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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평균 33세 청년보수 10人의 ‘3脫 혁신론’

‘공정’ 깃발 들고 탈권위·탈탄핵·탈영남 진군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평균 33세 청년보수 10人의 ‘3脫 혁신론’

  • ● 20년 전 총선, 보수가 3040 혁신공천 선도
    ● 주요 10인 중 7인, 훗날 광역단체장·장관 돼
    ● 21대 총선 청년보수 당선자, 1명 빼고 영남권
    ● 보수 유튜버에 끌려가고 신기술 도입엔 저항
    ● 완벽·권위·경륜 따지다 비호감 전락
    ● 한국판 ‘캐머런’ 씨앗 뿌린 이회창에 배워라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미래통합당 청년 당협위원장, 청년 당직자들이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내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임을 열고 있다. [뉴스1]

미래통합당 청년 당협위원장, 청년 당직자들이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내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임을 열고 있다. [뉴스1]

‘예부터 보수는 청년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통설(通說)은 낭설(浪說)이다. 고정관념과 달리 386세대를 여의도의 복판으로 먼저 부른 세력은 보수다. 1964년생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20년 전 제16대 총선 당시 서울 양천갑에서 36세 나이로 당선됐다. 지금으로 따지면 1984년생이다. 1965년생인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1998년 보궐선거 때 경기 수원 팔달에서 33세 나이로 국회의원이 됐고, 16대 총선 때 재선했다. 1961년생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39세 때 서울 강남을에 공천을 받아 의원 배지를 달았다.


보수가 혁신하자 진보가 뒤따라와

지금은 여권에 있는 1962년생 김영춘 의원도 2000년에 서울 광진갑에서 당선됐다. 같은 나이인 권영진 대구시장은 당시 공천받지 못했지만 한나라당 총재실 보좌역으로 당 실무 핵심부에 있었고, 4년 뒤 서울 노원을 공천장을 따냈다. 정태근(1964년생)·고진화(1963년생) 전 의원은 한나라당 깃발로 각각 서울 성북갑, 서울 영등포갑에 출마했다 낙선했지만 44.7%, 40.8%를 득표했다. 이후 두 사람은 한나라당을 대표하는 소장개혁파로 성장했다. 

범위를 넓히면 1958년생 동갑내기인 정병국 의원과 김부겸 의원이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42세에 당선됐다. 정 의원은 경기 양평·가평, 김 의원은 경기 군포에서 이겼다. 같은 나이인 김성식 의원은 서울 관악갑에 나섰다 떨어졌지만 29.88%를 득표해 선전했다. 그는 지금도 ‘보수의 정책통’으로 꼽힌다. 

10명을 공히 관통하는 세 가지 열쇳말은 수도권과 중도 성향, 미래연대(‘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다. 옛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는 16대 총선에서 27명의 공천자를 배출했고 14명의 당선자를 냈다. 민주당도 야당 행보에 자극받아 386세대를 수혈했다. 우상호(1962년생), 송영길(1963년생), 이인영(1964년생) 의원과 임종석(1966년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이때 공천을 받았다. 보수 야당이 먼저 세대교체론을 띄우며 파격적으로 혁신하자 진보 여당이 이에 질세라 뒤따라왔다. 



20년 뒤 그림은 사뭇 달라졌다.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 결과, 미래통합당에서는 총 40명의 지역구 초선 의원이 탄생했다. 전체 지역구 당선자(84명) 중 절반 수준이다. 이 중 30대는 1명(배현진 서울 송파을 당선자)뿐이다. 정당에서 청년의 기준으로 삼는 만 45세 이하로 범위를 넓혀도 5명만이 원내에 진입했다. 수도권 지역구 출신은 배 당선자뿐이다. 나머지 4명은 각각 부산 중·영도(황보승희·44), 경북 포항 남·울릉(김병욱·43), 경북 안동·예천(김형동·45), 경북 성주·고령·칠곡(정희용·44) 등 대표적인 통합당 텃밭 출신이다. 

