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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목표? 메이저리그 남는 것!”

독점 인터뷰 |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

  • 시애틀=이영미 스포츠 전문기자 | riveroflym22@naver.com

“올 시즌 목표? 메이저리그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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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 스스로 내려온 길…후회는 없다”
  • ● “방망이만 믿는다지만, 저도 뛰고 달려야죠”
  • ● 수비훈련 자청…“행복해요”
  • ● “이대호다운 야구 하겠다”
시애틀 매리너스 이대호(34)의 야구 여정은 한 편의 ‘인생극장’이나 다름없다. 이전 소속팀 일본 소프트뱅크의 간절한 구애를 뿌리치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한 그는 메이저리그 초청 선수 신분으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개막전 25인 로스터에 진입했다.

현재 그의 위치는 ‘백업 멤버’. 주전 1루수 애덤 린드를 커버하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야구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 “행복하다”고 되뇌면서. 한국 프로야구와 일본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섰던 이대호. 2016년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후보선수로 살아가는 그의 일상을 좇아본다.



애처가 이대호

“갓난아기가 있다보니 새벽에 자주 깨요, 아기 울음소리에. 그래도 가족과 함께 지내니 든든해요.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며 행복함을 느끼기도 하고.”

이대호는 애처가다. 2009년 12월, 9년 열애 끝에 신혜정 씨와 결혼한 그는 딸 효린 양과 최근에 태어난 아들을 뒀다. 아내가 모유 수유 중이라 새벽에 자주 일어난다는 그는, 쉬는 날(개막 후 딱 하루 쉬었다)이면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고 한다.



얼마 전 팀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이대호. 시애틀 다운타운의 한 클럽을 빌려 파티를 열었는데, 이대호는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돌보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아쉽지 않으냐고 묻자 “전혀요. 그 파티는 제가 안 가도 다른 선수들이 많이 가서 축하해주잖아요. 아내는 매일 혼자 아이들 돌보는데, 제가 시간 있을 때라도 아내의 수고를 덜어줘야죠”라고 ‘쿨’하게 반응한다.

KBO리그와 일본 재팬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해온 이대호. 각 리그에서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꼽힌 그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면서 가장 낮은 곳으로 스스로 걸어 내려왔다. 2월 시애틀 매리너스와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각각 뛸 때 연봉이 차이 나는 계약)을 맺은 후 스프링캠프에서 불꽃 튀는 경쟁 끝에 개막 25인 로스터 진입에 성공한 스토리는 ‘드라마’에 가깝다. 마이너리그 신분이지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로 참가했다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더 어렵다는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제가 25인 로스터에 들어갈 거라고 아무도 안 믿었잖아요. 하지만 저는 자신 있었어요.  자신감 없이 스플릿 계약을 맺으면서까지 여기 왔겠습니까. 로스터에 진입했다고 끝이 아니지만, 올 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시작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좌투수 상대 백업 타자 

이대호는 이번 선택이 야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늘 많은 기대를 받다보니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고 야구를 한 적도 있어요. 신경도 많이 쓰고, 고민도 많이 했죠. 지금은 주변의 반응을 내려놓고 야구하는 걸 팬들이 알아주더라고요. 편안한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것 같아요. 옛날처럼 무조건 잘해라가 아니라 고생한 만큼의 보상이 뒤따르길 바라더라고요. 계속 앞만 보고 질주하다가 브레이크 한 번 걸었는데, 그러고 나서 앞으로 더 나아갈지, 뒤로 퇴보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의 부담이 없는 만큼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시애틀의 주전 1루수는 우(右)투수 전문인 좌(左)타자 애덤 린드다. 우타자 이대호는 애덤 린드의 백업 멤버. 왼손 투수에게 약점을 보이는 애덤 린드를 대신해 좌투수가 선발로 나올 경우 이대호가 선발 출장하기도 한다. 이전까지 늘 팀의 주전이자 중심이며, 대우받으면서 야구를 해온 그에겐 이런 상황이 낯설 수밖에 없다.

“대우받으면서 야구했을 때도 분명 언젠가는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 저는 사람이니까요.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부상을 당하지도 않은 데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걸 뿌리치고 제가 길을 선택해 내려왔어요. 이 선택이 좋은지 나쁜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좌우 놀이’(플래툰 시스템)를 즐기는 스콧 서비스 감독 때문에 이대호가 스트레스를 받는 건 사실이다. 그는 감추지 않았다.

“선발로 나가도 주로 8번을 치니까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많아야 세 번 정도예요. 6, 7회가 되면 상대 선발투수가 교체되게 마련인데, 그때 오른손 투수가 올라오면 저는 애덤 린드와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벤치로 내려가는 거죠. 그러다보니 기회가 주어졌을 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요. 이걸 이겨내야 합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면서 적응해야죠.”

