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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박’ 판결 불구 유사 FX렌트 ‘환율 홀짝 도박’ 여전

“대법원·금감원 인정했다”며 ‘합법’ 가장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불법 도박’ 판결 불구 유사 FX렌트 ‘환율 홀짝 도박’ 여전

  • ●‘사업장 소재지’는 가짜, 업종은 ‘유사투자자문업’
    ●“증거금·계좌 ‘렌트’ 자체에 불법 소지”
    ●방심위 “불법 FX렌트 사이트 42곳 폐쇄 시정요구”
    ●전문가들 “향후 판결 더 엄중해질 것”
여전히 운영 중인 FX렌트 거래 업체 A사 사이트. ‘타 업체와 다른 100% 신뢰성’을 주장하고 있다. [A사 홈페이지 캡처]

여전히 운영 중인 FX렌트 거래 업체 A사 사이트. ‘타 업체와 다른 100% 신뢰성’을 주장하고 있다. [A사 홈페이지 캡처]

“도박으로 밝혀진 타 업체와 달리 우린 완전히 합법” 

“2015년 대법원 판결로 금감원이 금지하지 않는 안전한 투자” 

FX렌트 업체를 통한 사설 FX마진거래가 “불법 도박”이라는 법원 판결에도 일부 업체들은 여전히 “합법적 투자”라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4월 24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FX렌트 업체 조모(61) 회장에게 도박개장죄 등 혐의로 징역 5년·추징금 336억 원을 선고했다. FX렌트 거래가 환율의 시세를 장기적으로 예측하는 합법적 선물투자라고 얘기하지만 결국 1분, 2분, 5분 후의 환율 등락에 판돈을 거는 ‘홀짝 도박’이나 마찬가지란 취지의 판결이었다. 조회장은 FX렌트 거래방식을 고안해 2011년부터 동명의 업체를 운영했다.

FX렌트 거래, 1·2·5분 주기 ‘홀짝’ 도박

FX마진거래는 원래 합법적 투자 방식이다. 두 나라의 통화를 실시간으로 사고팔아 차익을 얻는 외환거래의 한 방식이다. 국내에선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제도권금융기관’(투자매매업·투자중개업 인가업체)를 통해서만 거래할 수 있다. 투자자는 이들 기관에 개설한 계좌를 통해 증거금 1200만원을 예치해야 거래를 틀 수 있다. 위험성이 높은 투자이니만큼 신중히 투자하란 취지다. 제도권금융기관을 통하지 않은 FX마진거래는 불법이다. 

문제가 된 조 회장의 FX렌트는 거래에 필요한 증거금과 계좌를 이용자에게 빌려주고(rent) 수수료로 수익금의 12~15%를 받는 구조로, 이용자는 1·2·5분 후의 환율 등락만 맞추면 투자 원금의 2배(수수료 제외)를 돌려받는다. 그렇지 못하면 원금을 모두 잃는다. 1회 투자금은 최소 5000원에서 최대 100만 원 정도다. 1·2·5분 후에 환율이 오를지 내릴지를 예측해 베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외환시장에 대한 합리적 분석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점 때문에 법원은 FX렌트를 금융 투자가 아닌 환율이 오를지 내릴지를 맞추는 ‘홀짝 도박’으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조 회장의 1심 유죄판결 후 FX렌트 사업은 자취를 감췄을까. 인터넷 포털에 ‘FX렌트’, ‘FX마진거래’ 등을 검색해본 결과, 관련 업체 사이트들이 여전히 운영 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중 한 곳인 FX렌트 업체 A사는 현재(6월4일)까지 자사 인터넷 사이트에 “FX마진거래는 증권사에서도 거래되는 100% 합법거래다. 우리는 증거금을 예치한 합법적인 회사이니 안심하라”고 공지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이틀 전 한 이용자가 자본금 5만원으로 21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수익인증’ 내역을 게시했다.

“우린 합법이니 안심하라” 여전한 ‘수익인증’

6월 2일 A사 홈페이지에 ‘사업장 소재지’로 허위 기재된 서울 영등포구의 한 빌딩. [사진 김우정 기자]

6월 2일 A사 홈페이지에 ‘사업장 소재지’로 허위 기재된 서울 영등포구의 한 빌딩. [사진 김우정 기자]

6월 2일 기자는 A사 사이트에 ‘사업장 소재지’로 기재된 서울 영등포구의 한 빌딩 사무실을 직접 찾았다. 주소지에는 A사가 아닌 국내 모 대형 금융업체 본사가 입주해 있었다. 빌딩 관리자에게 해당 업체명을 묻자 “이 빌딩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데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었다. 

