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라” 복합쇼핑몰의 ‘신세계’ 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5-04-16 19: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10년간 31조 투자…‘비전 2023’ 선포
    • ‘마켓셰어(Market Share)’ 아닌 ‘라이프셰어(Life Share)’
    • 복합쇼핑몰로 승부…야구장, 테마파크가 경쟁 상대
    • “저, 한국에서 소매업 하는 사람인데요…”
    • “고객과 함께, 소걸음으로 만리(萬里) 갈 것”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라” 복합쇼핑몰의 ‘신세계’ 연다

    2014년 1월 ‘비전 2023’ 선포식에서 신세계그룹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는 정용진 부회장.

    “여러분은 이 시대를 어떤 시대라고 정리하겠습니까?”

    4월 9일 오후 서울 안암로 고려대 인촌기념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캐주얼한 슈트에 컴포트화 차림의 정용진(47)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연단에 오르자 대학생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저는 이 시대를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 시대’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이 스마트 시대에 가장 두려운 건 뭘까요? 바로 ‘배터리 나가는’ 겁니다.”

    정용진式 ‘근육단련법’

    대기업 오너의 ‘인문학’ 강의가 딱딱하고 지루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강연 내내 잔잔한 웃음이 실내에 깔렸고, 정 부회장의 말이 끝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정 부회장은 ‘여친’ ‘멘붕’ ‘카톡’ 등 대학생들이 자주 쓰는 용어를 써가며 호응을 이끌었고 강연 집중도를 높였다. “그룹 경영자로서 고객 의견을 들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 고객이죠? 덕분에 먹고살고 있습니다”라며 넙죽 90도 인사를 할 때는 강연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그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기술혁신이 인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을 쉽고 빨리 처리하고 생활이 편리해지는 게 무섭기도 하다”며 “사고력과 판단력이 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선 위기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축복을 제대로 누리려면 ‘생각의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는 처방전을 내놨다. 인문학적 지혜가 담긴 글을 읽고, 많이 생각하고, 직접 글을 써보고, 주변 사람들과 토론 연습을 많이 하는 게 그의 ‘근육단련법’이었다.

    이날은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중흥 프로젝트 ‘2015 지식향연’ 강연의 첫날. 지난해 연세대에 이어 올해 첫 강연에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올해에도 전국 10개 대학에서 인문학자들이 강연을 하고, 세계적인 인문학 서적을 발굴·번역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식향연 프로젝트는 정 부회장이 계열사 CEO들과 대화를 하다가 떠올린 인문학 부흥 사업이다. ‘불황과 취업난 속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정 부회장은 평소에도 ‘왜’ 대신 ‘어떻게’에 함몰되고, 사색 대신 검색을 선호하는 현대인을 바로잡아주는 힘이 인문학에 있다고 강조한다. 신세계가 지난해부터 ‘스펙 중심’의 평가 대신 직무 오디션 면접 방식의 ‘드림스테이지’를 통해 인재를 뽑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부회장 시대의 인재 채용법이다.”

    홀로서기 원년

    그의 말처럼, 정 부회장의 신세계는 어머니 이명희 회장 시대와는 환경이 다르다. 신세계그룹은 삼성에서 완전 분리된 1997년 매출이 2조 원에 못 미쳤지만 2014년 말엔 매출 23조8000억 원, 계열사 29개로 재계 13위에 올랐다. ‘어머니의 시대’가 이마트의 양적 팽창을 통한 몸집 키우기에 치중했다면 정 부회장 시대엔 경기 침체, 출점(出店) 규제, 중소기업과의 상생 문제 등으로 인한 ‘성장 정체’를 돌파하는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마트 등 주력 사업의 위기를 독자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세계그룹은 지난 연말 의미 있는 인사를 단행했다. 정 부회장의 ‘경영 스승’으로 알려진 구학서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났고, 40~50대 초반의 임원을 대거 전진 배치했다. ‘정용진 시대’를 뒷받침할 진용 개편을 단행한 것. 재계는 올해를 사실상 정 부회장의 ‘홀로서기 원년’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초 정 부회장이 수년간 연구 끝에 내놓은 ‘비전 2023’은 홀로서기의 신호탄이었다. ‘비전 2023’은 향후 10년간 매년 2조~3조 원 이상을 투자해 매년 1만 명 이상을 채용하고 내수경기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신세계의 청사진. 당시 그는 비전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시대가 바뀌고 고객도 변하는데 우린 그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다. 우리의 콘텐츠와 의식수준, 조직체계가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세팅돼 있진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10년간 복합쇼핑몰과 온라인쇼핑몰 등에 31조4000억 원을 투자해 협력사원 포함 17만 명을 고용한다는 신세계그룹의 ‘그랜드 플랜’이다.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인 3조3500억 원을 투자한다(지난해는 2조2400억 원). 경기 하남, 고양 삼송, 인천 청라, 대전 등지에 10여 개 복합쇼핑몰을 세워 그룹 중장기 성장동력으로 육성한다는 복안.

