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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교차하는 미로에서의 산책

‘지혜의 숲’과 벼룩시장의 오후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삶이 교차하는 미로에서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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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닮은 ‘지혜의 숲’

그렇기는 해도 발상이 놀랍고 규모 또한 장대하면서도 점잖다. 모두가 함께 키우고 나눠도 영원히 마르지 않을, 책에 대한 무한한 욕망이 펼쳐져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많은 책이 기존의 도서관식 분류, 즉 십진분류법에 따라 정밀하게 나뉘어 꽂혀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책들은 얼추 대항목에 따라 분류는 되어 있지만, 엄밀하게 십진분류법을 따라 흩어져 있지 않다. 기증자의 이름을 딴 서가에는 다양한 종류의 책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거의 무질서하게 꽂아놓은 것이 불편할 수 있겠지만, 만약 엄정한 분류에 따라 원하는 책을 어김없이 찾아내고자 한다면 기존의 도서관을 찾아가라고 나는 권유하겠다. 내 생각에 이 ‘지혜의 숲’은, 그야말로 자연의 숲을 닮아 있다.

숲으로 들어선다. 우거진 나무와 풀, 그리고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걷고 또 걸으면 길이 나뉘었다 합쳐지면서, 조금 전에 미뤄둔 다른 길과 겹쳐진다. 그 길을 따라 다른 방향으로 또 걷는다. 이곳의 책들이 그런 풍경으로 꽂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헌책방의 분류 방식이다. 동네 헌책방에 가면 책들이 대강의 분류에 따라 꽂혀 있지만, 엉뚱한 서가에서 귀한 소설을 발견하기도 하고 무수한 잡지틈바구니에서 절판된 문학 계간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지혜의 숲’은 동네 헌책방이 모여들어 수십 배 크기로 확장한 셈이다.



취재 삼아 한두 시간 돌아보니 백낙청의 평론집이 서로 다른 서가에 서로 다른 이유로 꽂혀 있었고, 건축 관련 책이 사회학 저서 틈에 끼어 있었다. 백낙청의 평론집이 김우창이나 염무웅이나 김지하의 저서와 함께 있는 것도 지적 이유가 있으며 현대 도시와 건축에 관한 책이 사회학 서적들과 어깨동무를 한 것도 엄연한 지적 관련이 있는 것이다. 본문 읽다 말고 각주를 따라가다보면, 본문과는 전혀 다른 놀랍고도 흥미로운 지식의 세계로 건너가는 수가 있다. 이런 무질서한 질서가 미세하면서도 끈질긴 지적 유혹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질서한 질서, 복잡한 질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 말이다.

삶이 교차하는 미로에서의 산책

‘지혜의 숲’ 동선은 부드럽고 아늑하다.

거대한 도시, 왜소한 인간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를 보면, 미국의 경우 국토 넓이의 겨우 3%에 불과한 도시 지역에 인구 2억4300만 명이 군집해 있으며, 도쿄와 그 주변에는 3600만 명이 살아간다. 글레이저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삶을 꾸린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도 2009년 4/4 분기 기준으로 1046만4051명이 살고 있다. 인접한 경기도의 인구 또한 1000만 명을 상회하는데 이 지역 거주자의 상당수가 서울과 직간접적 관련을 맺고 살아간다는 것을 감안할 때 거대도시 서울은 가히 ‘더블 메트로폴리스’로 비대해 있다.

이렇게 비대해질수록, 이정만이 2007년 ‘건축의 인문학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에서 강조했다시피 “인간이 사는 건축·도시공간은 인문학을 통해 기본적 인간의 가치를 논하고 개발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참다운 가치를 제공받고, 예술과 기술 또한 사회과학의 방법을 통해 현실 속에 종합적 해결책을 제공”받아야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에 의하여 도시 구조를 이루는 각 분야의 공학적 설계에 인문적 근거를 마련하고 도심 공간 구상에 따른 문화적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며 궁극적으로 거대도시 속에서 인간적 삶이 가능할 수 있도록 모색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서울의 변화와 발전은 이러한 인문적 모색, 인간적 삶의 가능성이 위태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개발주의 신드롬, 즉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오랫동안 서울을 압도하였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지 하층민의 낙후한 주거지 개량과 생활공간 활성화 프로젝트가 오히려 중상류층이 도심지로 복귀하고 하층민이 도시 바깥으로 추방당하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런 현상을 일컫는 용어에 영국 지주계급을 가리키는 젠트리(Gentry)가 접두사로 쓰인 것은 근대 자본주의 초기의 인클로저(Encloser) 운동에 따라 영국 지주들이 대량의 양모 생산 및 대규모 공업화 농업을 위해 자영 농민을 울타리 바깥으로 몰아낸 것과 흡사한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그 분명한 형태로는 오래된 도심지 공간이나 건물의 재개발과 재건축을 들 수 있는데 데이비드 하비는 이를 ‘도시의 변형을 통한 잉여 흡수’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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