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호

Interview

“친박+반기문 대망론? 나라에 몹쓸 짓”

김병준 前 대통령정책실장의 쓴소리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07-12 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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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안동 김씨, 풍양 조씨 패거리 행태
    • 동력장치, 브레이크, 기어장치 다 고장
    • 분노와 결합한 SNS 소음민주주의(dinocracy)
    • 시민에 의한 혁명을 꿈꿔야 할 때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망국’ ‘혁명’이라는 격한 낱말을 썼다.

    “정신을 못 차리니 격할 수밖에요.”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인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사회디자인연구소·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비상 상황을 맞은 새누리당이 구원투수로 그를 영입하려 했으나 고사했다. 왜 거절했느냐고 묻자 “바꿀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분들의 진정성은 대단했습니다만…. (내가) 할 일이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亡國의 징조

    “들어가서 판을 뒤집어보지 그랬냐”고 하자 정색하고 이렇게 말했다.

    “망국의 정치를 바꿀 수 있다면 뭔들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혁신위원장이 할 게 없어요. 응집성 강한 ‘친박(親박근혜)’이라는 집단이 있고, 그 뒤엔 청와대가 있습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어떻게든 구도를 깨보려고 하더군요. ‘있는 힘껏 도울 테니 안 되겠느냐’고 하기에 ‘당신이 돕는다고 되겠느냐’고 답했습니다.”

    그래도 ‘망국’이라는 표현은 거칠지 않냐고 물었다.

    “우리가 어렵지 않은 적이 언제 있었냐고 묻겠죠. ‘친박’이니 ‘친문(親문재인)’이니 하는 행태를 보세요.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뭔지 알면 그것을 두고 패가 갈리죠. 권력 가진 사람 중심의 연합이 판을 나눠 다투는 게 망국의 징조예요.”

    그는 조선시대 세도정치에 빗대 지금의 한국 정치를 설명했다. 세력 교체가 풍양 조씨에서 안동 김씨로 권력이 넘어가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세도정치 한 자들과 똑같아요. 이완용이 나라 팔아먹은 게 아니라 세도정치 한 자들이 팔아먹은 겁니다. 망국의 역사가 세도정치에서 시작됐습니다. 19세기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개방 압력도 거세졌습니다. 세도정치 한 자들이 그때 뭘 했습니까. 권력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는 조선을 망가뜨렸고 식민지·분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몹쓸 짓을 21세기에 또 합니다. 정치권이 패거리 싸움에서 이기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어요. 세계가 빠른 속도로 바뀝니다. 경제구조가 요동쳐요. 변화에 대응하기도 버거운데 안동 김씨, 풍양 조씨가 패거리 짓고 하던 짓을 또 하는 겁니다.”



    “潘, 출마하려면 친박 밟아야”

    그는 “반기문 대망론, 충청 대망론도 한심하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반기문 총장과 5년을 함께했습니다. 얘기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도 그분이 경제정책, 사회정책에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한미·한일·한중관계에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짐작은 하지만, 그 외엔 물어본 적도 없고, 그분이 말한 적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존심도 없습니까. 대한민국 정치인은 자존심 다 팔아먹었습니까.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두고 대통령으로 거론하는 정치가 제정신입니까. 경제정책, 사회정책에 대해 반 총장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아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요. 정치인 만나면 말해보라고 해보세요. 좋다, 싫다가 아니에요. ‘친박-반기문 연합’이니 하는 것은 몹쓸 짓입니다. 나라를 위해 뭘 해야 할지는 생각조차 않고 자기 패거리가 이기는 것에만 관심을 둬서야 되겠습니까.”

    그가 덧붙여 말했다.

    “조선업이 어떻습니까. 해운업은요? 문 닫는 치킨 가게 보세요. 기업 수십만 개가 고통당합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이해는 있는지, 대책을 가졌는지도 파악하지 않고 대망론, 충청도를 말합니까.”

    그는 “반기문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요량이라면 ‘친박을 밟겠다’는 생각을 갖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친박에 올라타면 당선되기 어렵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마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반발하는 것처럼 쇼를 했죠. 한국 사회는 권력에 대한 냉소가 심합니다. 기존 권력과 붙으면 대통령 되기 어려워요. 기존 권력에 저항적이거나 자기 정치가 있어야 합니다. 친박도 반 총장에 대해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당선을 생각한다면 친박과는 다른 길을 갈 겁니다.”

    그는 패거리를 갈라 다투는 사생결단의 ‘분노 정치’와 SNS의 결합을 우려했다.

