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오비이락? 국민연금 의결권위원 삼성 초빙 논란

국민연금이 합병 캐스팅보트 쥐었는데…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5-06-24 0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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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이락? 국민연금 의결권위원 삼성 초빙 논란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적극적인 공세에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성사될까. 7월 17일로 예정된 주주총회 표 대결은 어떻게 결론이 날까. 합병 등 주요 안건은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따라서 시장은 삼성 측이 발행주식의 47% 이상을 우호 세력으로 확보해야 합병안이 가결될 것으로 본다(주총 출석률 70%로 가정).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율은 13.8%. 여기에 삼성 측 ‘백기사’로 나선 KCC가 사들인 삼성물산 자사주(5.76%)를 합하면 6월 15일 현재 의심의 여지가 없는 우호 지분은 19.56%로 추정된다. 한편 ‘반대파’ 지분은 9.52%(엘리엇 7.12%, 일성신약 2.05%,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 0.35%)로 추산된다.

    삼성 측 지분이 더 많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의 반대 의사 표시 후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해외 주요 투자자가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라며 “지분율 33.97%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결정을 예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주총 통과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삼성물산 단일주주 중 최다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9.98%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의사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해진 프로세스’는 이렇다. 일차적으로 본부 내 ‘투자위원회’(위원장은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가 판단하는데, 여기서 결정하지 못할 경우 안건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이하 의결권위)에 상정된다.



    의결권위는 9명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정부·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대표가 각각 2명씩 추천하고, 연구기관이 1명을 추천한다.

    “민감한 사안은 의결권委로”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자타공인 큰손이다. 전체 운용자산 470조 원 중 83조9000억 원(2014년 말 기준)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한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30대 그룹 상장사 중 국민연금이 오너 일가보다 많은 지분을 보유한 곳이 60%나 된다(2015년 1월 16일 기준). 삼성물산도 그중 하나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2010년 2153건에서 지난해 2775건으로 증가했다. 2006년 3월 의결권위 설치 이후 이 위원회가 소집된 것은 모두 12차례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건이 의결권위에 올라갈 것으로 관측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출신 인사는 “국민연금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외부에서 ‘의사결정을 왜 이런 식으로 했느냐’며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관심도가 높고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은 내부에서 결정하지 않고 의결권위에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의결권위가 처리한 안건으로는 현대모비스·기아차 사외이사 재선임(반대, 2015년 3월), 만도 대표이사 선임(반대, 2014년 3월), 동아제약 지주회사 전환(반대, 2013년 1월) 등이 있다.

    그런데 ‘신동아’ 취재 결과 의결권 위원 9명 중 1명이 현재 삼성경제연구소에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돼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인 K모 위원은 안식년을 맞아 지난해 8월 25일부터 삼성경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으로 가 있다. 임기는 6월 30일에 종료된다고 한다. 그는 정부 추천으로 국민연금 의결권위 위원에 위촉됐으며, 의결권위 임기는 아직 1년가량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K위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와 있는 것은 이번 합병 건과 전혀 무관하며, 주 3일만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K위원이 삼성경제연구소에 초빙연구위원 제도가 있다는 것을 듣고 과거 함께 한국금융연구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에게 연락한 것으로 안다”며 “고령화로 새로운 연금 상품 개발이 필요한데, 마침 이분(K위원)이 연금 전문가여서 함께 연구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분이 오신 게 지난해 8월인데, 그때 이런 일(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논란)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냐”며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인 상황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고위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삼성경제연구소는 안식년을 맞은 대학교수 등을 초빙연구위원으로 위촉한다. 삼성경제연구소와 협업이 가능한 분야의 전공자를 선호하는데, 현재는 4~5명의 초빙연구위원이 있다고 한다. 그는 “초빙연구위원에게는 일정한 급여를 지급하는데, 사람마다 달라서 밝히긴 어렵다”고 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한때 지식콘텐츠 사업을 왕성하게 벌이던 삼성경제연구소는 2년 전부터 외부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삼성그룹 내부 이슈에 몰두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K위원이 의결권위 위원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삼성경제연구소 내부에선 K위원이 국민연금 전문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 소속으로 있는 것에 대해 외부 시선이 곱지 않으리란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오비이락? 국민연금 의결권위원 삼성 초빙 논란


    “외부 시선 곱지 않은데…”

    오비이락? 국민연금 의결권위원 삼성 초빙 논란

    삼성경제연구소는 2년 전부터 삼성그룹 내부 이슈에 몰두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07년 국민연금기금 윤리강령을 제정해 기금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보건복지부 공무원과 국민연금관리공단 직원뿐만 아니라 각종 위원회 위원, 거래기관 임직원 등까지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윤리강령 제7조 ‘이해관계 직무의 회피’에 따르면 위원 및 직원은 자신이 수행하는 직무가 자신, 또는 자신과 특수한 관계가 있는 자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당해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본인이 아무리 이번 합병 건과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해도 누가 그것을 신뢰하겠냐”며 “남이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결권위 위원을 지낸 바 있는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2년 2월 열린 회의에서 한 위원은 자신이 안건 관련 그룹의 계열사 사외이사를 맡고 있어 이해상충이 발생한다며 스스로 기권했다”고 전했다. 2012년 2월 최태원 SK 회장을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에 대해 의결권위가 열렸다. 이때 윤창현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사용자 대표 추천)이 “SK C·C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며 표결에 기권했다.

    만약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건이 의결권위로 넘어간다면 해당 위원회는 7월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K위원의 삼성경제연구소 임기는 6월 말에 종료된다. 따라서 ‘가까스로’ 이해상충을 피할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신동아’는 본인의 의견을 묻고자 K위원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관계자는 “해당 안건에 대한 의결권위가 열리게 되면 K위원 관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모직-물산 합병, 국민연금의 선택은?

    “찬성하면 국민이익 침해” vs “반대하면 국익유출 우려”


    APG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운용자산 규모 면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발표 직후 APG가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과 달리 국민연금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아직 삼성물산으로부터 주총 안건을 받지 않은 상태”라며 “공식적으로 안건을 통보받은 다음 투자위원회 등 의사결정 논의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7월 17일 주총에 앞서 7월 2일 주총 소집 통지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의 선택과 관련해서는 여러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찬우 전 국민연금 본부장(국민대 교수)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판단한다”며 “국민연금 기금이 ‘주주권’을 좀 더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반면 오정근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건국대 특임교수)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탐욕적인 외국계 헤지펀드를 도와 국익을 유출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 의결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안정적인 기금 재정을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면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일에 수수방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국민연금은 대주주로서 별도 위원회를 만들어 합병 비율을 공정하게 산정하도록 삼성 측에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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