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호

大馬 키우는 정부 끌려다니는 韓銀

부실기업 구조조정案은 부실투성이

  • 윤석헌 | 前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syoon@ssu.ac.kr

    입력2016-06-23 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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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조 공적자금 투입…‘일단 기름 가득 채우자’?
    • 서별관 회의는 밀실 관치금융 전형
    • 한은의 대출 결정, 한은법 저촉 우려
    • 찍소리 못하는 금감원…‘금융안정협의회’ 등 대안 절실
    6월 8일 정부가 발표한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완방안’(이하 추진계획)에는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이 안 보인다. 정부는 12조 원의 공적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마치 구조조정의 전부인 듯 서둘렀지만, 부실해진 산업은행(산은)과 수출입은행(수은)에 대한 출자 외에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이 자금으로 무슨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지 등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간 발생한 부실의 책임 소재에 대한 언급도 없고, 앞으로의 책임에 대한 언급 역시 없었다.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길지, 도중에 어떤 고비를 만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일단 차에 기름을 든든하게 채우고 출발하는 수밖에 없다.”

    추진계획 발표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어느 일간지에 했다는 말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방관자적 뉘앙스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표현을 연상케 한다. 여정도 없이 출발하면 이번엔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정부 주장대로 산업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을까. 국민은 답답하다. 정부는 ‘조기 출발’이 시장의 불필요한 혼란을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나, 혼란의 실제 원인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허둥대는 정부에 있어 보인다.

    정부가 허둥대는 이유가 혹시 한국 경제에 대한 비전 부재 때문은 아닐까. 비전이 없으니 구조조정의 갈피를 잡을 수 없고, 그렇다보니 국민 눈에 허둥대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다.

    조선·해운업의 미래가 어떨지도 모르고, 이번 지원으로 국내 조선업계가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알기 어렵다. 전환기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 즉 ‘대마(大馬)’를 계속 지원하는 게 옳은지, 대마 지원을 위해 정책금융을 동원하는 게 바람직한지 등도 알지 못한다.



    게다가 정부가 제시한 3가지 트랙(경기민감업종, 상시적 구조조정, 공급과잉업종)에서 잘 드러나듯, 기업 구조조정 문제는 조선·해운업만의 문제가 아니며 앞으로 대부분의 산업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 기업의 평균 나이가 40세에 근접하면서 한국 경제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다시 말해 그간의 제조업 및 수출 위주의 불균형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수출과 내수가 조화를 이루는 균형성장 전략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성장 전략은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환경 속에서 국가의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 완화에 기여해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전환기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작금의 기업 구조조정을 이끄는 등대가 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기업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의 ‘성장통’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출발을 서두르기보다 여정표를 제대로 만든 뒤 출발하는 게 나아 보인다. 물론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생길 것인데, 지금 그것들을 모두 걱정할 순 없다. 그러나 동서남북 중 어디로 향할 것인지, 목적지는 어디쯤인지 등기본 방향은 정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지원, 2013년 STX조선해양 지원에서 이런 절차를 거쳤더라면 오늘 같은 실패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까지 수조 원을 날리고도 여전히 주먹구구식 지원을 반복하는 것을 국민은 납득하기 어렵다. 조선 업황이 불투명하고, 경기 주기가 과거보다 길어졌고, 중국 조선사들의 추격이 급박한 상황이라 한 치 앞을 예단하기 어렵다면 이제는 지원을 중단하는 옵션도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실 정부가 조선업 등 특정 산업을 지원하다 실패한 것도 문제지만, 지원의 이유가 불분명한 것은 더 큰 문제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의 열매는 기업주와 경영자, 정치권과 정부, 국책은행 등이 향유하고 실패의 부담은 전 국민에게 전가되는 도덕적 해이 발생이 우려된다.



    관치금융이 키운 대마불사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건의 핵심은 ‘관치금융이 키운 대마불사(大馬不死)’로 이해된다. 대우조선해양이 산은 자회사인 것은 관치금융의 결과이며, 관치금융을 등에 업은 무분별한 지원이 방만 경영을 부추겨 이 회사를 대마로 만들었다. 그러니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정부와 정치권이고, 그 하수인은 산은 등 국책은행이다.

