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몸통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다” 비리보다 부실에 초점 맞춰야

방위사업비리 수사의 이면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15-06-23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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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량 방탄복? 신·구형 구분 없이 수사
    • 엉터리 해상작전헬기? 윗선 뜻대로 진행한 건데…
    • 통영함 비리 구속된 해군참모총장은 희생양?
    • “불량군대 총체적 책임은 MB”
    “몸통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다” 비리보다 부실에 초점 맞춰야

    실물 없이 평가했다는 이유로 합수단 수사 대상이 된 해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방위사업 비리를 수사하는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6월 8일 출범 200일째를 맞았다. 그간 합수단이 기소한 사람은 총 51명(구속 39명, 불구속 12명). 그중 전·현직 군인은 모두 33명이다. 현역 장교가 장성 한 명을 포함해 10명, 예비역 장교가 23명이다.

    합수단 수사대상이 된 방산비리는 10여 건에 달한다. 통영함 납품 비리, 해상대잠헬기 도입 비리, 공군 전자전훈련장비 납품 비리, 육군 특전사령부 방탄복 비리 등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표적 사건이다.

    방위사업 비리 수사는 박근혜 정부의 기획사정인 이른바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사업) 수사의 한 갈래다. 합수단이 구성된 것은 지난해 11월. 박 대통령이 “방산·군납비리는 이적(利敵) 행위”라고 일갈한 후 한 달이 지나서였다. 4대강과 자원외교에 대한 수사가 흐지부지한 점을 감안하면 이 수사는 성공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도 하다. 특히 공군 전자전훈련장비 납품 비리와 관련해 구속된 무기중개상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과 연예인 클라라의 공방은 이 수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전직 해군 참모총장 2명이 구속된 것도 합수단의 위상을 높였다.

    그런데 최근 군 안팎에서는 합수단 수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형상 화려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부풀려진 사실이 많다는 지적이다. 초점을 잘못 맞추거나 방위사업의 특성과 납품 관행을 감안하지 않고 무리하게 법조항을 적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부실장비 도입의 책임



    해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비리에 대한 수사를 둘러싼 논란이 한 예다. 합수단은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육군용 헬기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등 엉터리 시험평가를 한 후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혐의로 군 관계자들을 구속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실물이 없는 경우 유사한 조건으로 시험평가를 할 수 있다”며 “절차대로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군사전문가들은 국방부 측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수사 방향을 두고도 말이 많다. 합수단이 부실과 비리를 구분하지 못한 채 무조건 비리 수사로 몰고 간다는 주장이다. 한 군사평론가의 분석이다.

    “현재 합수단이 수사를 벌이는 방위사업 비리는 대부분 MB(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무기 도입 정책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청와대의 예산절감 지침에 따라 군에선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왜 부실 장비를 들여왔느냐고 책임을 묻는 셈이다. 물론 무조건 사업을 진행시키려 부실한 장비를 도입한 군도 잘못이 크지만.”

    무리한 수사를 하다보니 관련자들이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을 통해 풀려나기도 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군사법원을 비난했으나, ‘신동아’ 취재 결과 일부 사건의 경우 합수단 수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이 요란하게 보도한 방탄복 비리 사건은 수사 초점을 잘못 맞춘 대표적 사례다. 2월 합수단은 방탄복 성능평가서를 조작한 혐의로 특전사 소속 전모 대령과 박모 중령을 구속했다. S사의 불량 방탄복 2000여 벌이 특전사에 납품되는 과정에 성능평가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였다.

    특전사 방탄복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국방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의 질의를 통해서였다. 당시 김 의원은 2012년 작성된 감사원 보고서를 근거로 특전사 방탄복이 북한군의 AK-74 소총에 뚫린다며 납품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이것이 합수단 수사의 단초다.

    납품 때는 불량품 아니었다?

    그런데 이 수사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는 방탄복의 성능에 관한 평가다. 2012년 감사원이 조사한 방탄복은 2003~2010년에 군에 납품된 제품이다. 이는 북한군의 구형 소총인 AK-47에 대응해 피탄(被彈)방호 시험을 거친 방탄복이다. 감사원은 샘플 14벌의 성능을 검증했다. 이 중 2008년 제작된 한 벌이 북한군 소총에 뚫렸다. 그런데 감사원이 피탄방호 시험에 사용한 소총은 2012년부터 북한군에 보급된 AK-74다. 즉 구형 소총에 맞춰 제작한 방탄복을 신형 소총으로 시험한 셈이다. 북한군의 신형 소총과 구형 소총은 탄약 크기, 총구 속도 등에서 차이가 난다.

