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직구로 세상의 민낯 까발리다
- 잘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덜컥 냈다. 소설 쓰기에 파묻혀 살았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으면서 지금, 이곳의 허위와 위선을 벗겨냈다.
그는 연세대 공대를 졸업했다. 건설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신문기자로 11년 일했다.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 작가상,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댓글부대’로 제주 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이 싫어서’ ‘호모 도미난스’ ‘뤼미에르 피플’도 냈다.
또래 작가 중 가장 뜨겁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편한 얘기조차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쓴다. 잘 읽힌다. 상징을 억제한 도구적 문장 덕분일 것이다. 착한 척, 올바른 척하는 행태의 저변을 망치로 까부순다. 심리의 밑바닥을 꿰뚫으면서 지금, 이곳의 이야기를 쓴다. 6월 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각에서 그를 만났다.
▼ 스스로를 저널리스트면서 소설가라고 규정하던데요.
“아직도 반쯤은 기자라고 생각해요.”
▼ 앞으로 어떤 책을 낼 건가요.
“우리가 사는 당대를 다룰 겁니다. ‘2016년 오늘, 이곳’의 이야기요. 논픽션도 쓸 거고요.”
▼ 인생을 대표할 만한 작품에서 다룰 주제로 생각해놓은 게 있습니까.
“당대의 문제를 한 작품에 압축해 넣어보고 싶습니다. ‘레미제라블’ 같은….”
▼ 북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200자 원고지 1700매 분량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무너진 상황이 배경이에요.”
돌진하고 저항하는 청년
그가 지금껏 세상에 내놓은 소설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청년이다. ‘안드로메다급으로 노력해도 삶이 버겁다는 청년’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돌진하고 저항한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가 한국을 뜬 이유는 통쾌하다.“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 미국이 싫다는 미국 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 사람한테는 ‘개념 있다’며 고개 끄덕일 사람 꽤 되지 않나?”
청년 세대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계나’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홍익대를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업한 ‘계나’의 독백은 아프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도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 등단작 ‘표백’에서는 완성된 세계에서 무기력하게 사는 젊은이들이 등장합니다. 울분, 저항이 무의미한 상황에서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죽음으로 내달리는데요.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냉소로 읽혔습니다.
“그렇게 썼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를 뿐이죠.”
‘댓글부대’는 팩트인 듯, 팩트 아닌, 팩트 같은 소설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모티프 구실을 했다. 국정원도 까고, 진보도 까고, 보수도 깐다. ‘모두 까기’다. 여론 조작의 폐해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인간의 사유가 얼마나 얄팍한지 드러낸다. 애국하는 척, 올바른 척하는 것의 위선을 발가벗긴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구성과 문체는 대중적이지 않다.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엇갈린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그의 소설은 이렇듯 ‘어떻게 살지’ ‘왜 사는지’에 주목한다.
박범신, 최인호, 황석영
▼ ‘댓글부대’는 논픽션처럼 읽히더군요.“책이 나온 후 기업에서 댓글 조작 업무를 맡았던 분이…아니,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SNS 등을 통해 신뢰도, 인지도를 높이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방법)이라고 해야죠…소설에 묘사된 댓글 조작이 자신이 하던 일과 매우 비슷하다는 e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기업은 국정원처럼 멍청하게 하지 않는다면서요.”
▼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을 두고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시키는 의류) 스타일의 문학이라는 평가가 있더군요.
“다른 인터뷰에서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쓴 소설은 유니클로 같다’고요. 문학을 어떻게 유니클로에 비유하냐는 힐난도 들었지만, 유니클로로 시작해도 샤넬이나 루이비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동차 업계에 비유하면 폴크스바겐처럼 다양한 세그먼트의 제품을 내놓겠단 생각을 가졌어요. 폴크스바겐은 대중적 자동차부터 아우디, 포르셰까지 만들죠. 한국문학이 위축된 까닭 중 하나가 유니클로 같은 소설이 적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강 작가님 소설, 의미가 대단하죠. 다만 모두가 샤넬, 루이비통만 지향하면 건강한 생태계가 아닙니다. 대중적인, 세태를 담은, 재미있는 책도 필요해요. 한국문학에 그런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일본 소설이 한국 시장에서 그 자리를 채웠어요.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등의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처럼 어렵지 않아요. 대중문학이 ‘소설산업’ 중심에 자리를 딱 잡고 왼쪽에 순문학, 오른쪽에 무협지 같은 소설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일본 작가들에게 중심의 자리를 내줬습니다. 예전엔 한국 소설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박범신, 최인호, 황석영 같은 작가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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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권 증오하지만…”
▼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강조하건대, 최우선 과제는 통일이 아니라 북한 인권 문제예요. 통일이 됐는데도 북한 민중의 자유가 제한돼 있거나 삶의 수준이 열악할 거라면, 남북으로 나뉘어 있더라도 평양에서 점진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고 북한이 경제적으로도 중진국 수준에 오르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근대 민주주의 관점에서도 그 같은 방향이 옳아요.”
