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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 많은 제주에서 희망을 노래합니다”

[인터뷰] ‘사우스카니발’이 전하는 제주人·제주 음악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恨 많은 제주에서 희망을 노래합니다”

제주를 키워드로 제주인의 정서를 노래하는 밴드가 있어 눈길을 끈다. 제주도 정서를 세계 무대로 뿜어내는 ‘사우스카니발’이 주인공. 사우스카니발은 강경환(보컬, 트럼펫), 석지완(드럼), 이은경(키보드), 강태형(기타), 고경현(퍼커션, 코러스), 박민철(트럼본), 고수진(베이스), 주예찬(테너색소폰), 양기호(트럼펫), 유진근(기타)으로 구성된 10인조 밴드다. 2009년 제주 출신 멤버들로 결성돼 2012년 앨범 ‘South Canival’로 정식 데뷔했다. 

사우스카니발은 제주 방언이라는 장벽도 훌쩍 뛰어넘었다. 그동안 제주의 구성진 노랫가락은 방언이라는 장벽에 막혀 일반화되지 못했는데, 이 밴드는 ‘몬딱 도르라(함께 달리자)’ ‘와리지말앙(서두르지 마라)’ ‘느영나영(너랑 나랑)’ 같은 방언을 노래 제목과 가사에 담아 중남미 리듬에 맞춰 열창한다. 음악을 듣다 보면 제주 방언에 묘한 호기심이 생기고, 제주의 매력에 푹 빠진다. 밴드 리더 강경환(41) 씨 등 멤버들을 만나 개성 넘치는 제주 음악에 대해 들어봤다.

남쪽의 축제, 제주어 지킴이

- ‘남쪽의 축제’라는 밴드 이름도 특이하지만, 사우스카니발은 ‘제주어 지킴이’ ‘제주어 밴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더군요. 제주 방언을 회피하지 않고 노래 제목과 가사에 오롯이 담아 그런 거 같은데요, 

“저희가 제주도 사람이니까요(웃음). 록밴드에서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는 근사하고 멋진 예술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동료들 사이에 ‘진정성’이라는 매개체가 생기더군요.” 

- 진정성이라는 매개체? 

“세계를 지배하며 착취한 민족이 만든 음악이 아니라 지배를 당한 민족의 질긴 저항 음악을 하자고 의기투합했어요. 우리 진정성이 가리키는 곳이 저희가 나고 자란 제주도였습니다. 저희는 제주도 음악과 중남미 음악을 근간에 두고 과거의 것에서 새로움을 모색했어요.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다가 생각한 거죠. 처음부터 제주어를 지키고 제주를 알리겠다는 청사진을 그린 것은 아니었어요.” 

- 제주도 음악이 중남미 음악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처음에 자메이카 레게음악이나 쿠바 라틴음악을 들으면서 ‘왜 이들 음악은 흥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이들 음악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나면서도 가난의 흔적은 없었어요. 애환이 어린 가사가 특유의 흥으로 승화돼 낭만이 남아 있어요. 쿠바나 중남미인은 400여 년 전 노예로 잡혀온 아프리카의 후예들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스카, 볼레르, 브라질리안, 아크로쿠반, 살사, 차차차 등 중남미 라틴음악에는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이 있어요. 블루스는 흑인들이 목화밭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부른 노동요(勞動謠)인 만큼 슬픔도 담겨 있지만 리듬, 흥이 공존해요. 우리 제주 음악도 이들의 문화와 비슷해요.” 



- 사우스카니발의 음악에 제주 역사와 아픔, 민초의 저항 의식이 녹아 있군요. 

“제주도는 예로부터 탐라국이라는 독립국가였다가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속국이 됐고, 1105년(고려 숙종)부터 중앙에서 파견된 관헌이 민정을 살피면서 수탈과 억압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봐요. 그리고 돌이 많고 건조해 논이 거의 없죠. 밭농사로 먹고사는 제주도민들이 조정의 진상품을 대고, 각종 노역과 부역, 병역에 시달리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어요. 고려시대 삼별초 항쟁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감당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도민들은 눈물을 잊기 위해 노래를 불렀죠. 고통을 감내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거죠. 그러한 제주도의 음악과 문화는 쿠바, 자메이카, 아프리카 음악과 문화와 연결됩니다. 그 속에서 진정성을 찾고 있어요.”

제주, 그리고 쿠바, 자메이카, 아프리카

그의 말처럼 제주도에는 민초의 애환을 담은 구성진 민요가 많다. 가까운 예로, 일제가 토지조사사업 명목으로 제주도 토지의 약 60%를 국유지로 만들어 수탈을 일삼았을 때 제주 해녀들은 “산도 차지 물도 차지/ 우리 조선 총독부 차지/ 저기 가는 저 총각은/ 내 차지여 내 차지여”라는, 일종의 노동요를 불렀다. 산, 물, 사람과 나라를 빼앗겼다는 한탄 속에서도 연인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제주도 여인들의 울분과 해학, 저항 의지가 돋보인다. 일반적으로 제주 민요에는 ‘정든 님이 오는데 부끄러워 인사조차 못했다’거나, ‘나를 버리고 떠나는 님은 붙잡지 않는다’는 등의 순수함과 품격이 잘 나타난다. 그들은 하루 종일 밭에서, 바다에서 일하고 밤새 맷돌을 돌리고 방아를 찧으며 민요를 불렀다. 민요에는 한(恨)과 눈물이 배어 있고 고달픔이 녹아 있다. 