    방탄복 납품업체는 입찰할 때 피탄방호 시험 자료를 방사청에 제출한다. 방탄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것을 심사하고 채택한 방사청 책임이다. 방사청은 감사원 시험방식에 이의를 제기했고 감사원도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2년 뒤 국정감사장에서 김 의원의 발언으로 재점화된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김 의원의 국정감사장 발언 이후 국방부가 실시한 방탄복 성능 시험결과다. 지난해 11월 17일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방기술품질원은 합동으로 방탄복의 방호력을 측정했다. 장소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ADD 산하 다락대시험장.

    이날 사수들은 구형 방탄복은 AK-47로, 신형 방탄복은 AK-74로 시험했다. 45m 떨어진 지점에서 각각 3발씩 실사격을 해 관통 여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퍼펙트’. 신·구형 방탄복 모두 뚫리지 않았다. 다만 구형의 경우 방탄면이 조금 뒤로 밀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날 공개 시연장에 참석한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은 방탄복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몸통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다” 비리보다 부실에 초점 맞춰야

    지난해 11월 17일 경기 연천군 다락대 훈련장에서 새누리당 국방위 의원들이 신형 방탄복의 성능을 확인했다.

    성능 평가 아닌 운용 평가

    둘째는 허위 공문서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다. 합수단이 문제 삼은 특전사의 허위 공문서(‘다기능방탄조끼 시험결과’)에는 피탄방호 시험이 아니라 운용시험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운용시험은 병사들에게 3개월간 사용하게 한 후 착용감, 중량, 활동성 등을 측정해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다. 방사청 주변에서는 합수단이 운용시험에 관한 문서를 피탄방호 평가 문서로 오인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보고서는 2010년 5월 작성됐다. 특전사는 2011년 4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S사로부터 방탄복 2000여 벌(13억 원 상당)을 구입했다. 특전사는 2009년 4월 방탄복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예하부대인 대테러 전문 707부대에서 시험 운용했다.

    소총과 마찬가지로 방탄복도 순차적으로 개량된 제품이 납품되므로, 군에는 신·구형 방탄복이 뒤섞여 있다. 당시 특전사가 시험 운용한 제품은 신형 방탄복의 시제품이었다.

    707부대는 이 방탄복에 대해 ‘부적합’ 의견을 냈다. 일부 언론은 감사원 보고서에 ‘총탄을 방호할 수 없는 등 모든 면에서 사용하기 부적합하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특전사 주변에 따르면 707부대는 피탄 성능이 아니라 끈이 헐겁고 소리가 나는 등 착용 시 불편함을 ‘부적합’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공인 피탄방호 능력 시험은 육군사관학교 인근 화랑대연구소에서만 가능하다. 개별 군부대의 시험은 인정되지 않는다.

    합수단은 당시 특전사 군수처장이던 전 대령과 여단 군수참모 박 중령이 공모해 방탄복 성능을 허위로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전 대령이 보고서에 707부대의 의견을 누락하는 등 문서 작성에 관여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시제품은 이미 피탄방호 시험을 거쳐 방사청으로부터 성능을 인정받은 것이기에 언론보도와 달리 성능 평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는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게다가 박 중령은 구속적부심에서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 박 중령 측은 “증거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혐의가 없는 것”이라며 “포인트를 잘못 짚은 합수단이 앞뒤 안 맞는 수사를 벌였고 언론이 아무런 확인 없이 받아쓰면서 사건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합수단은 5월 하순 성능평가 서류를 조작해 방사청에 제출한 혐의로 방탄복 납품업체 S사 임원 조모 씨를 구속했다. 박 중령은 불구속 기소했다.

    실물 없어도 평가 가능

    한편 국방부의 공개적 반발에 부딪힌 해상작전헬기 도입 비리 수사는 ‘몸통은 못 건드리고 꼬리만 잡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즉 잘못은 위에서 했는데, 처벌은 밑에서 받는다는 얘기다. ‘위’는 군 지휘부와 청와대, ‘밑’은 실무자를 뜻한다.

