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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소녀를 작가로 만들었을까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무엇이 소녀를 작가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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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소녀를 작가로 만들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br>박완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삶의 생기가 떨어져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동경하는 것들’이 사라져갈 때다. 동경은 그 대상이 멀리 있을수록, 다가갈 수 없을수록 깊고 짙어진다. 동경은 질투와 달리 그 대상이 ‘계속 아름다웠으면, 계속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질투가 대상을 향한 경쟁심과 파괴욕구를 자극한다면, 동경은 반대로 그 대상의 불멸을 꿈꾼다. 내가 동경하는 그 사람이, 그 장소가, 그 작품이 언제나 그 느낌 그대로이길 갈망한다.

지칠 때마다 ‘동경하는 것들의 목록’을 헤아려보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신기한 변화를 발견했다. 동경하는 것들이 늘 ‘멀리 있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 안에 한때 머물던 ‘감정의 편린’임을 깨달은 것이다. 동경의 대상이 ‘외부의 존재’에서 ‘내부의 감정’으로 바뀌는 것이야말로 나이 드는 증거가 아닐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내가 읽은 어떤 소설보다도 ‘동경이란 무엇인가’를 잘 그려낸 것 같다. 이 자전적 소설은 박적골의 유년 시절을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코흘리개들이 자연을 마구 휘젓고 다니던 그 시절의 향수는 농촌의 전원적 풍경을 향해 느끼는 막연한 그리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을 창조하는 자연’의 깊이를 헤아리게 만든다.

이 작가에게 동경의 대상은 무엇보다도 그 시절 마음껏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 ‘자연’이다. 달콤새콤한 싱아 열매는 바로 그 돌아갈 수 없는 자연의 추억을 되새기는 매개체다. 그 유년 시절의 중심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 어린 추억이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를 세 살 때 여읜 어린 소녀 박완서에게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동경의 대상 그 자체였던 것이다.

독특한 걸음걸이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강렬한 빛처럼 직통으로 나에게 와 박혔다. ‘우리 할아버지다!’라고 생각하자마자 나는 총알처럼 동구 밖으로 내달았다. 단 한 번도 착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열렬하게 매달린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은 다듬이질이 잘 돼 늘 칼날처럼 차게 서슬이 서 있었다. 그리고 송도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곧 오냐, 오냐, 내 새끼, 하면서 나를 번쩍 안아 올렸고, 그의 품은 든든하고 입김은 훈훈했다. 할아버지의 입김에선 언제나 술 냄새가 났다. 나는 할아버지의 훈훈함과 함께 그 술 냄새 또한 좋아했다.



동경의 온도가 변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 동경을 불러일으키던 장면들을 떠올려본다. 어린 시절에는 빨강머리 앤이나 소공녀나 들장미소녀 캔디를 향해 동경을 느꼈고, 사춘기 시절에는 만화 ‘베르사이유 장미’에 나오는 남장소녀 오스카에게 가슴이 두근거렸고, 대학 시절에는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나 시몬 베유의 책을 보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지금도 그들을 사랑하지만 ‘동경의 온도’가 달라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동경의 온도가 달라지지 않는 감정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느낀 과거의 감정들이다. 누군가에게 처음 반했을 때 마치 허방다리를 짚은 것처럼 어질어질하던 그 순간, 공들여 만든 내 책이 출간되기 전날 밤새 잠 못 이루던 마음의 떨림, 처음 해외여행을 떠나는 날 두려움 반 기대감 반으로 몇 번이나 여행준비물을 점검하던 조바심. 그 모든 동경과 설렘의 체험 속에는 ‘다시는 돌아갈 수도, 되찾을 수도 없는 나 자신의 과거’가 깃들어 있다.

질투가 위험한 폭발물 같은 감정이라면, 동경은 짙을수록 오히려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동경과 질투는 한끝 차이다. 감히 질투 따위는 할 수 없는 탁월한 대상을 향해 우리는 동경을 느끼지만, ‘내가 그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서!’라는 억하심정과 합쳐질 땐 질투로 변색되기도 한다. 동경과 질투는 때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에 붙어 있는 서로 다른 감정이기도 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어린 소녀 완서가 짝꿍 복순에게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 ‘동경과 질투’가 한 몸에 공존하는 미묘한 양가감정이다. 복순이는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빌려보는 짜릿한 기쁨을 처음으로 맛보게 해준 친구다. 인왕산 산자락을 꿋꿋하게 홀로 넘어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낸 외톨이 소녀 완서에게 복순은 최초로 단짝친구가 되어준 존재였다. 하지만 ‘우린 너무 붙어 다녔다’는 핑계를 대며 고등학교는 일부러 서로 다른 곳에 지원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복순이가 경기고녀에 지원한 것도 내가 경기를 피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였다. 너무 붙어 다녀 지쳤다고나 할까. 요샛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 애도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데 동감이었다. 센티한 소녀소설에 감염된 우리는 편지로 더 많은 사연을 주고받기로 하고 건방지게도 이별을 모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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