    “정치 현실이 패거리 짓기와 다름없다 보니 나라 전체에 분노의 에너지가 강할 수밖에요. SNS 여론은 즉흥적, 돌발적, 감정적입니다. 편 가름을 부추기는 ‘소음민주주의(dinocracy)’를 불러올 수 있어요. 숙의(熟議)가 없는 감정적, 돌발적, 즉흥적 의견은 민주주의의 적(敵)입니다. 민주주의가 바로 서려면 시민의 숙의가 필요해요. 숙의가 뒷받침되지 않은 직접민주주의는 위험합니다. 모바일 여론조사 등으로 공직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그는 역대 대통령의 퇴임 후를 예로 들면서 “얼마나 많은 대통령이 만신창이로 임기를 마쳐야 대통령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까”라고 반문했다. 또한 “거버넌스 구조를 바꿔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가능했던 건 왕과 막부가 분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있고 막부가 따로 있었어요. 일본의 하급 무사처럼 시민이 들고일어나기 전에는 고장 난 국가를 고치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는 “망국을 막는 길은 혁명뿐”이라고 했다. “혁명이라는 말은 격하다”고 했더니 그가 이렇게 설명했다.

    “국회는 국민이 안중에도 없고 관료집단은 보신주의에 빠졌습니다. 잘못된 구조를 고치지 않고는 국가가 바로 설 수 없어요. 시민이 세력을 형성해 거버넌스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권력의 주체와 국가 운영체제를 일신해야 해요. 숙의하는 국민이 일어서서 권력의 주체가 됩시다. 새로운 권력의 주체들이 국가 운영체제를 고칩시다. 메이지유신 때 하급 무사들이 일어난 것처럼 봉급생활자, 자영업자, 젊은이들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숙의하고 나라를 바꿉시다. 그것이 혁명입니다.”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었다”

    그가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시민들은 특정인이 대통령이 돼 국가를 바꿔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오류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아를 찾는 일에 지칠 때가 됐어요. 여태까지 메시아를 찾아봤는데 다 안 됐습니다. 시민의 세력화를 통해 거버넌스 구조의 개혁과 정책 의제의 변화를 일으키는 혁명을 꿈꾸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방정부의 보육 정책과 관련한 숙의민주주의 토론을 한다고 가정합시다. 각 지역에 학부모 단체가 여럿입니다. 각 단체에서 30명씩 회원을 모으면 300명 모으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들이 숙의를 통해 보육 정책을 제안하고 지방정부가 검토하는 겁니다.”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대학생 1500명이 10명씩 150개 테이블에 앉아 토론하는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테이블 150개를 보세요. 대학생이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고 숙의하는 겁니다. 1500명 중 누구도 누구의 메시아가 아닙니다. 모두가 메시아인 것이죠. 거듭 강조하건대 대통령은 메시아 노릇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현재의 구조에서는 세종대왕, 이순신이 맡아도 똑같아요.”

    그가 사진 1장을 더 보라고 했다.

    “학생들이 왜 자살하느냐를 주제로 대구시교육청에서 교사, 학부모, 학생 600명이 모여 숙의하는 모습입니다. 각 테이블 사회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사회자를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고 하는데 교육을 통해 양성할 수 있습니다.

    사진 속 토론과 유사한 형태의 시민회의가 수없이 만들어져 지방정부 운영에 대한 숙의, 토론을 해가면 어떻게 될까요. 각 지역의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국적 사안을 토론, 숙의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세월에…”라고 반문하려는데 그가 말을 가로챘다.

     “다들 ‘야, 그거 해서 언제 세상 바꾸냐’고 말합니다. 어렵다는 거 알지만 환경이 바뀝니다.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이 같은 제도를 운영하기가 쉬워지고 있어요. 노력과 비용이 그만큼 적게 든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온라인·모바일 솔루션을 구축하는 것도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시민회의를 실험하면서 구글의 협조를 많이 받았어요. 네이버나 다음은 관심이 별로 없더군요.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

    지역마다 100명씩 100개 그룹만 꾸려도 1만 명입니다. 지역마다 1만 명이면 전국적으로는 엄청난 시민이 참여하는 겁니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이 숙의해 내놓은 제안을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메시아는 오지 않습니다. 큰 바위 얼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시민 각자가 일어설 때라고 느껴야 합니다.

    여의도 정가의 부질없는 싸움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겁니까. 시민이 ‘이게 의제다. 청와대, 국회 헛짓하지 말고 풀어봐라’라면서 의제를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정치가 달라집니다. 거버넌스 구조와 관련해 이보다 더 큰 혁명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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