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영화산업 궤멸에 복합몰 시대 끝난다

2만 명 고용불안 쓰나미… “공격 출점 더는 어려워”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0-05-2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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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1위 AMC 파산설, 韓 1위 CGV 716억 적자

    • 4월 국내 영화관객 97만 명, 통계 작성 후 최악

    • 두 달 새 고용인원 2331명 줄어

    • 극장 매출 70% 줄면 2만 명 고용불안 직면

    • 휴업조치 상당수 대형 상권…“공격적 출점 시대 끝”

    [뉴스1]

    [뉴스1]

    영화산업은 극장 매출이 업계에 고루 배분되는 형태로 수익 구조가 짜여 있다. 투자배급·제작사와 극장이 입장권 수익을 ‘부율’이라는 이름으로 나눠 갖는 식이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홍보·마케팅 관련 대행사도 작품이 꾸준히 개봉돼야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극장은 설비 투자에 따른 비용을 상쇄한다. 극장의 위기가 영화산업 생태계의 도미노 식 붕괴로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잇따르는 건 이런 구조 때문이다.

    분기 적자 716억 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화산업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최대 극장 체인인 AMC가 코로나19 후폭풍으로 파산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미국발 보도가 나왔다. AMC는 3월부터 1000개가 넘는 상영관 문을 닫고 2만 명 넘는 임직원이 임시 휴직에 돌입한 상태다. 

    한국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CJ CGV(이하 CGV)는 사상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CGV는 지난해 매출액 기준 국내 극장시장 점유율 49.5%를 기록하고 있는 1위 사업자다. 

    5월 8일 CGV는 올해 1분기(1~3월) 매출이 243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 급감했고, 영업 손실은 716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9년 1분기 영업이익은 235억 원이었다. 1년 만에 무려 900억 원 넘는 돈이 증발해버린 셈이다. 순손실은 1186억 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 CGV 측은 “투자 보류, 인력운영 효율화 등 비용 절감을 위한 고강도 자구안을 실행했지만, 임차료와 관리비 등 고정비 지출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5월 8일 메가박스를 운영하는 제이콘텐트리는 1분기에 극장 부문에서 122억 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영화계는 전례 없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5월 14일 발표한 ‘4월 한국영화산업 결산 발표’에 따르면 4월 영화 관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237만 명(92.7%↓) 급감한 97만 명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래 역대 최저치다. 영진위가 일선 제작 현장의 피해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82개 작품 제작사의 피해액(1~4월)은 213억8993만 원에 달했다. 

    앞길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코로나19 탓에 많은 소비자가 극장을 택하는 대신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고 있어서다. 배우 이제훈이 주연을 맡은 ‘사냥의 시간’은 아예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와의 독점 계약으로 4월 23일 넷플릭스에서만 개봉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극장 매출 73% 줄면 2만 명 고용불안

    2018년 12월 18일 문을 연 신세계그룹의 ‘스타필드 시티위례’. 이곳에도 대형 극장체인이 입점해 있다. [신세계그룹]

    2018년 12월 18일 문을 연 신세계그룹의 ‘스타필드 시티위례’. 이곳에도 대형 극장체인이 입점해 있다. [신세계그룹]

    당장 한국 영화산업이 전면적인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기도 어렵다. 국내 극장 매출은 영화산업 전체 매출에서 약 80% 비중을 차지할 만큼 절대적이다. 위기와 별개로 당분간 극장 중심으로 영화산업 생태계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미 만들어놓은 극장의 규모를 줄이기도 어렵다. 이에 대해 박정엽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극장은 임차료·인건비·감가상각비 등 고정비가 높아 외형이 줄면 적자를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단기간 실적 개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박성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CGV의 경우 영업일수와 극장 콘텐츠 부족, 코로나 감염에 대한 불안감으로 2분기에도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당장 다가올 쓰나미는 고용불안이다. 영진위는 5월 12일 ‘코로나19 충격:한국 영화산업 현황과 전망’을 내놓고 영화산업 종사자 약 3만878명 중 2만 명 이상이 고용불안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숫자가 나온 근거는 이렇다. 영진위에 따르면 영화산업 취업유발계수는 18.2명으로 극장 매출이 10억 원 늘 경우 취업자 수는 18.2명 늘어난다. 영진위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올해 극장 매출이 지난해보다 1조3972억 원(73%) 감소한 5167억 원에 그칠 수 있다고 봤다. 전망이 현실화하면 2만 명이 고용 위기에 직면한다는 뜻이다. 

    벌써 실업난 조짐도 엿보인다. 4월 29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500대 기업 중 국민연금 가입 여부를 알 수 있는 492개사를 조사한 결과, CGV의 고용 인원은 2~3월 두 달간 총 2331명이 줄었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유일하게 인력이 2000명 이상 줄어든 업체기도 하다. 

    CGV는 코로나19가 확산한 3월 28일부터 주 이틀 휴업을 통한 주3일 근무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또 연말까지 대표 30%, 임원 20%, 조직장 10% 비율로 월 급여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근속 10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은 물론, 무급 휴직도 시행했다. 롯데시네마도 임원 임금 20% 자진 반납, 희망 직원 무급휴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메가박스도 임직원 중 절반에 대해 유급휴직을 실시했다. 

    극장의 위기는 상권 타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수년 동안 영화관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 신흥기업(씨네Q)까지 출점 행렬이 이어졌던 까닭은 상권과의 시너지 효과를 꾀할 수 있으리라 봤기 때문이다. 극장이 들어서면 유동인구가 많아져 상권이 훨씬 더 커진다. 이에 극장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쇼핑 매장, 레스토랑, 뷰티샵, 공연장, 대형 서점, 갤러리에 메디컬센터까지 편의시설과 함께 들어섰다. 가령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인 스타필드는 지역에 따라 CGV 및 메가박스와 각각 협업한다. 롯데그룹 복합쇼핑몰인 롯데몰은 같은 그룹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롯데시네마를 끼고 들어간다. 

    실제 CGV의 경우 3월 말부터 전국 직영점의 30%에 해당하는 35곳의 영업을 중단했는데, 여기에는 서울 대학로·명동·수유·청담씨네시티·피카디리 1958 등 주요 상권이 모두 포함됐다. 메가박스도 44개 직영점 가운데 10곳의 영업을 4월 한 달간 멈췄는데, 이중 일산 킨텍스가 있었다. 코로나19가 극장을 매개로 한 상권 지도를 재편하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OTT는 따라 하지 못할 니치마켓

    장민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영상학 박사)은 “과거 단관 체제였던 상영관이 2000년대 복합 형태(멀티플렉스)로 바뀐 동력 중 하나는 유통 산업과의 시너지였다. 코로나19 이후 상영관이 여태 해왔듯 공격적 출점 전략을 펼칠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OTT로는 오롯이 즐길 수 없는 극장만의 매력이 있다. 예컨대 소형 상영관은 1인 관객만을 겨냥하는 등 니치마켓(niche market·틈새시장)을 본격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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