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차기’ 주목 지자체장 연쇄 인터뷰

“정권교체 요구, 거역하면 뒤집힌다”

박 / 원 / 순 서울시장

  • 전진우 | 언론인 jinukys@naver.com

    입력2016-11-09 13: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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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이 특권 사유화 눈감아줘”
    • “충청 대망론?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가”
    • “개성공단 10개쯤 만들면 경제정체 극복”
    • “‘큰 거 한번 해보라’ 요구에 흔들리면 안 돼”
    • “내가 걸어온 길이 나를 말해준다”
    성남 분당에서 서울시청으로 간다. 지하철 분당선을 타고 왕십리역에 가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탄다. 지하철 환승하고 걷고 하자면 한 시간 반은 잡아야 한다.

    수원에서 왕십리를 오가는 분당선은 늘 붐빈다. 오전 9시 30분께. 출근시간을 넘긴 시간대이지만 승객들로 빼곡하다. 분당선 열차가 지나는 수원·용인·성남 권역의 인구가 300만을 훌쩍 넘어섰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서울에서 빠져나왔거나 밀려난 사람들은 그래도 매일같이 서울로 향해야 한다. 일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빗발이 듣던 날 아침, 지하철 안 풍경은 잿빛이다. 그래서였을까. 승객들의 무덤덤한 얼굴 위로 피곤이 묻어난다. 몇몇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하나같이 힘들어 보인다. 문득 세상이, 이 나라가, 풀라는 문제는 풀지 않고 낙서만 가득 해놓은 숙제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 오늘의 화두는 ‘숙제장’으로 하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서울시장은 조선시대로 치면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다. 한성판윤은 정2품 벼슬로 육조 판서, 의정부 좌·우 참판과 더불어 ‘9경(九卿)’으로 불리는 고관 자리였다. 지금의 서울시장도 장관급인 국무위원으로 옛 판윤에 못지않다. 아니, 1000만 인구에 1년 예산만 24조 원(2016년, 순계기준)에 달하는 거대 도시 서울의 수장이니 한성판윤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시장 집무실은 무슨 커다란 작업장 같다. 방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은 서울시 구별 지역 현안과 정책모음이 담긴 파일로 가득하고, 맞은편에는 한양도성 성곽마을을 표시한 대형 지도가 걸려 있다. 시장 집무용 책상과 기다란 회의용 탁자가 각각 하나씩이고, 구석에는 작은 사다리와 손수레가 동그마니 놓여 있다.





    권력은 절대적 봉사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여러 자리에서 내년 대선 출마를 묻는 질문에 확답을 피했다. “아직 국민의 시간표가 나오지 않았다”거나 “시대의 요구가, 국민의 부름이 내게 향하는지 고민하고 있다”며 넘어갔다. 같은 답이 나올 빤한 질문을 거듭할 필요는 없다. 그에게도 나름의 시간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이든 물어야 한다. 내년 대선과 박원순이 별개라면 성남에서 서울까지 먼 거리를 달려올 까닭이 있겠는가. 분당선 지하철에서 떠올린 화두를 꺼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될 의향이 있느냐, 권력의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줄곧 미소를 띠고 있던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대권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전근대성, 비민주성, 공직의 이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군요. 권력의지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셨을 때 몇 권의 책이 나왔는데, 그중에 교황님의 트위터 글을 모은 책이 있어요. 거기에 이런 말이 있지요. ‘Power is absolute service’, 권력은 절대적인 봉사이다…. 저는 권력의지가 개인의 야망과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그런 의지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언급하신 것처럼 낙서로 가득한 숙제장 같은 나라의 현실, 방향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에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헌신하고자 하는 정신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이러한 얘기가 타당한 것이냐, 그런 식으로 과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나라, 우리 국민 다수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은 바로 절대봉사의 기본자세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행태가 당파적, 패거리식이어서 더욱 그렇지요. 정당, 정파가 다르다고 옳은 얘기를 옳다고 하지 않고 옳은 정책도 무조건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독일을 보세요. 독일의 동방정책은 아무리 여야가, 집권세력이 바뀌어도 그 정신과 원칙이 변함없이 지켜지고 그 위에 경험과 역사가 축적되면서 마침내 독일 통일을 이뤄내지 않았습니까. 그에 반해 우리는 분열과 갈등이 너무 심한데 그것의 원천은 사적(私的) 권력에 대한 탐욕이라고 봅니다. 대권이나 권력의지 같은 말도 그런 탐욕의 표현이지요.”

