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비정규직 쟁탈전”
“은퇴 후 생계유지 어려운 노인 급증”
65세 이상 노인이 총인구의 14%를 넘었다. 이들도 실업난을 겪고 있다. 서울의 경우 종로5가역, 수유역, 미아역을 중심으로 노인에게 비정규-저임금 일자리를 중개해주는 직업소개소가 모여들었는데, 이 중 종로5가역을 스케치했다.
여기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강모(65) 씨는 “매일 60~70대 연령 구직자 20여 명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와 대화하는 동안 구직 문의 전화가 4통이 걸려왔다.
백발 신사의 손에 들린 이력서
이 직업 중개소들을 통해 노인들이 얻는 일자리는 아파트 경비원, 건물 미화원, 주차 관리원 같은 것들이다. 건강한 축에 속하면 식당 파출부로도 나간다. 강씨는 “드물게 공장에 취직하기도 한다”고 했다.바로 옆 건물 5층의 다른 직업소개소 안에선 김모(여·74) 씨가 연신 이 소개소 사장인 정모(여·55) 씨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달 한 건물에서 미화원으로 일하다 왼쪽 팔을 다쳐 해고 통보를 받았다.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진 후 이 소개소의 연계로 다른 건물의 정규직 미화원으로 출근하게 됐다. 김씨는 “나이가 있다 보니 조금만 다쳐도 해고된다”고 했다. 정씨는 “최근 80세인 사람도 취업하기 위해 찾아온 적이 있다. 은퇴 후 생계유지가 어려운 하위계층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정규직 채용은 운이 좋은 케이스다. 보통 불가피한 인력 공백이 생길 때 채용되므로 길어봤자 몇 개월이다. 퇴직 후 3년 동안 여러 직업소개소에서 일자리를 구해온 류모(75·서울 제기동) 씨는 “고령자를 받아주는 데가 많지 않아 단기 아르바이트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몇 번의 정규직 채용 과정에서 최종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나이가 이유였다. 류씨는 영등포구에 있는 한 직업소개소로부터 문자로 구인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5개월에 7만 원짜리다.
직업중개소에서 일자리를 소개받으면 월급의 일정액을 소개비로 내야 한다. 한 구직자는 “하루만 일해도 소개비는 낸다. 중개소에서 입금하라는 전화가 온다”고 했다.
현재 전국의 시·군·구청도 노인에게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을 운영한다. 그러나 구직자들은 “구청엔 신청자가 몰려 이른 시일 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행정기관 무용지물”
필자가 알아보니, 서울 동대문구청에는 304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자는 길게는 1년 가까이 기다린다. 언제 차례가 올지 모르니 사설 직업소개소를 찾는 것이다. 직업중개소를 운영하는 방모(64) 씨는 “우리는 많이 연결할수록 수익이 많아지니 빠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한 구직자는 “중개소로선 어디든 연결만 해주면 소개비를 받으니 구직자의 특기를 고려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구하고 잘리고를 반복하게 된다”고 했다.
필자가 방문한 직업소개소마다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울려댔다. 마지막으로 들른 직업소개소를 나와 다시 종로5가역 4번 출구로 가는 거리는 여전히 노인들로 붐볐다.
※ 이 기사는 필자가 고려대언론인교우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