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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구

홍위병 이끈 35/45세대 홍위병 딛고 新중국 주도

‘세기의 세대전쟁’ 중국 문화대혁명 50주년

  • 모종혁 | 중국 전문 칼럼니스트

홍위병 이끈 35/45세대 홍위병 딛고 新중국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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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5세대의 적극 협력

1966년 5월 16일 마오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문혁 발동을 결정하고 ‘5·16 통지’를 내려보냈다. 그 뒤 두 달여 만에 전국 학교에서 홍위병이 조직됐다. 학내에서 ‘35/45세대’가 적극 협력했기 때문이다. 35/45세대는 1935년에서 1945년 사이에 태어나 붙은 이름이다.

이들은 사회주의 정권 수립 전후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소년선봉대에 참여했다. 중·고교에선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으로 활동했다. 1957년 반우파운동, 1963년 사청운동 등도 경험했다. 정식으로 사회주의 교육을 받고 대중투쟁을 거친 첫 세대였다. 문혁이 발발했을 때는 대학 졸업을 코앞에 뒀거나 각급 기관의 초급 간부로 있었다.

베이징 홍위병들을 지도한 조반파(造反派)의 5대 리더 중 4명이 35/45세대였다. 5대 영수는 베이징대 강사 녜위안츠(聶元梓·1921년생), 칭화(淸華)대 4학년 콰이다푸(蒯大富·1945년생), 베이징사대 조교 탄허우란(譚厚蘭·1937년생), 베이징항공대 4학년 한아이징(韓愛晶·1945년생), 베이징지질대 석사생 왕다빈(王大賓·1944년생)을 가리킨다. 5월 25일 녜위안츠는 철학과 강사 및 조교 6명과 공동명의로 베이징대 총장과 부총장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를 시발로 대륙 전역은 대자보 홍수로 뒤덮였다.

녜위안츠는 베이징대 내 청년 학자들을 대표해서 대학 지도부를 공격했다. 2006년 베이징대 역사학과 왕위안저우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문혁 전 베이징대 노년 학자와 청년 학자의 갈등과 긴장이 심각했다. 사회주의 정권 수립 때 대만으로 건너간 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대륙에 남았다. 1956년 공산당은 이들에 대한 포섭과 입당을 결정했다. 또한 교육부는 1961년 ‘대학교육 60조’를 발표해, 이들의 법적 지위를 교수나 부교수로 보장했다.





복음 같은 ‘5·16 통지’

홍위병 이끈 35/45세대 홍위병 딛고 新중국 주도

환호하는 홍위병들에게 손을 흔드는 마오쩌둥.

1958년 교육부가 대학 입학정원을 크게 늘렸기에 교원을 증원해야 했다. 때문에 갓 석사학위를 취득한 청년 학자들을 대거 강사로 임용했다. 문제는 이들 강사가 오늘날의 비정규직처럼 신분이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통 사회주의 교육을 받아 대부분 공산당원이었고, 일부는 학내 당 간부직을 꿰차고 있었다.

녜위안츠가 대표적이다. 그는 17세에 입당해 관료로 일했으나 정식 대학교육은 이수하지 못했다. 1963년 베이징대에 온 뒤 경제학과 부학과장을 거쳐 철학과 당지부 서기를 맡고 있었지만, 이 때문에 강사 신분에서 못 벗어나고 있었다. 탄허우란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베이징대 정치교육학과를 졸업했지만, 문혁이 터졌을 때는 베이징사대 조교 2년차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에겐 우수한 학력과 걸출한 학술 성과로 무장한 40~60대 중·노년 학자들이 넘어설 수 없는 벽이나 다름없었다. 노년 학자들은 교육부의 신진 교수 양성 방침에 따라 청년 학자들이 일정한 연구 성과를 내도록 쉴 새 없이 다그쳤다. 청년학자들은 연구와 강의뿐 아니라 학생 관리, 당직 업무, 대중운동 지도 등을 모두 떠맡았다. 평소 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5·16 통지’는 청년 학자들의 숨통을 터주는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통지문에는 “문화대혁명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반당·반사회주의로 나가는 소위 ‘학술권위’의 부르주아적 입장을 철저히 폭로하고, 학술·교육·언론·문화·출판계의 부르주아 반동사상을 철저하게 비판해서 지도권을 빼앗자”고 적혀 있었다. 통지문의 초안은 천보다(陳伯達), 캉성, 장칭 등이 작성했고 마오쩌둥이 최종 수정했다. 마오가 당시 대학 사회의 긴장 양상을 알 리 없었지만 장칭은 달랐다. 그는 오랫동안 선전부서에 근무하면서 청년 학자들과 교류했다.

문혁이 발발하자 20~30대 강사와 조교가 앞장서 노년 학자들을 공격했다. 이들은 노년 학자들의 과거 행적을 물고 늘어지며 반동분자로 몰아세웠다. “건국 이후 교단을 점령해 교육과 연구를 농단했고, 청년 학자들의 연구를 방해하고 강좌 개설을 불허했다”고 성토했다. 왕위안저우 교수는 “마오를 지지하며 문혁을 이끈 조반파의 적극성과 자발성은 당시 사회적 요인에서 기인한다”며 “조반파는 학교 내부에서 일찍부터 존재한 각종 모순을 적극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대학 강사나 조교, 중·고교 청년 교사들은 학생들의 기숙사 생활을 관리하고 당 사상과 이념을 교육하는 지도원(輔導員)이었다. 학생들을 선동하기 쉬웠다. 이에 반해 노년 학자와 중년 교사는 학생들과 거리감이 있었다. 35/45세대의 지도에 가장 열렬히 반응한 학생들은 당·정·군 간부 자녀들이었다. 쑹빈빈처럼 출신성분이 좋은 이들이 홍위병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기도 했다. 훗날 이들 조직을 ‘라오(老)홍위병’이라 부른다. 물론 모든 학생이 35/45세대에게 휘둘린 것은 아니다. 기존 당·정 조직을 옹호하는 홍위병도 적지 않았다.

그 외에도 홍위병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특히 지방에선 서로 전투를 벌일 만큼 갈등이 심각했다. 대표적인 도시가 내륙의 충칭(重慶)이었다. 조반파는 1966년 5월 29일 칭화대 부속중학에서 처음 홍위병을 조직했다. 홍위병 운동은 들불처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7월 충칭에 도래했다. 각급 학교에서 조직된 홍위병들은 학내 권력을 탈취하기 위한 탈권(奪權)투쟁에 들어가 8월 15일 충칭사범대에서 처음 성공했다. 이를 기념해 홍위병들은 연합체 ‘8·15(八十五)’을 결성했다. 이들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기업과 공장을 무대로 한 탈권투쟁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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