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루나 사태는 전형적 금융 사기
피해자 피해 회복 사실상 불가능
금융사기, 펀드에서 암호화폐로
금융 · 증권범죄합수단 부활했지만…
라임자산운용 사건 등 금융범죄 피해자 구제를 맡아온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대표변호사. [홍태식 객원기자]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대표변호사의 발언이다. 김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손꼽히는 증권·금융범죄 전문가. 자본시장법을 연구해 투자 사기 피해자 법률 지원에 앞장서 왔다. 2011년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한 LIG건설 기업어음 불완전판매 사건을 시작으로 △이숨투자자문 유사수신 사건 △대신·우리AMC 자산관리 사건 등에서 피해자 측을 대리해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김 변호사를 “증권·금융 사기 범죄에 관해서는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라고 평했다.
최근에는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사건 피해자를 대리해 대신증권에 불완전판매에 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100% 투자금 반환 판결을 이끌어냈다. 증권·금융범죄 피해자들의 투자금을 전부 반환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최초다.
그랬던 그도 피해자 대리를 망설이는 사건이 있다. 암호화폐 테라USD(UST)-루나(LUNA) 사건이다. 테라-루나는 테라폼랩스가 만든 암호화폐다. 테라는 1개당 1달러, 가격 변동이 없는 암호화폐를 표방했다. 그 수단이 된 것이 루나다. 테라의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루나로 테라를 사들여 가격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올해 5월, 이 논리가 깨지며 루나와 테라의 가격은 끝없이 추락했다. 1달러짜리 암호화폐는 순식간에 개당 0.1원이 됐다. 피해액은 최소 5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테라-루나는 금융 사기 전형
7월 26일 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그가 테라 -루나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던 참이었다. “테라 -루나 피해자 대리는 고민 중”이라고 그는 말했다. 테라-루나 사건은 그가 기존에 맡은 사기 사건과 성격이 다른 것일까. 궁금증을 풀고자 8월 3일 서울 강남구에서 그를 만났다.테라-루나 사건은 사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암호화폐라는 위장복을 입은 사기 사건이라고 본다. 원금을 보장해 주고 감당할 수 없는 고수익의 이자를 약속했다. 전형적인 폰지사기 형태다.”
테라-루나의 어떤 부분이 폰지사기와 가깝나.
“앵커프로토콜이 폰지사기와 닮았다.”
앵커프로토콜은 테라-루나의 예금 시스템이다. 일반 화폐 예금처럼 테라를 일정 기간 묶어두면 이자를 주는 방식이다. 이는 다른 암호화폐들도 종종 도입하는 시스템이다. 통상 ‘디파이(De-Fi)’라고 한다.
다른 암호화폐도 비슷한 디파이 시스템이 있는데….
“다른 디파이 시스템은 대출이자가 예금이자보다 비싸다. 앵커프로토콜은 예대마진이 맞지 않는다. 테라-루나는 예금이자가 연 20%인데, 대출이자가 12%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암호화폐라는 위장을 벗기면 비슷한 사기 사건이 많다.”
비슷한 사건이라면?
“비현실적 수익률로 투자자를 모으고 이를 통해 투자금 돌려막기를 한 사건은 수도 없이 많다. 조희팔 사건, IDS홀딩스 사건 등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조희팔 사건은 조희팔 씨가 가짜 회사를 만들어 의료기기에 투자해 고수익을 낸다면서 피해자를 속인 일이다. 의료기기 투자는 거짓말이었다. 조씨는 투자자금 중 일부를 다른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이라고 내놓으며 안심시켰다. 이후 일정 금액이 모이자 2008년 10월 회사 전산망을 파괴한 뒤 도주했다. IDS홀딩스도 방식은 비슷하다. 피해자들은 외환거래인 FX마진거래에 투자한다고 속아 돈을 내놓았다. 외환거래는 거짓말이었고, 돈이 모이자 피의자들은 이 돈을 들고 사라졌다. 두 사건 모두 피해액만 1조 원이 넘는 대형 사기 사건이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테라폼랩스는 ‘루나’ ‘테라’를 발행한 블록체인 기업이다. [야후 파이낸스]
“권 대표가 피해자들이 본 피해를 복구하려 노력하고, 현실적 대안을 내놓는다면 실패다. 그 이전에는 사기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의 특수성을 몰라서 사기라는 오해가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루나-테라가 금융 사기와 닮은 점은 이 부분만이 아니다”
손배소 사실상 불가능
또 어떤 부분이 금융 사기와 닮았나.“테라-루나에는 미러프로토콜이라는 디파이 시스템이 있는데, 과거 국내에서 유행한 해외 선물옵션 사기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미러프로토콜은 일종의 가상 주식시장 거래소다. 테슬라, 애플 등 미국의 주가를 추종하는 암호화폐를 만들 수 있다. 주가에 따라 암호화폐의 가격이 움직이는 방식이지만 실제 주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김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해외 선물옵션을 이용한 사기꾼들은 해외 선물거래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가짜 사이트를 만든다. 이곳에서 선물거래에 투자할 수 있다고 피해자를 속인다. 피해자는 이 가짜 사이트를 믿고 투자금을 내준다. 사기꾼들은 다른 피해자들의 투자금을 수익금이라고 속이고 나눠준다. 이후 일정 금액이 모이면 사이트를 닫아버리고 사라진다. 그는 “미국의 주식시장을 해외 선물거래라고 생각하고, 미러프로토콜을 가짜 사이트로 보면 테라-루나와 유사하다. 암호화폐는 외피일 뿐 내부는 전형적 금융 사기 수법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권 대표를 대상으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없다.
