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그 시간들’은 단지 빼앗긴 것만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선생은 또 하나의 ‘대학’을 발견했다. 대학이 가르쳐야 할 크고 깊은 학문의 뿌리는 단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파란만장한 사연으로 잡혀온 수형자들의 신산스러운 삶 속에 녹아 있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보이지 않는 감옥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에서 굳이 추위와 더위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추위보다는 더위가 ‘덜 서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추위는 옆 사람의 체온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오지만, 더위는 옆 사람을 ‘증오하는 마음’을 가져오기에 여름 감방 생활이 훨씬 힘들다는 고백에 코끝이 시큰해졌다.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일관되게 감지되는 흐름은 ‘중심성’으로부터의 탈주다. 중심의 눈치를 보지 않는 변방, 중심의 평가에 주눅 들지 않는 변방의 저항적 상상력이야말로 그의 삶을 지탱해온 에너지다. 늘 유행을 따르고 대세에 순응하는 삶에서는 변방의 저항적 상상력이 싹틀 여지가 없다. 우선 내가 선 자리가 변방임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탈주는 시작된다. 그는 비전향 장기수의 좌우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해답을 얻었다. 30, 40년 동안 전향하지 않고 신념을 지켜온 장기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
이는 공부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임을 강조하는 선생의 세계관과 일치한다. 뛰어난 이론을 ‘머리’로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이론을 ‘가슴 깊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더 어렵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 지식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더 어려운 여행은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이다. 가슴 깊이 간직한 배움의 감동을 발로 뛰는 실천으로 이루는 것. 그것이야말로 공부의 완성이다. 좌경적인 이론이란 새로운 삶을 꿈꾸는 자의 끝없는 자유이며, 우경적인 실천이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 아닐까. 나는 ‘인간의 본성은 과연 보수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선생의 대답이 특히 흥미로웠다.
“나는 라면 끓일 때 계란을 깨 넣으면서 끓는 물 속에서 흰자가 노른자를 에워싸는 걸 보고 감동했습니다. 노른자를 지키려는 충직함이 감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윌슨의 책을 읽고 나서 실망했습니다. 티눈 속 DNA가 자기의 영양분인 노른자를 놓지 않으려는 집착이었습니다. 티눈 속의 DNA가 자기의 서바이벌을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 먼저 닭을 만들고 그 닭으로 하여금 수많은 계란을 낳게 한다는 것입니다.”
존재에서 관계로
저자는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는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자연표류’ 이론을 소개한다. 마투라나는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한다. 생명체 자체가 자기 생성의 주체라고 본다. 생명을 내추럴 드리프트(natural drift, 자연표류)의 주체로 보는 것이다. DNA의 확정된 계획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과 만나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생명이라는 논리다. 마투라나에게 생명이란 ‘방랑하는 예술가’다. 자기를 창조하는 능력, 자기를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힘이야말로 예술가의 에너지다.현실이 유전자 결정론이라면, 이상은 방랑하는 예술가다. 자기 위로가 결국 자신의 현 상태를 지키기 위한 보수적인 힘이라면, 자기비판은 현재의 자신을 깨치고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하려는 이상적인 힘이다. “냉정한 자기비판은 일견 비정한 듯 보이지만 자기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서바이벌의 가능성을 훨씬 높여”주기에 그렇다. 나는 오직 생존만을 위해 뛰어가는 눈먼 DNA 같은 삶보다는 조금 힘들더라도, 때로는 지치더라도 ‘방랑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우리 모두는 유전자의 단순 조합물이 아니니까.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아직 실현하지 못한 꿈과 낭만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으니까.
우리는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감옥에서 죄수를 번호로 부르듯, 사회에서도 사람을 ‘어떤 조직의 어떤 지위’에 있는 존재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화가 이응노 선생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존재’보다 ‘관계’가 소중해지는 순간의 감동을 이야기한다. 이응노 선생은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도 사람들을 수번(囚番)으로 부르는 법이 없었다. 한 죄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이름은 왜요? 그냥 번호 부르세요. 쪽팔리게….”
죄수가 어쩔 수 없어 ‘응일이’라고 고백했더니, 이응노 선생은 “한 일자를 쓰느냐”고 물었다. “뉘 집 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 이 말을 듣고, 그날 밤 응일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객지를 떠돌며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동안, 자신이 큰아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제야 누이동생의 시계를 훔친 사실이 떠오르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느껴지더란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만으로,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다. 이렇듯 인간을 숫자나 고객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의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나의 중심은 내 안에
한국사와 세계사,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종횡무진하는 저자의 지적 모험을 이 짧은 글로 다 훑어볼 수 없지만, 나는 특히 이 장면이 가슴 찡했다. 공자와 제자들이 오랫동안 굶주려 길 위에서 일어날 기력도 없을 때였다. 그 와중에 조용히 거문고를 뜯고 앉은 공자에게 자로가 따졌다.“스승님,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배고픔에 지친 제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공자는 지극히 짧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 소인은 궁하면 흐트러지는 법이지.”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군자는 원래 궁하다니. 어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자신의 올곧은 뜻을 지키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도, 출세하기도 어려우니. 공자와 제자들은 14년을 유랑하며 고생했지만, 궁함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군자의 길이었고, 공자는 그 좁은 길을 끝내 지켰다.
삶의 중심이 내 안에 있는 사람은 바깥세상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향한 질투심 탓에 괴로울 때도 있고, ‘내 삶의 방향이 틀린 것일까’ 의심할 때도 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삶의 중심이 내 안에 있다면 이런 ‘분심(憤心)’은 능히 이겨낼 수 있다. 나에게 인문학은 내 삶의 중심을 내 안에서 찾는 길이다. 다른 곳에서 인정받으려 하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역경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 안의 소중한 중심을 찾아가는 길이 내게는 인문학이다. 변방의 자리에서도,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의 끄트머리 감방에서도 신영복 선생을 지탱해준 건 ‘나의 중심이 저 세상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