수도권에서 낙선한 통합당 청년후보들은 “통합당에 대한 청년 및 중도층의 반감이 거셌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광진갑에 출마해 40.6%를 득표한 김병민(38) 경희대 행정학과 객원교수는 “(일부 후보의 막말 파동 등) 중앙정치 이슈 탓에 지역 유권자의 민심이 싸늘하게 식었다”면서 “중도 표심을 가져올 중앙당의 선거 전략은 완전히 부재했다”고 술회했다. 

특히 그는 보수 유튜브 채널에 의존한 당의 미디어 전략을 꼬집었다. 김 교수의 말이다. 

“선거 때 당에서 후보들에게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는데, 보수 유튜브 채널을 홍보에 활용할 수 있는 채널로 규정했다. 이게 선거를 치르는 후보를 도와주는 것인지 의문이 들더라.”


“오죽 궁지에 몰렸으면…”

2000년 5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미래연대 주최 총재 및 부총재 후보 초청간담회에서 미래연대 소속 인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2000년 5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미래연대 주최 총재 및 부총재 후보 초청간담회에서 미래연대 소속 인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서울 도봉갑에서 득표율 40.49%로 낙선한 김재섭(33) 전 후보는 보수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가 욕설에 시달렸다. 그는 “당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공감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오바마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채팅창에 엄청나게 많은 욕이 달리기 시작했다. ‘좌파’라느니 ‘사상 검증이 안 됐다’느니 등의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다. 

국민의당 출신인 조성은(32) 전 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통합당에 와서 놀란 게 언론 대신 보수 유튜브 채널을 정론지처럼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보수 유튜브 채널의 내용을 민의나 대중의 반응으로 착각했다”고 꼬집었다. 

통합당 안에서는 보수 및 극우 유튜버들의 이념몰이에 끌려간 점을 참패 요인으로 꼽는 인사가 적잖다. 김무성 통합당 의원은 5월 11일 공개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극우 유튜버들이 기고만장해서 보수의 가능성 있는 사람들을 비판해 다 죽였다”고 일갈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에서 “정치 신도들은 끼리끼리 모인다. 조금 다른 견해가 등장하면 ‘댓글 알바’라고 공격하면서 유일신앙의 존엄을 재확인한다”고 썼다. 이렇다 보니 사이버 공간에서는 소수 극렬 지지층의 목소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통합당 인사들이 보수 유튜브 채널을 정론지처럼 여기는 게 사실이라면 사태는 사뭇 심각해진다. 

실제 통합당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신도’들의 목소리를 과잉 반영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3월 13일 통합당은 김미균(34) 시지온 대표에 대한 서울 강남병 후보 공천을 철회했다. IT(정보기술) 기반 소셜 벤처기업가로 전략 공천한 지 하루 만이었다. 극렬 지지층과 당 일각에서 김 대표가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의 핀란드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고, 같은 해 9월 SNS를 통해 청와대 추석 선물에 감사 표시를 한 점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SNS에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응원하는 글을 올린 적도 있다. 하지만 날 문 대통령 지지자로 몰아세운 이들은 이런 점을 무시했다”면서 “SNS에 올린 글 하나에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오죽 궁지에 몰렸으면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보수가 균형감각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전에 치우친 조직 문화도 청년보수를 자꾸 바깥으로 튕겨내는 요인이다. 경기 의왕·과천 예비후보였던 이윤정(33) 전 광명시의원은 “2시간 정도 예정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경우, 참석한 의원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그들이 돌아가며 인사말을 하는 데 30~40분가량 소요된다. 형식에 치중하느라 발제와 토론 같은 본질을 놓치고 만다”고 했다.


“똑같은 사람이 ‘새 보수’ 외친들”

그러니 쌓이는 건 관성이고 사라지는 건 개성이다. 전례 없는 시도가 들어설 공간은 없다. 정현호(33) 전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비상대책위원은 “비대위 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지역구 활동에 대한 당무 평가와 당비 납부 내역 등을 공개할 계획이었다”면서 “수직 구조를 탈피하고 분산·공유의 가치를 구현하려 했는데 저항이 심해 중단됐다”고 회고했다. 