    틀린 말이 아니라고 (현실에서) 다 맞는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좋다, 독재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강한 지도자를 원치 않던가. 정치는 얼굴이 두꺼워야 하고 권력자에게는 독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면서 누구누구는 대통령감으론 약하다는 말을 흔히 입에 올리지 않던가. 누군가 그랬다. 박원순의 이름이 ‘원철’이었으면 좋겠다고. ‘원순’이 여자 이름 같아 너무 약하게 느껴진다는 이유였다. 누군가의 농담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으나 비슷한 뜻으로 운을 떼었다. 그의 낯빛이 살짝 붉어졌다.   


    水可載舟 亦可覆舟

    “제가 말한 봉사하는 권력을 약한 심성, 약한 의지와 등치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서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라의 제단(祭壇)에 던지고 걸 수 있는 내부의 힘, 내공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가 곧 실체는 아니다. 허우대 멀쩡한 사내가 권력의 눈초리 한 번에 납신 엎드리지 않던가.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에 원순이라는 여자 같은 이름(한자로는 元淳이다)을 가졌다지만 박원순은 결코 ‘약한 남자’가 아니다. 대학 1학년 때 데모를 하다가 제적을 당하고도 사법시험을 패스하고 인권변호사에 시민단체 활동가를 거쳐 서울시장에 이른, 그가 살아온 길은 약한 심성, 약한 의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정권교체 의지도 강하다.  

    ▼ 그동안 세상을 바꾸려면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야권후보 단일화가 정권교체의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요조건은 되겠지요. 그런데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같은 이는 이미 집권여당 세력과 제1야당의 주류세력을 모두 극단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과는 결코 함께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과연 야권후보 단일화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요.

    “국민을 믿어야 합니다. 제가 두 번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지난 5년 동안 서울시장 하면서 확고해진 것은 국민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국민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지 않아요. 개인, 개인은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집단지성으로서의 국민은 위대합니다.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라. 물이 백성이고 국민이며,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통합이나 단일화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통합이나 연대, 단일화라는 것이 정파적 관점에서 고려된다면 저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민심에는, 도도히 흐르는 국민의 강에는 흘러가는 방향이 있기 마련이지요. 내년에는 정권교체라는 국민의 큰 요구가 있고 그에 순응하는 사람은 성공할 것이고 거역하는 사람은 전복될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와 관련해 이른바 ‘충청 대망론’ ‘충청+TK 연대론’ 등이 거론됩니다. 이 또한 내년 대선에서 주요 변수가 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대망이고, 누구를 위한 연대입니까. 특정 정치인,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공학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정치인들끼리 독식하고 나눠 먹는 정치에 국민은 절망하고 있어요. 대망을 만들고 연대를 구축하는 주체는 마땅히 시민이고 국민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방향을 바로 세우고 퇴행하는 정치를 되돌릴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 역시 결국 시민의 힘, 국민의 힘입니다.

    정치권에서 놓는 주판은 그 계산이 맞지도 않고 맞을 수도 없다는 것을 지난 4월 총선 결과가 보여주지 않습니까. 이제는 국민권력시대로 바뀌어야 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지방에, 풀뿌리 시민에게 분산해 우리 사회에 정치가 국민을 두려워하는 구조적 제도적 틀을 확보해나가야지요.”     

    ▼ 민심이 지난봄 총선에서 기적처럼 야대여소를 만들어준 것인데, 그 후 야당이 보여준 게 있습니까. 정치란, 특히 야당은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보여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오늘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데는 집권여당이 제 할 바를 제대로 못 한 데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도대체 여당 대표가 단식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치를 희화화할 뿐이죠. 그렇다고 야당이 지난 총선에서 드러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고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 네 가지의 불[火]이 우리의 발등에 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불평등의 불, 불공정의 불, 불안전의 불, 불통의 불이 그것입니다. 그 불들을 꺼달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인데 정치는 불을 끄기는커녕 오히려 부채질하는 격이고 야당도 똑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당장 해야 할 일은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는 국민 가까이 다가가서 경청, 공감, 위로하고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서울시장 5년 해보니 현장에 늘 답이 있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다 답이 있지요. 그런데 그 일을 안 하고 있잖아요. 표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 대통령은 요즘 자꾸 비상시국이라고 합니다. 비상시국이니 시끄럽게 굴지 말고 모두가 단합해야 한다고 합니다. 동의합니까.