    정 부회장은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복합쇼핑몰이 돌파구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유통업은 지속적인 ‘출점’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하지만 신규 출점은 같은 업종 간의 ‘마켓셰어(Market Share, 시장점유율)’ 경쟁이 아닌 ‘라이프셰어(Life Share)’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쇼핑, 여가, 외식, 문화생활 등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스타일센터(LSC)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전략을 위해 최적화한 사업이 교외형 복합쇼핑몰이다. 쇼핑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데, 이렇게 되면 이젠 야구장이나 테마파크, 휴양지 등도 우리의 경쟁상대가 된다.”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라” 복합쇼핑몰의 ‘신세계’ 연다
    ‘따뜻한 소통’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려는 ‘정용진호(號)’의 전략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에 들어설 ‘사이언스 콤플렉스’에 5000억 원을 투자해 연면적 29만㎡(약 8만8000평)에 과학체험 문화관람 시설이 포함된 복합몰을 개발하고 있고, 국내 최초의 민자(民資) 복합환승센터 개발사업인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는 지하 7층, 지상 9층 연면적 29만6841㎡(8만9000여 평), 매장 면적 약 9만9170㎡(3만여 평) 규모로 내년 말 완공 예정이다.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테마파크 등 유통문화시설을 결합해 랜드마크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정용진호의 목적지가 ‘라이프셰어’라면 조타기는 그의 ‘따뜻한 소통 리더십’이다. 재계에선 정 부회장을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일컫는다. 그가 봉사 모임을 통해 지체장애아를 돌보거나 연탄 배달, 김장봉사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적극 나선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정 부회장을 잘 아는 재계 인사는 그를 ‘아이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기울이는 보통사람’으로 기억한다. 정 부회장은 2003년 이혼한 전 부인 탤런트 고현정 씨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17)과 딸(15)을 미국 유학 보내기 전까지 직접 키운 ‘싱글대디’였고, 재혼한 한지희 씨와는 2013년 1남 1녀 쌍둥이를 낳았다. 다음은 이 재계 인사가 전하는 ‘아빠 정용진’의 모습이다.

    “이혼 후 정 부회장은 ‘엄마 몫까지 해야 한다’며 두 아이를 열심히 키웠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자녀들과 식사하고 운동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해외출장을 가도 아이 선물은 직접 챙겼다. 동생(정유경 신세계 부사장)도 자녀(남매)를 키우는데, 그는 자기 아이들과 또래인 조카들을 자식처럼 돌봤다. 큰아들이 태권도를 곧잘 한다며 자랑할 때나, 둘째 아이 입학식에서 축하한다며 연신 뽀뽀를 퍼붓는 걸 보니 여느 아빠와 똑같더라. 정 부회장 자신은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지만, 자식들은 자유롭게 자라기를 바란다던 말이 기억 난다.”

    ‘싱글대디’ 경험 때문일까. 정 부회장은 장난감을 빌려주고 학부모 육아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합 놀이공간 ‘희망장난감도서관’을 전국 32곳에 열었고, 직장보육시설 ‘신세계 키즈스쿨’을 이마트 성수점 등 전국에 설치해 워킹맘들의 시름을 덜어줬다. 지난해 10월에는 여성가족부와 함께 전북 무주에 국내 최초의 인터넷 치유학교인 ‘국립 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을 열었다.

    ‘따뜻한 소통’은 그의 성장 과정과도 관련이 깊다. 정 부회장은 어머니 이명희 회장의 조언으로 학창 시절 피아노를 배워 체르니 40번까지 마쳤다고 한다. 덕분에 클래식 음악 지식이 전문가 수준인데, 평소에도 클래식 음악 파일이 수천 개 담긴 미디어 기기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그는 문화융성위원회와 협약을 맺고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마티네 콘서트’를 열어 클래식 공연을 무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라” 복합쇼핑몰의 ‘신세계’ 연다

    2016년 준공 예정인 ‘하남유니온스퀘어’ 조감도.

