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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위작에 친필 서명? 갤러리H 통해 ‘작가확인서’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이우환 위작에 친필 서명? 갤러리H 통해 ‘작가확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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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위작 판명 13점 중 1점에 ‘작가확인서’ 존재
  • ● “갤러리H에 맡겨 작가확인서 받았다”(그림 구매자)
  • ● “李 화백 6월 말 귀국…그때 물어봐달라”(李 측 변호사)
  • ● “위작 입증에 문제없다”(검찰)
경찰이 “모두 가짜”라고 발표한 13점의 이우환 그림 중 1점에 이른바 ‘작가확인서’가 발급돼 있다는 사실이 ‘신동아’ 취재 결과 확인됐다. 작가확인서에는 ‘Lee Ufan’이라는 서명이 적혀 있다. 이 서명이 이 화백이 직접 쓴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 화백은 그간 “내가 본 그림 중 가짜는 없다”고 주장해왔기에 ‘위작에 붙은 작가확인서’는 향후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6월 7일 서울 답십리 화상(畵商) 현모(66) 씨를 이우환 위작을 제조 및 유통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공소장에 기록된 현씨의 위작 제조·유통 과정은 신동아가 2015년 12월호에 보도한 ‘이우환 화백 위작 의혹 문서…일산에서 그린 뒤 남양주에서 노후화?’의 내용과 일치한다. 그는 2012년 2월부터 10월까지 서양화를 전공한 ‘젊은 화가’(40세)와 함께 이 화백의 1970년대 작품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를 모사한 그림을 부산의 이모 씨에게 전달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씨는 일본을 왕래하며 골동품을 판매하는 상인이다.

현씨는 이씨에게 넘긴 그림이 모두 50여 점이라고 진술했는데, 검찰은 이번에 우선 최종 구매자가 파악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등을 통해 위작으로 확인된 3점에 대해서만 혐의를 적용했다. 문제의 작가확인서는 이 3점 중 1점에 발급된 것이다. 나머지 2점에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가 발급한 진품감정서가 있다는 사실 또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우환 同鄕人 소장품’

3점의 그림은 ‘점으로부터 790147’(이하 ①), ‘선으로부터 790138’(이하 ②), ‘점으로부터 790185’(이하 ③)다. ‘신동아’가 단독 입수한 감정서 및 작가확인서에 따르면 ①과 ②는 감정협회에 나란히 접수돼 같은 날짜(2012년 7월 20일)로 진품감정서를 발급받았다. 40호 크기의 ③은 2013년 9월 27일자로 작가확인서가 발급된 것으로 표기돼 있다.



현씨에 대한 공소장과 위 서류를 종합해보면 최종 구매자 A씨는 2012년 8월 초 진품감정서가 있는 ①과 ②를 9억1000만 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초 ③을 4억1500만 원에 구입하고, 9개월 후인 이듬해 9월 작가확인서를 받았다. A씨는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갤러리H에 ③번 그림을 가져다줬고, 2~3일 후 작가확인서와 함께 그림을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A씨에게 그림을 판 사람은 서울 인사동 K갤러리 대표 김모 씨. 경찰이 이우환 위작 유통의 핵심 중 한 명으로 보고 있는 인물이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K갤러리를 압수수색할 때 이 갤러리에서 예닐곱 점의 이우환 그림을 확보했는데, 이 그림들도 ‘13점의 가짜 그림’에 포함돼 있다. 다음은 A씨와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 어떤 경위로 위작을 구입하게 됐나.

“예전부터 이 화백을 좋아해 그의 그림을 소장하는 것이 오랜 소망이었다. 2012년 8월 김씨가 부산의 화상이라는 또 다른 김씨와 함께 그림 2점(①과 ②)을 들고 찾아왔다. 일본에서 ‘함안애’라는 경남 함안 출신들의 친목회에 이 화백과 함께 나간다는 재일교포가 소장한 그림이라고 소개했다(이우환 화백은 경남 함안 출신). 그 재일교포의 자녀들이 그림에 관심이 없어 처분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불확실한 감정서 26장”

▼ ③번 그림은 진품감정서가 없는데도 구매했다.