    “비상시국인 거야 맞지요. 문제는 비상시국을 만든 게 누구냐는 것입니다. 대통령 되신 지가 벌써 4년이 다 돼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비상시국을 자초한 분이 마치 언론이나 비평가처럼 논평이나 하는 것은…. 오히려 진솔한 사과와 자신의 책임을 이야기하고 모든 정치세력과 국민에게 함께 나아가자고 요청해야 할 때에 누구를 비난하고 공격해서 자기 책임을 모면하려 한대서야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는 리더십을 제대로 행사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논평이나 해서야…” 

    ▼ ‘민맹(民盲) 정치’라고 했는데, 그게 우리 정치의 총체적인 모습인가요.   

    “제가 인용하기 좋아하는 러시아 속담에 ‘황제는 너무 멀리, 신은 너무 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르 체제 아래서 러시아 민중이 도탄에 빠진 상황에서 황제도 신도 응답하지 않는다는 세태를 풍자한 속담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우리 정치가 똑 같습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눈을 감은 민맹 정치입니다.

    많은 국민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고 있잖아요. 백남기 농민 사건도 그렇고, 세월호, 남북 문제도 예외는 아니라고 봅니다. 안보는 곧 민생입니다. 평화의 체제를 만들어내고, 남북교역을 통해 개성공단을 10개쯤 만들어내면 경제성장의 완전 정체상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를 살리는 힘이 남북 문제 해결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모든 견제수단, 지렛대를 잃어버린 채 논평이나 하듯이 적대감을 토로해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요.”  

    ▼ 서울시장으로서 그동안 현장 중심의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줬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박원순의 정치력은 구청장 수준”이라는 비아냥도 들리던데 어떻게 봅니까.



    “여의도의 문법은 국민의 문법과는 다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내 삶의 고통을 해결해달라, 민생 문제를 해결해달라, 경제 문제를 해결해 달라, 혼란과 불안을 소통의 힘으로 평화롭게 만들어달라,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게 해달라는 거잖아요.

    제가 서울시장을 하면서 내내 주위에서 듣는 게 확실하게 큰 거 한 번 해보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정치와 지방자치가 더 이상 그런 소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임기 내에 큰 거를 보여주려면 토건, 전시 행정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과거에 그렇게들 해왔고 지금도 큰 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정치인, 지자체장이 꽤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 국민은 이제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원하고 있지요. 고도성장 시대에 익숙했던 토건, 성장, 효율성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 안전 중심, 그동안 도외시해온 가치에 주목하고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제는 거대 담론이나 총론이 아닌 구체적인 각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학, 실용의 시대가 돼야 합니다. 문제 해결은 하지 않거나 못하면서 몸짓을 크게 하고 목소리나 높이는 것이 정치력입니까. 소통과 협치를 통해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력이자 리더십이지요.”



    국민 문법, 여의도 문법

    ▼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의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흐름에서 공의(公義)와 공익 질서가 사라지고, 그것이 사회공동체의 분열과 반목, 절망을 심화시키는 근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합니다. 세상을 바꿔내려면 공동체의 공적 가치부터 회복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국민이 아닌 개인의 특권으로 도구화했다는 의혹이 전방위로 불거졌음에도 대통령이 이를 눈감아주는 나라입니다. 사법정의를 실천해야 할 검사가 120억 주식 비리를 저지르는 나라입니다. 수도 서울의 단체장에 대한 제압문건을 만들고 사찰을 하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공의와 공익 질서를 논하는 것조차 낯이 뜨겁지요.

    과거 개발과 성장의 사회에서 무분별하게 확대된 신자유주의, 1%를 위한 승자독식의 룰과 기득권 세력의 특권과 반칙, 불통하면서도 견제 받지 않는 중앙집중적 권력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99%를 위한 새로운 룰의 역사를 써나가야 할 때입니다. 숲을 살리려면 썩은 나무를 뽑는 일이 기본이지요.

    특히 신뢰가 추락한 검찰, 국가정보원을 개혁해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가능, 불가능을 따지기 전에 반드시 해내야 할 이 시대의 과제입니다. 다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있나요. 공직 비리 수사야말로 권력에서 독립, 분리된 조직이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참여연대 때부터 공직 비리는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통해 감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요. 지금이 바로 공직 개혁의 골든타임입니다. 야당이 국정감사 후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설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압니다. 이번 논의가 민주주의의 후퇴를 저지하고 헌법 질서를 바로 세울 기회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화가 민생이다, 경제다”