    이러한 가설은 홍기택 전 산은그룹 회장에 의해 일부가 사실로 확인된다. 6월 8일자 ‘경향신문’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은의 4조2000억 원 지원과 관련해 홍 전 회장이 “작년 10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결정한 것이며, 애초부터 시장원리가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었다. 산은은 들러리였다”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홍 전 회장은 “지원 규모와 분담 방안 등은 협의 조정을 통해 이뤄졌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부실한 대우조선해양 지원이 정부의 결정이었음을 재차 확인한 셈이 됐다.

    국책은행이라 해도 이사회나 주주총회가 아니라, ‘서별관 회의’라는 비공식 회의체에서 투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은행의 대출에 개입한 것은 관치금융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홍 전 회장은 “관료와 금융기관 간에는 지금도 ‘시키는 대로 하라’는 군대식 서열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부분이 투명해지지 않으면 한국 금융의 미래는 없다”고도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대우조선해양 회계를 들여다보던 산은 출신 감사를 해임했다”는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들여다볼 대목은 더 있다. “…2013년 STX조선해양과 팬오션 문제가 불거졌는데 서별관 회의에서 산업은행이 무조건 떠안으라고 했다. 채권이 많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시장 붕괴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논리였다….” 관치금융에 의한 대마 키우기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2013년 산은이 떠안은 STX조선해양의 부실은 해소되지 않고 계속 불어났고, 이에 이 회사는 지난 5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대마가 ‘죽으면’ 시장 붕괴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주장이 추가적인 지원을 유도했고, 그 지원으로 대마를 더 키우다가 결과적으로 국민경제 부담을 더 키워놓은 것이다.  



    컨트롤타워의 ‘손쉬운 선택’

    낙하산 인사 또한 관치금융의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다. 이번 사건에서도 낙하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산은의 강만수·홍기택 전 회장, 수은의 이덕훈 행장을 거쳐 대우조선해양의 사장들과 사외이사 그룹에 이르기까지 정치권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인사들로 채워졌다. 홍 전 회장은 “산업은행 계열사에 대한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인사 개입이 도를 넘었다”며 “산업은행 자회사 CEO, 감사, 사외이사 등 임원 자리를 청와대와 금융당국이 각각 3분의 1씩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김기식 전 의원(더불어민주당·19대)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임명된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18명 중 10명이 ‘정(政)피아’로 드러났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7명 중 5명이 정치권 출신이었다.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04년부터 60명의 정·관계 인사가 대우조선해양에서 고문·자문·상담역으로 근무하며 평균 88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들은 금융 전문성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인사들인데, 회사 경영에는 얼마나 깊은 관심을 기울였을까. 이런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우조선해양의 향후 경영은 과연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최근 구조조정 추진에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강조되는데, 의사결정의 구심체가 불분명하다 보니 구조조정 업무가 체계 없이 우왕좌왕하며 골든타임을 허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슈는 정부의 역할과 연관되므로 정부의 역할부터 따져봐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국책은행 주주로서의 역할이다. 구체적으로 산은의 정책금융업무를 최종적으로 감시·감독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역할이다. 이 밖에 대우조선해양의 주식 8.5%를 소유한 금융위원회는 기금재산에 대한 선관주의(善管注意,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도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는 별도의 컨트롤타워 지정은 필요 없어 보인다. ‘소유주’ 정부가 컨트롤하고, 산은과 수은 등 국책은행이 집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컨트롤타워가 실제로 잘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는다.

    정부의 두 번째 역할은 국가 위기상황에서 발생한다. 만약 지금이 외환위기 또는 그와 유사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면 정부가 이를 선포하고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를 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기업구조 개혁의 총책임자로 임명한 것처럼 대통령이 특정인이나 부처를 지정해 위기관리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수 있다.


