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목받는 외시 12회 ‘5인방’
- 대선 캠프 성격 ‘반기문 재단’ 준비 중
- 정계 개편 후 레이스 본격화…‘반사모’ 몰려온다?
반 총장이 외교관 생활만 했기 때문에 인맥 풀이 제한적일 거라고 예단해선 안 된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도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반기문 대망론’이 회자되는 요즘 반 총장 측근을 자임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는 반 총장의 인맥 중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군은 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박 대통령을 설득해 ‘살아 있는 권력’의 지원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다. 반 총장에게 눈길을 돌리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 그것이다.
朴-潘 핫라인
‘박근혜의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모으는 인물은 ‘반기문의 남자’라고도 불리는 윤여철 청와대 의전비서관이다. 윤 비서관은 외교부 의전장으로 있다 지난 2월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1급(실장) 자리이긴 하지만,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외교부 의전장으로 가는 일은 있어도 반대의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의 인사는 외교가에서 화제였다. 박 대통령과 반 총장 사이에 ‘인적 핫라인’이 개통됐다는 말도 나왔다.윤 비서관은 2006년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된 뒤 외교부에서 유엔으로 파견됐다. 유엔 사무국 의전장으로 반 총장 일정을 도맡아 관리하다가, 지난해 10월 외교부로 복귀했다. 외교부 북미국 서기관이던 2001년에도 뉴욕 유엔본부에 파견돼 당시 유엔 총회의장 비서실장이던 반 총장을 보좌했다.
윤 비서관은 유엔 의전장 시절인 2014년 한 언론인이 발간한 반기문 총장 관련 책에 ‘추천의 글’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반 총장을 “다섯 가지가 없는, 영어로는 ‘~less’한 사람이고, 세 가지가 풍부한(full)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먼저 유엔 사무총장은 정말 영양가 없는,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thankless) 자리이지만 반 총장은 사명감으로 영양가 없는 일을 열심히 수행한다고 했다. 또한 사심이 없는(self-less), 지치지 않는(tire-less), 겁 없는(fear-less), 가차 없는(relent-less)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풍부한 세 가지로는 ‘인정(sympathy)’ ‘에너지(energy)’ ‘새로운 구상(vision and ideas)을 꼽았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두 번째 정무수석을 지낸 박준우 세종연구소 이사장도 정무수석으로 발탁됐을 때 화제가 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인 그에게 생소한 정무 업무를 맡긴 건 ‘반기문 대선 후보 대비용’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박 이사장은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낼 때 특별보좌관을 맡은 외교 라인 ‘반기문 사단’의 핵심 멤버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도 충북 음성이 고향인 반 총장과 동향(충북 제천)이다. 충청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청명회’에도 나란히 가입했다. 두 사람은 연배(이 실장이 74세, 반 총장이 72세)가 비슷한 데다, 공직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인연이 많은 걸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이 실장을 발탁한 배경에도 ‘차기 구도’가 묻어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대통령의 외곽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박정희새마을연구원 원장)도 반 총장을 수차례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핫라인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다만 최 부총장은 기자에게 “반 총장과는 새마을운동 세계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자주 만난 것”이라며 “나는 새마을운동 세계화를 위해 김용 세계은행(WB) 총재와도 자주 만났는데, 왜 그 대목엔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냐”고 웃으며 말한 적이 있다.
‘친반(親潘) 그룹’ 꿈틀
대권주자로서의 반 총장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군은 전·현직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정치세력을 확장하는 데 원동력이 되고, 대선 후보 경선이 치러지면 현장에서 뛸 수 있다. 당장 가용한 실용적 인맥이다.현역 정치인 중 친박계 일부 의원이 대선 국면에서 ‘친반(親반기문) 그룹’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친박계 중에서도 TK(대구·경북) 좌장인 최경환 의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가에서 반 총장을 기점으로 하는 ‘충청-TK 연대론’이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박 대통령의 ‘오더’가 떨어지면 곧바로 ‘반기문 킹메이커’를 자임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당권=최경환, 대권=반기문’ 역할분담 얘기가 돌고 있다.
친박계에서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은 홍문종 의원이다. 홍 의원은 2015년에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전제로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 조합을 꺼낸 바 있다. 5월 25일 반 총장의 방한을 앞두곤 “반기문 총장은 새누리당에 변수가 아니라 상수(常數)”라고도 했다. 홍 의원은 반 총장과 하버드 케네디스쿨 동문이기도 하다. 케네디스쿨엔 새누리당의 김광림 정책위의장, 박진 전 의원, 이달곤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도 다녔다.
