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

인터뷰

조남한 국제당뇨병연맹 회장

“北에 남북협력 당뇨병전문병원 건립 추진”

  • 최호열

    honeypapa@donga.com

    입력2018-11-25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당뇨는 소리 없는 암살자…경각심 높여야

    • 췌장 인슐린 분비 적은 한국인 당뇨병 병태생리 최초 규명

    • 내년 12월 부산 IDF총회, 1000억 원 경제효과 기대

    • 당뇨교육도 의료보험 적용돼야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당뇨병은 흔히 ‘소리 없는 암살자’로 불린다. 별다른 증상이 없어 방치할 경우 각종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실정이다. 이에 국제연합(UN)과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당뇨병연맹(IDF)은 11월 14일을 세계당뇨병의날로 정해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내년 국제당뇨병연맹 총회 및 세계학술대회가 부산 벡스코에서 12월 2일부터 7일까지 열린다. 1950년 설립된 IDF는 세계 170여 개국 230여 단체를 아우르는 당뇨병 관련 전문단체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유엔, 세계보건기구 등과 협력해 당뇨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7년 12월부터 IDF를 이끌고 있는 조남한(60) 회장은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로, 30년 넘게 당뇨병 임상 및 기초 연구에 천착해온 전문가다. 일찍부터 IDF 서태평양지부의장(2009), IDF 아틀라스 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하며 국제적 리더로 인정받아왔다. 2015년엔 캄보디아 최고 훈장인 ‘사하메트레이 왕실 대십자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캄보디아에서 지속적으로 의료봉사를 시행하고, 국립당뇨병센터 설립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11월 5일,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던 조 회장을 만나 당뇨병과 IDF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질환의 주범 당뇨

    - 당뇨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처음엔 피츠버그대 의대에서 에이즈를 연구했다. 당시 연구소 옆에 당뇨병센터가 있었는데, 당뇨가 모든 질환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 의대 교수로 있으면서 소아당뇨와 임신성당뇨에 대한 연구를 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해외동포 두뇌 초청의 일환으로 아주대로 옮겼다. 2001년부터 한국 게놈(genome)연구 국책사업에 관여해 한국인의 당뇨병 주원인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당뇨병이 어느 정도로 위험한가.

    “대부분의 질병, 심지어 현대인에게 가장 큰 공포 대상인 ‘암’도 완치가 가능하지만, 당뇨병은 완치란 게 없다. 한번 걸리면 낫지 않는 불치병이다. 그래서 치료란 말은 틀린 말이고, 관리를 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당뇨는 온갖 합병증을 유발한다. 당뇨에 걸리면 10년 내에 약 30%가 당뇨망막증이 오고, 60%가 발 질환이 생겨 심한 경우 발을 절단해야 한다. 전체 심장질환의 60%, 신장질환의 30%가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이다.”

    - 우리나라 당뇨 환자는 몇 명 정도인가.

    “정확한 숫자 파악도 안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엔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가 250만 명 정도로 되어 있는데, 이건 병원에서 치료받는 숫자일 뿐이다. 내가 10년 전에 조사할 때 이미 준(準)당뇨군을 포함해 500만 명이 넘었다. 지금은 아무리 적어도 700만 명에서 많게는 1000만 명에 이를 것이다. 전 세계 당뇨병 환자는 7억77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6초에 한 명씩, 연간 500만 명이 당뇨로 사망한다고 보면 된다.”

    - 준당뇨군이 뭐가.

    “치료를 받지 않고 있더라도 이미 관련 수치가 당뇨병 단계에 접어든 경우를 말한다.”


    뭐든 적당히

    -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치료, 관리비가 많이 들겠다.

    “당뇨는 말 그대로 막대한 인명 피해와 비용 지출을 초래한다. 우리나라 당뇨병 관련 시장이 연 2조 원 정도, 전 세계 시장이 연 72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사망자의 85%가 후진국과 개도국에서 발생한다. 의료비 때문이다. 당뇨병 관련 환자당 평균 지원비용이 후진국의 경우 연 70달러에 불과하다. 혈당 체크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안 된다. 개도국은 468달러, 선진국은 6767달러다. 그러니 선진국일수록 더 오래 사는 게 당연하다.”

    - 당뇨는 어떤 사람들이 걸리나.

    “옛날엔 부자들이 걸리는 병이라고 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유전하고도 별 관계가 없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조 회장은 한국인의 당뇨병 병태생리가 서양인과 다르다는 것을 최초로 구명(究明)해낸 주역이다. 서양인은 당뇨병의 주된 원인이 비만 때문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한국인은 비만이 아닌데도 당뇨병에 걸리는 이유를 그동안 알지 못했다. 조 회장은 연구를 통해 한국인이 체질상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서양인보다 떨어져 당뇨병에 걸리는 환자가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 당뇨병 예방을 위해 조언한다면.

    “식습관, 생활습관, 거주환경이 중요하다. 신토불이가 맞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육식을 많이 안 하고 채식 위주로 먹었다. 췌장이 약하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육식, 인스턴트음식 등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즐겨 먹는다. 운동량도 적다. 당연히 비만이 오고, 당뇨가 동반한다. 많이 움직이고 운동하는 게 필요하다. 폭음과 흡연도 췌장에 영향을 줘 인슐린 분비 기능을 떨어뜨린다. 급격한 다이어트도 당뇨의 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대 출생자가 1960년대 출생자보다 임신성당뇨병 발병 비율이 높다. 못 먹어서 그렇다. 당뇨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온다.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좋다.”


