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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조대식 의장 재판에 쏠린 눈ᆢ유상증자로 부실기업 되살려도 배임죄?

12일 부터 본격 재판 시작…법조계 등 ‘이현령비현령’식 법적용 비판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SK 조대식 의장 재판에 쏠린 눈ᆢ유상증자로 부실기업 되살려도 배임죄?

  • ●SKC 700억 유상증자로 SK텔레시스 흑자 전환
    ●SKC도 기업가치 상승, 최고 실적 달성
    ●기업 손실 입어도 배임 아닌 판례 많아
    ●대법 “과도한 배임 기소, 기업가 정신 위축”
    ●법조계 “배임죄 민사로 풀어야”
5월 25일 검찰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조대식 SK수펙스협의회의장. [뉴스1]

5월 25일 검찰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조대식 SK수펙스협의회의장. [뉴스1]

“‘배임죄’라는 유령이 다시 재계를 배회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 5월 SK그룹 2인자로 불리는 조대식 SK수펙스협의회 의장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가법)상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나온 얘기다. “배임죄에 대한 처벌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 기업인들을 교도소 담장 위에 세우는데 대한 재계의 불편한 시각이 읽혀진다.

재계는 물론 학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도 배임죄를 두고 설왕설래가 벌어져왔다. 모호한 법 조항을 이용해 검찰이 자의적으로 기소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5년 헌법재판소가 배임죄의 위헌성을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언젠가는 위헌결정이 내려질 규정’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형법 제355조에 따르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업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 3자에게 이익을 취하도록 함으로서 타인(법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배임으로 처벌토록 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기업 경영진이 일신상의 이익을 추구하며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일을 처벌하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도 손해 본 사람 없는 배임

배임죄의 혐의 구성요건이 구체적이지 않아 대법원은 2004년 배임과 경영상의 판단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동아DB]

배임죄의 혐의 구성요건이 구체적이지 않아 대법원은 2004년 배임과 경영상의 판단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동아DB]

8월 12일부터 시작되는 조 의장 등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도 배임죄 성립 여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 간의 뜨거운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배임죄가 성립되려면 우선 조 의장이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그에 따른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기소 단계부터 재계와 법조계로부터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조 의장의 결정이 결과적으로는 회사에 이익을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조 의장은 SKC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2015년 4월 22일 SK텔레시스 유상증자 과정에서 부실자료를 이사회에 제공해 자금 지원을 승인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외에도 SK㈜의 재무팀장겸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이던 2012년에는 SK텔레시스의 유상증자에 SKC가 199억 원 상당을 투자하도록 도왔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SKC가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899억 원을 회생 불가능한 SK텔레시스에 지원하며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SK텔레시스 유상증자는 부실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SK 측 설명에 따르면, SK텔레시스는 2014년 126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이에 모기업인 SKC는 2015년 700억 원대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상증자는 성공적이었다. SK텔레시스는 유상증자 다음해인 2016년을 시작으로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회생에 성공했다.

“유상증자, 성공적인 경영판단”

그렇다고 SKC가 손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다. SKC도 SK텔레시스 재편과 연계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 자산 효율화 실시 등을 통해 2015년 유상증자 이후 매년 기업가치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SKC의 실적상승은 주가가 증명했다. 2015년 말 SKC의 주가는 3만 3000원 이었으나 최근에는 16만 원대로 400% 가까이 상승했다. SKC는 지난 2분기 매출 8,272억 원에 영업이익 1,350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부실자료 제출에 대해서도 SK 측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2015년 2월 삼일회계법인의 경영진단 평가 결과, ‘SKC가 SK텔레시스에 700억 원대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그 미래가치는 750억 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SKC 이사회는 이외에도 SK텔레시스 부도처리 시 예상되는 협력업체 연쇄 피해와 대량 실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상증자를 통한 회생’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 같은 대기업 계열사가 문 닫을 경우 그룹 전체의 신뢰도에도 엄청난 타격을 받아 다른 계열사들이 금융권과 거래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자회사 부도는 모회사 주식이 거래정지까지 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으로 정상적인 경영진 이라면 회사를 살리는 것이 당연한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폐업에 따른 실직사태 등 막대한 손해를 막고 기업을 회생시킨 SK텔레시스 유상증자 사례는 오히려 성공적인 경영판단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2012년의 유상증자를 문제 삼은 것도 논란거리다. 애초 검찰은 당시 지주사 자율책임경영단 단장이던 조 의장이 SK텔레시스 경영진단을 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하지만 공판 과정에서 경영진단 관련 자료가 증거로 나왔다. 검찰은 “경영진단은 했으나 그 과정에 부실 또는 허위가 있었다”며 기존의 주장을 번복했다.