서비스 감독은 올 시즌이 메이저리그 감독 데뷔다. 지난 시즌까지는 LA 에인절스 부단장을 맡으며 프런트에서 일했다. 마이크 소시아 LA 에인절스 감독과 갈등을 빚다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으로 자리를 옮긴 제리 디포토가 부임하자마자 계약기간이 1년 남은 로이드 매클랜든 감독을 경질하고 2주 뒤 새 감독을 임명했는데 그가 바로 에인절스 부단장이던 서비스였다. 마이너리그 감독 경험조차 없는 사람이 메이저리그 감독을 맡는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대호가 서비스 감독과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을 때 서비스 감독은 “너한테 바라는 건 도루도, 수비도 아닌 방망이”라고 말했다.

“번트 사인 같은 거 안 낼 테니까 방망이에만 집중해달라더군요.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제가 다이빙 캐치를 하며 수비를 하거나 주루 플레이를 해내면 더 놀라워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들 ‘이대호는 수비 안 된다, 발이 느리다, 뛰는 게 안 된다’라고 하잖아요. 저도 당연히 뛰고 달려야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처지인데 어떻게 방망이만 휘두를 수 있겠어요. 가만 생각해보면 재미있기도 해요. 공 잘 잡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제 모습을 떠올려보면요. 이렇게 미친 듯이 뛰어다닌 게 또 언제였나 싶어요.”

매사에 긍정적인 마인드로 다가가는 이대호. 수비력을 키우려고 오프시즌 동안 10㎏ 넘게 감량했다. 그래도 노력으로 잘 안 되는 게 있다. 영어가 특히 그렇다.

“언어가 안 되니까 선수들과 간단히 인사하는 것 외에 깊이 있는 대화를 못 나눠 답답해요. 다른 선수들이 웃고 떠드는데 그냥 멍하니 있을 때 기분은 느껴보지 않고선 모를 겁니다. 마치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에 처음 들어간 느낌? 아니, 전학 가서 새 친구들 만나는 느낌? 아니다, 그럴 땐 말이라도 통하니까(웃음)…. 여기선 제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먼저 다가오지 않아요.”

이대호는 애리조나 캠프에 입성했을 때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선수 모두에게 먼저 가서 인사를 했다. 국제대회를 통해 안면이 있는 이와쿠마 히사시, 아오키 노리치카 등 일본 선수들과 먼저 안면을 튼 후 로빈슨 카노, 넬슨 페레즈, 펠릭스 에르난데스 등 팀의 주축 선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조선의 4번타자’로 불리는 이대호가 나이 어린 선수들에게 허리를 굽혀 손을 내미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데뷔 5타수 만에 ‘대포’

4년 전 롯데 자이언츠에서 FA(자유계약신분)가 됐을 때 일본이 아닌 메이저리그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혹시 그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남아 있진 않을까.

“그때는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때보다 성숙해졌고, 야구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봤잖아요. 그래서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면서도 심적인 여유는 있어요. 만약 제가 (추)신수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이곳에 왔더라면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요. 진짜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여기 와 보니까 어린 나이에 외국에 와서 성공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더라고요.”

이대호는 4월 9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시즌 홈 개막전에 8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 팀이 0-2로 뒤진 5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중월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한 잊지 못할 순간이다. 메이저리그 3경기 5타수 만에 데뷔 홈런을 날린 이대호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홈런을 치고도 웃지 못했다. 그날 경기에서 팀이 패했기 때문이다.

이대호의 ‘대포’를 직접 확인한 서비스 감독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서비스 감독은 “(이대호 홈런볼은) 아주 멀리 날아갔다. 공을 눌러 부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국 기자에게 구단 관계자가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을 정도로 홈 개막전에 터진 이대호의 홈런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대호는 홈런을 친 후 “이제부턴 이대호다운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 커리어는 베테랑이지만 야구장, 문화, 선수들 모두가 새롭고 처음이다 보니 마음이 붕 떠 있었던 것 같아요. 왠지 어수선했어요. 집중하려 해도 집중이 잘 안 될 정도로. 이제는 제 야구를 해야죠. 첫 안타가 홈런으로 나온 만큼, 잡생각을 버리고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내 야구 하겠다”

