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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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왜 우는지 안다”〈申〉 “선수들과 ‘밀당’하며 훈련”〈鄭〉

초보 감독 신기성 & ‘바스켓 퀸’ 정선민

  •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입력2016-07-01 14: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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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 농구, 여자 농구의 레전드가 감독과 코치로 뭉쳤다. 여자 프로농구 신한은행의 신기성 감독과 정선민 코치다.
    신기성(41) 감독은 선수 시절 1999년 신인왕, 2005년 정규리그 MVP, 우승 등을 이뤄냈다. 정통 포인트가드 출신으로 별명이 ‘총알 탄 사나이’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남자 농구 금메달 주역.

    정선민(42) 코치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7회, 소속팀 우승 9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2002년 세계선수권 4강 등 맹활약했다. 선수 시절 별명은 ‘바스켓 퀸’.

    신 감독과 정 코치는 KEB하나은행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신 감독이 박종천 감독 밑에서 수석 코치로 있을 때, 정 코치가 시즌 중 막내 코치로 합류해 지도자로서 처음 만났다.

    2007년부터 6년간 통합우승을 일궈낸 신한은행은 2015~2016 시즌 5위로 추락하며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신한은행은 ‘농구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고자 리빌딩 작업에 들어갔다. 명가 재건을 목표로 신 감독과 정 코치를 영입한 것이다.

    6월 8일 신한은행 홈경기장인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두 레전드를 만났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사진만 체육관에서 찍고 인터뷰는 체육관 인근의 복집에서 소주를 곁들이며 진행했다.

    신기성 감독은 신한은행에서 ‘초보 감독’ 타이틀을 달았다. 그동안 코치로만 지도자 생활을 이어오다 처음으로 사령탑에 오른 것. 감독으로 선임되고 가장 고민한 부분이 코칭 스태프 구성이다. 신 감독은 주저 없이 정선민 코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선민의 반전 매력

    “선수 시절엔 정 코치와 개인적 인연이 없었다. 대표팀 시절 선수촌에서 오다가다 만난 적은 있어도 대화를 나누거나 연락을 주고받진 않았다. KEB하나은행에서 정 코치를 가까이 접하면서 농구를 보는 눈이 나와 엇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신한은행에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지금까진 내가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선민 코치는 선수 시절부터 ‘쎈 언니’ 이미지가 강했다. 정상에서만 농구를 한 터라 아래를 보듬는 마음이 어느 정도일지 의문이었다. 신 감독은 하나은행에서 정 코치의 반전 매력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정 코치가 정형화한 이미지 때문에 종종 손해 보는 때도 있을 것 같다. ‘세다’ ‘강하다’ ‘고집 있다’ 같은 선입관이 있는데, 직접 겪어본 그는 성격 좋고,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뛰어나다. 후배들한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자신이 어떻게 감독을 도와야 하는지 잘 파악한다. 감독으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

    옆에서 신 감독 얘기를 듣던 정 코치가 “나도 ‘립 서비스’ 해야 하는 거예요?”라며 큰소리로 웃는다. “사람 옆에 두고 낯간지럽게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느냐”며 가볍게 항의도 한다.

    “선수 때는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난 (문)경은이 오빠, (전)희철이 오빠랑 친했고, 주로 그 두 오빠랑 얘기했다. 더욱이 내가 신 감독님보다 한 살 많은 터라 더 다가가지 못했다. 지도자로 신 감독님을 만난 건 행운이나 다름없다. 나도 농구에 대해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있기에 서로 나아가는 방향이 맞지 않았다면 어떤 자리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님이 내게 많은 권한을 부여해준다. 코치들에게 역할을 분담시키면서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는 걸 선호한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응답하라 2002

    신 감독과 정 코치는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 각각 남녀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다. 남자 대표팀에는 가드로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 추승균 조상현, 포워드로 문경은 이규섭 전희철 현주엽 방성윤, 센터에는 서장훈 김주성이 뛰었다(이름만 봐도 화려함 그 자체다). 여자 대표팀에는 가드로 전주원 양정옥 김영옥 김지윤 이미선, 포워드 김경희 박정은 이언주 변연하, 센터에 정선민 이종애 김계령 허윤자 곽주영이 포진했다.

    당시 농구인들은 여자 대표팀의 금메달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멤버가 대부분 건재한 데다 김계령, 이미선, 변연하 등 신예의 성장세가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결승에서 중국을 만난 여자농구 대표팀은 아쉽게도 금메달을 코앞에 두고 좌절을 곱씹어야 했다. 정 코치의 설명이다.

    “남녀 농구 결승전이 같은 장소에서 치러졌다. 여자가 먼저 경기를 했는데 4쿼터 3분을 남겨놓고 10점을 앞선 터라 금메달이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판에 갑자기 분위기가 넘어가면서 역전패 당하고 말았다. 어이없는 결과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경기 후 선수 모두 관중석에 앉아 남자 결승전을 지켜봤다. 우리도 못 땄는데 설마 남자들이 금메달을 딸까 싶었다. 그런데 결국 중국을 꺾고 시상대 맨 위에 올라서더라.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번엔 신 감독의 얘기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특례 혜택을 준다. 나를 포함해 현주엽, 조상현, 이규섭이 상무 소속이었는데 당시 병역법은 금메달을 따더라도 중도에 제대시켜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회가 끝난 후 모두 부대로 복귀했다. 2010년 병역법이 개정돼 복무 중에라도 금메달을 획득하면 곧바로 전역한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때 오세근이 그 혜택을 받았다. 세근이를 보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래도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은 영광스러운 기억이자 나의 기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여자 선수가 우는 까닭

    정 코치는 1974년생으로 추승균, 서장훈과 동기다.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두 선수와 친분도 맺었다. 추승균을 처음 보고선 선배인 줄 알고 선수촌에서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했다며 정 코치가 웃는다.

