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

산업이슈

‘필립모리스 vs 정부’ 담배전쟁 내막

“궐련형 전자담배 노이즈마케팅 의심”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18-11-28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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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립모리스, 식약처 비난하고 소송 제기

    • 여론은 필립모리스 편

    • 아이코스 덜 해롭단 근거 박약

    • 美 당국, 필립모리스 주장 인정 안 해

    • 금연학회 “일반 담배처럼 규제해야”

    요즘 국내 담배업계 화두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여부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아이코스나 릴, 글로 등 전자기기로 담뱃잎 고형물을 쪄서 증기를 흡입하는 형태의 제품이다. 이 제품이 담배를 태워 연기를 흡입하는 궐련 담배(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주장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 발표 내용의 핵심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근거는 없다’는 것.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올 6월 이런 내용을 담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분석 결과’를 내놨다. 식약처는 보고서를 통해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의 니코틴 함유량이 일반 담배와 유사하고 타르의 경우 되레 높게 검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궐련형 전자담배 역시 암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논란 촉발한 정부의 모호한 해석

    식약처가 발표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 결과 [식약처 제공]

    식약처가 발표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 결과 [식약처 제공]

    제조사들은 반발했다. 특히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아이코스를 만드는 필립모리스는 지난해 6월 국내에 궐련형 전자담배를 처음으로 들여왔다. 필립모리스는 현재 전 세계 42개국에서 아이코스를 팔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 제조사의 대표주자 격인 셈.

    필립모리스 측은 “식약처가 흡연자에게 왜곡된 정보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 논란거리는 타르다. 식약처는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일반 담배보다 더 많은 타르가 검출됐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일반 담배의 경우 한 개비당 0.1~8.0mg의 타르가 검출되는데 아이코스에서는 9.3mg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필립모리스는 “타르의 양만으로 유해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단순히 양보다는 구성 성분을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타르가 일반 담배에만 해당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궐련형 전자담배에 적용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 논란을 이해하려면 타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타르는 흔한 인식과 달리 특정한 유해성분이 아니다. 담배 연기 중 니코틴과 수분을 뺀 나머지 잔여물을 뜻한다. 즉 연소 시 발생하는 유해물질(니코틴 제외)의 복합체라는 의미다.

    문제는 ‘잔여물’이라는 개념의 모호성에서 발생한다. 통상 일반 담배 타르에는 7000여 종의 물질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의 타르에는 얼마만큼의 물질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필립모리스 등 담배 제조사가 담배 성분을 공개하지 않는 데다가 워낙 많은 물질이 있어서다. 이에 식약처는 “타르의 함유량이 일반 담배보다 높게 검출됐다는 것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와 다른 유해 물질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다소 모호한 해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필립모리스는 이 모호성을 공격한다. 타르의 정확한 구성 성분을 모르는데 단순히 양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일반 담배 연기 중 수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10%가량인데, 궐련형 전자담배 연기의 수분은 80% 수준이라는 자체 연구 결과를 앞세우고 있다. 수분이 많은 만큼 유해물질은 적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필립모리스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15년 내놓은 담배제품규제에 대한 보고서도 내세우고 있다. WTO는 타르를 두고 정확한 측정이 어려운 데다가 포함된 성분이 제각각이라 유해성을 가리는 확실한 근거가 아니라고 밝혔다는 게 필립모리스 측 입장이다.


    정부의 고민 “아예 틀린 말 아냐”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은 6월 1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전자담배 아이코스에 대한 인체 노출 반응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행사 관계자가 일반 담배와 아이코스의 니코틴 색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동아DB]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은 6월 1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전자담배 아이코스에 대한 인체 노출 반응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행사 관계자가 일반 담배와 아이코스의 니코틴 색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동아DB]

    필립모리스는 아예 ‘타르의 진실’이라는 웹사이트까지 만들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필립모리스는 이 웹사이트에서 ‘소비자도 알 권리가 있다’며 식약처의 타르 측정은 ‘낡은 개념’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식약처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식약처의 분석과 관련한 세부 내용을 공개하라는 게 골자다.

    필립모리스는 타르에 대해서는 공세를 펼치면서도 식약처가 내놓은 다른 분석 결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WTO가 비중을 낮추라고 권고한 9개 성분이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적게 검출됐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본인들의 주장을 입증한 결과”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WTO는 타르에 들어 있는 물질 중 벤조피렌과 포름알데히드 등 6개 발암물질과 아세트알데히드, 일산화탄소 등 3개 성분을 저감화 권고 유해 성분으로 정하고 있다. 실제 식약처 분석 결과 궐련형 전자담배 연기에선 이들 유해 성분이 평균 90%가량 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필립모리스는 “식약처가 9개 유해성분이 덜 나왔다는 분석 결과를 뒤로 제쳐놓고 타르가 많다는 부정적인 면만 내세워 정보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필립모리스의 이런 대응에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유해물질이 적게 나온 것도 사실이고, 타르에 대한 필립모리스 측 주장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얼마 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런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보건복지부에 “왜 궐련형 전자담배 제조사들의 광고를 검증하려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그랬다간 되레 유해성분이 감소한 것 자체는 사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오히려 기업의 광고 내용을 인증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필립모리스의 정보 공개 소송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여론도 정부에 불리한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6.6%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고 응답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유해한 근거가 없다는 식약처의 발표에 대해서는 일반 담배 흡연자의 73.1%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는 처사라고 답했다.