이대호는 홈런을 친 후 그라운드를 돌고 더그아웃으로 향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 나와 축하해준 로빈슨 카노와 넬슨 크루즈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두 선수는 우리 팀의 핵심 멤버예요. 가장 영향력 있는 베테랑들이죠. 그런 이들이 저를 많이 챙겨주고, 제 홈런을 마치 자기들이 친 것처럼 기뻐해주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어요. 원래 그런 건 이전 팀들에서 제가 하던 역할이거든요(웃음). 그런데 그런 것을 제가 받고 있으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경기에서 지는 바람에 시끌벅적한 축하 세리머니는 없었어도 선수들이 조용히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네는 걸 보고 내가 여기 오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어요.”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은 물론 소프트뱅크에서 친하게 지낸 선수들에게서도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불펜투수로 활약 중인 오승환도 문자로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 겨우 4게임 치렀네요(4월 9일 현재). 앞으로 158게임이나 남았네. 진짜 많이 남았죠? 팀에 도움이 되는 게 중요해요. 홈런 하나 쳤다고 만족할 것도 아니고.”

이대호는 자신이 친 홈런볼을 구단 직원의 도움으로 돌려받았다. 홈런볼을 주운 관객에게 자신의 사인볼과 경기장 티켓을 선물했다는 그는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볼을 집안의 가보로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했다.



서른넷 루키

이대호의 라커는 카일 시거와 네이단 칸스 사이에 있는데, 이대호 라커의 양쪽이 모두 비어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베테랑 선수나 고액 연봉자에게 2개의 라커를 내주는 관례가 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서른네 살 ‘루키’에게 시애틀 구단이 2개의 라커를 배정해준 것인지 궁금했다. 이대호가 ‘비밀’을 털어놓았다.

“저한테 그렇게 해줄 리가 없잖아요. 칸스와 시거한테 두 개의 라커를 내줬는데 그들이 라커 두 개를 다 쓰지 않는다면서 제게 나눠 쓰자고 하더라고요. 칸스는 투수라 짐이 많지 않아요. 야수는 방망이 등 장비가 많습니다. 그래서 칸스와 시거의 빈 라커를 저도 함께 쓰고 있어요.”

한국과 일본에서 특급 선수로 꼽힌 이대호가 라커를 나눠 쓰는 상황이 흥미롭다. 이런 상황을 즐겁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마인드가 새삼 돋보였다.  

이대호는 홈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선수단 훈련 시간 전에 매니 악타 코치(과거 추신수가 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감독이었다)와 함께 수비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구단의 지시였는지, 개인의 부탁으로 훈련을 하게 된 것인지 물으니 이대호는 “제가 부탁한 거예요. 여기선 팀에서 먼저 이런저런 훈련하라고 절대 얘기 안 해요. 수비 훈련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제가 악타 코치께 훈련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대호가 홈런을 친 다음 날, 시애틀 매리너스 전담기자들과 이대호의 홈런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시애틀타임스’ 맷 콜킨 기자는 이대호의 홈런으로 시애틀 팬들이 그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홈런이 나온 순간 그가 굉장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정의 변화 없이 베이스를 돌며 홈으로 들어오는 모습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매리너스에서 뛰는지 알 수 있었거든요. 솔직히 이대호가 25인 로스터에 들었을 때만 해도 저를 포함해 많은 이가 그의 활약을 의심한 게 사실입니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그는 늘 조용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툰 부분이 있었는데요. 어제 홈런으로 시애틀 담당 기자들도 굉장히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콜킨 기자는 이대호의 앞날이 장밋빛으로만 물들어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여전히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사실을 잘 알죠. 그렇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이 팀에서 어떻게 적응해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를 좀 더 지켜보자는 쪽입니다.”



추신수 “소름이 돋았다”

섀넌 드레이어는 2003년부터 시애틀 매리너스와 인연을 맺은 매리너스 전담 라디오 방송 리포터다. 오랫동안 매리너스에서 일하며 수많은 선수를 취재해온 만큼 이대호에 대해서도 분석적으로 접근했다.   

“초기 스프링캠프 때와는 달라졌지만 이대호 선수의 발동작(레그킥)이 조금 걱정됩니다. 타격하는 타이밍에서 발을 너무 높이 드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조금 내리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호의 수비 장면은 인상적이었어요. 큰 체격에 비해 수비 동작이 매우 날렵했습니다.”

시애틀 전담기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매리너스의 주전 1루수는 이대호가 아닌 애덤 린드라는 사실이다.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면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는 추신수와의 오랜 우정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메이저리그 현지 기자들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부산 수영초등학교에서 함께 야구를 시작한 두 친구의 만화 같은 스토리는 두 사람이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만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대호도 기자들의 이런 관심을 몸으로 느꼈다.