    2011년 5월 재혼한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의 만남도 음악회 모임을 통해 이뤄졌다. 정 부회장은 2010년 광주 신세계 15주년 기념식에서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유지민 양의 연주가 끝나자 “큰 감동을 선사해줘 고맙다”며 즉석에서 협연을 제안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연주를 끝내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정 부회장은 자신이 받은 ‘밥상머리 교육’의 한 단면을 이렇게 회고했다.

    “어머니는 선대회장님(고 이병철 회장)과 무척 가까우셨는데, 선대회장께서 하신 말씀을 틈만 나면 들려줬다. ‘어린 사람의 말도 경청해라’ ‘알면서 모른 척,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라’며 행동과 표현을 절제하라고 가르치셨다. 부모님은 엄하신 편이어서 늘 예의범절을 강조하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교육은 스스로 통제하고 절제하는 능력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때의 가르침을 곱씹고 있다.”

    따뜻한 리더십과 달리 ‘해야 할 일은 끝장을 봐야 하는 스타일’이라는 평도 있다. 다음은 또 다른 재계 인사의 전언이다.

    “알면서 모른 척 말라”

    “정 부회장이 늘 부드러운 남자인 것만은 아니다. 2004년 허리 통증 때문에 시작한 운동은 엄청난 끈기를 발휘하며 지금의 멋진 몸을 만들었다. 그가 스타벅스 커피를 한국에 들여올 때는 강한 추진력이 돋보였다. 그는 미국 브라운대 유학 시절 스타벅스 커피를 맛본 뒤, 미국 스타벅스와 50대 50 비율로 출자해 스타벅스코리아를 설립했다. 1999년 이화여대 1호점을 연 뒤 현재는 전국 769개 점포를 거느린 ‘커피의 대명사’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사업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비관적 전망 속에서도 뚝심있게 몰아붙인 끝에 결국 ‘비즈니스 대박’은 물론 ‘문화 대박’까지 터뜨렸다.”

    정 부회장은 소비자의 니즈(needs)를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점포를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시에 매장을 방문해 상품 진열 방식과 식품 신선도, 위생상태 등을 살펴본다. 즉석조리 코너에 들러 시식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후 회의 자리에서 자신이 느낀 점을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다.

    2008년 프랑스 파리 유통업체 탐방 중 알디(Aldi) 매장을 방문했을 때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알디는 ‘유럽판 다이소’로 불리는 하드 디스카운트 기업. 정 부회장이 수행원과 매장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둘러보자 매장 직원이 수상하게 여겨 신분 확인을 요구한 것이다. 정 부회장은 “한국에서 소매업을 하는 사람인데, 알디의 경쟁력을 살펴보러 왔다. 점장을 만나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알디 매장 점장은 뿌듯해하며 그 자리에서 1시간 동안 정 부회장 일행의 질문 공세에 답했다. 나중에 정 부회장의 ‘정체’를 알게 된 점장은 무척 놀랐다고 한다. 신세계의 한 관계자도 비슷한 사연을 들려줬다.

    “정 부회장은 국내 업체는 물론 해외 유통 관련 박람회도 부지런히 찾아 다닌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경영철학 때문이다. 그가 몇 해 전 독일에서 열린 집기·인테리어 박람회에 여러 임직원과 동행한 적이 있는데, 정 부회장의 의전을 챙기려는 임원들이 뒤따르자 단호하게 ‘각자 업무에서 필요한 것을 배워야지 나만 따라다녀서야 되겠냐”며 ‘해산’시키고는 내내 수행원 한 명과 박람회를 돌아봤다. 그때 정 부회장을 다시 봤다. 소탈하고 따뜻한 인간적 매력이 과거 ‘10만 팔로어 대군’을 모은 이유가 아닌가 생각했다.”

    상생협력 모델 구축

    이를 두고 신세계 안팎에서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고객제일주의’ 영향으로 분석하지만, 정 부회장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진정한 소비자 이익은 유무형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토털 솔루션’을 제시할 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고객과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 우리가 먼저 차별화를 단행하고 고객에게 제안할 수 있어야 유통업 본연의 기능을 다하는 것 아닌가.”

    요즘 그가 ‘토털 솔루션’의 한 방편으로 삼고 주목하는 분야가 이마트 가정간편식 PL(Private Label,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업체의 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상품) ‘피콕(PEACOCK)’이다. 신제품 품평회가 있을 때면 개발 상품을 모두 직접 시식하며 R·D팀과 의견을 나눈다.