    ▼ 조금 전 “안보는 곧 민생”이라고 했습니다. 안보는 또한 정치 아닙니까. 남북관계 악화와 민주주의 퇴행의 상관관계라든지 애국-종북의 프레임이 정권 안보에 일정 부분 기여해온 점 등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현재의 안보 위기와 남북 문제에 대해선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 안보와 경제성장은 보수가 잘한다는 신화가 있었습니다. 보수정권이 선거 때마다 애국-종북 프레임을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이지요. 그러나 보수정권 8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안보가 좋아졌고, 경제가 나아졌습니까. 안보는 일촉즉발의 위기이고 경제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물론 야당이 이를 비판하고 비난만 할 수는 없습니다. 안보와 경제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정책, 실천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 앞에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핵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기본 원칙이지요.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모험주의적 행동에 대한 단호한 압박과 대응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로 무장하고 우리는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무한대치 구도는 한반도 평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에 역효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평화가 곧 민생입니다. 평화가 경제입니다. 이제 안보에도 적대적 공존을 넘어선 평화공존의 새 룰이 필요합니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뿐 아니라 과거 보수정부에서도 평화 공존의 컨센서스로 접근한 바 있잖아요.

    그러나 현 정부는 이를 부정했고 결국 냉전시대보다 더 후퇴한 한반도 위기상황을 초래한 것입니다. 북한 주민은 우리와 민족공동체입니다. 사상 최악의 수해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주민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 정부가 좀 더 자신감을 갖고 길게 내다보면 좋겠습니다.”

    ▼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은 어떻게 봅니까.         

    “사드가 북한 핵 대응의 본질적 해법인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사드의 성주 배치로는 수도권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지 않습니까. 미국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혈맹국이고, 중국은 경제적 외교적으로 전략적 협력이 필요한 국가입니다. 따라서 사드 배치가 미국과 중국의 양자택일 문제로 비치는 것은 중대한 외교적 실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드 배치는 안보와 외교, 나라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국회의장도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았다고 했을 정도로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됐습니다.”    

    ▼ 정부로서는 애당초 공론화하기 어려운 처지가 아니었을까요.

    “늦게라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중심으로 국론을 모아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헌법에도 안보 관련 사안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요. 단합된 국론만큼 강력한 안보 자산은 없습니다.”


    토건에서 사람 중심으로

    ▼ 서울시정 5년의 성과를 꼽는다면.

    “무엇보다 지난 5년은 속도가 아닌 방향, 형식이 아닌 내용의 관점에서 서울시정의 패러다임을 바꿔간 시기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시정의 목표를 도시의 외적 성장이 아닌 시민의 삶을 기초로 한 시민행복에 두었습니다. 즉, 토건사업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 한두 개 거대 프로젝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대신 사람 중심, 시민 행복, 미래 비전에 중점을 둔 것이죠. 과거 토건경제는 급속한 성장을 이뤄낸 반면 불평등 사회의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양적 성장, 성장주의 국가발전 전략에서 벗어나 사람에 투자하고, 멈춰 선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서울시는 그동안 7조5000억 원이 넘는 채무를 감축하면서도 복지 예산을 4조 원에서 8조 원으로 늘림으로써 20만 명의 고용효과를 냈습니다. 임대주택 8만 호를 공급하고, 국공립어린이집 1000호를 개원하고, 청년수당을 비롯해 20개 정책 패키지로 구성된 ‘서울형 청년보장’으로 절망적인 청년의 현실에 희망의 동아줄을 던지고자 했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꿈꾸는 세상, 대안적 세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이 기사의 앞머리에 시장 집무실 풍경을 짤막하게 스케치했는데, 빠뜨린 게 있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의 기울어진 책장’인데 왼쪽과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책장은 빈부격차, 노사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우리의 현실을 상징한다고 한다. 기울어진 책장 가운데에는 역삼각형의 작은 책장이 중심을 잡고 있는데 이는 양극단을 조정하고 연결하는 시장의 책무를 의미한단다.

    서울특별시가 펴낸 ‘서울백서(2015)’를 보면, ‘안전역’ ‘온정역’ ‘희망역’ ‘환경역’ ‘창의역’ 같은 낱말이 눈에 띈다. 각각 안전한 도시, 따뜻한 도시, 꿈꾸는 도시, 숨 쉬는 도시, 열린 도시를 뜻하는 조어(造語)들이다. 기울어진 책장이든 만든 낱말이든 모두가 박 시장의 머리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원순은 이렇듯 궁리가 많은 사람이다. 과거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할 때에도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그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일을 즐기다 못해 일에 중독된 사람이다.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그러니 서울시정 5년 동안 한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해가 걸린 일에나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하기에 사람들은 박원순의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보다는 ‘큰 거 한 방’에 관심이 있는지 모른다. 서울시장 이명박 하면 ‘청계천’이고 오세훈 하면 ‘세빛 둥둥섬’인데 박원순에게는 그런 게 없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은 서울시민 다수가 두 번씩이나 시장에 뽑아준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의 사람 중심, 생활밀착형 리더십에 동의하는 시민도 많을 거라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 가장 아쉬운 점은.