이에 통합당 청년 당원들을 중심으로 쇄신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골자는 ‘탈권위’ ‘탈탄핵’ ‘탈영남’ ‘공정’으로 정리된다. 정원석(32) 전 통합당 선대위 상근대변인은 “자기 경륜(經綸)에 과도하게 몰입해 과학적 접근법을 무시하는 분들이 있었다. 우리가 경륜이 부족해 선거에서 진 게 아니다”라면서 “완벽하고 권위적이고 수준이 높으면 일반 국민이 알아서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건 교만”이라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총선 참패가 ‘포스트-탄핵’ 국면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수가 폐허 수준으로 몰락하면서 탄핵 이슈에 휘말린 적 없는 청년층이 웅비할 공간이 열렸다는 해석이다. 지난 총선에서 통합당 선대위 대변인으로 일한 백경훈(36) ‘청사진’ 대표는 “탄핵의 부채를 털어버리지 못해 졌다. 탄핵에서 자유로운 세대가 등장해야 보수를 재건할 수 있다. 똑같은 사람이 나와 ‘새 보수’를 외친들 보수는 재건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역정당 탈피도 숙제다. 전체 통합당 지역구 의석 중 영남권 당선자는 66.6%(56석)에 달한다. 보수가 외연 확장에 성공한 18대 총선 때는 수도권(서울·경기·인천) 당선자가 전체의 52.9%(81석)를 차지했었다.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출마했던 천하람(34) 젊은보수 대표는 “당내 초선 의원들의 지역구는 영남권에 많다. 초선이기에 열린 자세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TK(대구·경북)는 개혁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지역이다. 자칫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구가 고향인 천 대표는 일찌감치 재도전을 선언했다. 

자유, 질서 등 그간 통합당이 앞세워온 가치를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총선 당시 통합당의 최연소 지역구 출마자였던 김용태(30) 전 경기 광명을 후보는 “2030세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유를 누려와 자유를 뺏길 염려는 하지 않는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공정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됐다는 청년이 많다. 이제는 보수정당이 자유가 아닌 공정 가치를 내세워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캐머런 모델’ 이미 20년 전 韓 보수에

보수는 비주류로 내몰릴 때 반전을 꾀하려 청년을 앞세웠다. 1997년 대선에서 보수는 사상 처음으로 정권을 내줬다. 이에 운동권 출신들을 영입해 수도권 요지에 대거 내세웠다.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던 운동권 청년(정태근 전 의원)과 그를 기소했던 공안검사(이사철 전 의원)가 같은 당에서 활동했다. 당시 보수에는 혁신과 개방 DNA가 있었다. 고작 SNS 글 한 토막을 갖고 ‘정치적 신념’을 문제 삼으며 누군가에 쫓기듯 공천을 철회하는 행태와는 비교조차 어렵다. 당시 보수의 선장은 이회창 전 국무총리였다. 책 ‘386 세대유감’은 이 시절을 이렇게 서술했다. 

“패배를 극복하고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회창만의 업적이 필요했다. 이에 노회한 정치인들을 물갈이하고 젊은이들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전략을 짰다.” 

당시 청년 10명(원희룡, 남경필, 오세훈, 김영춘, 권영진, 정태근, 고진화, 정병국, 김부겸, 김성식) 중 4명은 훗날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됐다. 3명은 장관이 됐다. 근래 보수진영에서는 39세에 보수당 총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에 주목하는 이가 많지만 이미 한국 보수에는 그 씨앗이 있었다. 오늘날 보수는 ‘이회창 시대’로부터 얼마나 나아갔나. 

1960년대 활발히 활동한 미국 도시빈민운동가 사울 알린스키는 신좌파를 향해 “세상을 바꾸려면 ‘본인들이 원하는 세상(the world as we would like it to be)’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the world as it is)’을 보라”고 했다. 당시 미국 신좌파처럼 거리투쟁과 극렬 주장에 휩싸여 있는 오늘날 한국 보수가 곱씹어볼 대목이다. 보수가 세상을 바꿀지, 바뀐 세상에서 도태될지 기로에 섰다. 당내에 잉태 중인 청년정치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결말이 드러날 테다.




신동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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