    정용진호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모바일·온라인 시장과 달리 오프라인 시장은 불황이 계속되고, 해외 직구(직접 구매)와 해외 쇼핑이 일반화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유통의 ‘신세계’를 열어야 한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잇단 출점으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선 만큼 상생협력 모델도 구축해야 한다.

    지자체가 나서 대형마트 영업일을 규제했지만, 그렇다고 전통시장이 웃은 것도 아니다. 전통시장 매출액은 2009년 22조 원, 2010년 21조4000억 원, 2013년 19조9000억 원으로 뒷걸음질쳤고, 대형마트 또한 의무휴업 전인 2011년 2.9% 성장에서 2014년 -3.4%로 위축되는 등 실적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신세계의 이 분야 담당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라” 복합쇼핑몰의 ‘신세계’ 연다
    “대형마트의 휴일 영업을 제한한다고 손님들이 전통시장으로 몰리는 게 아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과 1차산업 관계자들도 영업제한조치에 불만을 토로한다. 정 부회장은 양측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회의와 토론, 해외사례 연구를 통해 ‘신상생 플랜’을 만들었다.” 고심 끝에 내놓은 ‘신상생 플랜’은 △전통시장 주변 점포에서의 신선식품 판매 중지 △전통시장의 우수 상품 입점 △국산 농축산물 육성 전략 등이다.

    신세계는 지난해 9월 ‘신세계그룹-전국상인연합회 상생선포식’을 열고 전통시장 내 점포에서 신선식품 92개 품목(40억 원)을 철수시켰다. ‘전통시장 우수상품 페어’를 열어 경쟁력 있는 전통시장 상품을 신규 브랜드로 개발해 스타상품화하는 ‘상생 모델’도 찾아냈다. 상생 모델의 대표 상품은 서울 광장시장의 ‘순희네 빈대떡’이다. 순희네 빈대떡이 이마트에 입점해 대박을 터뜨리자 4월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통시장 우수상품 페어’에는 전국의 전통시장에서 제2의 순희네 빈대떡을 열망하는 맛의 달인들이 모여들었다. 신세계푸드 R·D센터와 이마트 바이어들도 TF팀을 구축해 브랜드화 상품 개발을 돕고 있다.

    3월부터 국산 농축산물을 육성하는 ‘국산의 힘’ 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전이다. 판로나 매입량 확대에 그치지 않고, 경쟁력 있는 품질에 도달하도록 마케팅, 디자인, 브랜딩을 집중 지원해 농가 경쟁력을 높여주는 프로젝트다. 생산자들에게는 농축산 선진국 연수 기회를 주고 신세계의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 부회장은 이러한 상생 전략을 바탕으로 “느리지만 함께 가겠다”고 말한다.

    “소걸음(牛步)으로 만리(萬里)를 간다고 하지 않나. 그러한 우직한 발걸음들이 모인다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결국은 우리 목표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늦더라도 철저하게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는 상품과 매장 동선(動線)을 개발하고, SNS를 활용해 고객과 소통하면서 우리의 비전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단독 인터뷰

    “비법과 왕도는 없다, ‘기본’과 고객만 있다”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라” 복합쇼핑몰의 ‘신세계’ 연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움츠러들기보다는 과감한 투자로 가능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불황 속에서 사상 최대 투자를 결정했다.

    “위기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소비자의 ‘라이프셰어’를 점유하기 위해 복합쇼핑몰에 집중했다. 기업이 해야 할 사회적 공헌은 대규모 투자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거다. 올해 3조3500억 원, 향후 10년간 30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데, 올해는 1만4500명 정도 채용할 계획이다. 워킹맘을 위한 시간 선택제 일자리도 확대할 방침이다. 유통업은 직접 고용뿐 아니라 간접고용 효과도 큰 만큼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해 모바일 쇼핑 매출액이 13조1000억 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대형마트 매출은 오히려 3.5% 감소했다. 글로벌 유통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넘어서는 새로운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일단 글로벌 유통업체들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벤치마킹할 필요는 있다. 월마트, 까르푸, 테스코 등 글로벌 강자들은 기본적으로 4~5개의 다양한 포맷으로 운영한다. 이마트도 상권의 크기와 시장 상황에 맞춰 매장 사이즈와 상품 구성을 특화해야 한다. 해외의 좋은 제품을 들여오고, 자체상품(PL) 비중을 늘려 이마트만의 특화상품을 늘려야 한다. 유통 본연의 경쟁력은 ‘소비자가 믿고 찾을 수 있는 상품’에 있기 때문이다. IT와 유통의 융합도 고심하고 있다.”

