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직선 내각제로 가자”
- “대선 때 ‘연립정부 공약’ 나올 것”
- “하자 많은 법률 만들어 대통령에게 떠안겨”
박근혜 대통령이 6월 13일 국회에서 개원 연설을 마친 뒤 본회의장을 나서면서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과 인사하는 장면이 이랬다.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인 정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뒤 이번 20대 총선 때 대구 동구갑에서 ‘친유승민계’ 류성걸 의원과 접전을 벌인 끝에 당선됐다. 그의 첫 일성은 “국회에서 통과된 국회법의 65조 ‘현안조사를 위한 상시청문 방식’은 위헌성이 매우 크다”였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두 차례 국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이때마다 ‘헌법학자 정종섭’은 해당 법률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 대통령을 뒷받침한 셈이다. 이 때문에 그에게 ‘헌법 감별사’ ‘친박 핵심 이론가’라는 별칭이 붙는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 몇몇 의원은 ‘국회가 일상적으로 청문회를 열어 현안을 조사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요.
“상시라는 표현부터 잘못된 것 같아요. 지금도 24시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상시냐 비상시냐 이렇게 나눌 건 아니고요. 의원들이 상시청문 조항을 디자인하면서 조사 대상을 무제한으로 뒀고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도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어요. 다른 국가기관의 기능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개인의 사생활도 침해하는 국회 독재가 가능하도록 했어요. 그래서 위헌성이 있다고 말한 겁니다.”
“뭘 하자는 건지…”
▼ 기업가나 일반인이 수시로 국회에 불려가 증언해야 한다면 문제 소지가 좀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러나 일각에선 ‘국정조사를 상시청문으로 대체하면 된다’고 말하는데요.“국정조사는 헌법에서 하도록 정해져 있어서 대체하거나 우회할 수 없어요. 지난번 국회법도 그렇고 이번 국회법도 그렇고 하자가 많아요. 의원들이 전문성 없이 법을 대충 만들었어요. 토론도 별로 하지 않았고요. 이로 인해 거부권 행사라는 큰 정치적 부담을 대통령에게 안겼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해 고의로 그랬다면 정말 나쁜 행동이고요. 이제 언론이나 시민단체도 법안 발의건수로 국회의원을 평가해선 안 됩니다. 대충 만든, 기본도 안 된 법안이 아무렇지 않게 발의되고 있어요.”
“선진화법 개정해야”
▼ 상시청문 관련 조항이 20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수 있을까요. 이럴 경우 헌법 감별사로서 또 반대할 생각입니까.“헌법 감별사(웃음)? 그 제도를 헌법에 합치되게만 설계하면 저는 찬성합니다. 그 제도에 의한 부당한 피해가 최소화하게 해줘야겠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부른) 지난번 국회법의 행정부 시행령 강제 조항도 최근 한 야당 의원이 다시 발의했더군요. 내용을 보니, 대통령에 의해 거부된 법안의 초안, 그러니까 위헌 논란이 더 큰 내용을 거의 글자 한 자 안 고치고 그대로 내놓고 있어요.
뭘 하자는 건지 그 의도를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대통령과 국회가 또 충돌했다’ ‘대통령이 불통이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대통령만 비판하기 전에 입법을 너무 허술하게 충동적으로 아마추어 식으로 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어요.”
▼ “국회가 일을 안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말이 나오게 된 제도적 원인은 국회 선진화법이라고 봐야겠죠. 가능하면 서로 합의해 결론을 도출해라, 싸우지 말고. 이 법이 이런 취지거든요. 그러나 시행해보니 소수 정당이 입법을 발목 잡는 형태로, 그야말로 ‘소수 독재’로 변질됐어요. 이로 인해 19대 국회가 거의 마비 상태가 됐고요.
덧붙여서,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요. 저는 국회 내에서의 자유로운 발언을 보장해주는 면책특권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불체포특권은 없어져야 합니다. 국회의원도 구속될 만한 형사범죄 혐의가 있으면 일반 국민과 같은 처분을 받아야 하는 거죠. 구속되는 순간부터 세비 지급도 중단돼야 하고요.”
▼ 정세균 국회의장이 선진화법을 개정하자는 취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걸 하는 게 맞다고 봐요.”
▼ 야권이 과반인 현 상황에서 개정해주면 새누리당에 불리하지 않나요.
“당의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결정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선진화법의 부작용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그 부작용을 없애는 쪽으로 진행하는 게 맞죠. 한쪽으로 다수의 날치기도 없애고 한쪽으로는 소수의 발목잡기도 없애는, 양쪽을 모두 추구하는 제도를 설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 의원은 이어 협치를 이야기했다. 각자 편리한 대로 이 단어를 쓰지 말자, 상대를 배제하는 정치를 하지 말자, 공존의 정치를 하자고 그는 말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공존의 정치를 위한 방법, 즉 개헌으로 이어진다. 20대 국회 들어 친박계 핵심인사가 개헌의 필요성을 들고 나온 것은 거의 이번이 처음이다.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권력구조 개편 집중해야”
▼ 우리 정치는 서로 아주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벼랑 끝까지 간다는 거죠?“그것이 권력구조와 연관성이 있어요. 현 대통령중심제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이니까요. 공존의 정치로 나아가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해요. 고도성장기엔 대통령제가 나라 발전에 기여했어요. 그러나 민주화 이후엔 종전의 권위주의 요소를 탈색시키는 틀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해요.”
