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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 본능’ 되찾은 이재명의 딜레마

野 결집에 사법 리스크 방어까지… 족쇄 될라

  • 김성곤 이데일리 기자 skzero@edaily.co.kr

‘사이다 본능’ 되찾은 이재명의 딜레마

  • ● 정중동 행보서 尹 정부 겨누며 공격수 자처
    ● 尹 해외순방 후 지지율 급락하며 지형 변화
    ● 巨野 독주 비판 커지면 외연 확장 걸림돌
    ● 내년 중반 이후 외연 확대 전략 구사 전망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8일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 참석해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8일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 참석해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도 귀가 있고, 판단할 지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들어도 ‘바이든’이라고 한 게 맞지 않나. 욕했지 않느냐.”(9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전남 무안 현장 최고위원회,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관련)

“온갖 국가 사정기관이 충성경쟁 하듯 전 정부와 전직 대통령 공격에 나서고 있다.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10월 2일 페이스북,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관련한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조사 통보 논란 관련)

“극단적 친일행위로 대일 굴욕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외교참사에 이은 국방참사다.”(10월 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 한미일 동해 연합 군사훈련 관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이다 본능’을 되찾았다. 최근 주요 현안에 대한 이 대표의 워딩은 보다 선명하고 거칠어졌다.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의지를 내비치면서 그동안 협치와 민생에 무게를 뒀던 것과 묘하게 대비된다. 퇴로 없이 ‘직진 앞으로’를 외치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이재명다움’을 되찾았다.



사이다 화법은 ‘정치인 이재명’의 상징이었다. 재선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6년 탄핵정국의 최대 수혜자가 되면서 무명의 정치인에서 전국적 지명도를 갖춘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이후 이 대표는 정치적 수직상승을 경험했다. 경기지사를 거쳐 20대 대선에 도전한 뒤 현 민주당 대표로서 차기 대선에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딜레마도 없지 않다. 이 대표는 거대 야당의 수장이면서 유력 차기주자다. 민주당 안팎에서 경쟁자가 없을 정도다. 과거와 비교하면 정치적 위상은 상전벽해 수준이다. 제1야당 대표의 지나친 언행은 때로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사이다 화법은 지지층의 열광에도 외연 확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20대 대선에서 ‘포스트 문재인’의 위상을 다졌지만 “이재명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강력한 비토층의 존재도 확인했다. 게다가 이 대표는 크고 작은 사법 리스크로 여전히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하다. 강력한 지지층의 존재와 더불어 외연 확장을 통한 중도층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사이다 본능을 되찾은 이 대표의 고민을 짚어봤다.

민생정당 강조하다 선명성으로 급선회, 왜?

이 대표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이는 인천 계양을 출마 논란은 물론 지방선거 참패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로키 행보에 치중하면서 민감한 현안에도 침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대장동·백현동 사업 특혜의혹 △변호사비 대납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본인의 사법 리스크에도 직접 언급을 자제했다. 외려 영수회담을 제안하거나 유능한 민생정당을 강조했다. 국회 첫 데뷔무대였던 정기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도 ‘민생’에 주력하면서 직접적인 여당 공격은 자제했다. 이는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3고(高)로 상징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정쟁에 매몰되기보다는 야당 대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게 차기 대선가도에 플러스가 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여야의 극한대치가 지속되면서 민생에 무게를 두고 정쟁을 최소화한다는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작심한 이 대표는 연일 윤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각을 세우면서 선명성을 강화했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분명한 팩트에도 대통령실과 집권 여당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 여론에 따른 것이었다.

여의도 정치무대는 말과 글의 전쟁터다. 다만 직설화법으로 여야 전투를 주도하는 것은 주로 주요 정당의 대변인이나 저격수로 활동하는 의원들이다. 다선 중진이나 지도자급 정치인들의 워딩은 상대적으로 비유적이고 은유적이다. 이 대표는 달랐다. 방어보다는 오히려 공격, 촌철살인의 비유보다는 특유의 직설화법을 선택해왔다.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을 시작으로 경기지사 선거와 20대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을 거쳐 본선에서 국민 모두가 경험한 일이다.

정치 지형의 변화도 이 대표의 변신을 도왔다. 이른바 ‘비속어’ 파문을 비롯한 해외순방 논란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취임덕’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해외순방 이후 지지율 상승 효과는 윤 대통령에게는 예외였다. 민심 악화에 이 대표 역시 보조를 맞췄다. 전장의 최전선에서 말을 달리며 전투를 이끌어 나갔다. 지지층 결집은 물론 사법 리스크 방어라는 다목적 포석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이 대표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본인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조여 오는 상황에서 현 정권을 날카롭게 공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만일 검찰의 칼날이 없었다면 이 대표는 중도층 흡수를 위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면서 “이 대표의 스탠스 변화는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지”라고 분석했다.

