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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작가 박원익 “청년 없는 ’청년정치’, ‘진품명품 쇼’ 아니다” [사바나]

  • 박원익 작가·고려대 경제학 박사과정 paxwonik@naver.com

청년 작가 박원익 “청년 없는 ’청년정치’, ‘진품명품 쇼’ 아니다” [사바나]

  • ● 민주당 미워도 ‘도로 새누리당’ 싫어
    ● ‘청년 보수화’ 오독해 참패한 통합당
    ● ‘정치적 소(小)부족주의’로 전락한 ‘정체성 정치’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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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에서 어느 때보다 ‘청년정치’가 강조됐다. 청년 이슈와 관련해 몇 가지 흥미로운 교훈도 남겼다. 

이번 선거를 총평하자면 집권여당의 ‘빼도 박도 못하는’ 승리다. 더불어민주당(163석)과 더불어시민당(17석)은 180석을 얻었다. 5월 13일 민주당과 합당한 시민당의 소수정당 출신 당선자 2명이 원래 속했던 당으로 돌아가고, 양정숙 당선자는 투기 의혹으로 제명됐다. 177석 공룡 여당의 탄생이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한국사회의 갈등 구도가 바뀐 점에 동의한다.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와 20~30대 청년세대의 대립을 부각시킨 세대담론도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탄핵 잔존 세력’ 심판

진보와 보수 사이 대립이라는 기존의 이원적 갈등 구도로는 앞으로 한국 정치를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야권이 이런 전망에 지나친 기대를 건 점이다. 분명 청년세대는 민주당과 586 운동권의 위선에 분노했다. 미래통합당 등 보수야권은 그 분노가 고스란히 자신들을 향한 지지로 이어질 것이라 착각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유권자들은 박 전 대통령 탄핵 후에도 바뀌지 않은 보수야당을 먼저 심판했다. 



코로나19 정국에서 통합당이 보인 태도도 문제였다. 정부의 방역대책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대안 없는 어깃장으로 일관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정부와 여당은 유권자에게 정치가 실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줬다. 야권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 점을 성찰해야 한다. 

정치적 신인류라 불린 20대의 표심도 유권자 일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탄핵 잔존 세력’이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보수야당을 준엄하게 심판했다. 

20대가 총선 직전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에서 보인 변화도 흥미롭다. 한국갤럽이 총선 직전인 4월 7~8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20대(18~29세)의 무당층 비율은 32%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55%)는 60대 이상(44%)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이미 변화가 감지됐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2월 28%였던 20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3월 32%, 4월 7~8일 39%로 높아졌다. 

실제 선거에도 20대의 변화된 표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에 투표한 20대의 비율은 56.4%였다. 30대(61.1%)나 40대(64.5%)보다 낮지만 50대(49.1%)와 60대 이상(32.7%)에 비해선 높다. ‘별나라 사람’으로 치부되던 20대의 민심도 전체 판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년은 ‘외계인’이 아니다

이런 선거 결과로 기존 청년담론의 편향된 시각을 정정할 수 있다. 먼저 20대가 사회의 보편적 상식을 신경 쓰지 않는 ‘딴 나라 사람’ ‘외계인’이란 관점이다. 이 편견에서 20대의 민심을 오독하는 두 가지 잘못이 비롯된다. 첫 번째는 청년정치를 시민사회의 상식과 유리된 ‘정체성 정치’로 몰고 가는 것이다. 정체성 정치는 개인의 인종, 성별, 종교,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인정(recognition)을 주된 의제로 삼는 정치다. 

또 한 가지는 청년을 선동으로 유혹해 자기 정치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오만이다. 이들은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만연한 혐오정서를 이용하려 든다. 

보수정당은 여권을 향한 청년세대의 반감을 이용해 ‘반(反)문빠’ 논란을 일으켰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상식이 결여된 ‘괴물’로 몰아붙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보수 유튜버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에서 생산된 ‘가짜뉴스’가 범람했다. 보수정당은 이들의 혐오정서에 편승했다. 

현 여권이나 진보정당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도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의 편향된 태도를 옹호하는 추태를 보였다. ‘메갈리아’나 ‘워마드’(남성과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여성우월주의 인터넷 커뮤니티)가 일으킨 논란을 두둔한 것. 

시민을 인종이나 민족, 종교 등의 정체성에 따라 구별 짓는 ‘정치적 소(小)부족주의’는 청년의 불안감을 파고든다. 파편화된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은 소속감과 애착을 희구하는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정치가 불안감을 이용해 청년을 분열시켜선 안 된다. 잘못된 정체성 정치의 ‘떡밥’을 물 만큼 청년들이 어리석지도 않다. 

보수야당은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둘러싼 논란 후 청년 이슈를 내세웠다. 선거 결과는 이들이 청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개혁 보수를 표방한 옛 새로운보수당의 갈지자걸음도 문제였다. 한때 청년인재들을 과감히 영입하더니, 이내 통합당에 흡수됐다. 보수야권 일각의 청년정치 실험은 ‘도로 새누리당’으로 회귀해 물거품이 됐다.

