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단독 인터뷰

“영호남-충청 공동정권 문 앞에 와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입력2016-11-09 13: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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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이여, 나를 믿고 중도우파 동참하라”
    • “국회의장석 부수고, 의원 눈높이로 낮춰야”
    • “개헌한다면 국민 합의로 국민헌법 만들어야”
    • “반기문, 국내 정치 미숙한 건 분명 짐”
    • 黨·靑 상하관계 부인…“내가 박근혜 부하인가”
    정치를 혼신(渾身)으로 즐기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혼쭐이 났다. 스스로 택한 1주일간의 단식 때문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를 비난했다. 단식에 들어간 다음 날인 9월 27일 조간신문들은 1면 톱기사에 ‘정치 걷어찬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 농성’ ‘오버하는 與, 오기 부리는 野’ ‘巨野 단독국감 강행, 與 대표는 단식 농성’ 같은 제목을 뽑았다.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다. 단식은 불가항력적인 힘에 저항해서 최후 수단으로 택하는 건데, 여당 대표가 절차적인 문제로 국회의장을 비난하며 단식에 들어간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초래될 것을 이 대표는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10월 2일 오후 단식을 중단하면서 그는 ‘민생과 국가 현안을 위해 무조건 단식을 중단한다’라는 메시지를 새누리당 동료 의원들에게 보냈다. 혈압, 혈당이 크게 떨어져 쇼크 위험까지 올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건강을 염려해 단식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재수 농림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청와대가 거부한 터라 단식 명분도 사라졌다.



    “巨野 횡포 도 넘었다”

    10월 4일 오후 4시 20분께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1인실. 이정현 대표는 누워서 폴더형 2G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그의 얼굴은 약간 수척해 보였다. 동료 의원이나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기에 기자에게 병실 문을 열어준 것은 뜻밖이었다. 누워 있던 그는 기자가 들어가자 몸을 일으켰다. 몸 상태를 묻자 그는 “괜찮다, 의사가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주말까지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장기들이 조금 손상됐다고 한다. 췌장과 신장. 단식하면 뇌에 단백질이 공급되지 않아 기억력도 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뭐, 큰 변화 있겠나.”

    침대 머리맡 벽에는 지지자들의 응원 메시지가 적힌 A4 종이가 몇 장 붙어 있었다. ‘우리 순천 시민은 이정현 대표님을 사랑합니다!!!’ ‘이정현 대표님 건강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

    10월 4, 13일 두 차례 인터뷰, e메일 추가 답변 등을 통해 이 대표에게서 단식을 하게 된 실제 이유,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을 이끌어가는 것의 어려움, 차기 대선 구도, 정계 개편, 개헌, 당청관계 등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들었다.



    “조롱한 이들 위해 축복기도”

    ▼ 단식을 결행한 실제 이유가 뭔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백남기 씨 사인(死因) 논란 등의 현안 앞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정세균 국회의장을 타깃 삼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20대 국회 들어 더불어민주당의 도를 넘은 거야(巨野) 횡포가 계속됐다. 더욱이 중립적 위치에서 조정하고 협치(協治)를 이끌어야 할 국회의장이 편파적인 의회 운영을 반복했다. 거기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였다. 지난 두 달 동안 계속된 횡포다. 비상한 방법으로 나서지 않으면 20대 국회 내내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수당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과 계층이 있어선 안 된다. 야권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갖고 장관 해임 건의까지 의결할 줄은 정말 몰랐다.”

    ▼ 단식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뭐라고 보나. ‘빈손’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 정치판을 지배해온 계산과 수(手), ‘쇼’의 정치라는 시각에서 보지 말아달라. 우리 정치 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 여망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이정현식의 원칙과 진심의 정치가 달리 보일 것이다.”

    ▼ “정세균이 사퇴하든지 내가 죽든지”라고 하지 않았나. 정 의장은 사퇴하지 않았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정 의장과 야당이 횡포를 계속하는 한 모든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 단식 중 응원 메시지는 얼마나 받았나.

    “격려받기 위한 쇼가 아니었다. 격려 방문을 사양했고, 병원에서도 일반인이나 의원들의 방문을 거절했다. 야당 대표들의 조롱 섞인 논평들을 잘 읽었다. 기가 막혔지만 오히려 그분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줬다.”

    ▼ 여소야대 상황에 국회의장 중립 강화법 처리가 가능하겠나.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니 야당도 의장의 중립성을 강화하는 법에 찬성할 것이다. 모든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답이 나온다. 이번 기회에 국회의장석을 일반 의원석 높이로 낮춰야 한다. 높다란 ‘황제 의자’에 앉아 있는 국회의장은 오만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의장석은 부숴버려야 한다. 미국, 영국은 물론 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 어느 나라에도 우리 국회와 같은 황제 의장석은 없다.”

