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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사흘 쓰려고 자연을 베어내겠다니

겨울올림픽 유감

  • 정윤수 |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고작 사흘 쓰려고 자연을 베어내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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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슈페어는 패전을 예감하면서 주요 서류를 폐기하는 한편 히틀러를 비롯한 최고위 간부가 혹시라도 체포되거나 사살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경우 사용할 식량과 물자와 은신처를 확보하는 일에 착수했다. 히틀러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그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주요 도시의 모든 산업, 교통, 발전시설의 파괴 작전을 감행했다. 연합군이 이런 시설을 활용해 독일을 삽시간에 통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여지없이 파괴해버리는 게 낫다고 히틀러는 생각했다.

슈페어는 반대했다.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모조리 파괴함과 동시에 히틀러가 자신마저 내던지려는 게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파국이 다가오자 히틀러는 슈페어를 불러 자살할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적지 않은 참모를 앞에 두고 자살 감행 연설을 한 후 죽었다.

예술가의 초조한 표정

1945년 4월 12일, 베를린필 연주회가 열렸다. 난방이 되지 않은 음악홀에서 지휘자와 연주자와 관객들은 안톤 브루크너의 4번 교향곡 ‘낭만적’을 들었다. 이 곡을 엄선해 특별하게 연주하는 광경 앞에서 슈페어는 지금 이 연주가 패전을 자인하고 이를 널리 통보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전력난 때문에 음악홀처럼 전쟁 시기에는 당장 쓸모가 없는 건물의 전원은 차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나 슈페어는 베를린필의 마지막 연주를 위해 전원 차단을 하루 정도 유보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첫 곡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신들의 황혼’의 피날레를 연주하라고 했다. 슈페어는 추위에 떨면서 제국의 최후를 암시하는 바그너의 장엄한 비극을 들었다. 이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고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을 들었다.



그 후로 슈페어는 그가 쓴 대로 “오랜 세월 동안 음악을 듣지 못했다.”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고 형기를 마친 다음에도 스스로 유폐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1947년 7월 18일, 슈페어는 베를린의 슈판다우 교도소에서 복역하기 시작해 1966년 10월 석방됐다. 그 사이에 ‘기억’을 썼다. 1954년의 일이다. 가감 없이 솔직한 기록 때문에 이 책은 상당히 많이 팔렸고 그래서 인세도 적지 않게 벌었는데, 슈페어는 그 대부분을 유대인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혹시라도 거절당하거나 자선으로 포장된 도살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어서 익명으로 기부했다. 1981년 9월 1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기억’에는 변명조의 신파가 없지 않으나, 마흔 살 때부터 기나긴 감옥살이를 한 천재 건축가의 내면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나는, 특히 히틀러의 최후의 나날과 그 긴박한 상황에서 언뜻 드러나는 베를린 예술가들의 초조한 표정들을 보았다. 강의할 만한 자료로 충분할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 생각할 대목도 적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3월 24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학교에 강의가 없고 또 다른 볼 일도 적어서 저녁을 먹고 난 후의 시간을 온전히 음악을 집중해서 듣는 데 할애했다. 어제의 연장으로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를 들었다.

슈페어의 ‘기억’에는 패망의 기운이 감도는 베를린에서 위대한 지휘자이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 푸르트뱅글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슈페어와 상의하는 대목이 나온다.

슈페어는 예정된 스위스 연주 여행을 마친 후 “독일로 돌아오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푸르트뱅글러는 자신의 신상보다 베를린필을 먼저 걱정했다.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그는 외친다. 슈페어는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단원들을 보호해주겠다고 대답한다. 한편 괴벨스는 베를린필 단원들까지 총을 잡으라고 징집 명령을 내린다. 슈페어는 괴벨스에 맞선다.

바로 이 같은 시대에 탄생한 음악을 듣고 있다. 푸르트뱅글러가 1951년 바이로이트 축제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라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하는 음반이 있다. 옛 LP 시절에는 지휘하러 무대로 걸어 나오는 푸르트뱅글러의 발걸음 소리까지 녹음돼 있었다. 그런데 CD로 출반하면서 이 소리를 ‘잡음’으로 여겨 없애버렸다. 그랬는데, 최근에 이 발걸음 소리가 잡음이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소리라고 판단해 새로 CD가 발매됐다. 그래서 들어보는 것이다.

고작 사흘 쓰려고 자연을 베어내겠다니

대관령 삼양목장.

푸르트뱅글러는 모든 연주자의 세포를 떨게 만드는 주술적인 해석과 장대한 조형미로 독일 음악의 적통을 이었다.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페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등 수많은 지휘자가 히틀러를 피해 망명했지만 푸르트뱅글러는 독일에 남았다. 히틀러 생일 축하 연주회에서 베토벤 9번 합창곡을 지휘하기도 했다.

패전 후, 푸르트뱅글러는 전범 재판을 받고는 7년가량 독일 내에서는 모든 음악활동을 중단한 채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간헐적으로 연주하다가 1951년 7월 29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지휘하면서 독일 무대에 복귀한다. 그 역사적인 복귀가 바로 저벅, 저벅, 저벅 걸어 들어오는 푸르트뱅글러의 발걸음 소리다. 그는 1954년 11월 30일, 바덴바덴의 요양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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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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