    아이코스도 해로운 담배

    김장열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이 6월 7일 충북 청주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김장열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이 6월 7일 충북 청주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정부가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해서 필립모리스의 주장이 옳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타르에 대해 살펴보자. 필립모리스는 타르의 양보다 구성 성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필립모리스 측 주장대로 단순히 타르가 많이 나왔다고 해서 일반 담배보다 더 유해하다는 논리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이코스가 덜 해롭다는 필립모리스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는 않는다. 아이코스에서 발생하는 타르에 정확히 어떤 성분이 얼마만큼 들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되레 “불확실성에서 오는 위험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배출되는 유해성분이 적기 때문에 덜 유해하다는 주장에도 약점은 있다. 일단 이 주장은 국제적으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WTO는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로우며 유해성분이 덜 배출되거나 간접흡연의 피해가 감소한다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우 아이코스가 담배 관련 질환 위험성을 줄인다는 필립모리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해성분이 감소하긴 했지만 이게 질병 발생률과 사망률을 낮추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 암 발병률이나 폐 질환 등은 오랜 시간에 걸친 추적 연구가 필요한 만큼 아직 유의미한 임상 결과는 나와 있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더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들이 일반 담배도 함께 피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 대한금연학회가 흡연자 5472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 이용자의 98%가 일반 담배를 함께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코스가 덜 해롭다는 필립모리스의 주장이 진실이 되려면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아이코스만 피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부분 사용자가 일반 담배와 함께 피운다. 그러니 ‘덜 해로운’ 아이코스의 장점을 향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셈이다.

    이와 비슷한 전례가 있었다. 과거 담배회사들은 저(低)니코틴이나 저(低)타르 담배를 내놓으면서 ‘덜 해롭다’고 마케팅을 했다. 그러나 흡연자들은 덜 해롭다는 인식에 담배를 더 많이 피워 결국 폐암 발생률은 줄지 않았다. 아이코스가 금연 욕구를 꺾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국내에 궐련형 전자담배가 확산된 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국가 금연 치료 지원 사업에 금연 참여자로 등록한 사람의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 감소한 약 13만2000명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이 사업이 시작된 이후 등록자 수가 감소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정부는 아이코스가 지난해 6월 국내에 출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궐련형 전자담배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에는 니코틴이 일반 담배와 유사한 수준으로 포함돼 있다. 니코틴 자체가 중독성을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연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이는 필립모리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필립모리스 측은 “아이코스는 금연보조제가 아니라 일반 담배의 대체재”라며 “담배로 건강 문제를 염려하는 소비자는 담배를 끊는 것이 최선”이라고 지속해 주장하고 있다.


    “가열 담배로 용어 바꿔야”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우선 정부는 12월 23일부터 궐련형 전자담배에도 일반 담배와 같이 암세포 같은 흡연 경고 그림을 넣기로 했다. 지금까지 궐련형 전자담배에는 흑백의 주사기 그림만 표시돼 있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앞으로는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분을 제조사가 직접 공개해야 판매가 가능한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FDA의 경우 제조사가 유해성분을 입증해야 판매를 승인한다. 실제 필립모리스는 지난 2016년 12월 FDA에 아이코스로 위험저감담배제품(MRTP) 승인을 신청했지만 2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승인을 받지 못했다.

    국회에서는 세금 인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종구 자유한국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궐련형 전자담배도 위해성이 입증된 만큼 일반 담배만큼의 세율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립모리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 제조사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 대한금연학회도 최근 추가 성명을 내놓으며 공세를 이어갔다.

    금연학회는 “필립모리스의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위험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며 일반 담배와 동일하게 규제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필립모리스가 식약처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궐련형 전자담배를 생산 판매하는 담배업체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포함된 모든 유해물질에 대한 정확하고 완전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금연학회는 지난 1월에도 “가열 담배는 전자담배와 엄연히 다른 제품이기 때문에 국민 혼란을 줄이기 위해 궐련형 전자담배라는 용어를 가열 담배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필립모리스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 학계가 모두 공세를 이어가는 셈이다.

    이런 구도는 필립모리스가 자초한 면이 있다. 정부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건강에 괜찮다는 인식이 퍼져 금연의 가치가 떨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을 우려한다. 반면 필립모리스의 경우 ‘덜 해롭다’거나 ‘유해성분이 적다’는 논리로 실제 광고까지 하고 있어 정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필립모리스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은 자사 제품 홍보를 위한 일종의 ‘노이즈마케팅’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필립모리스는 정부가 직접 아이코스를 일반 담배와 비교해 ‘얼마나’ 덜 해로운지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금연을 권장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특정 제품에 대한 해로움의 정도 차이를 알릴 의무가 없다.

    소비자가 건강을 위해 알아야 할 정보는 어떤 제품에 유해성분이 몇 퍼센트 적게 들었는지가 아니다. 암 물질이 적게 들었다고 암을 유발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궐련형 전자담배 역시 건강에 해로운 물질을 포함하고 있고, 이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정보가 금연엔 훨씬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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