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안 먹어” <64%>
“일주일 내내 라면-김밥”
“음료, 편의점 간편식으로 때우기”
“못 먹고 취업도 안 되고”
서울 대학가 자취생들이 끼니를 때우는 음식이라며 보내온 사진
서울 연희동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생 이모(여·24) 씨는 대학가의 많은 자취생이 그렇듯이 지방에 사는 부모에게 월세와 용돈을 지원받는다. 식사는 용돈으로 해결한다. 서울 대학가 월세가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올라 웬만한 곳에선 1000만 원이 넘는 보증금에 50만 원 이상의 월세를 줘야 원룸을 구한다. 이씨는 “부모가 월세와 용돈을 마련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월말로 다가가면 용돈이 거의 떨어진다. 보통 식사는 저렴한 편의점 음식이나 학교 내 학생식당 음식으로 해결한다. 어떤 때엔 하루 한 끼로 때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월세와 외식비는 올랐는데 용돈은 그대로라 제대로 먹지 못 한다”고 했다.
“방세가 20만 원이나 올라서”
서울 종암동 원룸에서 자취하면서 인턴 생활을 하는 장모(여·24) 씨는 “월세는 부모가 대주고 교통비, 관리비, 식비는 내가 마련하는데 월 50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일단 먹는 데 드는 돈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자취생도 부실한 식사를 하긴 마찬가지다. 서울 갈월동에서 자취하는 K대학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정모(여·26) 씨는 “2년 전보다 방세가 20만 원이나 올랐다. 물가도 올라 같은 양의 식재료를 사도 예전에 비해 1만 원이 더 나온다”고 말했다. 정씨는 “용돈은 그대로라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교통비 같은 필수 비용을 제외하면 줄일 수 있는 건 식비뿐이다. 라면과 김밥을 일주일 내내 먹은 적이 있을 정도로 식사의 질이 확실히 낮아졌다”고 했다.
서울 회기동에서 자취하는 취업준비생 정모(여·26·H대 영문과 졸업) 씨도 “용돈을 아껴도 한계를 느낀다. 생활비 몇 만 원이 아쉬워 중고서점에 책을 팔아 보태기도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포기하고 커피도 마시지 않는 식으로 식비를 아끼는 게 습관이 돼 있다”고 했다.
필자는 10월 3일부터 7일까지 5일 동안 혼자 사는 20~30대 초반 남녀 33명에게 본인이 하루 동안 먹는 모든 것을 사진과 함께 기록하게 했다. 그 결과, 이들 중 64%(21명)는 “5일 동안 아침을 한 번도 안 먹었다”고 했다. 5일 중 3번 이상 아침을 먹은 사람은 단 3명밖에 없었다.
“‘밥 먹고 가’ 들어본 적 없어”
자취생 조모 씨가 ‘하루 동안 먹은 음식’이라며 보내온 사진.
조사 결과, 자취생 응답자들은 대개 부실한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향을 보였다. 33명은 하루 평균 1회 외식을 했고 5일 중 1회 이상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김모(24) 씨는 “집에 부엌이 있지만 거의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사 먹으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너무 번거롭다”고 했다.
이들의 외식은 정상적인 한 끼 식단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33명의 식단을 분석해본 결과, 이들은 주로 아침을 거르는 대신에 과자, 빵, 음료 같은 간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취업준비생 김모(26) 씨는 오후 7시 연어덮밥을 첫 끼로 먹었다. 그전에 김씨가 먹은 것은 두유 한 개, 찰보리빵 한 개, 카페 음료 한 잔이 전부였다. 1인 가구 청년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식사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학생 김모(23) 씨는 “허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해 과자 같은 것들로 끼니를 자주 때우는 편”이라고 말했다. 거의 매일 1일 1식을 한다는 대학생 조모(25) 씨는 “주말에도 한 끼만 먹는다. 자취방에 혼자 있을 땐 거의 컵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조씨는 5일 동안 이온음료와 컵라면으로 하루 끼니를 대신했다. 혹은 저녁을 먹지 않고 술로 하루 식사를 마무리했다. 10월 6일 조씨의 식단 기록이다. 오전 9시 생크림파이 1개, 오후 6시 편의점 삼각김밥 1개, 오후 9시 컵라면 1개와 봉지과자 절반과 소주-맥주 섞은 술 5잔.
