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사바나

마지못해 통합당 찍은 ‘이남자’ 8人에게 보수정당이란

“노무현의 탈권위와 개척정신, 통합당도 본받아야”

  •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0-05-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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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은 광신적 지지 때문에 싫다

    • 보수 지지자일 뿐, 통합당 지지자 아냐

    • 현 정부 싫어 어쩔 수 없이 찍었을 뿐

    • 수익 노린 보수 유튜버에 노년층 이용당해 화나

    • 보수 이미지, 성공한 기업가→냉전 망령 꼰대로 바뀌어

    • 일베, 극우 정당 지지하냐고 놀림 받아

    • 시효 지난 옛 사람들 떠나보내야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심재철 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 등이 총선 당일인 4월 15일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심재철 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 등이 총선 당일인 4월 15일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4·15 총선에서 ‘이남자(20대 남성) 현상’이 눈길을 끌었다. 지상파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지역구 투표 기준 이들의 통합당 지지율은 41%. 같은 나이대 여성(25%)은 물론 30대(30%)와 40대(27%)와도 뚜렷한 지지 성향 차이를 보였다. 그럼에도 통합당을 찍은 이남자의 대부분은 “통합당이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미래통합당은 ‘좀비’다. 이미 생명이 멈췄는데 더불어민주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받아 억지로 활동을 이어간다. 그저 움직이는 시체다.” 

    금융권 기업에서 일하는 허민수(가명·28) 씨는 ‘통합당’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좀비’를 꼽았다. 스스로를 보수 성향으로 소개한 허씨는 4·15 총선에서 마지못해 통합당을 뽑았다. 현 정치 지형에서 민주당을 견제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허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남자들은 왜 통합당을 ‘좀비(ZOMBIE) 정당’으로 바라볼까. 이미 죽은 시체라 비판하면서도 다시금 움직이도록 표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Zealot(광적 지지자) △Old(노인) △Mirroring(따라 하기) △Bias(편견) △Ilbe(일베) △Extreme right(극우) 6가지 키워드로 살펴봤다.



    “광적 지지자(Zealot)가 싫어 왔는데 이쪽도 노년층(Old)이…”

    2019년 2월 13일 김진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지지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김진태 의원에 대한 윤리위 제소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2월 13일 김진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지지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김진태 의원에 대한 윤리위 제소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뉴스1]

    20대 남성들은 민주당이 싫은 이유로 ‘광신적 지지’를 꼽았다. 문제는 이들이 보기에 통합당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 경기 의정부시에 거주하는 대학생 신영빈(24·가명) 씨는 “민주당 지지자에 실망해 통합당을 지지했지만, 이쪽 지지자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신영빈 씨의 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8년 여름 옥탑방에서 선풍기를 틀고 생활하는 것을 보고 이미지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지자들에게는 통했다. 조국 사태 당시 제기된 여러 의혹을 별것 아닌 양 여기며 넘어가는 모습에서 종교가 보였다. 그런데 통합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전투표 조작 의혹처럼 누가 봐도 객관적이지 않은 사실을 옳다고 믿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조국 사태’에서 민주당에 실망했고 ‘부정선거 의혹’에서 통합당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사전투표 부정 의혹은 아직 통합당 내에서 현재진행형이다. 민경욱 통합당 의원이 연일 기자회견을 열며 총선이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세연 통합당 의원과 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은 ‘투표 부정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신씨 역시 “개표 과정에 여야 정당에서 추천한 참관인이 참석하기 때문에 투표 부정은 불가능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광적 지지자들이 양성되는 곳으로는 유튜브가 꼽혔다. 유튜브는 보수 성향의 사람이 즐겨 찾는 온라인 공간이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가 2019년 발표한 ‘유튜브 뉴스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신의한수’ ‘알릴레오’ 같은 개인 뉴스 채널의 일평균 이용 시간은 보수(44.5분)가 제일 많고 중도(34.3분) 및 진보(32.5분) 순이었다. 20대 남자들은 유튜브에서 ‘태극기부대’가 나고 자라 통합당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극기부대에 대한 20대의 시각은 양가적이다. 포항에 사는 임성진(29) 씨의 말이다. 

