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대통령실’ ‘文 사저’ 콕 찍은 집시법 개정안 들여다보니…

법조계 “‘악성집회’ 개념 모호… 법률 기초 원리에 어긋나”

  •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2-06-08 17: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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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8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도로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이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6월 8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도로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이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시끄럽게 떠들고 때려 부수는 집회만 있는 건 아닌데….”

    6월 7일 만난 김별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부 조직부장은 최근 경찰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날 공공운수노조는 대통령 집무실과 마주보고 있는 전쟁기념관 앞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이 용산으로 옮겨간 대통령 집무실을 관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고 100m 이내 집회 금지통고 조치를 유지하고 있는 탓에 길 건너편에서, 별도의 사전 신고가 필요 없는 기자회견을 택한 것이다. 김 부장은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를 일괄적으로 막는 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법원, 대통령 집무실 인근 ‘행진’ 허용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5월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동아DB]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5월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동아DB]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 3항은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 등 시설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 옥외집회·시위를 금지한다.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거주하는 경남 양산시 사저와 윤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집무실은 이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당초 경찰은 집시법상 대통령 관저와 용산 집무실을 같은 것으로 보고 집무실 인근 100m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5월 11일 한 시민단체가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던 청와대 외곽 담장으로부터 100m 이내 집회·시위가 제한됐지만 이는 대통령 관저 인근의 집회·시위 제한에 따른 반사적이고 부수적인 효과였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장시간 특정 장소에 머무는 집회·시위가 아닌 ‘행진’에 국한된 판결이지만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집단적 의사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경찰은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이 포함된다고 보고 집회 금지통고 조치를 사실상 유지해 왔다. 경찰청 관계자는 “‘옥외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연달아 인용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집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본안 소송 결과에 따라 집회 관련 방침이 또 다시 바뀔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윤 대통령이 근무하는 집무실 인근과 문 전 대통령 사저가 집회로 몸살을 앓자 여야는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를 각각 집회·시위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4월 20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100m 이내 집회 금지 구역에 대통령 집무실을 명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5월 16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집회 및 시위 금지 장소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포함해 인근 주민들의 피해를 예방한다”는 것이 요지다. 6월 3일 한병도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집회·시위 참가자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와 반복된 악의적 표현”을 하는 이른바 ‘악성집회’ 금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 같은 국회의 집시법 개정안 발의는 최근 법원의 판결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권고와 대조적이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판결로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7건의 행진이 가능해졌다. 올해 1월 인권위도 “100m 이내 집회가 제한된 외교공관 앞이라 해도 1인 시위는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집시법 개정 납득하기 어려워”

    여야의 집시법 개정안에 대해 법조계에선 “집회·시위의 자유를 축소할 여지가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준우 변호사는 “대통령 집무실을 (집시법 개정안에) 명시하더라도 예외조항이 필요하다”면서 “구자근 의원 안은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를 무조건 금지하겠다는 건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2018년 헌법재판소가 국회 인근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처럼 필요한 경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평 변호사는 “악성집회라고 하면 무엇을 ‘악성’이라고 볼 것인지 모호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집시법 개정안은) 법률의 내용은 명확해야 한다는 기초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이어 “입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반성이다. 현대에 와서는 특수한 사건이나 사람에 관한 입법이 어느 정도 용인되고 있으나, 전직 대통령 사저 앞에 시위가 많다고 해서 특정 인물을 위한 법 개정이 곧장 이뤄지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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