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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정·재계 거물이 빚어낸 ‘국회 옆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정·재계 거물이 빚어낸 ‘국회 옆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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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국회의사당 옆에는 큰 도로가 나 있지만 미국 국회 옆에는 미술관이 있다.
  • 미국 정치의 심장부 한가운데 우뚝 선, 워싱턴DC의 내셔널 갤러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방대한 소장품을 자랑한다.
정·재계 거물이 빚어낸 ‘국회 옆 미술관’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셔널 몰(National Mall)을 찾는다. 이 도시의 핵심이 모두 이곳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내셔널 몰은 시내 한복판에 길이 3km, 폭 483m로 조성된 커다란 공원이다. 동쪽 끝에는 국회의사당(Capital Hall), 서쪽 끝에는 링컨 대통령 기념관(Lincoln Memorial)이 있고, 가운데쯤엔 높이가 169m나 되는 오벨리스크, 워싱턴 모뉴먼트(Washington Monument)가 서 있다. 내셔널 몰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2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바로 이곳에 궁궐 같은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도 자리 잡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국회의사당과 가까운 동쪽부터 이스트 빌딩(East Building), 웨스트 빌딩(West Building), 조각정원(Sculpture Garden)이다. 지금은 국립 미술관이지만, 1937년 설립 당시엔 대재벌 앤드루 멜론(Andrew W. Mellon·1874~1937)의 돈과 소장품에서 출발했다. 멜론의 물적 지원 아래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존 포프(John Russel Pope)가 궁궐같이 웅장한 규모로 웨스트 빌딩을 설계했는데, 그때 세계에서 가장 큰 대리석 건물이었다고 한다.

꼭 들러야 할 이스트 빌딩, 조각정원

이스트 빌딩은 한참 뒤인 1978년 멜론의 아들, 딸의 헌금으로 완공됐다. 설계는 중국계 유명 건축가 페이(I M Pei)가 맡았는데 1981년 유명 건축상을 받았을 정도로 예술성이 뛰어나다. 본관 웨스트 빌딩과는 지하 통로로 연결돼 있으며 현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웨스트 빌딩 서쪽의 조각정원은 1999년에 만들어져 유명한 현대 조각 작품들이 야외에 설치되어 있다.

미술관 관람은 무료다. 그런데 잘 모르고 가면 규모가 가장 큰 본관인 웨스트 빌딩만 둘러보고 나오기 쉽다. 나도 첫 방문 때 그런 실수를 했다. 이스트 빌딩에는 현대미술 유명 작품이 수두룩하기에 반드시 가봐야 한다. 아름다운 조각정원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



이 미술관은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Institution) 안에 있던 내셔널 갤러리와는 별개의 미술관이다. 거물 정치가이기도 했던 멜론이 미술관을 지으며 이름을 내셔널 갤러리로 하자, 스미소니언의 내셔널 갤러리는 ‘내셔널 컬렉션(National Collection of Fine Arts)’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는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이란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반관반민’ 형태로 운영된다. 미술관 유지와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은 연방정부가 대고, 작품 구입 및 특별 프로그램 운영비는 민간 기부금과 자체 기금으로 조달한다.

3대 재벌이자 재무장관

정·재계 거물이 빚어낸 ‘국회 옆 미술관’
피츠버그 부자 가문에서 은행가이자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앤드루 멜론은 사업의 귀재였다.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둬 ‘석유왕’ 록펠러, ‘자동차왕’ 포드의 뒤를 이어 3대 재벌로 등극했다. 그는 피츠버그 대학에 다녔지만 피츠버그에 훗날 명문 사립대로 성장한 카네기-멜론 대학(Carnegie-Mellon University)을 세웠다. 당시 피츠버그는 미국 산업혁명의 메카로 여러 사업이 번창하고 있었고, ‘철강왕’ 카네기는 멜론의 사업 동료였다.

멜론은 1921년부터 1932년까지 11년간 재무장관으로 봉직했다.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재무장관을 오래 맡은 인물이며, 3명의 대통령을 연속으로 보좌한 3명의 미국 관료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하딩, 쿨리지, 후버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불행히도 재임 중인 1929년 세계 역사상 최대의 경제 재앙으로 일컬어지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발생했다. 그는 대공황 수습에 온 힘을 쏟았지만 ‘인기 없는’ 장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재무장관에서 물러난 직후에는 1년 동안 영국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다.

이런 경력의 소유자이다보니 미술관을 세우려는 그에게 힘이 붙지 않을 수 없었다. 1937년 의회는 ‘국가 원로’ 멜론의 뜻에 따라 미술관 설립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때 멜론의 나이가 82세였다. 그 나이에도 국가를 위해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멜론의 의지가 바로 ‘미국 정신’이 아닌가 싶다. 의회 승인으로 미술관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의사당 바로 턱밑에 미술관 건물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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