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특별기고

“지방의원님들, 공연장 그냥 놔두세요”

  • 입력2018-10-10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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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200여 문화재단, 기초의회 등쌀 시달려”

    • “부당 간섭, 예산 삭감, 청탁”

    • “문화예술인 신나게 도울 수 없어”

    국회와 마찬가지로 지방의회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예산 심의·감사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인 문화재단도 지역의회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회는 문화재단에 대해서도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고, 특위를 구성해 감사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구성하는 지방자치제도에서 당연한 것이다. 원칙은 그렇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의회의 예산권 때문에 겪는 고충은 적지 않다. 

    각 문화재단이 귀중한 혈세를 사용하는 것이니 시의원, 구의원을 설득하는 일을 절대로 불필요한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그만한 보람이 있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벽에 부딪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재단의 얘기다. 이 재단의 사장은 ‘문화사업’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지역의회를 찾아가 “해당 사업은 긴 시간을 보고 투자하고 가꿔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간곡히 설득했다. 그는 “굉장히 비전 있는 사업인 만큼 앞으로 문화재단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먹거리’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재단 측은 사업 예산으로 3억 원을 신청하면서 “이 예산만 주어지면 당장 1억 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1억1000만 원으로 대폭 깎였다. 3분의 1로 축소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초 재단 측이 말한 1억 원 수입도 달성할 수 없게 됐다. 



    이것이 화근이 됐다고 한다. 지역 의회가 앞으로는 예산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이유인즉 “1억 원을 벌기로 했으면서 왜 못 벌었느냐”는 것이다. 3억 원 예산 편성을 전제로 1억 원을 벌겠다고 했으면, 1억 원으로 예산이 줄어든 데 따른 기대수익도 3분의 1로 낮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런 이치는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초단체-의회도 정치 대결이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소속 정당이 다른 곳이 많다. 몇몇 기초의원이 “혈세를 낭비했다”는 공세를 펼치면, 여기에 맞서 일하는 사람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설상가상 지역 언론까지 찾아와 “왜 돈을 못 벌었나?”는 비판을 가해 해당 재단은 더욱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악보 복사비’ 소동

    일부 재단에선 오케스트라 공연 때 악보 복사비 문제로 소동을 겪었다. 말이 ‘악보 복사 비용’이지 사실은 ‘편곡 비용’이다. 비록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곡이지만, 공연할 때마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이 들고날면서 악기 편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때그때 편곡을 해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당하다. 물론 문화계에 몸담은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든 내용이긴 하다. 

    의회에서 이 악보 복사 비용 100만 원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다. 의회에서 “수백 년 된 작품이니 지적재산권도 없는데 왜 복사비가 100만 원이나 들어가느냐”는 추궁이 나왔다. “다른 데다 이 돈을 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사실 편곡비에 해당하는 악보 복사비가 100만 원이면 거저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소동은 관계자들에게 악보 복사에 대해 미리 물어봤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공세를 펴니 문화사업을 펼치는 사람들은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좌절한다. 

    필자도 지역의 문화예술을 꽃피우면 그 지역이 발전하고 상권도 발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문화재단에 발을 들여놨다. 막상 문화재단 사장으로 와서 보니 정치적 진영 논리 싸움에 재단이 희생양이 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서울의 11개 문화재단 중 상당수는 자치단체 산하에 있고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여러 공연을 준비한다. 청탁금지방지법 시행 이전엔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불청객들이 찾아들었다. 공짜 표를 달라는 요구가 쇄도한 것이다. 표를 요구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중엔 기초의원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람들은 주로 초대권보단 좌석권을 요구했다. 객석이 500~600석인데 70~80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해 요구를 들어주자 문화공연의 수혜자가 돼야 할 국민에게 돌아갈 표가 사라졌다. 

    한심한 일은 공연 당일 자주 벌어졌다. 공짜 표로 나간 자리의 절반이 비어버린 것이다. 듬성듬성한 객석을 보면서 무대 위 예술인들까지 맥이 빠졌다. 이런 청탁 표 남발은 문화재단에 재정적 어려움도 안겼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것은 문화재단으로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후 공연 티켓 청탁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요청이 오긴 오는데 다만 이전보다 강도가 약해졌다고 한다.

    “자기 사람 심는 것 아니냐”

    전국 지자체 산하 200여 문화재단은 이러한 고충을 비슷하게 안고 지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다 보니, 상당수의 문화재단 사장들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지역 정치인들이 왜 이렇게 사사건건 재단이 하는 일에 반대 의견을 앞세우는지는 역으로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다. 문화재단뿐만 아니라 복지재단, 시설관리공단을 만들 때마다 의회에서 강하게 반대한다. 

    반대 논리는 ‘기초단체장이 재단에 자기 사람을 심은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 나온다. 이런 논리를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진짜 문화 전문가로 온 사장들도 함께 의심받고 있다. 또한 일부 지자체의 경우 단체장과 기초의원의 당적이 다르면, 의원들은 대체로 문화재단 일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재단이 잘되면 여당에 유리해지니까 반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혈세를 낭비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는 지역의원들의 애국심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기초단체 의원들 중 문화 전문가는 별로 없다. 지방의회 기초의원들이 문화재단과 공연장을 그냥 놔두면 좋겠다. 자율성을 확보해주면 좋겠다. 간섭을 최소화해달라는 것이다. 이참에 문화체육관광부나 별도의 기관이 문화재단을 감독하면 좋겠다.

    200여 공연장만 활성화해도…

    그러면 문화재단의 전문가들이 신나고 멋있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나 행정기관 직원들이 문화재단을 운영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전문가들이 맡으면 공연 내용이 다양해지고 깊이도 달라진다. 경제적 효율도 높아진다. 공연을 모르는 사람이 운영하면 한 번 공연에 10억 원이 들어갈 일을 전문가는 절반 비용에 해낼 수 있다. 

    전국 지자체 산하 200여 공연장만 활성화해도 문화예술인들은 무대에 훨씬 자주 설 수 있고 자신의 꿈을 활발하게 펼칠 수 있다. 국민도 좋은 작품을 훨씬 많이 감상할 수 있다. 우리 생활수준이 그만큼 올라간다. 

    문화재단 운영자들은 서울인천문화재단연합회나 전국연합회 같은 데서 서로 모여 의견을 교환한다. 늘 나오는 이야기가 의회 문제다. 그러나 문화재단 사장들은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한다. 직장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라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안다. 모두 침묵하면 그냥 묻혀 넘어가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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