▼ 어떤 방식의 권력구조가 합당하다고 봅니까.
“내각제 아니면 분권형 대통령제, 즉 준(準)대통령제인데요. 지금 국민이 내각제엔 익숙하지 않아요. 또 1960년대 내각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아직 남아 있고요. 내각제 하자고 하면 그 혼란기를 자꾸 연상하게 되죠.
더구나 우리 국민은 국가원수를 자기 손으로 뽑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기에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하고 행정부는 내각제로 가는 형태를 제안하고 싶어요. 이런 ‘대통령 직선 내각제’로 가면 지금 같은 정치적 갈등, 사회적 갈등이 상당히 줄 수 있지 않을까….”
▼ 그럼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은 어떻게 됩니까.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을 기본적으로 가지고요, 총리는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상당 부분 가지는 거죠. 국회 해산으로 인한 정국 불안을 방지하는 조치를 담으면 될 것 같아요.”
▼ 정세균 의장도 개헌을 언급했습니다. 만약 헌법을 고친다면 어느 선까지 고쳐야 할까요.
“제일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입니다. 기본권은 현행 헌법 틀 속에서도 거의 다 커버가 됩니다. 헌법학자 다수는 헌법에 손댈 필요가 없고 법률만 잘 만들면 된다고 말하죠.
다만 권력구조를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어요. 모든 것을 한꺼번에 꺼내 과욕을 부릴 시간이 없어요. 제일 중요한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이 문제는 벌써 국회에서도 연구된 자료가 있어요. 결국 선택의 문제만 남아있는 거죠.”
▼ 일종의 사지선다형? 여러 의원들은 4년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 같던데요.
“저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한 대통령이 8년을 하게 되면 지역주의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미국과 우리는 사정이 다른 것 같아요. 대통령제의 문제점, 지역주의의 문제점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겠죠.”
“다른 당과 연합할 수도”
▼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은 그런 권력을 나누는 데 대해 탐탁지 않게 이야기하는데요.“그건 모르겠습니다. 김 수석은 김 수석대로 생각이 있을 거고 나는 쭉 30년 동안 고민을 해왔기 때문에…. 개헌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논의하면 올 연말쯤 할 수 있다고 봐요. 대안은 전부 나와 있습니다.”
▼ 바로 이번 대선에 적용한다?
“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올 연말이나 내년 1월쯤 개헌해 그 바뀐 헌법을 가지고 대선을 치르자는 거죠. 이미 국회는 구성돼 있으니까요.”
▼ 개헌 후 다수당에서 총리가 나온다면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총리는 다수당인 야당에서 나오는 건가요?
“당연히 정해진 게 없습니다. 총리를 선출하는 방법도 있는 거고.”
▼ 선출한다는 게….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법이 있죠.”
▼ 그럼 다수당에서 나오겠네요.
“그 다수당이 누가 될지 모르는 거죠. 예를 들면 정당 연합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수 있겠죠.”
정 의원은 “경우에 따라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당과 정당이 연대해 연립정부 공약 같은 것을 내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정을 하다 노선이 잘 맞으면 통합해 하나의 정당으로 가도 되는 것이고”라고 덧붙였다.
▼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이질적인 정당 출신이어서 대립하면 어떻게 되죠?
“도저히 그런 갈등 때문에 국정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해 총선을 다시 치르겠죠. 큰 권한이죠.”
박 대통령을 이해하는 자세
▼ 총선 후 이른바 친박계가 당 안팎에서 비판 대상, 혁신 대상이 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요. 친박계 처지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나요.“저는 옛날부터 친박계라고 한 적이 없고요. 그런 계파 자체가 아예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 입장은, 우리 대통령이 지금 국가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초점을 정확하게 맞추고 있어요. 그래서 대통령이 하는 그 일을 국회에서, 당에서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것이죠.
그 동안 당내에서 계파를 가지고 어떻게 싸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정체성만 분명히 하면 계파가 있어야 할 이유도 싸워야 할 이유도 없다고 봐요.”
▼ 박 대통령을 이해하는 바른 자세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죠.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부정부패와의 고리를 끊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부채가 없어요. 주변의 부정부패를 일소시켜나가죠. 박 대통령이 부패 청산을 제도적 틀로 만들어 나가도록 도와주면 좋겠어요.
또한 박 대통령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어요. 적폐를 다 뜯어 고치자고 해요. 정부 조직과 정치 조직이 이 일을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박 대통령에게 전폭적인 기대와 지지를 보내고 있어요.”
▼ 그러나 야당은 박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 대해 ‘반성을 안 한다’ ‘국회에 요구만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그 점을 잘 모르겠어요. 이 정부가 하는 일이 옳다면 정치적으로 자기 당에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정부를 도와주는 게 맞죠. 우리 정치는 너무 당파성이 강해서 모든 것을 적과 동지의 관점으로 보죠.”
‘진박’ 논란의 당사자이기도 했던 정 의원은 “진박, 친박 같은 용어가 사실을 은폐하기도 한다. 비박은 다 옳고 정의롭다? 이건 아니다. 그냥 의원 개개인을 놓고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고심 끝에 정 의원의 이름 앞에 ‘친박’을 붙이기로 했다. 친박계의 친박이 아니라 정말로 박 대통령과 친한 것 같아서 친박이라 쓰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