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지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어설픈 대응을 지진 빈발국 일본은 어떻게 봤을까. 지진 대비에 어느 나라보다도 철저한 일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국도 앞으로 지진이 잦아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인터넷으로 속보를 챙겨 봤다. 무너진 담, 깨진 창문, 부서진 기왓장, 긴급히 대피하는 사람들…. 경기도에 있는 처갓집에서도 진동을 느꼈다는 말을 듣고 위력을 실감했다.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가 크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과 한국의 震度 차이
그런데 지진의 ‘규모’만 발표되고 지역별 ‘진도(震度)’가 공개되지 않은 걸 보고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진이 났을 때 해당 지역 주민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는 규모가 아니라 진도다. 규모가 커도 깊은 땅속이나 먼 곳에서 일어났다면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지진의 규모는 지진으로 분출된 에너지 크기를 의미하기에 어느 장소에서나 같다. 반면 진도는 실제로 땅이 흔들린 정도를 뜻하기에 지역마다 다르다. 일본에선 지진이 나는 즉시 지역별 진도를 발표한다. 그리고 진도 4 이상이 예상되는 지역엔 기상청이 휴대전화로 알람 메시지를 보낸다. 조치가 워낙 빨리 이뤄지다 보니 진원(震源)에서 먼 곳엔 지진의 진동보다 메시지가 먼저 도착할 정도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국 기상청은 초기 보도자료에서 규모만 발표하고 진도에 대해선 “쿵 하는 소리와 건물의 흔들림이 감지됐다”고만 했다. 이것만 보면 어느 정도 위력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서너 시간이 지나 날이 바뀐 후에야 경주·대구는 진도 6, 부산·울산·창원은 진도 5였다고 발표했다. 이미 상황이 일단락된 뒤였다.
이튿날 일본인 몇몇과 어울리는 자리가 있었다. 경주 지진이 화제에 올랐는데 “진도가 5, 6인 지역도 있었다”고 하니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특파원을 지낸 일본 기자는 “인터넷에서 한국의 지진 사진을 봤는데, 진도 5~6이라고 보기엔 피해가 크지 않았다. 측정을 잘못한 건 아니냐”고까지 했다.
그 말을 듣고 4월 일본 구마모토(熊本)에서 경험한 지진이 생각났다. 당시 규모 6.5의 강진(强震)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구마모토에 갔다가 한밤중 호텔에서 규모 7.3, 진도 6의 지진을 만났다. 자정 무렵 기사 마감을 마치고 잠이 어렴풋하게 들었을 때인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침대가 흔들렸다. 나동그라지지 않도록 침대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가족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기자도 이상하다 싶어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일본과 한국은 진도의 단위가 다르다고 했다. 한국은 미국 등과 함께 진도 1~12로 구분된 메르칼리 진도를 사용하고, 일본은 0~7로 분류하는 독자적인 진도 기준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경주가 진도 6이었음에도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 경주 지진은 일본 기준으로 치면 진도 4쯤인데, 이는 도쿄에서 1년에 한두 번 경험할 수 있는 진도의 지진이다. 필자가 구마모토에서 겪은 지진은 한국 기준으론 진도 9에 해당한다.
“한국, 안전지대 아니다”
바로 다음 날 일본 정부기구 지진조사위원회 위원장인 히라타 나오시 도쿄대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7월 울산 인근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강진 가능성’을 예고한 학자다.히라타 교수는 먼저 도쿄대와 서울대 연구진의 공동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과거 데이터를 보면 한반도에서도 100년, 200년마다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발생했고 규모 7.5의 지진이 발생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자료엔 강원 양양, 삼척 인근에서 1681년 6월 규모 7.5의 지진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총 12차례 발생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는 “한반도에선 최근 20∼30년 동안이 비교적 지진이 많지 않았던 시기”라며 “따라서 앞으로 지진이 잦아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히라타 교수가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지진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전 세계 강진의 20% 이상이 일어나는 일본인지라 온갖 노력을 해봤지만,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지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수도권에서 규모 7.0 이상의 직하형(直下型) 지진(단층이 상하·수직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지진. 내륙형 지진이라고도 한다)이 30년 내 일어날 확률이 70%”라고 경고하지만, 이것 역시 과거 자료에 근거한 예상일 뿐 정확히 언제 지진이 날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히라타 교수는 “한반도는 일본 열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진 발생이 적고, 규모가 큰 지진일수록 드물다. 이를 감안하면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만큼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살면서 한 번은 강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비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전문가 1500명 對 50명
히라타 교수와의 인터뷰는 공교롭게도 경주 인근에서 규모 4.5의 여진이 난 다음 날 신문 지면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국내 학자 일부는 한반도에 ‘규모 7.0 이상의 지진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반론을 내놨다.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취지라고 이해하면서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대비책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일본에서 지진 관련 취재를 하면서 느낀 것은 한 마디로 ‘준비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총리가 주재하는 중앙방재회의가 정기적으로 열려 준비 상황을 점검한다. 또한 큰 지진이 발생하면 즉시 비상재해대책본부나 긴급재해대책본부를 만들어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하며 대응한다.
정부 산하엔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가 설치돼 있는데, 내년도 지진 조사연구 관련 예산 요구액이 146억 엔(약 1600억 원)에 달한다. 반면 한국 국민안전처의 연간 지진 관련 예산은 10억 원에 불과하다. 일본엔 그 밖에도 국토지리원이 운영하는 지진예지연락회, 기상청이 담당하는 지진방재대책강화지역판정회가 있고, 국책 연구소 중엔 방재과학기술연구소와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등이 지진 조사 연구 및 대비를 담당한다.
민간 전문가도 많다. 일본 지진학회가 추산한 지진학 연구자는 전국적으로 약 1500명에 달한다. 지진 전문가가 50여 명 수준인 한국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도쿄대 지진연구소를 비롯해 10여 개 대학에 지진 연구 관측 조직이 있다
내진설계도 철저하다. 일본은 가장 강한 진도 7(한국 기준 10∼12)의 지진이 닥쳐도 당분간 버틸 수 있는 집이 10채 중 8채쯤 된다. 특히 학교 등 공공기관은 100% 내진설계가 돼 있다고 봐도 된다. 또한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이 일어난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해 일주일 동안 전국적으로 재해 대비 합동훈련을 실시하는데, 아베 신조 총리도 매년 참석한다. 지자체에선 저마다 일러스트가 포함된 매뉴얼을 주민에게 배포한다. 이 중 도쿄(東京)도에서 나눠주는 ‘도쿄방재’ 책자는 내용이 충실해 경주 지진 이후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다음 지진 때는…
물론 일본이라고 처음부터 지진 대비가 철저했던 건 아니다. 1978년 미야기(宮城)현 앞바다에서 큰 지진이 나 가옥이 대거 파손되자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했고, 1995년 고베(神戶)대지진 이후 전국적인 활성단층 조사를 실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엔 쓰나미(지진해일)와 원전 대책을 강화했다.이번 지진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한마디로 어설펐다. 하지만 지진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만큼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경주 지진의 교훈을 어떻게 살려나갈지 정부와 언론, 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으면 다음 번 지진 때도 이번처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