중도층 외면할라

이 대표의 태도 변화는 민주당의 강경책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에도 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 야당이다. ‘87년 체제’ 이후 여소야대 정국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현 민주당의 파워는 그야말로 막강 그 자체다.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논란과 관련해 국회 본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게 단적인 사례다. 거대 야당으로서의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노란봉투법 △기초연금확대법 △출산보육수당확대법 등 민주당이 내세운 정기국회 7대 입법과제 역시 마음만 먹는다면 힘의 우위를 활용해 처리가 가능하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야 한다”고 강공 드라이브를 예고하기도 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는 전쟁터다. 민주당은 당의 화력을 총동원해서 현 정부를 집중 난타했다.

문제는 민주당의 지나친 강경 기조가 거대 야당의 독주라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이 대표의 차기 행보에도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민주당은 20대 대선 패배 이후 여론의 반대에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위장탈당’ 꼼수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후폭풍이 거세지면서 6·1 지방선거 참패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재선 성남시장은 물론 경기지사 재임 시절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이미지를 발판으로 전국적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정치 1번지 여의도 경력은 전무했지만 확실한 성과를 바탕으로 정치적 득점에 차근차근 성공했다. 특히 이 대표가 기초·광역단체장 시절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각종 복지정책은 언론의 집중 조명으로 전국적인 이슈몰이에도 성공하고 일부 시도에서는 벤치마킹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다.

다만 제1야당 대표의 역할은 다르다. 현 정부에 대한 견제 말고는 뚜렷한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 이 상황에서 특유의 사이다 화법은 자칫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 대선 당시 ‘젤렌스키 초보 대통령’ 발언 논란에 이어 최근 ‘친일국방’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장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한일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김대중 대통령이 토착 왜구냐. 일본 자위대와 해상훈련을 허락한 노무현 대통령은 친일 대통령이냐”라고 반문하면서 “누구는 마치 죽창 들고 일본 자위대 쳐부수러 갈 기세”라고 비판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정치권의 불문율을 고려하면 이 대표의 언급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겸임교수는 이 대표의 최근 입장 변화와 관련,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도 “한미일 연합 군사훈련에 대한 친일 프레임 비판은 지지층 결집에 성공할지 모르나 차기 대선에서 확장성과 관련해 두고두고 정치적 족쇄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대중의 길 vs 이회창의 길

1997년 4월 24일 사진기자의 날 기념식장에서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오른쪽부터)가 만나 환담하고 있다. [동아DB]

1997년 4월 24일 사진기자의 날 기념식장에서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오른쪽부터)가 만나 환담하고 있다. [동아DB]

이 대표로서는 진퇴양난이다. 지지층을 선택하면 외연 확장이 쉽지 않다. 중도층을 선택하면 지지층이 등을 돌릴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사실상 제로섬 게임이다. 한국 정치권 최대 난제인 ‘집토끼·산토끼 논쟁’이다. 지지층과 중도층을 동시에 만족시킬 솔로몬의 해법은 불가능하다. 역대 대선을 보면 지지층의 비판에도 과감한 외연 확대 전략으로 승리를 거둔 사례는 물론 지지층 최대 결집으로 무난한 패배를 기록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평생 ‘빨갱이’라는 낙인에 시달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뉴DJ플랜이라는 집권 전략을 선보였다. 민주화 과정에서 불순한 사상에 물든 과격한 정치인이 아니라 따뜻하고 유능한 정치인으로 이미지 쇄신을 꾀한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중도 확장 전략은 수평적 정권교체의 바탕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와의 연대를 가능케 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1987년, 1992년 3번의 대선 패배에도 굴하지 않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대선 패배 이후 이미지 교체에 실패한 대표 사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이 전 총재는 막강 스펙의 소유자로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더 이상 배출할 수 없는 최고의 후보였다. 하지만 1997년, 2002년, 2007년 3번의 대선에서 모두 실패했다. 특히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의 경우 제3지대 후보였던 이인제·정몽준 후보와의 연대에 실패하면서 대권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MB 정부 레임덕이 극심했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석패한 것 역시 지나치게 친노·친문이라는 지지층에만 매몰된 탓이었다.

이 대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거칠고 과격하다’는 정치적 이미지에 크고 작은 도덕성 논란이 여전하다. 결정적으로 사법 리스크 해소 없이는 차기 대선 전망도 불투명하다. 이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에도 민주당이 뚜렷한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이 대표가 위기 탈출을 위해 지지층의 손을 잡을 것인지, 먼 미래를 위해 외연 확대에 무게를 둘 것인지는 여전히 숙제다. 이 대표는 일단 차기 총선까지 민주당의 선장이다. 민심의 1차적인 판단은 22대 총선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여야가 사실상 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의 격렬한 대치를 이어가는 현 상황에서 이 대표가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대치 국면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다”면서도 “총선을 앞두고는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내년 중반 이후 중도층이나 MZ세대의 지지 확대를 위해 외연 확대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이 대표의 정치적 생명은 22대 총선 결과가 좌우하게 될 것”이라면서 “기준은 140석이다. 2020년 21대 총선과 같은 180석은 어렵다”고 밝혔다.

신동아 11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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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22년 11월호

김성곤 이데일리 기자 skz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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