    ▼ 이 대표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국감 복귀를 요청했지만 의원들은 국감에 참여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당 대표로서 영이 서지 않은 것 아닌가. 그러다 사퇴론까지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리더십을 세워나갈 것인가.


    “억울한 사람 만들어서야…”

    ▼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생각은.

    “언론도 야당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개각은 무슨 잘못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민정수석도 잘못이 있든 없든 언제든지 교체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의혹만으로 사람을 교체하면 야당에 의한 대통령 무너뜨리기는 끝이 없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의혹만 제기해놓고 무조건 즉각 사퇴하라고 압박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까.

    “반기문 총장은 새누리당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봐도 귀하고 좋은 인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하늘을 대신해 국민이 뽑는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 선출은 경선이 원칙이다. 반 총장도 새누리당에 온다면 그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것도 치열하게. 그분이 국내 정치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점은 분명 짐이 될 것이다. 기나긴 대선 과정에서 본인과 가족, 주변 측근들에 대한 여론의 혹독한 검증도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유엔 사무총장 경험은 대선 후보로서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안보는 외교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강점을 갖고 있다. 우리 경제의 무역 의존도가 90% 이상이다. 경제 또한 외교에 크게 좌우된다. 외교가 중요한 국정이고 아무나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란 점에서 그분의 장점이 두드러질 수도 있다.”



    ‘보석 같은 존재들’

    ▼ 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다른 후보들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김무성 전 대표는 지명도나 대국민 친근감, 안보와 경제에 대한 탄탄한 경험과 소신이 큰 장점이다. 당내 지지 기반도 막강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파동에서 드러났듯 보수에 대한 신념이 명확하다. ‘오세훈법(개정 정치자금법)’이 보여주듯 정치적 강단도 만만찮고 서울시장 경력이 큰 장점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정말 합리적인 분이다. 토론에서 누구보다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경기지사 경험이 신뢰감을 줄 것이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참으로 빼어난 능력을 지녔고, 국가 가치에 대해 굳건한 소신을 가졌다. 강한 신념과 소탈하고 서민적인 면모가 최대 강점이다. 유승민 의원은 경제와 안보 면에서 매우 전향적인 개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다들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외부에서 여러 인재를 영입해 이들과 경쟁을 붙인다면 세기의 정책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이 대표는 유 의원에 대해선 칭찬 끝에 ‘여당에 있으면서 대통령을 공격해 투사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촌평을 덧붙였다.

    ▼ 이 대표의 최종적 정치 목표는 무엇인가. 차차기 대선 출마?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국가 미래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직책이다. 목표해서 가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민심이 등 떠밀어야 되는 자리지, 인기에 영합하는 언동으로 일시적 지지율에 홀려 넘볼 자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 개혁을 통해 국회와 정치인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나 같은 ‘무(無)수저’(흙수저도 없을 만큼 가진 게 없다는 뜻) 출신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고,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는 따뜻한 사람이란 평을 듣고 싶다. 그것이면 족하다.”



    ‘돌발상황’ 온다면?

    새누리당은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 1년 6개월 전에 대표직을 그만둬야 한다. 차기 대선이 1년 2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니 이 대표에게 차기는 무의미한 걸까. 그에게서 재치있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그 규약은 그리 엄격한 건 아니다. 내가 만약 당직이나 당 대표직을 활용해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엄격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항상 돌발상황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럼에도 정말 나는 뜻이 없다.”

    ▼ 정말 그런 돌발상황이 온다면?

    “돌발상황이 안 와야지.”

    이 대표는 요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의 순기능을 강조하고 다닌다. 10월 8일 전북 축산농가와의 간담회에선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이 법이 앞으로 우리 호남 출신들, 인사에 억울하게 불이익을 받아온 많은 이에게 확실히 (인사 청탁의) 고리를 끊어줘 매우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지역감정 자극 발언이라는 비난도 따랐다.

    “김영란법이 축산농가와 수산업, 음식점 등 몇몇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구체적 사례와 영향을 봐가며 보완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법 덕분에 대한민국 사회에 대변혁이 올 것이다.

    법의 취지는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금지다. 인사 청탁이 없어지면 힘없는 사람들, ‘빽’ 없고 줄 없는 사람들도 실력 있으면 승진하고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입찰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란법은 금융실명제보다 더 우리나라를 청정 사회로 만들 것이다. 보완할 것은 보완하되 전체적으로는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자평한다면.

    “민생을 최우선에 두고 활동하고 있다. 당내에 파벌싸움 대신 화합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본다. 원외 위원장의 당무 참여 등 총동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다른 이들에게 의견을 많이 구하고 많이 의지한다. 섬기는 정치로 새누리당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사랑을 반드시 되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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