    최초의 동양인 회장

    조남한 회장이 2015년 캄보디아 최고 훈장을 받고 있다.

    조남한 회장이 2015년 캄보디아 최고 훈장을 받고 있다.

    - 국제당뇨병연맹(IDF)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전 세계 당뇨 관련 전문가단체의 연합체라 할 수 있다. 또한 당뇨병 환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의학 관련 국제단체들이 의사, 제약사 중심인 것에 비해 우리 연맹은 환자단체도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우리나라도 의료단체인 대한당뇨병학회와 환자단체인 한국당뇨협회가 모두 가입해 있다.”

    -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회장에 당선됐는데.

    “서태평양지부 의장을 하는 등 오랫동안 연맹 일을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럽인들이 70년 가까이 집행부를 장악하면서 횡령 등 내부 비리가 만연했다. 그래서 조직을 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출마했는데, 많은 회원단체가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꼈던 모양이다. 당시 4명이 출마했는데 압도적으로 나를 지지해줘서 아시아 뿐아니라 유색인으로는 최초로 회장에 당선됐다.”

    - 취임 후 어떤 활동을 했나.

    “당뇨병 관련 원스톱 종합정보 포털사이트인 온라인스쿨을 만들어 당뇨병 치료·관리와 예방에 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전 세계 당뇨병 환자들을 연결하는 ‘블루서클 보이스’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의사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관리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등 소외된 국가들의 소아당뇨환자 지원 사업을 하고 있으며, 최근엔 인공지능을 활용한 당뇨망막증 조기진단 기계를 만들어 보급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선 200대를 170개 회원국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 기계는 30초면 자동 진단이 가능하고, 90% 이상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K-바이오메디’ 수출 기회

    크로아티아 IDF 당뇨병 교육센터 현판식에 참석한 조남한 회장. 
조 회장 왼쪽이 크로아티아 대통령이다.

    크로아티아 IDF 당뇨병 교육센터 현판식에 참석한 조남한 회장. 조 회장 왼쪽이 크로아티아 대통령이다.

    - 내년 12월 IDF총회 및 학술대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IDF 총회와 학술대회는 2년마다 열린다. 2016년부터 부산시, 한국관광공사, 부산관광공사, 벡스코 등 유관기관과 위마이스 회사가 적극적인 유치 마케팅을 펼쳐 이탈리아, 브라질, 인도, 베이징, 싱가포르 등 10여 개국을 제치고 유치에 성공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약 25년 만에 열리는 셈이다. 지난 7월 24일 조직위원회가 출범해 행사를 준비 중이다. 총회는 180개국 이상 2만여 명의 당뇨병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5일 동안 당뇨병 환자의 치료를 위한 연구개발 사례와 최신 정보를 공유한다.”

    - 총회를 통해 우리가 얻는 효과가 있다면.

    “당뇨는 심각한 질환임에도 국민도, 정부도 그 위험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4대 질환’에도 포함이 안 돼 있을 정도다. 총회는 당뇨병의 심각성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경제 효과도 커서 최소 1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부산은 과거 신발산업의 메카였지만 지금은 사양길에 있다. 총회를 통해 우리의 기술과 디자인으로 세련된 고기능성 당뇨병환자 전용 신발을 개발해 세계에 알리면 웰빙 신발산업 활성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의 당뇨병 관리 체계 및 병원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외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통해 우리의 경제와 문화 수준을 세계에 알린 것처럼 이번 총회도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한국 의료기술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K-팝처럼 ‘K-바이오메디’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약 수준은 어떤가.

    “제약 부분은 많이 뒤떨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몇 년 전 모 제약회사가 개발한 당뇨병 신약기술을 외국 제약사에 판 것은 아쉽다. 5조 원에 팔았는데, 그 약이 제품화되면 우리는 연간 40조, 50조를 주고 사 먹어야 할 것이다. 만성질환 관련 의약품 몇 개만 있어도 우리나라가 먹고살 수 있다. 최근 발생한 혈압약 사건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혈압약 대부분을 중국에서 사다 먹는다. 심각한 문제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 당뇨병 관련 제도에 아쉬움이 있다면.


    “너무 많다(웃음). 우선, 당뇨는 교육이 중요하다. 교육도 처방이다. 그런데 당뇨교육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 그러니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환자 본인과 가족이 알아서 해야 한다. 보건 당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길 바란다. 당뇨는 산업적인 면에서도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


    세계당뇨병환자 돕는 자선단체 건립

    - 앞으로 계획은.

    “당뇨는 합병증이 큰 문제다. 그래서 연맹 산하에 합병증예방학회를 만들 계획이다. 예를 들어 혈당 관리뿐 아니라 조기망막증, 심장질환 등 모든 합병증을 진단 초기부터 같이 관리해주는 패키지 환자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연구모임이다. 북한에 남북협력 당뇨병전문병원을 설립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내년 5월경 북한에 갈 예정이다. 또한 퇴임 후에는 세계당뇨병환자를 돕는 자선단체를 만들려 한다. 회장 임기를 마치면 바로 시작할 생각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