    “태극기부대 어르신은 전쟁을 겪은 세대라 색깔론에 젖어 있는 것도 일정 부분 이해해 줘야 한다. 그래도 아무런 근거 없이 대통령을 빨갱이나 간첩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북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비판해야 한다. 다만 태극기부대의 경우 이미 전쟁과 산업화를 겪으며 생각이 굳었기 때문에 변화보다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 싶다.” 

    하지만 보수 유튜버들이 이들의 퇴장을 방해한다. 신영빈 씨의 말이다. 

    “20대는 통합당을 지지하더라도 흔히 보수 유튜브 채널로 불리는 곳을 즐겨 찾지 않는다. 이들은 수익을 목적으로 선동적인 영상을 업로드해 지지자들에게 분노를 주입한다.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노년층이 이들에게 이용당해 항상 화가 나서 광장에 나선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노년층 지지자들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통합당의 이미지도 바뀌었다. 신씨는 “이전에는 보수라고 하면 사람들이 ‘성공한 기업가’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라.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노인들, 냉전의 망령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로 몰아가는 꼰대, 이것이 오늘날 보수우파가 가진 이미지다”라며 아쉬워했다. 

    “없다.” 

    통합당의 정체성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의 물음에 20대 남자 지지자들이 공통적으로 한 답이다. 오히려 이들은 통합당이 민주당을 흉내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지원책으로 등장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입장 선회가 공통적으로 언급됐다. 대학생 김민혁(24) 씨의 말이다.

    “민주당 따라(Mirroring) 해도 뽑아줄 거란 편견(Bias) 어이없다”

    “민주당 김경수 경남지사가 재난기본소득 명목으로 전 국민에게 100만 원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가 뒤늦게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에게 50만 원을 준다고 공약했다. 100만 원과 50만 원. 딱 이 차이다. 민주당을 졸졸 따라다니는데 그저 한두 걸음 덜 걷는다. 색깔이 없다.”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했던 박명재(25) 씨는 스스로를 보수 및 우파 성향이라고 소개했다.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박씨는 “한국에서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정당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창업 당시 각종 규제와 세금 제도가 너무나 불편했다. 자연스레 작은 정부를 추구하게 됐다. 민주당은 포용국가처럼 ‘큰 정부’라는 비전을 갖고 있어 통합당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러나 막상 통합당을 지지하고 보니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보다 작은 정부’란 사실을 알게 됐다. 긴급재난지원금 논란 당시 실망이 컸다.” 

    단순히 통합당의 정체성을 모르겠다는 지점에서 20대 남성의 비판이 그치지 않는다. 

    “통합당과 보수는 다르다.” 

    20대 남자들이 수시로 언급하던 말이다. 품위와 원칙 등 보수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통합당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선거에도 통합당 여러 후보가 막말로 비판받았다. 주동식 후보의 5·18 비하,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텐트 발언, 김대호 후보의 3040 비하 발언까지 연달아 터지는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대구에 사는 권진철(28·가명) 씨는 “통합당 여러 의원의 막말 논란을 보고 실망이 컸다. 보수 후보라면서도 깊이 고민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해 품격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을 보수 지지자라고 생각하지 통합당 지지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통합당을 향한 지지 의사도 주변에 숨긴다. 정작 통합당 안팎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샤이 보수(지지 성향을 숨기는 보수층)’라고 부른다. 샤이 보수는 선거 때마다 호출된다. 숨죽이고 있던 지지 세력이 막판 결집으로 반전을 일으켜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4·15 총선 당시 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내부에서도 여론조사를 믿지 않고 경험과 편견에 따라 샤이 보수의 결집을 기다렸다는 관계자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20대 남성들은 샤이 보수라는 단어에 대해 “어처구니없다”고 평가했다. 박명재씨는 “본인들에게 좋게 생각해서 샤이 보수인 것이지, 사실상 통합당을 지지하지 않는데 현 정부가 싫어 어쩔 수 없이 뽑는 사람들이다”라며 “샤이 보수 현상을 보고 반성해야 할 정당이 정작 이들에게 기대하고 있으니 기가 차다”고 말했다.

