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인도 출신의 샤시 타루르와 경쟁했다. 유엔에 입김이 강한 미국의 부시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껄끄러웠다. 친노계에 따르면, 그때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실장이 크리스토퍼 힐 미국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통해 미국을 설득했다고 한다. 사정을 잘 아는 A씨는 “송 실장이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힐 차관보와 접촉했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거쳐 반기문 장관과 부시 대통령의 면담이 추진됐다”고 전했다.
그해 9월 노 대통령 방미 때 반 장관은 부시 대통령과 오찬 면담을 했다. 힐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에게 “‘자주파’가 아니다”고 반 장관을 소개했다는 후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반 장관에게 “사무총장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사실상의 면접이었다. 반 장관은 유엔의 새 비전을 얘기했고 부시 대통령은 “적임자(right man)”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반 총장과 가까운 사람들은 반론을 편다. 반 총장의 측근인 언론인 B씨는 “반기문은 송민순보다 힐과 더 친했다”면서 “송민순 역할론은 친노 진영의 꿰맞추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친노계는 노무현 정권이 사무총장 선거 ‘애프터서비스’까지 깔끔하게 해줬다고 주장한다. 노 정부 시절 청와대 요직을 지낸 C씨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후 우리는 반기문의 외교장관직을 한 달 동안 유지시켜주면서 그가 해외 인사들에게 당선 사례를 하도록 했다. 노 대통령이 반 총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을 만들기 위해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C씨에 따르면 반 총장은 노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다가 토론이 끝난 뒤에 “그런데 말이죠…”라면서 슬쩍 자기 생각을 꺼내곤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나중엔 “당당하게 의견을 밝히라”고 타박을 줬다고 한다.
“盧 정권에 부채 없다”
“반기문이 노무현 사람이었다면 사무총장이 될 수 없었다. 반기문은 자기 ‘개인기’로 자신이 급진좌파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이 금기시한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 부채는 꼭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원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부채를 갚기는커녕 대북송금 특검으로 단죄하지 않았나.”
반 총장과 가까운 E씨는 “코드가 맞는 사람들 일색인 노무현 정권의 회의석상에서 온건한 정통 외교관인 반기문이 자기 의견을 적극 개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