“김씨(K갤러리 대표)가 ‘감정협회가 더는 이우환 작품에 대한 감정서를 발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구입한 2점과 캔버스 등이 동일해 의심하지 않았다. 또한 김씨가 ‘갤러리H에 부탁해 작가가 친필로 서명한 작가확인서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약속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이듬해 9월에야 김씨가 ‘작가 선생님이 들어오실 예정’이라며 ‘차량을 보내줄 테니 그림을 실어 갤러리H로 보내라’고 연락해왔다. 그가 보낸 차량으로 ③번 그림을 갤러리H에 가져다줬다. 2~3일 후 김씨가 직접 그림과 작가확인서를 가져 왔다.”

A씨의 이 같은 증언은 그간 미술계가 밝혀온 이우환 진위 논란 그림에 대한 감정 실태와 맥락이 일치한다. 감정협회는 2012년 들어 진위가 의심스러운 그림에 대한 감정 의뢰가 빈발하자 의심되는 그림을 한데 모아뒀다가 이 화백이 귀국할 때마다 해당 그림을 보여준 뒤 감정서를 발급했다. 감정협회 관계자는 “당시 이 화백을 만나는 장소는 갤러리H였다”고 밝혔다. 이후 감정협회는 가짜라고 생각하는데 이 화백은 자신의 그림이 맞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감정협회는 2013년 2월 8일자 감정서를 마지막으로 이우환 작품에 대한 감정을 중단한다.

이 화백이 친필 서명을 한 작가확인서를 발급한 것은 그 무렵부터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화백은 지난 2월 2일 자신의 법률대리인 최순용 변호사를 통해 낸 보도자료에서 “지난 수년 동안 작가가 보고 확인해 준 작품은 수십 점 정도로 기억되며, 선의로 그때그때 보고 확인해준 것이기 때문에 해당 작품에 대해 별도의 리스트를 작성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 해외 유명 미술품 경매회사 홈페이지의 경매 작품 소개 코너에 올라간 그의 그림 중에는 ‘작가가 진짜라고 서명한 증명서를 가진 작품(This work is accompanied by a certificate of authenticity signed by the artist)’이라는 설명이 붙은 것들이 보인다.


“작가확인서도 수사 중”

그렇다면 그림 ①과 ②는 이 화백의 확인을 거쳐 진품감정서가 발급된 것일까. 이들 감정서에는 ‘출처가 작가가 확인한 작품과 동일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감정협회 관계자는 이 문구의 의미에 대해 “①과 ②는 이 화백이 직접 보고 진짜라고 한 작품들을 가져온 사람이 동일한 곳에서 구해왔다고 한 그림이라 진품감정서를 내보낸 것”이라며 “이 화백이 해당 그림들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감정서 발급 이후에 이 화백에게 e메일로 해당 그림 이미지를 보내준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감정협회는 스스로 진품임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진품감정서를 발급해 A씨와 같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데 일조한 셈이다. 감정협회 관계자는 “진위가 불확실한데도 진품감정서를 내보낸 그림이 26점”이라며 “이후 수사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우환 화백은 수사기관에 의해 위작으로 발표된 ③번 그림을 직접 보고도 자신의 그림이 맞다고 친필 서명을 한 것일까, 아니면 이 그림을 본 적이 없는 걸까. ③번 그림에 붙은 작가확인서는 위조된 것일까, 혹은 수사기관의 판단과 달리 ③번 그림은 진품일까.

신동아는 최순용 변호사를 통해 이 화백의 생각을 들어보려 했지만, 최 변호사는 “이 화백이 현재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인 데다 언론 접촉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6월 말 귀국해 경찰이 압수한 그림들을 직접 볼 예정이니 그 이후 취재를 요청해달라”고 했다.

갤러리H 고위 관계자는 작가확인서 발급 경위에 대한 ‘신동아’ 취재 요청에 “부탁을 받고(이 화백과 해당 그림을) 연결해줬을 뿐”이라며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검찰 관계자는 “③번 그림에 붙은 작가확인서는 현재 수사 중인 사안에 포함된다”며 “해당 그림이 위작임을 입증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검찰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우환 위작 수사, 어디까지 왔나

◈ ‘가짜인 것 알고 팔았나’ 증명이 관건
영화 ‘검사외전’(2015)에는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이 영수증에 적힌 서명을 영사기로 확대해 벽에 비추고 그대로 따라 쓰기를 반복하며 현직 검사 사인을 손에 익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우환 위작을 제작·유통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현모 씨 역시 이런 방식으로 이우환 화백의 필체를 연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가짜 그림을 그렸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과 별개로, 해당 그림이 가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위작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검찰 관계자가 ‘신동아’에 “우리는 완벽하게 위작임을 입증했다”고 밝힐 정도로 이우환 위작 수사팀은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수사팀이 확보한 13점은 대체 어떤 ‘컨디션’인 것일까.