검찰이 조 의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한 사건을 두고 법조계에서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회사가 이익을 본 상태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사례는 찾기 힘들다”며 “(기업가의) 무리한 투자가 손해로 이어져도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많을 정도로 무리한 기소가 많다”고 말했다.

회사 손해 본 투자해도 대부분 무죄

일례로 이석채 전 KT 회장은 다른 기업 주식의 고가매입 등으로 KT에 103억 원의 손실을 끼쳐 배임 혐의로 기소됐으나 2015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경영상 판단’에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도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하베스트 오퍼레이션’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5500억 원을 낭비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2020년 12월 대법원은 강 전 사장의 혐의에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최근 대기업 경영진을 둘러싼 배임죄 재판 중, 조 의장의 사례와 가장 유사한 판례는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의 유상증자 배임 혐의 관련 판례다. 2004년 신 회장은 그룹 정책본부에 인터넷전문은행 사업 준비를 지시했다. 롯데 그룹 정책본부는 점포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특성상 현금자동입출금기(이하 ATM)가 필수적이라 보고 2008년 ATM 제조·유통 업체인 피에스넷(이하 롯데피에스넷)을 인수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이 늦어지자 별다른 매출이 없던 롯데피에스넷은 2010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롯데피에스넷은 회생을 위해 2012~2015년 유상증자에 나섰다. 당시 코리아 세븐·롯데닷컴·롯데정보통신 등 롯데그룹 3개 계열사가 유상증자에 340억 원 상당의 금액을 지원했다. 이 유상증자를 이유로 검찰은 2016년 신 회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신 회장의 지시가 아니라면 롯데 계열사들이 자본잠식에 빠진 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할 리가 없다는 것.

2017년 1심에서 법원은 신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경영 판단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롯데그룹이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이라는 사업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가 그룹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2018년 2심과 2019년 최종심에서도 재판부는 원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신 회장과 조 의장 사건 모두 그룹 내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해 유상증자를 해 배임 혐의를 받게 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결과다. 롯데 그룹의 유상증자로 회생을 시도했던 롯데피에스넷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2019년 10월 코리아 세븐에 합병됐다. 반면 SK텔레시스는 회생에 성공했다.
상법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회사의 손해가 없어도 배임죄 기소가 가능할 정도로 배임의 적용범위는 매우 넓다”며 “경영진이 회사의 자금을 이용해 투자·기업회생에 나설 경우 대부분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정도”라 밝혔다. 최 교수는 “사법부에서도 대부분 (배임죄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기소되더라도 무죄로 판결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임죄, 사실상 폐지해야”

배임의 무죄율은 일반 범죄 무죄율에 비해 5배 가량 높았다. 형사정책연구원이 대법원 통계를 분석해 제공하는 ‘범죄와 형사사법 통계정보’에 따르면 2018년 1심에서 횡령·배임 혐의로 선고한 사건은 총 5267건이었고, 이 중 무죄율은 5.8%(306건)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기소된 범죄(약 73만 건)의 무죄율은 0.79%(5731건)에 그쳤다.

대법원도 ‘이현령 비현령’식 배임죄 기소 남용을 막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2004년 대한보증보험 경영진의 배임죄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기업가 정신’을 처음 언급했다.

대한보증보험 경영진은 1993년~1996년 한보철강·한세산업·삼미종합특수강 등 9개 기업에 500억 원 가량의 지급보증을 섰다. 이후 9개 기업이 모두 부도를 내며 대한보증보험은 손해를 입게 됐다. 이에 검찰은 2000년 대한보증보험의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기업 경영은 원천적으로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며 “경영자가 선의를 갖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도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를 묻고자 하면 이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켜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판결문을 통해 배임과 경영 판단을 구분하는 5가지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 △계열사들의 공동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지 △특정인 또는 특정 회사의 이익만 위한 것은 아닌지 △지원 대상 계열사의 선정 및 규모 등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된 것인지 △지원행위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시행된 것인지 △지원하는 계열사가 위험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객관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를 각각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가이드라인처럼) 배임죄 혐의 적용을 위한 확실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미국의 판례법의 ‘경영판단원칙’을 들었다. 경영판단원칙은 회사 경영진이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의 약칭. 사회·경제적인 지위 등에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다했다면 회사의 손해를 끼쳐도 이를 법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교수는 “한국도 경영판단원칙과 같은 정확한 원칙을 도입해 배임죄 기소 및 처벌을 합리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배임을 형사 처벌이 아닌 민사상 손해 배상으로 다스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윤승영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죄의 요건을 법으로 구체적으로 정하기 어렵다 보니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일삼게 된다”며 “배임을 모호한 형사법으로 다스리는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집단소송·주주대표소송 등 민사적 방식으로 구제하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동아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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