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

美, 中 목 더 죄면, 한국 경제 쓰나미

  •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dongwon10@gmail.com

    입력2018-11-2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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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중 정상회담, 큰 성과 없을 것

    • 美, 시장경제 블록으로 中 압박

    • 내년 中 GDP, 최대 1.63%P↓

    • 韓 GDP도 최대 0.46%P↓ 가능성

    • 미국 손 들어주면 또 ‘사드 사태’

    • 장기 침체 코앞인데 정부는 포용·통일 꿈만

    [동아DB]

    [동아DB]

    11월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로 “길고 매우 좋은 대화(long and very good conversation)를 했다”는 소식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뉴스는 세계 증권시장을 춤추게 했다. 그러나 축하 파티는 하루로 끝나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회담의 좋은 분위기가 11월 30일로 예정돼 있는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임을 트위터로 밝혔지만 증권시장은 냉정하게 반응했다.

    미·중 무역마찰은 지난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5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과연 양국은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화해의 대반전을 이룰 것인가? 만약 세계 증권시장의 반응과 같이 달라질 것이 없다면, 이후 미·중 무역마찰은 어떻게 전개될까? 그럴 경우 한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선거 앞둔 트럼프의 제스처

    미국의 협상 요구 리스트에 대해 중국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드러내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양국 정상 차원에서 소통과 화해가 있었음을 언급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합의안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CCTV는 미국 측 요청으로 전화회담이 이뤄졌으며, 시 주석은 G-20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양국 간 현안을 놓고 회담하기를 바란다고 답한 것으로 발표했다. 7개월간 관세 보복을 주고받으며 가히 ‘무역전쟁’으로 불려온 양국 간 갈등이 일시에 대반전을 보인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 정부의 구체적 협상 목록이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상회담 이전에 합의안을 준비할 시간 여유도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화해에 적극 나선 이유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게 오른 주가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워왔다. 그러니 중간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주가 폭락 등 증권시장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 주석은 미국 정부의 관세 공격으로 수세에 몰려 있다. 또 중국 경제는 위안화 가치 하락과 주가 하락으로 흔들리고 있다. 시 주석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는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지금 시점에서 양국 지도자가 자국 국민에게 무언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정치적 이해가 일치한 셈이다.




    트럼프-시진핑 회담, 외화내빈 될 듯

    하지만 G-20 정상회담은 포괄적 화해의 회담이 될 수는 있으나, 무역마찰을 완화하는 구체적 성과를 도출할 가능성은 낮다. 근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을 양보할 수 없다. 시 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포기할 수 없다. 더구나 미·중 간 갈등 범위는 무역수지 불균형이나 첨단기술 경쟁에 그치지 않는다. 대만과 남지나해를 둘러싼 군사적 갈등,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대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이는 현재 미국이 장악한 국제정치와 세계경제 주도권에 대해 중국이 도전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의 주도권 다툼이 문제의 본질인 셈이다. 어느 나라도 먼저 무릎 꿇어 자국민을 실망시키는 정치적 패배를 감당할 수 없다.

    물론 양국이 포괄적인 화해의 모양새만 연출해도 미·중 무역마찰의 속도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러나 결코 갈등과 충돌의 방향이 변할 수는 없다. 무역수지 문제는 상당 부분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술과 지적재산권 도용 이슈는 타협이 어렵다. 중국의 기술도용 관행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전제돼야 재발 방지 약속이나 새로운 제도적 장치 마련에 합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행위의 당사자인 중국 국영기업의 관행을 문제 삼으려면 근본적으로 중국의 경제 운영방식인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산업정책을 따져봐야 한다. 특히 국영기업의 기술개발에 대한 조세 및 금융지원을 중단하는 문제는 사실상 중국의 ‘기술굴기’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시정에 합의하는 게 더욱 어렵다. 예로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를 포기하거나 후퇴하는 식의 정책 수정에는 중국 정부가 감히 합의할 수 없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문을 발표했을 때, 북한 비핵화와 북·미 간 관계 정상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G-20에서 개최될 미·중 정상회담도 비슷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두 정상회담의 공통점은 사전에 구체적 합의안이 준비되지 않은 탓에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거라는 데 있다.


