집을 나와 노숙인이 된 가장들은 가족이 방치한 채 찾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어렵게 수소문해 연락하면 부인과 자식들이 ‘왜 연락했느냐’며 되레 화내는 경우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태석 담당관은 “집 나온 가장 중에 노숙 생활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돈을 벌어 애들 양육비나 학비를 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애들을 엄마가 데리고 있는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엄마 편이 된다. 10대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 수 있으니 아버지를 더 멀리하고 원망한다. 그러면 집 나온 가장들은 ‘지들이 어릴 때 내가 어떻게 해줬는데’ 하면서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된다. 50대 노숙인 중에 이런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한편 쉼터에서 만난 한 현장 실무자는 “사업이 망하면 가족이 빚쟁이에게 시달릴까봐 가장 혼자 집을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가족을 보호하려 ‘위장이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가족 해체로 이어지기도 한다. 몇 년 전 50대 초반 남자가 이곳에 온 적이 있다. 사업이 망해 갈 곳이 없어지자 자살하려고 혼자 길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됐다고 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자 주위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가정으로 복귀했다. 가장이 집을 나오더라도 가족이 해체되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고 했다.

영등포 지역은 퇴근시간이나 주말의 역 주변을 제외하고는 평일 낮 거리에서 노숙인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거리에서 술판을 벌이거나 술 취한 채 비틀거리는 노숙인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수백 명의 노숙인이 공존하는 공간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영등포경찰서 김용갑 중앙지구대장은 “이곳 지구대로 발령받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노숙인에게 벌금 스티커를 많이 떼라’고 직원들을 독려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일주일간 구치소에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 있으면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건강을 회복할 시간을 번다. 또 노숙인이 가장 싫어하는 자유를 구속당하다보면 다음부터 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한편 쉼터가 타 지역보다 많다보니 이곳에서 근무하는 현장 전문가들이 365일 거리로 나가 노숙인을 상담하고 쉼터 입소를 권유해 일자리와 취업을 돕고 있다. 한 쉼터 센터장은 “쉼터에 들어오면 언제든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구직이나 일을 나가려면 깨끗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숙인임이 드러나지 않고 자연스레 주민과 섞여 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평일엔 노숙인촌 일용직 ‘불금’은 화상 경마장에서

영등포역 일대의 쪽방촌.



2/4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목록 닫기

평일엔 노숙인촌 일용직 ‘불금’은 화상 경마장에서

댓글 창 닫기

2022/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