“신수가 인터뷰를 통해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저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던데, 사실 저는 더했어요. 초등학교 때 진짜 친했거든요. 저는 부모님이 안 계셨고, 신수 덕분에 야구를 시작한 후 합숙소 생활을 하며 함께한 추억이 정말 많아요. 경남고와 부산고 선수로 만났을 때는 독고탁과 설까치를 연상케 했어요. 신수는 발이 빨라 3번 치고, 저는 4번 치고. 라이벌 팀으로 경기에서 계속 만나다보니 조금씩 어색해지더라고요. 프로 무대도 저는 한국이고, 신수는 미국이고. 그러면서 조금씩 멀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후 이대호는 추신수의 존재와 가치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다. 1루수 백업 멤버인 그로선 한 팀의 주전 우익수로 활약하고, 엄청난 몸값을 받는 추신수와 자신을 ‘하늘과 땅’으로 비교했다.  

“그동안 신수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미국 가서 고생할 때 더 챙겨주고 연락도 하고 했으면 좋았을걸. 제가 신수를 잘 못 챙긴 게 많이 아쉽고 미안해요. 신수가 자리 잡기 전까지 제가 형편이 좀 더 나았잖아요. 빈말이 아니라 친구가 메이저리그가 인정하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정말 근사해 보입니다. 이제 잘 지내야죠. 우리가 보통 인연은 아니잖아요.”



경남고 vs 부산고

이대호와 추신수는 둘 다 투수 출신이다. 추신수가 부산고 에이스, 이대호는 경남고 에이스로 활약했다. 각각 선발투수로 나와 추신수가 이대호를 상대로 홈런을 친 적도 있고, 추신수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 이대호가 홈런을 친 순간도 있다. 투수로 성공할 줄 알았던 그들은 프로 입단 후 타자로 전향한다. 이대호는 롯데 자이언츠에서, 추신수는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이대호는 롯데 입단 초기 부상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으나 2004년 주전 자리를 꿰찼고, 그 후로는 승승장구했다. 반면에 추신수는 빅리그에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마이너리그에서 머물러야 했다. 이후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되면서 추신수의 앞날에 빛이 들었고, 끈질긴 인내와 노력 덕분에 지금의 추신수가 됐다.

이대호가 추신수의 친정팀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게 된 건 기가 막힐 정도의 인연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다음은 추신수의 얘기다.

“대호랑 인연은 인연인가 봐요. 애리조나에서 열린 시범경기 기간에 우리 팀 홈구장인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처음 만나 뜨겁게 포옹할 때 정말로 소름이 돋았어요. 제가 시애틀에 있을 때 스즈키 이치로의 백업 멤버였고, 대호는 지금 아담 린드의 백업 멤버잖아요. 출발 과정도 비슷한 셈이죠. 최고로 평가받던 선수가 모든 걸 내려놓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잖아요. 대호는 그런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긴 사람입니다. 원래 야구를 잘하는 선수라 자리만 잡으면 분명 자신의 몫 이상을 해낼 거라고 믿어요. 대호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대호는 저녁 7시에 경기가 시작하는데도 아침 일찍 출근한다. 왜 이렇게 일찍 나오냐고 묻자 “신수 덕분”이라면서 웃는다.

“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비결이 남보다 일찍 야구장에 나와 개인 훈련을 소화하는 루틴을 만든 덕분이라고 들었어요. 뒤늦게 메이저리그에 뛰어든 저로선 신수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잖아요. 신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립서비스 좀 해주지, 하하”

4월 5일 텍사스 레인저스 홈구장 글로브라이프볼파크에서 열린 텍사스 대 시애틀 매리너스의 시즌 개막전. 이대호와 추신수가 시범경기가 아닌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추신수는 주전, 이대호는 벤치 신세.

이대호는 이 경기에서 7회 대타로 나가 삼진아웃을 당했다. 경기 후 추신수는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를 떠올리며 “대호가 뭐라도 치고 나가길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론 치지 못하기를 바랐다. 대호가 안타를 치면 동점 또는 역전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추신수는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데뷔 타석이 7회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상황에서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나중에 추신수의 얘기를 전해 들은 이대호는 “참, 솔직한 놈이네. 그래도 ‘립서비스’는 좀 해주지”라고 툴툴거리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메이저리그 무대에 친구가 있다는 건 이대호에게 든든한 힘이 된다. 이대호도 잘 안다. 오른쪽 종아리 염좌로 부상자 명단에 오른 추신수에게 가장 먼저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이대호에게 올 시즌 목표를 물은 적이 있다. 답이 간단명료했다.

“무슨 목표를 세울 수 있겠어요. 시즌 마칠 때까지 다른 데 안 가고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는 거죠. 올 시즌은 그게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이대호의 절박한 심정이 이 말에 모두 담겨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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