자취생 최모(25) 씨는 “부모 집에 내려갈 때마다 살이 3kg 정도 찐다. 서울에 올라오면 다시 빠진다”고 했다. 서울 대학가 자취생들이 빈약한 식사를 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누군가에겐 먹는 것이 생존을 위한 음식물 섭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물가 상승과 일자리 감소로 많은 자취생이 배를 곯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아가 상당수 자취생은 취업 준비로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만 취업이 잘되지 않는 현실에 부딪혀 먹는 문제를 소홀히 한다고 말한다.
조씨는 하루 세끼 먹는 사람이 부럽다고 했다. “취업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다. 재정적·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있어야 챙겨 먹을 수 있다. 가끔 각박한 세상에 혼자 외톨이가 되는 것 같다. ‘밥 먹고 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6년째 원룸에 사는 윤모(26) 씨는 9월 이사를 하면서 우연히 전기밥솥을 열어봤다. 언제 지은 지 알 수 없는 밥이 들어 있었다. 이사를 도우러 왔던 윤씨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왜 이렇게 사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씨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밥을 지어 먹을 여력이 없다”고 했다.
서울시내에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는 월셋방이 늘어나는 것도 자취생들의 영양실조에 한몫을 한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조모(27) 씨는 아침을 거른 뒤 오후 1시 홍삼 음료로 점심을 대체했다. 오후 5시경 카푸치노 음료를 간식으로 마셨다. 조씨는 저녁 6시가 넘어서야 대학 학생식당의 제육덮밥으로 그날의 한 끼를 먹었다. 조씨는 어른 세 명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에서 자취한다. 식사가 제공되지 않고 부엌도 없어 밥을 직접 지어 먹기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취사가 불가능하니 재료를 보관할 냉장고도 마련하지 않았다. 방 한쪽에는 생수 두 병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조씨는 “잠만 잘 생각으로 구한 방이다. 모든 끼니는 학교 학생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늘어나는 ‘잠만 자는 방’
20대 남녀가 이런 ‘잠만 자는 방’을 택하는 것은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다. 취사 시설이 없는 대신 방값이 저렴하기 때문. 조씨는 보증금 없이 35만 원의 월세를 내는데, 부엌이 딸린 원룸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조씨는 “취업 준비생 처지여서 집에 들이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릉동 대학가 일대에선 잠만 자는 방을 홍보하는 전단지가 쉽게 눈에 띄었다. 대부분 보증금 없는 30만 원대 월세였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주로 이런 방을 찾는다.
“학생식당 음식 질 나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런 방을 택한 사람들은 당연히 외식비도 아낀다. 이들은 학생식당이나 편의점에 더 의존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잠만 자는 방에서 2년째 거주하는 모 회사 인턴 이모(26) 씨의 식단은 학생식당 밥으로 주로 채워졌다. 5일 동안 5번 아침식사를 걸렀고 10번 식사를 했는데 6번이 학생식당 음식이었다. 아침식사를 거른 것은 학생식당이 늦게 문을 열어 여기서 아침을 먹고 출근하면 회사에 지각하기 때문이었다.문제는 서울 각 대학 학생식당 음식이 보통 2000~5000원 정도로 저렴한 대신 질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이다. 이씨는 “학생식당 음식이 부실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모(27) 씨도 “자취방 주변 대학들의 학생식당 중에 안 가본 데가 없다. 모두 질이 좋지 않다”고 했다.
물론 몇몇 자취생은 취업에 성공해 잠만 자는 방에서 벗어나고 좋은 음식도 챙겨 먹는 행복한 삶을 누린다. 대학생 시절 고시원에서 살던 전모(25) 씨는 취업 후 작은 아파트를 얻었다. 그는 요즘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다. 과일과 채소까지 챙겨서 섭취한다. 전씨는 “고시원에서 배를 곯으며 살던 때와 비교하면 삶의 질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든든하게 세끼를 챙겨서 먹는다”고 말했다.
1인 가구는 매년 증가한다. 2015년 전체 가구의 27.2%인 518만 가구가 혼자 사는 세대다. 월세가 올라서, 외식비가 뛰어서, 취업난이 심해서, 서울 대학가 20대 남녀 자취생들은 배를 곯는다. 한 자취생은 “외국 대학은 학생식당 음식의 질이라도 좋건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 이 기사는 저자들이 이화-SBS 문화재단 ‘프런티어저널리즘 스쿨’의 후원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