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호

미디어 비평

연예인과 대작, 대필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6-06-20 16: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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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대중이 뜻하지 않게 전문 분야 지식을 쌓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영남의 화투 그림 대작(代作) 논란도 그런 예다.

    조영남은 화가와 가수가 융합된 ‘화수’를 자처했다. 그는 가수로서 높은 지명도를 누렸지만 미술계에선 무명이었다. 이번 사건은 이 불일치에서 비롯됐다. 미술계는 관심 대상이 아닌 조영남의 작품을 검증해볼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하정우, 구혜선, 솔비 등 미술을 하는 연예인은 ‘아트테이너’로 불리는데, 몇몇 아트테이너는 유명세 덕에 작품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고 한다.

    이전까지 미술계에서 위작(僞作)이라는 말은 있어도 대작이라는 말은 없었다. 위작은 진품을 모방한 그림을 진품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반면 대작은 ‘작가’와 해당 작품을 실질적으로 제작하는 ‘조수’가 따로 있는 것이다. 조영남의 대작은 연예인 조영남의 유명세와 전문 화가 송모 씨의 ‘그림 기술’을 결합해 작품가를 올린 ‘비윤리적 분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계에 대작이 있다면 출판계엔 대필이 있다. 유명 인사가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는데, 실제로는 전문 작가가 책의 대부분을 써주는 것이다. 대작과 대필은 유명인과 전문가의 분업이라는 측면에서 구조가 똑같다.

    대필은 상당히 보편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 출판계는 박리다매 수익구조라 작가의 지명도가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써먹을 유명 인사는 희귀하고 잠재적 대필 작가는 널려 있다. 이 둘을 조합하면 콘텐츠는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



    창작과 대필은 ‘작가가 책의 핵심 내용을 직접 썼는가’ ‘작가가 책의 일정 분량 이상을 직접 썼는가’로 구분된다. 이런 기준으로 접근하면 유명인사의 책 가운데 대필이 수두룩할 것이다. 대필 논란을 피하려면 책에공저자를 명기해야 한다. 그러나 저자의 유명세에 의존하는 책일수록 이렇게 양심적으로 펴내기가 쉽지 않다. 연예인들이 출간한 책에 의심의 눈길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박 신화’의 이면

    한류가 유행하고 연예인이 각광받으면서 연예인은 출판업계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다. 차인표, 이적 같은 고학력 연예인이 소설집을 낸 것을 필두로 타블로, 루시드 폴, 구혜선 등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소설은 전문성을 요하는 장르이므로 이들의 도전은 예술적 갈망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연예인 저자가 에세이, 자기계발서, 실용서 분야까지 손을 대면서 의문이 불거졌다.

    연예인이 쓰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는 대개 자기 자랑과 교훈을 적당히 뒤섞는다. 쉽게 쓴 것 같은데 수익률은 만만찮다. 2009년 아이돌 그룹 빅뱅의 자기계발서 ‘세상에 너를 소리쳐’는 50만 부 이상 팔렸다. 하지만 5명의 멤버가 1권의 책을 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좀 어색해 보인다. 책에는 전문 작가가 ‘정리’했다고 표기돼 있다. 그 전문 작가의 역할이 어디까지 미쳤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엔 여성 연예인들이 뷰티, 요리, 사진, 여행 분야의 책을 내고 있다. 이런 실용서는 성격상 전문성, 타이밍, 기획력이 두루 요구된다. 많은 사람의 협업은 필수. 그렇지만 유명인의 이름값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나운서 정지영 대필 사건 후 출판계는 나름대로 개선된 태도를 보였다. 보험 약관처럼 희미하게나마 공저자를 책에 표기하는 추세다. 그러나 ‘고스트라이터’라는 단어에서 보듯 대필은 국제적 현상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유재석이 책을 내면 무조건 대박’ 신화가 만연한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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