영사기로 확대해 사인 연습
위작 입증의 시작은 ‘기준작’에 있다. 경찰은 1990년대에 기증된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작품 등 진품이 확실한 6점을 확보해 기준으로 삼았다. 서울시경 지능범죄수사대 측은 “경찰이 압수한 것들은 1978년, 1979년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보다 면밀한 입증을 위해 1973년에서 1980년 작품까지 기준작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전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과학감정 결과는 이렇다.

‘기준작 6점의 물감 원소 성분 및 캔버스 제작 기법은 서로 유사하지만 증거물에서는 기준작과 유사한 작품이 없음.’

이 화백은 신동아 2015년 8월호 인터뷰에서 “당시(1970년대 후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캔버스와 물감이 다를 수 있다”고 밝혔는데, 6점의 기준작에서는 캔버스와 물감이 다른 작품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기준작 물감은 납(Pb) 성분 비율이 높았는데 13점의 증거물은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의뢰로 13점 중 12점의 그림에 대해 과학감정을 실시한 최명윤 전 명지대 교수(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도 국과수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최 전 교수는 5월 28일 명지대에서 열린 한국미술과학회 2016 춘계학술대회에서 “물감도, 캔버스를 제작하는 방식도 4가지로 나뉘었다”고 밝혔다. 이는 현씨 외에도 가짜 이우환 그림을 제작하는 조직이 두세 개 더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경찰 역시 “현씨 외의 다른 위조범들도 수사 중이다”고 밝힌다.

최 전 교수는 “캔버스 뒷면에 갈색 칠을 하는 등 인위적인 노후화 흔적이 보인다는 점은 12점 모두 동일하다”고도 했다. 최 전 교수에 따르면 일부 그림에 사용된 캔버스 천은 2000년 이후에야 국내에 들어온 수입 원단이라고 한다.

현씨는 자신의 그림에는 몇 가지 특장점이 있다며 13점의 그림 중 자신이 그린 몇 점의 그림을 ‘정확하게’ 골라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씨를 도와 가짜 그림을 그린 ‘젊은 화가’도 같은 그림들을 골라냈고 △이들 그림의 물감 원소 및 캔버스 제작 방식이 동일하며 △경찰이 ‘젊은 화가’의 작업실에서 압수한 안료, 석채 등의 원소도 현씨가 골라낸 그림의 그것과 동일한 패턴으로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추가 기소”
검찰은 이번에 현씨만 구속기소했다. 공소장에는 현씨 외에도 현씨의 동업자인 ‘젊은 화가’, 현씨에게 일본 ‘후나오카’사 캔버스와 일본에서 유통되는 ‘스기나무’ 캔버스 틀을 공급하고 위작을 전달받은 부산의 이씨와 그의 아들, 인사동 K갤러리 대표 김모 씨,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로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또 다른 김모 씨 등이 등장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도 모두 수사 대상이고, 조만간 추가 기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팀은 지난해 여름 국내 굴지의 모 갤러리가 K갤러리와 수십억 원대 자금을 거래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기소 대상이 된 위작 3점은 1점당 4억4100만 원꼴로 팔렸다. 50여 점으로 알려진 현씨의 위작이 모두 이 가격대에 팔려나갔다고 가정하면 위작 거래 규모는 최소 220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그가 이씨에게 가짜 그림을 건네고 받은 돈은 2억4500만 원(그중 6500만 원을 ‘젊은 화가’에게 건넸다). 위작 유통으로 거액을 거머쥔 당사자는 따로 있다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는 “A씨 외에도 추가로 위작이 판매된 사실을 확인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수사팀 관계자는 “앞으로는 위작 유통에 가담한 사람들이 가짜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판매했는지 증명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한편 검찰 관계자는 진품으로 속아서 “위작을 구매한 추가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며 “수사팀에 그림의 진위를 가려달라고 요청하면 면밀한 감정에 나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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