혐오정서 이용하려 든 진보와 보수

‘대리 게임’ 논란을 빚은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자. [뉴스1]

‘대리 게임’ 논란을 빚은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자. [뉴스1]

청년들이 기존 보수정당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이들의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와 냉전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간판을 아무리 바꿔도 청년들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때 심판받은 이들이 누구인지 기억한다. 보수를 향한 청년의 근본적 실망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보수정당은 앞으로도 계속 청년의 마음을 대변할 수 없다. 

여권과 진보정당의 청년정치 실험은 새로운 논란의 진앙지가 됐다. 민주당 청년영입 인사 원종건 씨는 ‘미투’ 논란으로 중도 하차했다. 정의당이 영입한 류호정 당선자(비례대표 1번)도 논란에 휩싸였다. 류 당선자는 아프리카TV 등 SNS 미디어 플랫폼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BJ로 활동하다 게임업체에 취직했다. 게임업계에서의 노동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국회에 입성하기까지 류 당선자의 경력을 뒷받침한 게이머로서의 행보가 구설에 올랐다. 온라인 게임 롤(LoL)에서 자신의 레벨을 올리는 데 해당 게임대회 우승자인 당시 연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류 당선자는 게임에서 얻은 높은 레벨을 게임업체 입사지원서에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성에 예민한 청년들의 분노를 샀다. 

논란을 일으킨 이들의 공통점은 검증된 정치 이력 없이 이미지와 스토리만으로 정치에 도전한 점이다. ‘청년 없는 청년정치’의 고질적 문제와 관련이 깊다. 보통 청년이 일상에서 정치에 참여할 기회는 많지 않다. 결국 사회 고위층 인사인 부모를 둬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는 운 좋은 소수, 일부 학생단체 활동가만이 청년정치의 마이크를 독점한다. 

소수의 청년정치 스피커는 정작 청년 다수와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안정된 직장을 얻고자 노력하고 공정성을 중시하는 또래의 생활감각과 괴리된 것이다. 청년정치가 역설적으로 같은 청년 내의 불화와 논쟁만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대다수 청년은 자격 없는 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상식에도 부합하는 인식이다. 이런 청년들을 ‘혐오주의자’로 낙인찍어선 안 된다. 

청년정치의 난맥상에도 정치 세대교체의 필요성은 상존한다. 21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연령은 54.9세다. 여전히 국회의원의 표준은 전문직 고학력 50대 남성이다. 소수 엘리트 그룹이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는 정치지형에서 청년정치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 다만 진정한 정치 세대교체를 위해선 청년정치인의 자성도 필요하다. 자신이 청년팔이에 편승해 진정 또래 세대가 필요로 한 정책은 도외시하는 것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청년정치, ‘캐릭터 설정놀이’ 아냐

미국 최연소 여성 연방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민주당 의원. [AP=뉴시스]

미국 최연소 여성 연방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민주당 의원. [AP=뉴시스]

청년정치를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하는 관행도 돌아봐야 한다. 청년층은 기성정치의 문법을 거부한다. 이들은 평소 여론조사에서 대개 무당층으로 나타난다. 이내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벌어지면 기존 정치의 문법으론 해석할 수 없는 이변으로 정치판을 흔든다.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과 정당일수록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댄다. 이들의 행보는 곧잘 청년의 보수화로 풀이됐다. 그보다는 앞으로 한국을 변화시킬 사회적 변화의 징후로 봐야 한다. 

청년층의 이런 특성을 정치에 투영하려면 정체성 정치의 좁은 틀을 강요해선 안 된다. 기존에 청년정치는 생물학적 연령을 기준으로 특정 청년에게 가산점을 주는 식이었다. 자칫 청년정치를 여러 정체성이 진열되는 ‘진품명품 쇼’ 혹은 ‘캐릭터 설정놀이’로 찢어 놓을 수 있다. 누가 더 파편화된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내는지 대결하는 청년정치는 또래를 납득시킬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lexandria Ocasio Cortez)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정체성 팔이’ 정치의 대안을 보여준다. 코르테즈 의원은 2018년 29세에 미국 역사상 최연소 여성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진보 성향 정치인으로 같은 당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 지지자로 알려졌다. 미국 젊은 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한국에선 코르테즈 의원의 ‘히스패닉 출신 30대 여성’이란 정체성에만 주목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미국 밀레니얼 세대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코르테즈 의원이 경제개혁 프로그램인 ‘그린 뉴딜(green-newdeal)’을 과감히 제안하고 코로나19와 관련해 민생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코르테즈 의원이 소수자적 정체성을 조합한 캐틱터 연기에 능해서가 아니다. 미국 밀레니얼은 또래 정치인이 자기 세대의 보편적 감정과 요구를 정치에 투영하는 점을 주목했다.

청년정치, ‘보편적 노래’를 불러라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는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다”고 노래했다(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 이 노래가 청년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노랫말처럼 청년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보편적인 노래’ 속 일부로 인지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청년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청년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와 이념을 말하는 청년정치가 가능하다. 청년정치가 하루라도 빨리 정체성 정치라는 어색하고 불편한 옷을 벗어던져야 하는 이유다.


박원익
● 1987년 출생, 필명 ‘박가분’
● 고려대 경제학 박사과정
● 호원논집 우수상, 창작과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
● 저서 : ‘일베의 사상’ ‘포비아 페미니즘’ ‘공정하지 않다-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공저) 外



신동아 2020년 6월호

박원익 작가·고려대 경제학 박사과정 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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