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무엇이 소녀를 작가로 만들었을까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입력2015-04-21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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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소녀를 작가로 만들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br>박완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삶의 생기가 떨어져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동경하는 것들’이 사라져갈 때다. 동경은 그 대상이 멀리 있을수록, 다가갈 수 없을수록 깊고 짙어진다. 동경은 질투와 달리 그 대상이 ‘계속 아름다웠으면, 계속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질투가 대상을 향한 경쟁심과 파괴욕구를 자극한다면, 동경은 반대로 그 대상의 불멸을 꿈꾼다. 내가 동경하는 그 사람이, 그 장소가, 그 작품이 언제나 그 느낌 그대로이길 갈망한다.

    지칠 때마다 ‘동경하는 것들의 목록’을 헤아려보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신기한 변화를 발견했다. 동경하는 것들이 늘 ‘멀리 있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 안에 한때 머물던 ‘감정의 편린’임을 깨달은 것이다. 동경의 대상이 ‘외부의 존재’에서 ‘내부의 감정’으로 바뀌는 것이야말로 나이 드는 증거가 아닐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내가 읽은 어떤 소설보다도 ‘동경이란 무엇인가’를 잘 그려낸 것 같다. 이 자전적 소설은 박적골의 유년 시절을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코흘리개들이 자연을 마구 휘젓고 다니던 그 시절의 향수는 농촌의 전원적 풍경을 향해 느끼는 막연한 그리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을 창조하는 자연’의 깊이를 헤아리게 만든다.

    이 작가에게 동경의 대상은 무엇보다도 그 시절 마음껏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 ‘자연’이다. 달콤새콤한 싱아 열매는 바로 그 돌아갈 수 없는 자연의 추억을 되새기는 매개체다. 그 유년 시절의 중심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 어린 추억이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를 세 살 때 여읜 어린 소녀 박완서에게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동경의 대상 그 자체였던 것이다.

    독특한 걸음걸이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강렬한 빛처럼 직통으로 나에게 와 박혔다. ‘우리 할아버지다!’라고 생각하자마자 나는 총알처럼 동구 밖으로 내달았다. 단 한 번도 착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열렬하게 매달린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은 다듬이질이 잘 돼 늘 칼날처럼 차게 서슬이 서 있었다. 그리고 송도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곧 오냐, 오냐, 내 새끼, 하면서 나를 번쩍 안아 올렸고, 그의 품은 든든하고 입김은 훈훈했다. 할아버지의 입김에선 언제나 술 냄새가 났다. 나는 할아버지의 훈훈함과 함께 그 술 냄새 또한 좋아했다.



    동경의 온도가 변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 동경을 불러일으키던 장면들을 떠올려본다. 어린 시절에는 빨강머리 앤이나 소공녀나 들장미소녀 캔디를 향해 동경을 느꼈고, 사춘기 시절에는 만화 ‘베르사이유 장미’에 나오는 남장소녀 오스카에게 가슴이 두근거렸고, 대학 시절에는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나 시몬 베유의 책을 보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지금도 그들을 사랑하지만 ‘동경의 온도’가 달라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동경의 온도가 달라지지 않는 감정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느낀 과거의 감정들이다. 누군가에게 처음 반했을 때 마치 허방다리를 짚은 것처럼 어질어질하던 그 순간, 공들여 만든 내 책이 출간되기 전날 밤새 잠 못 이루던 마음의 떨림, 처음 해외여행을 떠나는 날 두려움 반 기대감 반으로 몇 번이나 여행준비물을 점검하던 조바심. 그 모든 동경과 설렘의 체험 속에는 ‘다시는 돌아갈 수도, 되찾을 수도 없는 나 자신의 과거’가 깃들어 있다.

    질투가 위험한 폭발물 같은 감정이라면, 동경은 짙을수록 오히려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동경과 질투는 한끝 차이다. 감히 질투 따위는 할 수 없는 탁월한 대상을 향해 우리는 동경을 느끼지만, ‘내가 그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서!’라는 억하심정과 합쳐질 땐 질투로 변색되기도 한다. 동경과 질투는 때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에 붙어 있는 서로 다른 감정이기도 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어린 소녀 완서가 짝꿍 복순에게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 ‘동경과 질투’가 한 몸에 공존하는 미묘한 양가감정이다. 복순이는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빌려보는 짜릿한 기쁨을 처음으로 맛보게 해준 친구다. 인왕산 산자락을 꿋꿋하게 홀로 넘어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낸 외톨이 소녀 완서에게 복순은 최초로 단짝친구가 되어준 존재였다. 하지만 ‘우린 너무 붙어 다녔다’는 핑계를 대며 고등학교는 일부러 서로 다른 곳에 지원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복순이가 경기고녀에 지원한 것도 내가 경기를 피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였다. 너무 붙어 다녀 지쳤다고나 할까. 요샛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 애도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데 동감이었다. 센티한 소녀소설에 감염된 우리는 편지로 더 많은 사연을 주고받기로 하고 건방지게도 이별을 모의했다.”

    세 개의 커다란 기둥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고 싶다는 그 미묘한 감정의 밑바닥에는 ‘복순이와 나 사이의 실력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복순이는 거뜬하게 경기고녀(당시 최고의 명문으로 알려진 경기여고의 전신)에 합격할 수 있었던 반면, 소녀 완서는 엄마가 항상 보내고 싶어하던 경기고녀에 입학할 만한 실력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복순이는 우등상도 타고 개근상도 탔지만 나는 아무 상도 못 탔다. (…) 우리 사이는 더욱 뜨악해져 있었다. 나는 내 느낌이 질투와 열등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참담했다. 복순이와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질투심과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아프게 하던 이 예민한 소녀의 감성은 긍정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된다. 그녀의 진면목은 그동안 그녀를 지켜온 세 개의 커다란 기둥이 사라지자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 그 세 가지 기둥은 바로 할아버지, 엄마, 오빠였다. 조선이 해방되자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억울하게도 친일파로 몰려 동네 젊은이들에게 문패를 떼이는 수모를 당하고, 6·25전쟁이 터지자 엄마는 좌익활동 전력이 있는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한순간도 안심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오빠는 설상가상으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와 다리에 총을 맞아서 거동조차 못하게 된다. 어머니와 오빠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불가능해지자, 이제 대학생이 된 그녀는 드디어 정신적으로 독립하게 된다.

    1·4후퇴라는 긴급 상황에서 모두가 피난을 마친 후 텅 빈 서울에 덩그러니 남은 한 가족, 그것이 ‘나’와 오빠와 올케와 어린 조카들, 그리고 어머니였다. “독립문까지 뻔히 보이는 한길에서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이 커다란 도시에 오직 ‘우리 가족’만 남아 있다는 공포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하지만 그 무서운 사실은 또한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오직 자신만 보았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영혼의 든든한 방어벽

    동족이 동족을 죽이고 밀고하고 모함하며 ‘빨갱이’라는 꼬리표만 달리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던 그 시절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이 파란만장한 가족사에서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미션을 깨닫는다.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그녀에게는 이제 전에 없던 자신감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식량창고’로 보이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최악의 상황에서 진정한 주체로 거듭난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순간,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순간, ‘내가 이 모든 것의 증언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 그녀는 미래의 작가이자 용감한 주체로 거듭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녀에게 전쟁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든든한 영혼의 방어벽이 되어준 것이다. 아버지, 할아버지, 어머니, 오빠. 그 모든 정신적 지주가 사라져도 여전히 ‘나’를 지켜주는 것, 그것은 문학을 향한 멈출 수 없는 동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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