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윤미향 조국 오거돈… ‘진보의 이중성’ 정권 몰락 게이트 된다

  •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20-05-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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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미향의 조국 소환…나도 지켜달라

    • ‘그때는 그랬다’ 적폐 세력 논리 답습

    • 최고의 대처 방법은 ‘공격이 최고의 수비!’

    • 운동권의 권력집단화…특권 의식, 본전 생각

    • ‘면죄부 품앗이’ 남발…정권 위기 징후

    처음엔 개인적 일탈이려니 했다. 하지만 이젠 집단적 유행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른바 ‘진보의 이중성’ 이야기다. 미투(Me too) 운동 초기 수많은 진보 지식인이 이름을 올렸다. 이윤택 연출가, 고은 시인, 오태석 극작가, 한만삼 신부, 하용부 인간문화재, 박재동 시사만화가, 배병우 사진가 등이다. 그 대열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올랐을 때,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진보 정치인까지 그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난히 깨끗한 이미지를 가졌던 그였기에 당시 이런 말까지 돌았다. “안희정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충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안 전 지사 못지않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깨끗한 이미지를 자랑하던 또 다른 진보 지식인의 실체가 드러난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문재인 정부의 황태자라 할 수 있는 그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 같은 존재였다. 정연한 논리에 잘생긴 외모까지 거의 완벽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자녀 입시 비리나 불법 투자 의혹에 연루될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것이다. “조국 너마저!”

    김경율, 진중권, 강준만의 비판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5월 11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관련 논란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5월 11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관련 논란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조국 정국에 이르러서는 진보 지식인층마저 균열상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안희정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조국 너마저!”를 외치며 탄식하던 이들이다. 그래서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현 경제민주주의21 대표)이 비판적으로 돌아섰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 강준만 전북대 교수까지 가세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강 교수는 “조국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제2차 국론 분열 전쟁의 불씨를 던졌다.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라며 진보 지식인이자 정치인인 문재인 대통령의 이중성마저 문제 삼고 나섰다. 

    조국 전 장관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다. 잠시 잊고 지냈던 미투 운동의 기억을 재소환한 사건이다. 안 전 지사 때 받은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반응과 관심이 그렇게 높진 않다.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은 안 전 지사 건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는 사안이다. 안 전 지사 사건 이후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다. 더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는 물론 부산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비상 대응을 하는 국면이었다. 총선 직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성추행을 감행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다들 이토록 용감할 수 있었을까. 

    오 전 시장 사건이 끝도 아니었다. ‘줄줄이 사탕’처럼 양정숙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의 부동산 실명제 위반과 명의신탁 위반 의혹이 불거졌고, 같은 당 윤미향 당선인의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유용 의혹이 불거졌다. 앞서의 미투 운동에서 시작해 최근의 윤 당선인 의혹까지 그야말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이 이름을 올렸다. 이 정도면 ‘진보의 이중성’이라는 것이 ‘집단적 유행’이 아니고 대체 뭐란 말인가.



    진보 이중성이 단발성 실수가 아닌 이유

    ‘집단적 유행’으로 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계속성이다. 단발성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적폐 세력’을 맹비난하며 전쟁을 하던 와중에도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그래 왔단 것이다. 이들이 내놓는 변명은 ‘적폐 세력’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때는 그랬다”라는 것이다. 적폐 세력, 그때 그 사람들이 “그때는 그랬다”는 변명을 쏟아낼 때마다 핏대를 올린 그들이다. 그런데 이제 적폐 세력의 논리에 기대다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이쯤에서 ‘집단적 유행’에 빠져든 저들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대체 왜 그랬을까. 왜 나는 또는 우리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들도 그런 경우일까. 최근 이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보수 정권 시절 실세 그룹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부인과 버티기 그리고 역공세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이 최고의 수비다! 이것은 정권의 흔한 위기 대처 방식이다. 역대 보수 정권은 그래서 진보 진영을 ‘빨갱이’로 몰아세웠고, 진보 정권은 보수 진영을 ‘친일파’로 몰아세웠다. 