    “지난 5월의 구의역 사고지요. 구의역 사고는 ‘사람특별시’의 원칙을 되돌아보고 뼈아프게 성찰해야 했던 사고였습니다. 사고의 이면에는 비정규직, 갑을사회, 하청사회 등 여러 구조적 원인이 도사리고 있었어요. 그 원인을 분석하고 서울의 시스템과 행정의 체질을 실질적으로 바꿔나가는 작업을 일부 완료했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반대하고 비난만 하다가…”

    ▼ 청년수당 문제도 논란이 많았지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냐, 아니냐를 떠나 서울시나 성남시 등 일부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에서나 가능한 복지정책으로 확장성에 한계가 있지 않으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재정자립도의 문제가 아니죠.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쓴 돈이 5조 원입니다. 그런데도 청년실업률이 10.3%까지 올라갔어요. 체감 실업률은 30%에 이르고요. 그렇다면 이 정부가 돈을 잘못 썼다는 얘기 아닙니까.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제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청년 당사자들로부터 2년 동안 다양한 얘기를 듣고 찾은, 현장에서 길어낸 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두고 허심탄회하게 깊은 논의를 한다면 서울시 정책에 100% 공감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결국 정부도 비슷한 정책을 내놓았잖아요. 문제는, 신중한 검토도 없이 반대하고 서로 비난하다가 다른 이슈가 나오면 해결도 안 됐는데 그냥 넘어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풀라는 문제는 풀지 않고 낙서만 가득한 숙제장이 되고 마는 것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TV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의 공격을 받은 박원순 후보가 몹시 당황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당시 그는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내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억울함과 야속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났고, 박원순은 이제 다시 자신의 역할을 변경하려 하고 있다. 시대의 요구가, 국민의 부름이 그에게 향할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결국은 여론의 총합으로 나타난 국민의 뜻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대개의 정치인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지지와 비판, 옹호와 비난이 뒤따른다. 박원순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가 ‘깨끗한 척’ ‘정의로운 척’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왠지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으레 그렇듯 악의적 풍문과 부풀려진 소문이 거부감을 부채질한다. 조금 더 들어가면 대한민국에서 행정가형 지도자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에서부터 예의 대통령감으로는 약할 것 같다는 인물평이 따른다. 이 또한 박원순이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다.



    “원순이 년 나와라”

    아무튼 그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당사자에게 묻기로 하자. 박원순이 말하는 박원순은 누구인가.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곧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권변호사로서,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늘 낮은 곳에서 인권을 위해, 공익을 위해, 사회혁신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은 1000만 도시 서울의 시장이라는 ‘소셜 디자이너’로서 시민 삶의 실질적 변화와 행복을 만들려 노력해왔습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늘 듣던 말이 ‘네 입에 밥 들어갈 때, 다른 사람 입에도 밥 들어가는지 살펴라. 네가 편히 잘 때 다른 사람도 편히 자는지 살펴라’였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씀은 저 박원순의 삶을 규정하는 말이 됐지요.

    물론 저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많은 허물과 잘못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언제든 있을 수 있고 바람직하지요. 정치적인 반대도 그러려니 할 수 있습니다. 2년 전엔가 저를 보고 종북좌파라고 하던 무슨 어르신들이 서울시청 앞으로 몰려와 ‘원순이 년 나와라’라고 한 적이 있지요. 원순이란 이름만 보고 여자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 어쩌겠어요. 허허, 웃을 수밖에요.

    그러나 저를 공격하는 일부 세력의 악의적이고 집요한 비난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군요. 제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만 해도 그렇습니다. 4년 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 검증을 했고 이듬해 검찰에서 무혐의임을 밝혔습니다. 그 후 소송을 해서 열일곱 차례나 사법부의 판단을 받고 끝난 사안인데도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물고 넘어지고 있습니다. 일일이 대응하기조차 힘겹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드러나게 돼 있고, 저는 언제나 진실의 편이 돼주시는 시민, 국민과 함께할 것입니다.”  

    전 진 우


    ● 1949년 서울 출생
    ●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 198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저서 : 장편역사소설 ‘동백’, 소설집 ‘하얀행렬’ ‘유쾌한 인생’,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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