    국회 설득할 자신 없었나

    결국 컨트롤타워 지정 문제는 정부가 지금을 위기 상황으로 보는지에 달렸는데, 위기 상황 여부를 가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정권 처지에서 위기를 인정하는 것은 그간의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라 부담이 작지 않다. 그러니 그냥 묻어뒀다가 경기가 살아나면 좋고, 아니면 국민 부담으로 희석하는 게 손쉬운 선택 아니겠나.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첫 번째 역할에 치중하며 국책은행 주주로서 정책금융 포트폴리오의 성과 제고를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정부의 또 하나의 역할은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규모 실업 대응책 및 지역경제 안정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추진계획에서 정부는 실업자 대책과 지역경제 안정화 방안을 제시했는데,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2016년 6월)이 조언하듯 노키아(Nokia)의 퇴직자 창업 프로그램인 브리지(Bridge) 프로그램 같은 맞춤형 일자리 대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해고자들이 창업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경우 1인당 2만5000유로(약 3300만 원)까지 지원하고 해고자들로 팀을 구성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한다.

    이 밖에 특별고용지원업종 제도의 지원 내용을 강화하고 대상 기간을 확대하며 일자리 나누기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도산과 해고로 직·간접 피해를 볼 수 있는 동남권 지역 경제를 위한 대책 마련도 절실한 과제로 정부의 몫이다.

    4·13총선을 전후해 언론을 달군 소위 ‘양적완화’는 용어의 본래 개념에 부합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부실기업에 대한 관리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정부의 행태 또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번 구조조정에서 필요자금을 조달하는 올바른 대안은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차입하고 그 자금으로 산은과 수은 자본금을 확충하는 것이다. 물론 국회 승인을 거치는 것이 옳다.



    ‘꼼수’에 놀아나는 중앙은행

    정부는 ‘시급성’을 핑계 삼았지만, 국회 승인을 받을 자신이 있다면 선차입·후승인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국회를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그런 지원은 포기하는 게 맞다. 국회 승인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해 변칙적인 조달 방법을 택한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한은 역시 위험을 인지하고도 정부 압력에 굴복해 부적절한 지원을 하기로 한 것은 한은법 제25조(금융통화위원회가 한국은행에 손해를 끼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에 저촉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현행 한은법 어디에도 국책은행 출자에 관한 규정은 없다. 이는 한은의 자금 지원 목적이 유동성(liquidity) 공급에 있고 지급불능(insolvency) 지원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추진계획은 한은으로 하여금 기업은행에 대출하게 하고, 기업은행이 자본확충 펀드에 투자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그리고 정부는 1조 원을 현물출자해 정부와 한은이 자본확충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의 현물출자는 ‘돌려 막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자본확충펀드 보증에 필요한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역량을 한은 출자로 메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은이 빌려준 돈에 대해 한은이 보증 서는 꼴이어서 위험 노출이 줄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번 추진계획은 한은의 발권력에 전적으로 기댔다고 봐야 한다. 결국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국책은행에 현금을 출자하는 정공법을 피하려고 여러 꼼수를 둔 것으로, 정부가 한은의 발권력을 사용해 스스로의 책임 없이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하는, 그야말로 관치형 대마불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번 STX조선해양이나 대우조선해양 사건 등에서 주목할 또 하나 중요한 이슈는 금융감독기구가 제 기능을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금융감독의 독립성 부재와 연관되며, 금융의 건전성 감독기능(부실관리)이 금융산업 정책기능(대마 지원)에 예속됐음을 드러낸다.