사업자등록번호를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 정보포털’에 조회해보니 A사는 유사투자자문업체로 등록돼 있었다. 유사투자자문업체 설립과 등록은 별도 요건 없이 금융 당국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가능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것 외에 FX마진 거래 등 실제 투자금을 받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곽준호 법률사무소 청 대표변호사는 “합법적 FX마진거래도 위험성이 높아 국내에선 소수 대형 증권사를 통해서만 취급할 수 있다”며 “증거금과 계좌를 ‘렌트’해 FX마진거래를 유도하는 FX렌트 거래 방식 자체에 위법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불법 도박이 금융상품의 외피를 쓰고 버젓이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2011년 금감원은 FX렌트가 자본시장법에 위배된 사행성 투자라고 판단하고 관련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 1·2심 법원은 해당 업체가 자본시장법 제11조(무인가 영업행위 금지)를 위반했다고 봤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2015년 대법원은 해당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문에서 FX렌트가 ‘단시간 내에 환율이 오를 것인지 아니면 내릴 것인지를 맞추는 일종의 게임 내지 도박에 불과’하다고 봤다. 법리적으로 금융상품이 아니라 ‘게임 내지 도박’인 FX렌트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순 없다는 것이다. 금융상품이 아니라 도박이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이 아니라 도박장개설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때부터 FX렌트 업체들은 대법원 판결을 교묘히 이용해 이용자를 끌어 모았다. 자본시장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란 점만 부각한 것. FX렌트 업체들의 사이트엔 ‘2015년 대법원 판결에 따른 합법적 투자’, ‘금감원이 금지하지 않은 금융거래’ 등의 문구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대법원 판결 후 금감원은 FX렌트 거래를 사실상 막을 수 없게 됐다. 관계법령(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감원의 감독 대상은 은행, 증권금융사 등과 이들의 금융거래·상품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2015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사설 FX렌트가 도박으로 규정됐기에 금감원이 감독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6월 1일 금감원은 금융상품을 가장한 FX렌트 거래에 대해 소비자 경보(주의)를 발령했다. 실제 금융상품은 아니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경고음을 낸 것이다.

대법원 판결 왜곡해 홍보에 악용

도박은 국무총리실 직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감독 대상이다. 사감위의 주된 업무는 복권사업이나 경마·경륜 등 사행성산업에 대한 감독이다. 인터넷 사행성 도박 사이트도 모니터링하지만 실질적 조사·단속 권한은 없다. 사감위 관계자는 “2015년 대법원 판결도 불법 FX마진거래의 사행성을 명확해 규정하지 않고 ‘게임 내지는 도박’으로 봐 애매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법원이 조 회장의 도박개장죄를 인정함에 따라 FX렌트 거래를 도박으로 규제할 근거가 생겼다. 앞선 사감위 관계자는 “FX렌트 업체들이 ‘우리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으나 사감위 내부적으론 모두 대동소이한 도박 사이트로 보고 있다”며 “법원이 FX렌트를 도박이라고 구체적으로 판시한 만큼 관련 사이트들을 확인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감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불법 사이트 폐쇄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 위해선 불법 사이트 운영에 따른 피해자가 특정돼야 한다. 

방심위 관계자는 “사감위의 요청 및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6월 1일 불법 FX렌트 거래 사이트 42곳을 확인해 ‘시정요구’ 조치했다”고 밝혔다. 방심위의 ‘시정요구’는 서버 운영사에 해당 사이트와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외 서버라면 ISP(인터넷 접속 서비스 제공업체·Internet Service Provider)에 요청해 국내에서 사이트 접속을 막는다.

“조 회장 2·3심 결과 바뀔 가능성 낮아”

법원의 판결이 바뀌어 FX렌트 거래 업체가 기사회생할 가능성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낮다”고 잘라 말했다. 엄민지 리앤파트너스 변호사는 “2015년 대법원 판결도 FX렌트 거래가 자본시장법 적용 대상이 아닐 뿐 도박이란 취지였다”며 “최근 조 회장에 대한 재판도 확정 판결은 아니지만 2·3심에서 법원의 판단이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곽준호 변호사도 “FX렌트 업체들은 과거 대법원 판결을 곡해해 홍보에 악용했다. FX렌트 거래에 대한 재판이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만큼, 향후 재판부가 관련 업체들을 엄중히 처분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신동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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