    이 ‘집단적 유행’이 처음부터 퍼졌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운동권 학생시절이나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 젊은 그들은 나름대로 도덕적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 세월이 길어지고 노동계와 시민사회계 그리고 정치계에서 지위가 올라가면서, 그들도 점차 권력집단으로 변해간 것으로 보인다. 권력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 특권의식이다. 특권이 무엇인가. 남에게는 허용되지 않지만 나에게만 허용되는 무엇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에게는 보수 지식인이나 정치인에게 발견하기 어려운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다. ‘본전 생각’이다. 보수 지식인이나 정치인 중에도 어려운 과정을 거친 이가 적지 않지만 성공하는 과정에서 누릴 것은 누리며 살아온 경우가 많다. 반면에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 대다수는 보수 지식인이나 정치인보다 훨씬 더 힘든 시기를 오래 견뎠을 뿐만 아니라 누릴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진보 지식인이나 정치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진보 지식인이나 정치인에게는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차라리 커밍아웃을 하라”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5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5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잃어버린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내 자녀는 나와 달리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작용한다. 그래서 여전히 생각은 진보인데, 행동은 보수인 사람이 적지 않다. 본래 안 그랬던 사람도 권력집단 또는 특권층이 되면서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적잖게 본다. 평생 반미(反美) 운동을 했음에도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윤미향 당선인도 그런 부류에 해당한다. 윤 당선인은 이 문제에 대해 한 방송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딸이 꿈을 향해 가는 데 사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그것만이라도….” 

    윤 당선인도 조국 전 장관도 알고 보니, 행동은 흔한 강남 아빠나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정도면 차라리 커밍아웃을 하면 좋으련만, 끝까지 커밍아웃을 거부한 채, 진보 지식인이나 정치인으로 행세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들에게는 ‘진보’라는 딱지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런 부담감을 해소하려다 보니 나온 것이 ‘면죄부 품앗이’다. 미투 운동에 휩싸인 진보 지식인이나 정치인이 비리 의혹에 휩싸인 진보 지식인이나 정치인을 거들고, 그 반대로 하기도 하고, 동병상련의 심정을 토로하며 넌지시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윤미향 당선인이 조국 전 장관을 소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참으로 여러 가지 말을 쏟아내고 있는 윤 당선인은 최근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조국 전 장관을 소환했다. 충성도 높고 결집력 높은 ‘조국 수호대’를 향해 나도 수호해 달라고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과거 보수 지식인이나 정치인도 그랬던 터라 새롭진 않다. 다만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조차 이 방식을 차용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에 놀라운 따름이다.

    여당에 유리한 정치 환경이 毒

    이 ‘면죄부 품앗이’는 얼마나 유효할까. 영원히 유효하다면 절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역동적인 한국 정치사는 ‘면죄부 품앗이’에 유효기간 무한대를 허용한 적이 없다. 그것을 허용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면죄부 품앗이’ 활동성이 가장 강할 때가 정권이 가장 위험할 때였다. 위기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것을 덮으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또 다른 사례가 드러날까. ‘진보의 이중성’이 현재 진행형이라면 당연히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권의 몰락을 초래하는 게이트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예상을 감히 내놓는 이유는 정치 환경 때문이다. 총선 결과 177석,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이 만들어졌다. 개헌 빼고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조금 욕심을 내면 개헌까지도 가능한 의석수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여소야대 시절에도 만들어지지 않았던 ‘여야정 상설협의체’ 같은 것이 만들어질 리 없다. 당분간 여당 독주를 예상해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사실상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걱정할 필요도 없이 임명이 가능한 조건이 만들어진 때문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칠 필요가 없는 수많은 공직인사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야당 눈치 볼 필요 없이 낙하산을 태워 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험지에 출마해 낙선한 정치인 다수가 그런 자리를 꿰찰 것이다. 

    권력형 비리는 상당 부분 잘못된 인사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같은 실증 사례도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낙하산 인사가 과도하다는 평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 이들 가운데 역량 부족으로 논란이 된 인물도 많고, 해당 공공기관의 노조조차 반대한 경우도 적지 않다. 낙하산 인사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이다.

    결국은 노후 대비와 자녀 성공

    생각은 여전히 진보지만 행동은 이미 보수로 변한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뭘까. 노후 대비와 자녀 성공이다. 그런데 이것이 금단의 열매일 수 있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어쩌다 공공기관 임원이 된, 이들이 주요 관심사조차 노후 대비와 자녀 성공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현직에 있는 동안 실직 이후 먹고살 궁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단기간에 해내야만 한다. 당연히 무리수가 따른다. 권력형 비리 사고는 그래서 터지는 것이다. 

    진행형임에도 초거대 여당이 존재하는 한 당장은 불거지지 않을 것이다. 설령 불거지더라도 예의 ‘면죄부 품앗이’로 버텨나갈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이번 정부는 유난히 당정청(黨政靑) ‘원팀’을 강조한다. 당청 갈등도 거의 없고, 가끔 정부 쪽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면 청와대와 여당이 눌러버린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시절에도 그랬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시절에도 변함없다. 이런 ‘청와대 정부’ 기조는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지만, 속으로는 곪아 터질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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