    사실 이 문제는 한국 금융산업의 해묵은 과제로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주무 부서 이해와 엇갈리는 까닭에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금융위가 금융감독원의 상위 부서로 위치해 액셀(금융산업 정책)이 브레이크(금융감독 정책)를 압도하는 상황이다. 전술한 서별관 회의에 금융감독원장이 참가했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장이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현재 한국에는 국가 위기 상황을 판단하는 별다른 기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별관 회의는 논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비공식 밀실 행정이다. 법상 회의체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앞서 기술한 홍 전 회장의 서별관 회의 해프닝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경제위기나 기업 구조조정 등 국가에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이에 공식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금융안정협의회’(가칭)의 설치·운영이 필요하다. 이 협의회는 감독유관기관의 장(長)들과 민간인 비상임 위원들로 구성하되 이를 법제화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윤석헌 외, ‘금융감독체계 개편, 어떻게 할 것인가’, 금융연구, 2013. 9). 이 협의회는 시스템 위기 등을 정의·판단하고, 필요시 대통령에게 위기 상황 선포를 권고하며 문제 해결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추진계획이 이번에 도입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는 시스템 리스크를 다루는 기구가 아닐뿐더러 법상의 기구 또한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大馬 스스로 자금 마련케

    현재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은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 대우조선해양의 자구안을 포함해 기업들이 제출한 자구안을 조정 없이 따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율적’ 구조조정인데, 이러고도 각 산업이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않다. 상시적 구조조정이라면 또 모를까, 큰 손실을 국민 부담으로 떠안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실제로 채권단은 개별 회사들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각 산업의 미래에 대한 공통분모를 찾고 기업 간 중복을 인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구체적인 분석도 없이 국민 부담만 믿고 대마를 계속 지원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

    둘째, 정부는 보다 구체적인 구조조정 과제는 추후 각 기업이 추진하는 자체 컨설팅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인데, 그렇다 보니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배를 출범하는 꼴이다. 위험 추구가 속성인 민간기업이라면 모르되, 수조 원의 공적자금 투입이 요구되는 국책사업 지원으로는 매우 허술한 느낌이다. 과거의 오류를 반복해 더 큰 손실을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마불사는 바둑 용어다. ‘큰 말은 잡기 어려워 잘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 대마는 수조 원대 국가 재원을 먹고 자란 대기업을 가리킨다. 이들은 덩치가 커서 실패하면 종업원, 하도급업체, 지역사회에 두루 큰 피해를 끼치는데, 그런 까닭에  도산시키기 어려워 계속 지원해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향후 구조조정에서는 대마를 포함해서 누구라도 부실화하면 정리해야 한다. 전환기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 위주 경제성장은 한계에 봉착했다. 중국의 추격 등을 고려할 때 기술과 전문성 등 규모 외의 경쟁력 요인이 주목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또한 금융위기가 빈번해지는 가운데 대마불사가 국가 시스템 리스크 확대를 초래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이 금융시장에서 스스로 자금 수요를 충족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금융 의존도가 높으면 한편으로는 민간금융이 위축되고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도 과연 대마 지원이 국민 부담에 걸맞은 가치를 지닐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만약 국가정책상 대마 지원이 꼭 필요한 경우라면 이에 따른 ‘이익·비용 분석’을 제시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이런 방식은 대우조선해양부터 적용하는 게 옳다.



    손대야 할 기업 2500여 개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이 ‘기업 살리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구조조정은 ‘기업 죽이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 경제가 전환기를 겪고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번 구조조정은 로비에 취약할 수 있고, 따라서 누가 나서더라도 쉬운 일이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수록 원칙과 방향에 대한 사전적 합의가 중요하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는 2014년 말 기준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한계기업(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기간이 3년 이상 지속된 기업)이 3471개, 그리고 만성적 한계기업(6년 연속 영업적자이고 자본잠식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이 2561개라고 발표했다. 이들을 향후 구조조정 대상으로 본다면, 이번 추진계획에서 밝힌 12조 원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공정한 원칙과 설득력 있는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더욱 긴요한 때인 것이다.

    앞날이 밝지도 않은 조선·해운업을 살리겠다고 정부가 두 팔 걷고 대마를 키우고 있다. 한은은 정부의 어정쩡한 선택을 제어하지 못하고 끌려만 간다. 한은 독립성을 내팽개치고 관제형 대마 키우기에 동참하는 격이라 안타깝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원칙을 지키기는 힘드니 현실에 타협하는 유연성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것이 오래된 습관처럼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원칙을 지키면서 창의적인 발상으로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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