“법이 달라서다. 국내에선 집단 손배소가 불가능하다. 피해자들이 모여 권 대표를 형사고발할 수는 있겠으나 손배소는 어렵다.”
이유를 설명해 달라
“국내법상 증권범죄만 집단소송을 할 수 있다. 테라-루나 피해자가 집단 소송을 하려면 일단 해당 사건이 증권을 이용한 금융 사기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설사 입증한다 해도 소송에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증권관련집단소송법’에 따르면 증권집단소송을 하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는 데만 3~5년이 걸린다.”
허가에만 3~5년이 소요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허가도 재판을 거쳐야 한다. 1심에서 허가가 나더라도 상대가 항소하면 재판이 이어진다. 결국 증권집단소송을 하려면 총 6심을 거쳐야 한다. 테라-루나의 경우 사건의 유사성도 인정받아야 하니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집단소송을 시작하는 일에만 10년가량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대응 방식 따라가라
초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을 지낸 문찬석 법무법인 선능 대표변호사는 2020년 11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대형 금융 사기 수사는 속도전”이라고 말했다. 수사와 재판이 길어질수록, 범죄 수익 은닉은 쉬워지기 때문이다. 긴 재판 끝에 사기 범죄자가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는 어렵다. 범죄자들이 그사이 범죄 수익을 숨겨두기 때문이다.김 변호사는 “수사는 어렵고, 잡혀도 범죄 수익금 추징이 어렵기에 금융사기가 끊이질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피해자들의 피해 복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테라-루나의 경우 암호화폐라 추징이 더 어렵다. 해외 거래소에 암호화폐를 넣어뒀다면 수사기관이 이를 들여다볼 근거도 없다. 여타 다른 금융사기 사건에 비해 피해 복구가 훨씬 어려운 사건이다.”
김 변호사는 이 대목에서 “이 사건의 경우 권 대표를 형사처벌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 혹은 이 사건 관계자들을 사기죄로 기소하려면 피해 금액이 명확해야 한다. 암호화폐는 가격이 계속 변동한다. 피해자들의 피해 금액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 현재 검찰 수사도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안다.”
미국 증권거래소(SEC)는 권 대표를 소환 조사했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수사가 불가능한 것인가.
“어렵다. SEC는 암호화폐도 증권과 유사한 성격이 있다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조사 결과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미등록 증권’을 판매했다며 형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반면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에는 이 같은 권한이 없다. 조사 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만 가능하다.”
SEC는 2020년 10월 암호화폐 ‘리플(XRP)’의 개발사 리플랩스를 고소했다. XRP가 증권과 유사한 기능이 있는데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금감원이 지금이라도 조사해 수사 의뢰를 한다면.
“일단 지금도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이미 검찰 수사가 시작돼 버렸다. 암호화폐의 증권성을 조사할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수사를 빠르게 진행할 방법은 없나?
“금융감독원과 검찰이 공조해 테라-루나의 증권성을 입증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 SEC가 테라-루나에 대해 하는 조치를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법이 달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한국 자본시장법은 미국 자본시장법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적용해 본 경험이 적을 뿐 조항은 같다.”
합수단 폐지는 최악 패착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5월 17일 취임사에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 부활을 시사했다. 이틀 뒤인 19일 합수단이 부활했다. [뉴스1]
합수단이 부활했으니 수사가 빨리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지금의 합수단은 과거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리던 합수단과 다르다.”
과거 합수단의 수사력을 쉽게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인가.
“아무리 유능한 검사나 변호사도 생전 처음 금융범죄 사건을 맡으면 제 실력을 못 낸다. 뇌수술을 일반의에게 맡길 수 없는 것처럼, 금융범죄는 전문 인력에게 맡겨야 한다. 과거 합수단은 오랜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쌓았다. 부활한 합수단은 처음부터 다시 전문성을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합수단을 폐지하며 금융범죄 수사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합수단 폐지로 금융범죄 수사가 모두 멈췄다. 라임 사건 수사도 제자리걸음이다.”
실제로 합수단이 사라지자 금융범죄 수사 실적이 크게 줄었다. 대검찰청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접수·처리 현황 통계를 보면 2016년 검찰은 관련 사건 81건을 접수해 77건을 처리했다. 2017년에도 81건을 접수, 모두 처리했고 2019년에는 56건을 접수 33건을 마무리했다. 합수단이 사라진 2020년에는 58건을 접수해 8건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김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금융범죄 수사 및 관련 제도 정비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모펀드, 암호화폐 등 새롭게 등장한 금융상품에는 반드시 이를 악용한 범죄가 따라온다”며 “이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경제범죄의 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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