    해군이 신형 해상작전헬기 도입을 추진한 것은 기존 링스 헬기의 한계 때문이었다. 링스는 짧은 체공시간에 따른 작전반경 제한, 무장 및 탐색장비 운용 제한 등으로 대(對)잠수함(대잠)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지지부진하던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이 본격 추진된 계기는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이다. 이듬해 11월, 1조3000억 원을 투입해 2차에 걸쳐 총 20대(1차 8대, 2차 12대)를 도입하는 구매계획안이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의결됐다. 방추위 위원장은 국방부 장관이고, 방사청장이 부위원장이다.

    1차 사업에 대한 입찰 결과 영국 아구스타웨스트랜드사의 AW-159(와일드캣)와 미국 시콜스키사의 MH-60R(시호크)이 후보 기종으로 선정됐다. 2012년 진행된 구매시험평가에서 두 기종 모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어 기종결정 평가를 거쳐 2013년 1월 와일드캣이 사업 기종으로 선정됐다. 계약내용에 따르면 와일드캣 8대는 올해 12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순차적으로 도입된다. 국방부는 제작사에 선급금 1757억 원을 지급했다.

    합수단이 문제 삼는 것은 구매시험평가 과정이다. 해군 관계자들이 와일드캣의 성능을 과장하는 허위 시험평가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5월 임모 전 대령과 황모 전 중령, 신모 중령을 구속 기소한 데 이어, 6월 초엔 허위 보고서에 결재해 기종 선정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박모 소장을 구속했다. 박 소장은 2012년 구매시험 평가 당시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이었다. 임 전 대령은 전력분석시험평가단 무기시험평가과장이었고, 황 전 중령과 신 중령은 국외시험평가관이었다.

    와일드캣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제품이라 실물평가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합수단에 따르면, 임 전 대령 등은 “실물평가 결과 요구성능 전부를 충족했다”고 허위 평가서를 작성했다. 육군용 헬기에 모래주머니를 채우거나 경비행기에 설치된 레이더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실물평가를 대신했다.

    합수단은 또 시험평가 자료를 근거로 와일드캣의 성능이 군의 작전요구성능(ROC)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최장 체공시간이 교체대상인 링스 헬기보다도 짧고, 디핑소나(수중 잠수함 탐지기)를 탑재할 경우 어뢰 한 발밖에 싣지 못하는 등 무장에도 문제가 많아 대잠전 수행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몸통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다” 비리보다 부실에 초점 맞춰야

    엉터리 음파탐지기 탓에 해군이 인수를 거부했던 통영함(오른쪽)이 지난해 11월 부산 해군 작전사령부 부두에 구형 구조함인 광양함과 나란히 정박한 모습.

    “허위 공문서 작성, 말이 안 돼”

    하지만 국방부는 합수단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5월 26일 “국방전력업무 훈령에 따르면 개발 중인 품목에 대한 시험평가는 분석, 검사, 시연 등으로 할 수 있다”며 “반드시 실물평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육군용 기체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해상용은 당연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며 “실물이 없으면 유사한 조건으로 시험평가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시철 방사청 대변인도 “규정에 따라 실물이 없는 경우 자료 평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제작사에 따르면 체공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로 중량을 맞추는 건 흔히 쓰는 방식이다. 즉 체공시간이나 디핑소나 장착 기준 등의 규정을 맞추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이용한 것일 뿐 그 자체가 비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현재 구속된 전현직 장교들은 비리를 저지르거나 규정을 어긴 것이 아니라 관행대로 했을 뿐이다. 민간의 잣대로는 일종의 편법시험을 한 셈이다. 군 관계자는 “실물이 없으면 평가하지 못한다는 논리대로라면, 시뮬레이션 평가에 따라 차기 기종으로 선정된 F-35도 문제가 된다”며 “합수단 잣대를 들이대면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입찰방식이 문제가 되고, 모든 시험평가서가 허위공문서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기도입 사업은 제한경쟁 입찰로 진행된다. 반드시 2개 이상의 제품이 경쟁해야 한다. 만약 시험평가에서 두 회사 제품이 경쟁하다 하나가 탈락하면 자동 유찰된다. 따라서 시험평가 단계에서 한쪽을 떨어뜨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물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시험평가를 한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허위 공문서 작성은 말이 안 된다.”

    국방부와 방사청은 와일드캣의 성능이 좋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선 “최종 수락검사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도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수락검사는 도입을 앞둔 제품에 대한 실물 평가다. 만약 수락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납품 계약이 취소된다. 말하자면 검증의 최종 관문이 남은 셈이다.