충청 출신 여당 정치인들은 ‘충청 대망론’에 기대를 걸면서 반 총장 주변에 집결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이어 ‘충청포럼’ 2대 회장을 맡은 윤상현 의원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친박계 핵심인 윤 의원은 복당될 경우 가장 먼저 ‘반기문 대망론’을 실현하기 위한 충청 세력 결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충청포럼엔 정·관계, 언론계, 법조계 유력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반 총장과 생전에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성완종 전 회장의 동생 성일종 의원의 역할도 주목된다. 그는 “여야가 모두 모시려 한 반 총장에 대해선 ‘국민 대망론’이 있다. ‘충청 대망론’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친박계의 맏형인 충남 천안 출신 8선(選) 서청원 의원은 막후에서 친박 세력과 충청 인맥을 한 울타리로 끌어모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반 총장 방한 당시 제주도로 달려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인연 등으로 MB계를 반기문 우호 세력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반 총장과 단둘이 만난 뒤 “비밀 얘기를 나눴다”고 한 충청의 맹주 김종필 전 총리(충남 부여)는 반 총장을 대전을 포함한 충청권 전체의 대표주자로 인식시키는 상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외교관 대통령’ 소망
지금은 국민의당으로 가 있는 권노갑 전 고문과 박지원 의원 등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세력도 대선 국면에서 합종연횡이 일어나면 반 총장 편에 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당이 둘로 쪼개지기 전인 2014년에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던 권노갑 상임고문은 “반기문 총장의 측근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내게 와서 (반 총장이)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 쓰겠다(좋겠다)고 하기에, 그만한 훌륭한 분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당시 박지원 의원도 “권 고문이 말한 ‘측근’은 실제로 반기문 총장과 가까운 분이고 저도 잘 아는 분”이라고 거들었다. 박 의원은 국민의당에서 차기 대선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반 총장의 친정인 외교부 출신들은 수적으로도 가장 많지만 결속력 또한 단단하다. 그들은 ‘외교관 대통령’을 소망하며 각계 인맥을 묶어 총력 지원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반 총장이 유엔에 진출할 때 청와대에 근무한 한 충청권 인사는 “반 총장의 핵심 측근인 김숙 전 유엔대표부 대사가 이미 팀을 꾸려 활동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김 전 대사는 반 총장이 5월 25일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대선 출마를 강하게 시사하는 발언을 할 때도 현장에 있었다. 당시 김 전 대사와 함께 반 총장을 수행한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 오준 유엔대표부 대사, 강경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사무차장보는 확실한 ‘반기문 사람’으로 봐도 무방하다. 김숙, 김원수, 오준, 박준우와 함께 ‘외시 12회 5인방’으로 불리는 박인국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전 유엔대표부 대사)도 반 총장과 가깝다.
원로 외교관인 이정빈 전 외교부 장관은 DJ 정부 때인 2000년 반 총장이 차관으로 들어오자 “내가 반 차관을 데리고 일할 수 있다니 참 복이 많은 장관”이라고 말할 만큼 신뢰가 두텁다. 두 사람은 나중에 미국과의 관계가 뒤틀어진 책임을 지고 장·차관 동반 사퇴한 인연도 있다.
전직 총리 등 멘토 그룹
외교관 출신들이 반 총장 출마에 대비해 외연을 확장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반 총장의 외교부 후배들이 힘을 모아 ‘반기문 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반 총장 퇴임 후 국내에서의 의전과 경호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반기문 재단이 대선 캠프 형태를 띨 수도 있다. DJ는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1994년 정계 복귀할 때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만들어 대권 재도전의 발판으로 삼은 바 있다.5월 28일 반 총장과 만찬회동을 한 고건·노신영·이현재·한승수 전 총리와 신경식 헌정회장,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 등은 언제든 그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줄 있는 ‘원로 자문그룹’으로 꼽힌다. 특히 노 전 총리는 현직에 있을 때 항상 반 총장을 곁에 둔 ‘멘토’로 알려진다. 1980년대 중반 총리로 취임하자 반 총장은 총리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한 전 총리는 유엔총회 의장을 지낼 때 반 총장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바 있다.
반기문 인맥 중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적지 않다. 도영심 유엔 세계관광기구 ‘스텝(ST-EP)재단’ 이사장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에 국회의장실 의전비서관, 국회 외무위원회 전문위원,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도 이사장은 원로 정치인들에겐 잘 알려진 ‘마당발’이다. 경북 안동에서 3선(選) 의원을 하고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를 지낸 권정달 전 의원이 남편이다. 권 전 의원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핵심 멤버였다.
도 이사장은 반 총장의 5월 방한 때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도록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 총장의 한국 방문 일정을 총괄했다는 말도 들린다. 반 총장은 지난 3월 도 이사장이 유엔본부에서 ‘모든 여성과 아이들’이란 캠페인을 개최했을 때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반 총장을 오랫동안 취재해온 한 언론인은 “반 총장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기자 관리”라며 “그와 가까운 언론인이 적지 않고 그들은 대부분 각 언론사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고 전했다. 5월 25일 제주도에서 열린 관훈포럼에 참석한 중견 기자들 중 상당수가 반 총장과 인연이 있는 걸로 알려진다. 반 총장이 내년에 귀국해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다면 언론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될 때 언론 논조가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