▼ 인간의 삶에 주목하자는 거네요.
“어떤 식이든 급변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요. 통일이 이뤄질 수도, 전쟁이 날 수도, 정권 교체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다 급변 사태죠. 어떤 급변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남북한 양쪽의 취약 계층이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북한 정권, 증오합니다. 정의의 바람이 불어 김씨 왕조가 멸망하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급변 사태가 일어나 난민이 발생하고 북한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험악한 환경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 사담 후세인 실각 이후 이라크나 현재의 시리아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말로 들립니다. 북한을 배경으로 삼은 신작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요.
인간의 민낯
▼ 도널드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 나와 ‘휴전선에 장벽을 쌓자’고 할 지경이겠네요. 실제로도 일어날 법한 시나리오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악몽이 벌어지리라고 봐요. 문학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탈북자를 주제로 한 소설, 논픽션을 많이 쓰려고 해요.”
▼ 이 대담의 첫 회 주인공이 열일곱 살 때 압록강을 건넌 이현서(35) 씨였습니다. ‘뉴욕타임스’에서도 최근 현서 씨 사연을 다뤘는데요. 탈북민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 잘 쓴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 울컥할 때가 있습니다.
“급변 사태가 일어나 북한이 무정부 상태에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한국 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동포를 위해 희생할까요. 헌법에 따르면 북한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죠. 국민이 대한민국에 어떤 요구를 할 때 헌법적, 인도적으로 거부할 명분은 없습니다.”
▼ 독일에서는 ‘난민을 받아야 한다’ ‘받으면 안 된다’를 두고 수준 높은 토론이 이뤄지더군요.
“시리아 난민의 전례보다 더 극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2세대 전까지 같은 나라였고, 언어도 통하고, 피부색도 같습니다. 배 타고 오는 것도 아니에요. 육로로 건너옵니다. 유럽이 시리아 난민을 막는 것과 남한 사람들이 북한 난민을 막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죠. 세계 시민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납득하기 어려울 겁니다.”
▼ 북한 문제를 지혜롭게 푸는 데 도움을 주는 작품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북한을 다룬 책을 굉장히 많이 쓸 생각입니다. 이번에 나오는 책은 가상의 배경인 데다 스릴러 요소가 있지만, 다음번에는 현실에 더 다가선 주제를 담으려고 해요. 논픽션도 쓸 거고요.”
그가 소설에서 인간의 민낯을 드러낼 때 때로는 소름이 돋는다. 북한을 다룬 새 소설도 비슷할 것이다.
▼ 냉소의 끝을 달린다고나 할까요.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까발립니다.
“독자들이 냉소의 끝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톰슨가젤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는 한국 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 ‘연대’ ‘공동체 복원’ 등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은 함께하기는커녕 제 앞가림하기도 힘들죠.
“공동체니, 연대니 하는 말은 너무 옳고 당연한 동시에 무력합니다. 원론일 뿐이에요. 지금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각론을 말해야 하는데 누구도 짚어내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살리고 연대를 복원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죠. 신문 사설도 당위적인 말, 착한 말, 올바른 말만 하죠. 좋은 말만 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비유하자면 수험생에게 국, 영, 수 위주로 열심히 공부하면 다 잘될 거야라고 훈수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실제로는 무의미한 얘기입니다.”
이 ‘저널리스트면서 소설가’는 앞으로도 순간의 구체적인 팩트 조각을 최초의 텍스트로 엮어나갈 것이다. 순수문학뿐 아니라 ‘좀비 호러 스릴러’ ‘SF’ 같은 장르소설도 쓰는 독특한 지점에 서 있는 이 작가가 당대를 어떻게 포착해 텍스트로 남길지 기대되지 않는가. 시대적 과제가 또렷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곳을 토대로 삼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후대는 어떤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