    국방부와 방사청에 따르면 시험평가는 ROC 충족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업체가 군의 제안요청서(RFP)에 맞게 평가자료를 작성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ROC에 부합하는지는 디핑소나를 장착하고 실물평가를 받는 수락검사 때 판가름 난다. 하지만 합수단은 “ROC를 충족하지 못한 기종에 대해 모든 요건에 맞게 실물평가를 한 것처럼 허위평가서를 작성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본다.

    청와대 지침으로 뒤바뀐 기종

    와일드캣이 좋은 기종이 아니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이 무기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애초 해군이 원한 기종은 시호크였다. 성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그런 흐름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류가 바뀌었다. 청와대의 예산 절감 지침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한 군사평론가의 얘기다.

    “MB 정부에서 군 관련 사업은 청와대 지침에 따라 오로지 최저가 입찰로 진행됐다. 그러다보니 값은 싸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무기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상당수 사업이 그런 식으로 뒤집어졌다. 부실의 원천이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 합수단은 부실과 비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수사를 벌인다.”

    부실이 아닌 비리라면 뇌물 수수 정황이 나와야 한다. 합수단은 계좌추적을 통해 중개업체 S사에서 6억 원이 빠져나간 흔적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돈이 기소된 6명에게 전달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이 돈이 중개업체 S사 임원들에게 보너스로 지급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누구도 그 돈을 사용하지 않아 계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아직 수락검사가 남았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군 안팎에선 애초 유력한 후보 기종이던 시호크가 탈락한 것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이 사업을 잘 아는 전직 방사청 장교의 말이다.

    “시호크가 더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해군도 당연히 그걸 원했다. 그런 분위기가 청와대 지시로 바뀌었다. 와일드캣은 연료탱크가 작아서 체공시간이 짧고 작전반경도 좁다. 최대이륙중량도 시호크가 두 배 가까이 크다. 소나를 달고 어뢰를 4발까지 달 수 있다. 문제는 시호크가 비싸다는 것이다. 와일드캣 한 대 가격은 500억 원이다. 시호크는 그 3배다. 성능이 미흡한 줄 알지만, 가격이 싸니 그쪽으로 간 것이다. 실무자들은 상부 의중에 맞춰 평가했을 뿐이다. 구매시험평가 대상이 됐다는 건 일단 합격권에 든 것이다. 어차피 와일드캣으로 가는 분위기였다.”

    군 안팎에서는 와일드캣 수사의 최종 표적은 최윤희 합참의장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최 의장이 기종 선정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기 때문. 군 주변에서는 에이전트인 S사 대표 정모 씨가 당시 MB 정부 실세들과 통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직까지 최 의장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합수단은 최근 최 의장의 해군참모총장 재직 시절 일정과 사진 자료를 확보해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값싼 장비 찾다보니…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볼 것은 통영함 비리다. 구조함인 통영함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청와대는 통영함을 사고 현장에 출동시키려 했으나 해군의 인수 거부로 실현되지 않았다. 해군이 인수를 거부한 것은 통영함의 음파탐지기가 성능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해군은 2013년 12월 통영함 운용시험을 한 후 전투용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인수를 거부했다. 그에 따라 통영함은 거제도 대우조선해양소 도크에 묶인 상태였다.

    통영함 비리는 바로 이 음파탐지기 도입 비리를 뜻한다. 도입 가격은 40억 원. 그런데 지난해 감사원과 검찰 조사결과 원가는 2억 원이고, 성능은 어선용 어군탐지기를 개량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합수단은 통영함 비리와 관련해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해 12명을 구속했다. 황 전 총장은 2009년 통영함 음파탐지기 구매 사업 당시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준장)으로 재직했다. 그의 혐의는 와일드캣 비리로 구속된 박모 소장과 마찬가지로 허위 공문서에 결재한 것이다. 거기에 배임 혐의가 추가됐다.

    방사청 규정에 따르면 100억 원 이하의 사업은 팀장(대령)의 전결사항이다. 1000억 원 이하는 부장(준장), 3000억 원 이하는 방사청장(사업본부장)이 결정 권한을 가졌다. 3000억 원 이상 사업은 국방부 장관이 주재하는 방추위에서 결정한다.

