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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강 신드롬

폭력의 세계에서 인간을 질문하다

논문으로 본 한강 작품 세계

  • 권혜린 | 이화여대 국어국문과 박사 수료

폭력의 세계에서 인간을 질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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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와 저항, 채식과 거식

에코페미니즘은 남성이 여성을 열등하게 보고 지배하는 것으로 가부장제를 꼽는데,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를 억압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를 잘 볼 수 있다. 급기야 ‘여수의 사랑’에서 보여준 가족 상실은 더 나아가 가족과 적대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이때 가정은 안락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폭력의 공간이 된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는 것은, 영혜의 뺨을 때리고 영혜에게 억지로 탕수육을 먹이며, 어릴 때 영혜를 문 개를 잔인하게 잡아먹은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나아가 ‘나무 불꽃’에서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물구나무를 서면서 나무를 형제로 보는 영혜의 모습을 이찬규·이은지는 자연과의 합일로 본다. 장명훈도 영혜가 구토와 피를 통해 동물적인 것을 거부하면서 자본주의를 벗어난다고 말한다. 채식에서 거식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자기 거부’이자 ‘저항적인 움직임’으로 보는 것은 신수정의 논문에서도 이어진다.

이를 욕망과 연결 짓는 시선도 있다. 김만석은 작가론에서 영혜의 채식은 꿈이라는 한순간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몸이 채식을 욕망하기 때문이라고 보며, 정미숙도 도살하는 현장에 대한 꿈은 존재를 바꾸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꿈을 고백하는 영혜를 신경증 환자나 트라우마를 가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가족의 관찰이 중심이 되는 상황에서 관찰자의 처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들의 독백을 통해 그들이 누구보다 예민하게 세계의 폭력을 느끼고 있다고 볼 필요가 있다.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는 어머니처럼 살까 봐 도시로 떠났지만 행복한 적이 없었고, 식물이 되어 시각·청각·후각·미각을 잃은 뒤 오히려 모든 것을 더 생생하게 느낀다. ‘채식주의자’의 영혜 역시 날고기가 씹히는 감촉과 더불어 죽어가는 목숨들의 고함과 울부짖음이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소년이 온다’는 하나의 서사로 꿸 수 없을 만큼 7개의 장이 광주를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독립적으로 담아냈다. 1장엔 동호를 ‘너’라고 지칭하는 서술자, 2장엔 유령이 된 정대, 3장엔 출판사 직원 김은숙, 4장엔 복학생, 5장엔 방직공 출신의 임선주, 6장엔 동호의 어머니가 등장하며 에필로그인 7장에는 작가의 말이 소설 속에 들어간다. 이를 통해 1980년대의 광주를 ‘증언’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증언할 수 있다면 죽음을 애도한 뒤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고, 증언할 수 없다면 증언이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논문 역시 증언이 ‘가능하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나뉜다. 그중 ‘광주는 증언이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식의 주장이 우세하다.



‘지금, 여기’의 문제

폭력의 세계에서 인간을 질문하다
먼저, 증언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살펴본다. 이숙은 광주에서 죽은 소년 동호를 기억하는 이들이 애도하면서 슬픔을 극복한다고 말한다. 특히 살아남은 자들이 기록할 때 ‘사회적 애도’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애도가 이뤄졌다는 것은 사건이 종료됐다는 뜻일 텐데, 소년이 ‘온다’는 현재진행형 제목은 광주가 아직도 ‘지금, 여기’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그 문제들을 펼쳐 보이는 다양한 목소리는 ‘광주는 무엇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게 한다.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일을 겪어도 그 사건이 개인에게 흡수되는 방식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강소희는 광주에 대해 증언이 불가능한 상황을 그리는 것은 ‘고통의 치유’가 아닌 ‘고통의 현재화’라고 말한다. 이는 검열된 대본 때문에 소리를 내지 않고 공연하는 장면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모습은 증언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움직임, 시선 등의 비언어를 통해 고통에 머무르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조연정도 광주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고문 등 육체적인 고통과 연결되기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라고 본다. 황정아도 소설이 트라우마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트라우마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전승되는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본다.

이렇게 고통을 증언하는 것은 폭력 세계에서 인간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폭력은 잘못된 것이며, 없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면서 폭력을 남의 문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그 상황에 참여하게 만들면서 폭력이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전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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