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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의 6·25재조명④] 마오쩌둥은 왜 참전했나

마오쩌둥에게도 분단 장기화 책임 있어

  •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김학준의 6·25재조명④] 마오쩌둥은 왜 참전했나

  • 어느덧 광복 이후 최대의 민족 참사였으며 오늘날까지도 한민족 모두에게 큰 부담을 안기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했다. 이 계제에 이 전쟁을 둘러싼 수많은 쟁점 가운데 16가지만 가려 그 내용을 5회로 나눠 살펴보기로 한다.

쟁점 :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맥아더의 주장에는 암수가 끼어 있었나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 제주도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중국군 포로들이 마오쩌둥의 목을 톱으로 자르는 상황극을 연출하고 있다. [동아DB]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 제주도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중국군 포로들이 마오쩌둥의 목을 톱으로 자르는 상황극을 연출하고 있다. [동아DB]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의, 그리고 유엔군 일원으로서 국군의 진격이 계속되면서 서방세계에서는 중공군의 개입 개연성이 예고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중공군이 결국 군사개입해 전쟁이 길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을 지휘하던 맥아더 총사령관은 반론을 폈다. 자신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압도된 중공이, 더구나 이제 ‘건국’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는 중공이, 감히 파병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을 뒤엎고 중공은 1950년 10월 파병했고, 이로써 이 전쟁은 맥아더의 표현대로 ‘완전히 새로운 전쟁’으로 바뀌었다. 

이 사실에 대해 서방세계의 어떤 연구자들은 맥아더의 호언장담에 ‘암수’가 끼어 있었다고 추측한다. 중공군이 개입할 것을 내다보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전쟁이 확대되면 될수록 중공을 상대로 전쟁을 지속할 명분이 분명해지고 ‘전쟁영웅’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은 커진다는 속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연구자는 오판이었다고 본다. 합동참모본부를 비롯한 본국 정부도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던 인천상륙작전을 극적으로 성공시킨 뒤 서방권의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되면서 ‘오만’해졌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오만에 취해 중공군은 감히 개입하지 못할 것으로 오판했다는 것이다.

쟁점 : 중공군의 군사개입은 정당했나

한국군이 압록강과 두만강에 도달해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이던 1950년 10월 하순 중공군이 기습적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통일의 꿈은 좌절됐다. 



어떤 연구자들은 중공군의 개입을 ‘정당’한 것으로 봤다. 그 근거로 우선 1950년 9월 30일 밤 중공 총리 겸 외교부장 저우언라이가 주중 인도대사 파니카르를 통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달한 메시지를 지적한다. 여기서 저우는 “만일 남조선 군대가 38도선을 넘어온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겠다. 그러나 외국 군대가 38도선을 넘어 북상한다면 우리는 파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함으로써, 국제법의 용어로는 ‘개전의 명분’을 제시했는데도, 트루먼 대통령이 이 경고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중공은 그 이후에도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에 도달하게 되면 그들은 곧 만주를 침략할 것이고 이어 중국대륙을 침략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하면서 ‘보가위국(保家衛國)’의 논리를 전개했다. ‘집을 보호하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파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는 유엔군이 그 국경을 침범할 뜻이 없음을 거듭 분명히 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경에 대한 우려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오는 국경에 대해 우려하면서 동시에 스탈린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스탈린은 중공이 유럽의 유고슬라비아처럼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걷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마오가 티토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마오는 이 의심을 풀어주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중공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계산하고 스탈린의 요청에 따라 파병한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으로서는 통일의 호기를 빼앗기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것으로 말미암은 분단의 장기화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바로 중공의 군사 개입에 있다.



신동아 2020년 6월호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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