    통영함 도입 가격은 1600억 원이다. 하지만 문제가 된 장비는 통영함이 아니라 음파탐지기다. 40억 원짜리 사업이므로 팀장 전결사항이다. 황 전 총장은 당시 사업본부장 직무대리로서 부하 장교가 작성한 허위 문서를 보고받고 재가했다. 합수단에 따르면 납품업체 대표 강모 씨는 황모 대령과 최모 중령 등에게 5억5800만 원의 금품을 건넸고, 두 장교는 강씨 회사 제품에 유리하도록 제안요청서의 성능조건을 조작했다.

    합수단은 황 전 총장이 돈을 받았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황 전 총장에 대한 동정론을 폈다.

    “사실 비리를 주도한 건 황 전 총장이 아니라 부하들이다. 물론 관리책임이 있지만 구속사안은 아니다. 그런데 대법원장 지침으로 방산비리 관계자는 무조건 구속하고 실형을 선고하는 추세다.”

    한편으로 통영함 비리가 해군 무기도입 비리의 전형이라는 시각도 있다. 합참 관계자의 얘기다.

    “성능이 미달되면 받지 말고, 다시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해군에선 일단 사업을 진행시키기 위해 봐주고 넘어가는 사례가 많았다. 와일드캣의 경우 합수단이 ‘실물 없는 평가’를 문제 삼은 건 시험평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그럼에도 대잠작전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기종을 들여온 건 해군의 명백한 잘못이다.”

    “차라리 예전 장비가 낫다”

    무기도입사업에 정통한 한 군사전문가는 합수단 수사에 대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잘라 말했다.

    “비리보다는 부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무자를 잡을 게 아니라 총체적 품질불량 군대를 만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구속된 전 해군 고위관계자가 ‘업체로부터 받은 돈을 MB 정권 실세들과 나눴다고 진술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지 않았나. 최종 책임자는 기획재정부를 동원해 무기도입 예산을 후려쳐 부실 장비를 들여올 수밖에 없게 만든 MB다. 기획재정부에 군 소요검증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는데, 군 사업을 검증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MB는 군을 비리집단으로 봤다. 국방부를 비롯해 각 부처 예산을 일률적으로 10%씩 삭감한 것이 4대강 사업 재원 확보와 관련됐다는 건 상식이다. 삭감된 국방예산이 4대강 예산으로 전용된 사실도 확인됐다.

    통영함 음파탐지기만 해도 원래 해군이 도입하려던 장비는 120억 원짜리였다. 그런데 도저히 가격을 못 맞추니 싸구려를 찾게 됐고 그 결과 엉터리 장비가 도입된 것이다. 업체는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속셈에서 저가로 응찰했다. 서북도서 전술비행선, 복합소총, 방탄복, 공군 전자전 장비 등이 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 결과 야전에선 새 제품을 오히려 불안해하는 풍토마저 생겼다. 구식이긴 해도 고장이 덜 나는 예전 무기가 낫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무기도입 비리 해결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전문가 육성. 영관급 실무자들은 무기중개업체와 연결된 예비역 장성들의 제안과 압박을 거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전문성을 갖춰 허위 자료를 걸러내고 업체의 불합리한 요청을 뿌리쳐야 한다. 둘째는 전력화 과정의 효율화다. 장비 도입의 절차와 형식이 복잡하다 보니 오히려 그 과정에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비록 이러저런 시비가 있긴 하지만, 합수단이 방위사업의 고질적이고도 관행적인 병폐를 파헤친 공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전력증강을 내세워 장비의 성능이나 효용성을 따지기에 앞서 무조건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진행시키려는 각 군의 퇴행적 이기주의에 경종을 울린 점은 평가할 만하다. 군사평론가의 진단이다.

    “군도 잘못이 크다. 예산 압박이 심하면 소요를 조정했어야 한다. 각 군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안보의 큰 틀에서 꼭 필요한 사업만 추진했어야 한다. 무조건 진행하려다보니 평가서를 조작하는 등 비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 합수단은 정책결정 과정은 조사하지 않고 납품 단계만 들여다본다. MB 정부 당시의 청와대는 물론 국방부와 합참, 방사청 고위관계자들을 조사해야 한다. 정권이 요구한다고 성능이 떨어지는 엉터리 장비를 들여오면 안 된다. 이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한 책임은 군에 있다. 특히 방추위 책임이 크다.”

    와일드캣 도입을 추진할 때 방추위 위원장(국방부 장관)은 김관진 현 국가안보실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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