- 예로부터 제주도민들은 삶의 아픔과 외부 침탈에 대한 회한과 분노를 리드미컬하게 흥얼거리며 시름을 잊었다고 볼 수 있네요. 

“제주도 음악이 구슬프지만 유독 흥이 살아 있는 것은 기후 까닭도 있다고 봐요. 살기 좋은 환경에서 평화롭고 여유로운 정서가 잉태된 거죠. 그리고 고립된 섬이다 보니 서로 돈독해서 일상에서 함께 노래 부르는 일이 많았죠. ‘오돌또기’ ‘너영나영’ 같은 민요에는 섬 특유의 느릿한 정서가 가득해요. 그럼에도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던 제주도에는 강인한 생활력이 돋보이는 노동요도 아주 많아요.” 

- 그렇군요. 

“예로부터 제주는 말을 비롯해 선박, 귤, 약초, 소라, 진주, 나무 등 진상품을 바쳐야 했어요. 또한 광해군 때부터는 중앙의 지원 없이 오롯이 제주도민이 제주 방어를 담당했죠. 제주도에는 ‘예청(‘여편네’의 제주 방언)’이라는 여자 군인들도 있었죠. 제주 문화에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제주 여성의 투지와 긍지가 많이 녹아 있어요.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여성 주도 항일투쟁인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난 이유이기도 해요.” 

- 제주민요에는 유독 딸을 예찬하는 노래도 많고, 제주도 설화에도 강한 여성의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우스카니발이 1월 발표한 신곡 ‘Wishes’도 무속 신화와 관련된 노래 같아요. 

“맞아요. 저희가 제주 무속 신화도 공부하는데요, 제주의 신화를 다른 각도에서 풀어보고 싶더라고요. 제주도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토속신앙이 다른 지역보다 발달할 수밖에 없죠. 오죽하면 제주도가 1만8000여 신의 고향이라고 할까요(웃음). 그러니 신에게 안녕을 염원하는 굿을 하는데, 춤·노래·대사가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악가무시사(樂歌舞詩辭)’ 의식은 도민 생활의 일부입니다. 이런 문화가 잊혀가는 게 안타까워 젊은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굿(Wishes)’을 만들었어요.”

제주에 뮤지션이 많은 이유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 Wishes의 모티프가 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9년 등재)이죠?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굿인데요. 

“맞아요. 음악 기원도 따져보면 원시 부족의 제례 과정에서 나온 것이잖아요. 영등굿은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해녀와 어부들의 수호신 영등할망에게 음악을 통해 도민들의 무사 안녕을 비는 굿입니다. 물론 굿을 사우스카니발 스타일로 재해석해 무속인들이 보기에는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영등굿의 극적 요소를 기반으로 아프리카 부족들이 사용하는 악기와 리듬을 차용했습니다. 생소할 수 있지만 제주 토속신앙을 아프리카 토속음악 형식과 융합한 거죠.” 

- 사우스카니발처럼 제주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음악인이 많나요. 

“제주도에 밴드 음악인이 적을 것 같지만 사실 서울 다음으로 많아요(웃음). 우리 밴드만 해도 처음에는 각자 다른 팀에서 음악을 하다가 모였거든요. 월드뮤직, 록, 컨트리, 발라드 등 음악 스펙트럼도 다양해요. ‘어떻게 이 좁은 섬에 이렇게 많은 장르의 뮤지션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도시는 이동이 편해 향유할 수 있는 ‘꺼리’가 많지만 섬은 상대적으로 놀이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섬에서는 거리에서 1차적인 놀이인 음악, 춤, 미술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요. 제주도의 에메랄드빛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컴퓨터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잖아요. 그 풍경에 도취해 가공하지 않은 1차적 표현 방식을 갈망하게 돼요. 그래서 제주도에 밴드 음악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쿠바나 하와이 등도 마찬가지고요.” 

- 본래의 제주를 음악에 담기 위해 가장 중요시하는 게 있을까요. 

“진정성입니다. 제주를 미화시키면 당장 달콤함을 줄 수 있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해요. 저는 피아노 건반을 치면서 작곡하지 않아요. 기타 메고 무작정 제주도 곳곳에서 가만히 앉아서 느낍니다.” 

- 무엇을 느끼나요. 

“중산강가의 고창한 삼나무 숲 냄새와 소리를 느끼죠. 바닷가 해안도로 특유의 짠내 섞인 산들바람과 뉘엿뉘엿 서쪽 해를 쫓아가며 운전할 때 마주하는 보라색 노을도 느껴요. 제주도의 감각에 감응하면서 떠오르는 가사와 멜로디를 음악으로 담습니다. 아름다운 부분만 부각하는 게 아니라 풍광, 아픔, 반목, 대립 등등 모든 것을 노래하려 해요.”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제주도의 작은 음악 밴드가 수도권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세계적 밴드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일인데 고작 몇 년 해서 완성할 수 없죠. 우리 밴드는 처음 결성할 때부터 40년 가는 밴드를 만들자고 했어요. 만약 제 한평생을 해서 안 되면 다음 세대로 대물림해 그 뜻을 이을 생각입니다.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씨와 벨기에 입양인 출신의 세계적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씨와도 함께할 예정이고요.”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한마디 했다. 

“참, 그리고 저희가 신인 시절에는 흥겨운 리듬의 자메이카 음악 ‘스카(Ska)’에 제주의 정서를 담다 보니 ‘스카밴드’라고 알려졌는데요, 앞으로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제주도 울림을 전하고 싶으니 꼭 써주세요.”



신동아 2020년 6월호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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