    “일베(Ilbe)나 극우(Extreme right)라고 손가락질당해”

    통합당에는 샤이 보수라 불리지만 세상은 이들을 일베 혹은 극우라 부른다. 특히 진보 성향이 강한 20대 사이에서 통합당 지지자는 일베나 극우와 다름없게 여겨진다. 대학생 김석민(24·가명) 씨는 2018년 10월에 익명으로 운영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김씨는 정치 성향이 비슷한 30여 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매일 대화를 나눈다. 김씨는 “또래들 사이에서 통합당의 이미지는 극우”라며 입을 열었다. 

    “페이스북에 정부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올리면 친구들이 극우 정당 지지하냐고 놀린다. 분명히 주변에 통합당 지지자가 있을 텐데 아무도 티를 안 낸다. 반대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친구들은 대놓고 활동한다. 문재인 대통령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거리낌 없이 ‘좋아요’를 누르며 지지 성향을 공개한다.” 

    김씨만의 문제도 아니다. 신영빈 씨도 ‘남 몰래 지지’를 실천하고 있다. 신씨는 “일베는 이제 통합당 지지자를 공격하는 하나의 무기가 됐다. 이전에는 과거 보수정당 지지자들이 현 여당 지지자를 종북좌파라 부르며 공격했다면, 요즘은 상황이 뒤집혀 여당 지지자들이 통합당 지지자를 일베라고 부른다”며 “친구들한테라도 통합당 지지한다고 말 못 한다”고 말했다. 

    20대 남성은 공통적으로 현 정부에 비판적 댓글을 달았단 이유로 네티즌에게 일베 혹은 극우라는 말을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허민수 씨는 “일베 프레임은 성공했다고 본다. 이전에는 일베라고 하면 단순히 ‘또라이’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통합당 지지자와 어느 정도 의미가 통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일베나 극우로 불리지 않기 위해 갖가지 꼼수도 등장했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통합당 지지자라고 소개하는 대신에 반(反)여권 성향으로 알리는 것이다. 박명재 씨는 “주변에서 통합당을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민주당을 싫어한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박찬호(25) 씨 역시 “통합당 지지자라고 하면 자동으로 태극기부대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경향이 있다”며 “상대방이 통합당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대통령을 싫어한다’고 말한다”고 귀띔했다.

    “20대 남성이 통합당을 선호한다는 뜻 아냐”

    한편, 4·15 총선 결과와 관련, 단순히 20대 남성들이 통합당을 선호한다고 분석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구 투표에 대한 지상파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안에서도 민주당 지지율(48%)이 통합당 지지율(41%)보다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남자 현상’을 20대 남성들이 기존의 여야 정당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원재 KAIST(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조국 사태를 겪으며 20대 내부에서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게다가 위성정당 논란을 보며 제3지대에 위치한 정당들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실망했을 것”이라며 “이번 현상은 20대 내부의 이념적·문화적 다양성을 기성 정치권이 담아내지 못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지난 선거는 이들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지만 강요되는 상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김대중 정부 들어 시작된 여성정책이 최근 들어 점차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과 남성의 정당 투표 차이는 이러한 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통합당을 지지한 20대 남성들은 “통합당이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명재 씨는 “‘통합’을 강조해 당 이름도 그렇게 지었겠지만 현 보수정당의 문제는 갈라서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 기성 보수와 젊은 보수 사이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매우 크다. 현 상태라면 통합당은 공정과 노력 등 젊은 세대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효가 지난 옛사람들은 떠나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허민수 씨는 “거대 양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인물에 각각 갇혀있다. 20대는 둘 다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노무현의 탈권위적인 모습과 개척정신을 통합당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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