    G-20 회담 후 시나리오

    중국이 기술도용 의혹에 대해 유감을 표시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시인하거나 사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이 양보할 수 있는 선은 미국산 여객기와 대두 등의 수입을 늘리고, 시장 개방의 자유화 범위를 확대하는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싸움판이 커졌다. 그 정도를 갖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민에게 ‘잘 싸워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상회담 이후는 어떨까. 항복의 조건을 두고 양국 간 긴장이 계속될 것이다. 미국은 지난 9월 24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2019년 들어 머지않아 관세를 25%로 인상하는 조치가 단행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 정부는 기존의 1100억 달러 규모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거나, 미국 주요 품목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미국 정부는 남은 2670억 달러 상당의 수입품목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남은 400억 달러 상당의 수입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관세 보복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더 복잡하고 심각한 싸움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글로벌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을 압박해 중국 목을 조르는 것이다. 미국이 캐나다·멕시코와의 무역협정(NAFTA)을 9월에 서둘러 ‘USMCA’로 개정한 이유도 시장경제 블록 형성이 급했기 때문이다. 다음 차례는 유럽연합(EU)과 일본을 동참시키는 일이다. 이를 통해 무역전쟁을 ‘시장경제 블록’이 불공정무역을 일삼는 ‘국가 자본주의 블록’을 응징하는 차원으로 확대시키려는 심산이다. 

    블록 전쟁은 미·중 간 협상 타결과 별개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공급사슬을 옥죄는 것은 중국이 다시 미국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구조적으로 막는 전략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목표다. 이는 중국이 기술굴기와 제조업 강국 건설을 목표로 내건 국가 프로젝트 ‘중국제조 2025’의 추진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경제 뒷걸음질

    G-20 정상회담이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면 사태 악화는 불가피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0월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사태가 현재 상태에서 멈춘다고 하더라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기준 최소 0.56% 감소한다. 최악의 경우 내년 중국 GDP가 1.63%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이미 중국의 2018년 3분기 GDP 성장률은 6.5%로 2009년 이후 가장 저조하다. 고정자산 투자는 2017년 1~9월간 7.5%에서 2018년 1~9월간 5.4%로 낮아졌다. 산업생산지수는 2018년 4월 7%에서 9월 5.8%로 떨어졌다. 제조업구매자지수(PMI)는 2018년 5월 51.9에서 10월 50.2로 대폭 하락해 제조업 활동이 현저히 위축돼 있다. 

    금융시장의 경우 무역마찰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3월 말과 비교해 10월 말 현재 달러에 대한 위안화 환율이 10.9% 하락했다. 상하이종합주가지수는 18% 주저앉았다. 정리하자면, 무역마찰이 본격화한 4월 이후 중국 경제는 투자와 산업생산이 위축됐고 금융시장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해졌다. 

    IMF는 중국의 GDP 성장률이 2018년 6.6%에서 2019년 6.2%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IMF는 8월에 발표한 자문보고서에서 중국의 2019년 성장률을 6.4%로 전망했었다. 즉 무역마찰 사태가 악화됨에 따라 10월에 발표된 세계경제전망(WEO)에서는 0.2%포인트 더 낮춘 셈이다(표 참조).

    한국 GDP 성장률에 직격탄

    G-20 정상회담에서 포장이 잘된 원칙적 합의가 발표될 것이고, 따라서 미·중 무역마찰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다소 완화될 수 있으나, 방향은 크게 변할 게 없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2018년 1~3분기 한국의 GDP 성장률은 2.51%다. 이 중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1.72%포인트다. 수출의 중국 비중이 27%이므로 대중국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0.46%포인트로 산출된다. 따라서 2019년에 수출증가율이 0%로 낮아진다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0.46%포인트 낮아진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추정의 타당성은 2012년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대중국 수출증가율은 2011년 14.8%에서 2012년 0.1%로 격감했다. 그 결과 2011년 19%에 달하던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2012년 1.3%로 하락했고, GDP 성장률은 2011년 3.7%에서 2012년 2.3%로 낮아진 바 있다. 이에 더해 2019년 중국의 GDP 성장률이 6.2%로 2018년보다 0.4%포인트 낮아질 경우, 한국 GDP 성장률 역시 대략 0.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무역마찰을 통해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훔쳐가는 국가’라는 수모를 받았다. 이에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 추진을 통한 기술굴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로 중국 수입대체산업의 발전이 가속화돼 제조업 기술 수준이 한국의 제조업 수준을 추월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에서 수입하는 중간재의 범위가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2018년 1~9월간 대중국 수출의 3분의 1이 반도체다. 중국은 한국 수출시장의 27%를 차지하고 있고, 대중국 수출품의 77%를 중간재가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수입대체 산업 발전(‘China Inside’)은 한국의 수출 감소와 직결된다.