    -IT와 유통의 결합?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애플, 삼성전자의 경쟁 상대는 나이키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한다. 스마트폰 시대에 사물인터넷(IoT)이 확산되면서 이종산업 간 경쟁은 자연스러운 트렌드가 됐다. 유통업도 IT와의 융합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SSG페이’를 준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업장에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 비싼 수업료 냈다”

    -서울시내 면세점 추가 특허가 유통업계의 핫이슈인데.

    “현대산업개발, 현대백화점, SK네트웍스 등이 시내 면세점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우리는 백화점, 이마트, 아웃렛 사업 등을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유통전문기업이라 자체 역량은 가장 앞선다고 자부한다. 면세점 사업도 경제활성화 측면에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고,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해외 사업은 어떤가. 올해 베트남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아세안 지역에 집중하는데, 중국이 ‘반면교사’가 됐나.

    “모든 글로벌 소매업체들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사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을 재정비하는 중인데, 우리도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베트남 사업은 이런 경험을 토대로 원점에서부터 재설계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거다. 단순히 이마트 간판을 세우는 게 아니라 이마트, 신세계의 정신을 심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정밀한 시장 분석과 철저한 현지화로 승부를 걸겠다.”

    -의사결정을 할 때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는.

    “고객 중심 마인드다. 신세계의 모든 의사결정 원칙과 기준은 고객이다. 입사 이후 나의 회사생활도 고객을 연구하고 고객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쉽지 않은 의사결정의 순간에도 결국은 고객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언제나 고객이다.”

    -‘따뜻한 리더십’은 업무 스타일에도 적용되나.

    “어른들로부터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믿지 못하면 쓰지를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라는 교육·경영철학을 배웠다. 그래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 권한위임)를 중요하게 여긴다. 실무에서는 전문경영인들이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내 몫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비전 등을 설계하면서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다. 의문이나 호기심이 생기면 끝까지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새로운 유통 모델이 나왔다고 하면 지체 없이 달려가본다. 현장을 찾아가야 마음이 편하다. 운동을 꾸준히 하려는데, 일 때문에 놓치기도 한다.”

    疑人勿用 用人勿疑

    -가장 힘든 때는.

    “회사의 미래를 설계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한다. 이병철 선대회장께서는 68세 때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명희 회장께선 대형마트 비즈니스를 시작해 유통산업을 선진화하셨다. 그분들의 선견지명과 호기심, 판단력을 존경한다. 그런데 사실 특별한 비법이나 왕도는 없는 것 같다. 기본을 중시하고, 고객을 생각하면서 뛰어다녀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자녀 교육에서 강조하는 점은.

    “봉사활동을 많이 하라고 권한다. 아이들이 유학 가기 전에는 매달 개인적인 봉사활동 모임에 데리고 다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사회적 가치는 책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장애우들을 돕고 연탄 배달을 하면서 세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평소 아이들과는 캠핑도 가고 영화도 자주 본다. 대화를 많이 해야 눈높이를 맞춰가며 조언할 수 있다.”

    -부인과의 결혼 발표 당시 많은 여성 ‘팬’이 안타까워했다. 대중적 관심이 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회사에 대한 말씀이든, 제 개인에 대한 질책이든 늘 열린 자세로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분들을 위해 생활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되돌려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한때 팔로어가 10만 명을 넘을 정도로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트위터를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나.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SNS 소통을 통해) 고객들이 나와 신세계란 기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애정과 조언을 주셔서 감사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고민해보겠다.”

    -‘인문학 전도사’를 자처하는데, 학창 시절에 좋아한 과목이 역사였겠다.

    “그렇다. 특히 세계사를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 입학할 때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선택했다. 역사적 인물의 삶은 문학적이고 드라마틱한 서사로 가득하다. 그 시대를 지배한 시대정신도 깃들어 있다. 과거에 대한 성찰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혜라는 걸 역사에서 배웠다.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학문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이른바 ‘통섭형 인재’가 더 중요하다. 신세계그룹 경영이념 역시 ‘사람’이 중심이다. ‘지식향연’이라는 인문학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들이 우리 사회에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