    “(추)승균이는 왠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이라 당연히 선배인 줄 알았다. 나중에 다른 선수가 귀띔해줘서 나랑 동갑내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뒷목을 잡았다. 나중에 승균이에게 왜 내가 인사할 때마다 받아넘겼느냐고 따졌더니, 간단하게 답하더라. ‘그냥 하니까 받았어.’ 그 일로 승균이와 더 친해졌다. 지금은 ‘추승균 감독님’이지만.”

    신 감독에게 ‘지도자 생활을 꿈꿀 때 여자팀 감독도 계획에 있었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남자 지도자가 여자팀을 지도하는 데 대해 부담을 느낀다. 운동선수로 살면서 남자들과만 생활해왔는데 여자 선수를 가르치는 게 쉽겠나. 굉장히 다른 영역이다. 고려대 코치에서 KEB하나은행 코치로 옮기는 것을 결심할 때 고민이 많았다. 나중에 남자팀으로 옮길 수 있는지 계산도 했다. 오랜 고민 끝에 기회인 것 같아 받아들였다. 운명을 믿고 따르자고 마음먹었다.”

    신 감독은 박종천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또한 그가 선수 시절 경험한 다양한 색깔의 지도자를 떠올리면서 공부했다.

    “코치, 감독이 되면서 이전 감독님들을 떠올릴 때가 많다. 당시 그분들이 하신 말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풀어가는 방법 등등. 신한은행에서 감독직을 제안했을 때 기회이면서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그렇다고 위축되거나 부담으로 여기진 않는다.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으니 내 생각대로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선수들이 무조건 따라오기를 바라지 말고, 왜 이 훈련을 하고, 왜 이런 농구를 해야 하는지 이해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여자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건 예상한 대로 어렵다. 그렇기에 정선민, 전형수 코치의 도움이 필요하다.”

    신 감독이 하나은행 코치 시절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부터 선수들이 내 방을 찾아와 우는 일이 잦았다. 야단치거나 화를 낸 것도 아닌데 대화하다 자꾸 눈물을 흘리더라. ‘왜 울지?’ 하는 생각과 함께 ‘우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야 그 눈물이 어떤 정답을 구하려고 우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신한은행은 지난 5월 경남 사천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오전, 오후는 물론이고 야간까지 강도 높은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아침에 눈뜨면 곧장 숙소 앞 바닷가를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매일 오전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계단 오르기를 실시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훈련으로 선수들은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신 감독은 선수들이 힘들어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신한은행은 전주원, 정선민, 하은주, 강영숙, 강지숙 등 대표급 선수들과 함께 여자 프로농구를 평정했다. 오죽했으면 ‘레알 신한은행’으로 불렸을까. 그런데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함께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수년 전부터 우리은행에 정상의 자리를 내주고 시련을 겪었다. 한마디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팀을 맡은 것이다. 명문 구단이 초보 감독인 내게 팀을 맡긴 데는 당장의 성적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같은 구단의 방침과 뜻을 알고, 동의하기에 두려움 없이 갔다. 처음부터 완벽한 지도자는 없는 것 아닌가. 경험을 쌓으면서 하나씩 해결해갈 생각이다.”



    위성우·전주원 vs 신기성·정선민

    여자 농구인 중 주량이 가장 세다고 소문난 정 코치가 자신 앞에 놓인 소주잔을 ‘원샷’하더니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농구인들은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전주원 코치 체제를 나와 신 감독님한테도 기대하는 것 같다. 솔직히 부담이 없다면 거짓이다. 좋은 롤모델이기에 두 분을 참고하면서 신 감독님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나도 경험한 부분이지만 여자 선수들은 여자 코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여자 선수들의 실생활을 너무나 잘 알아서다. 남자 감독 탓도 있다. 남자 감독이 여자 코치를 코치가 아닌 팀 매니저나 주무 정도의 역할로 생각했다. 농구 코치가 아니라 선수 생활 컨트롤하는 역할을 맡겼다. 위성우 감독-전주원 코치의 우리은행처럼 우리 팀도 여자 코치에게 매니저 일을 맡기지 않는다. 진짜 코치 일을 할 수 있어 욕심이 난다. 내가 잘 해낸다면 여자 코치에 대한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신 감독은 정 코치의 얘기에 크게 공감하면서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이전에도 농구계에 여자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의 헤어스타일, 옷차림, 숙소에서의 생활에 대해 잔소리와 간섭을 했다. 여자 코치에 대한 인식이 정 코치가 얘기한 것처럼 굳어진 데는 그 같은 이유도 있다. 전주원, 정선민 코치 덕분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는 여자 코치가 그런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정 코치는 “선수들 사생활에 간섭하라고 해도 시간이 없어 간섭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잔소리는 훈련장에서만, 사생활은 노터치’가 정 코치의 신념이다.



    “잔소리는 훈련장에서만”

    “선수들과 스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난다. 우리가 하던 방식을 강요해선 안 되고, 그 같은 방식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선수들 눈높이에 맞는 훈련법 연구가 중요하다. 실패한 선배 지도자들의 사례를 보면 예전에 자신이 배운 방식을 지나치게 고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면 선수들이 튕겨져 나간다. 그런 점에서 신 감독님을 비롯해 전형수 코치, 나, 셋은 선수들과 친근감을 유지하며 ‘밀당’하는 관계를 이어간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스포츠계에 ‘스타 플레이어는 스타 감독, 스타 코치가 될 수 없다’는 얘기가 있다. 신 감독과 정 코치도 숱하게 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스타 감독이나 스타 코치는 되지 못하더라도 여자 농구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싶다”고 하나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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