    이미 디스플레이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을 밀어내고 있다. 다음 차례는 자동차와 반도체다. 늦어도 2020년부터는 ‘중국제조 2025’의 충격파가 이곳저곳에 미칠 전망이다. 이는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가격과 물량에 영향을 끼쳐 한국의 수출을 압박할 공산이 크다.

    미·중 무역마찰은 한국 경제에 숨어 있는 폭탄과 같다. ‘제2의 사드 사태’ 발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국 무역전쟁의 표적을 무역수지 불균형에서 지적재산권 도용과 불공정경쟁 이슈로 옮기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무역수지 불균형에 대해서는 관세 부과가 주된 응징 수단이다. 미·중 양국은 같은 날짜에 비슷한 금액의 수입품에 관세 부과를 주고받았다.


    중국의 경제보복 초래할지도

    그러나 지적재산권과 불공정경쟁을 표적에 두면 미국은 국가안보 차원까지 시계(視界)를 넓혀 응징할 수 있는 반면 중국은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다. 또 무역수지 불균형은 양국 간 문제이나, 지적재산권 보호와 불공정경쟁은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즉 여러 무역 상대국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여 중국 응징에 나설 명분이 있는 셈이다.

    중국의 지적재산권 도용과 불공정 관행은 국가 자본주의의 운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 국가 자본주의체제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경제 블록을 형성해 중국을 압박함으로써 국가 자본주의체제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중국 상품 수입의 9.6%(2018년 1~9월)를 차지하는 수입 1위 상대국가다. 그런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공급사슬로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추진한다면, 대중국 공급사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을 시장경제 블록에서 예외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한국을 설득할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안보 차원에서 관세 부과 또는 수입 금지 조치를 단행하기 위한 조사권)의 적용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만약 한국이 미국 주도의 시장경제 블록에 참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은 결코 이를 묵과하지 않을 터이고, 제2의 사드(THAAD)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


    치명적 저성장 몰려온다

    2012년에서 2016년 사이 장기침체를 겪은 한국 경제는 세계 무역의 회복, 특히 중국과 반도체 특수로 2017년과 2018년에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2019년에는 더 이상 중국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양국 간 관세보복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세계경제도 침체 국면으로 조기 전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내년에 미·중 무역마찰은 더 복잡하고 치명적인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19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미·중 무역마찰의 충격만으로도 최소 0.2%포인트, 크게는 0.4%포인트 손실을 겪을 전망이다. 

    이렇다 보니 2019년 한국 경제는 성장률 2% 방어부터 큰 과제다. GDP 성장률이 2011년 3.7%에서 2012년 2.3%로 하락한 경험이 있으므로 아예 새로운 충격은 아니다. 그러나 그 후 한국 경제는 5년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성장률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2019년 한국 경제는 장기적 흐름을 결정하는 이른바 ‘전략적 전환점(inflection point)’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장기 저성장의 쓰나미가 2019년의 여명과 더불어 밀려오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정부는 포용과 통일의 꿈에 부풀어 있고, 민간은 경기의 장기 침체에 지쳐가고 있다. 2019년이 다가오는 게 두렵다.

    김동원
    ● 1953년 출생
    ● 고려대 경제학과(학·석·박사)
    ● 수원대 교수, 연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KB국민은행 부행장,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 現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 저서 : ‘대불황의 시대 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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