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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판사 정재민의 리·걸·에·세·이

여기, 사람이 있어요

  • 글·사진 정재민 | 판사, 소설가

여기,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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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판사의 일에 대해 쓰려 한다. 판사의 일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검사나 변호사의 일은 법정 드라마 등을 통해서 꽤나 알려져 있다. 법정 드라마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늘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외모가 멋지다. 젊다. 좋은 차를 탄다. 밥도 술도 비싼 데서 먹는다. 멋진 상대역 배우와 키스도 한다.

반면 판사는 엑스트라다. 간혹 조연 자리까지 올라간 경우도 있지만 영락없이 악역이다. 늙수그레하다. 좋은 차도, 밥도, 술도, 키스도 없다. 그저 법대(法臺) 위에 병풍처럼 앉아 있을 뿐이다. 그것도 화장실 가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판사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멋진 화면을 충분히 뽑아낼 수 없을 것이다. 사무실에서는 책상머리에서 읽고 쓰기만 반복하고 법정에선 법대 위에서 묻고 듣기만 반복하니까. 드라마 속 검사처럼 범인과 격투를 벌이기를 하나(물론 판사가 법정에서 격투를 벌이는 드라마를 굳이 만들려면 만들 수야 있겠지만, 시청자는 “지금 대체 뭐 하자는 거지?” 할지는 몰라도 멀쩡한 법정 드라마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드라마 속 변호사처럼 법정을 들었다 놓는 감동적인 변론을 펼치기를 하나(물론 판사가 장광설을 늘어놓는 드라마를 굳이 만들려면 만들 수야 있겠지만, 졸음은 몰라도 감동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판사의 표정과 일하는 모습이 단조롭다고 해서 내면도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서는 증권거래소 못지않게 분주한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이 내면의 풍경을 제쳐놓고서 겉모습만 훑으며 판사의 일에 대해 말했다고 할 수는 없다. 내면 풍경을 촬영할 수 있는 MRI 같은 기계가 없는 이상 그 양상을 소개하려면 이렇게 판사 개인이 내면의 독백을 할 수 밖에 없다.

판사의 내면 풍경은 법정 풍경과 연동돼 있다. 법정에도 풍경이 있다. 획일적인 직사각형 공간이지만 사람마다, 사건마다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판사의 일에 대해서 말하는 이 글은 결국 법정 풍경과 내면 풍경에 대한 중첩적 스케치가 되는 셈이다.

내 법정의 풍경이 다른 법정들의 풍경과 현격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내면의 풍경은 다른 판사들의 내면과 사뭇 다를 수 있다. 전국 3000명 법관의 법복은 같아도 그 속의 가슴까지 같을 리 없으니까. 내 마음도 모르는 아둔한 나는 타인의 속을 다 헤아리지도 못한다. 내가 다른 판사들을 대표할 자격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이야기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광장의 벽에다 내 이야기를 적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과 민망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판결문을 쓸 때에는 법과 판례 뒤에 내 가치관을 엄폐시킬 수 있다. 소설을 쓸 때에는 허구로 자의식에 모자이크 처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글은 필자의 알몸과 밑천을 노출한다. 수치스러운 부분을 미화하려고 갖은 문장으로 분칠을 시도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싸구려 가발처럼 티가 난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는 일말의 가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글이 타임캡슐같이 법정이라는 우리 사회 한구석의 모습을 담아두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기록에 인간 본성의 한계와 보편성을 가늠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소박하고도 정직한 증언을 남기고 싶다. 법정에도, 감옥에도, 법복 속에도,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는.



법정에 나가는 것을 출정이라고 한다. 재판 시간이 되면 법복을 입고 사무실을 나서 법관 전용 통로로 들어선다. 제각기 다른 사건들이 진행되는 소리가 들리는 법정 사이를 걷고 있으면 평행우주 사이에 난 웜홀을 통과하는 기분이 든다. 등 뒤에서 철문이 열고 닫히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교도소 복도를 걷는 기분도 든다. 각 법정 앞에는 경위가 서서 법관을 기다린다.



出廷

판사와 목례를 나눈 경위는 먼저 법정 안으로 들어가서 구령한다. “모두 일어서주십시오.” 법관 전용 문의 손잡이를 돌리며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들이 일어서느라 웅성거리는 소리,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면서 침묵이 흐른다.

법정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돌아서서 문을 잠근다. 재판 중에 누가 불쑥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대 위로 오르는 계단 두 개를 디딜 때 나무판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법정 전체로 퍼져나간다.

판사가 법대 위에 오를 때의 기분은 가수가 무대 위에 오를 때와는 같을 수 없다. 무대 앞 관객들은 가수를 향해 우호적인 박수를 쳐주지만 법정 방청객들은 판사를 향해 날카로운 판단의 화살을 쏜다. 우리 국민은 호랑이다. 불의한 권위에는 호락호락 굴복하지 않는다. 최고권력에 대해서도 그러하니 판사의 권위와 판결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승복할 리 없다.

재판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검사, 변호사, 법원 직원들도 판사를 냉정하게 평가한다. 법정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판단받는 사람은 판사인 셈이다. 그런 법정에서 판사가 인격과 실력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것은 폭풍 속에서 비닐우산 하나로 비를 그으려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이다. 결함 많은 인간으로서 법정에 들어가는 것이 해가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는 이유다.


엄숙한 인사

법대 가운데까지 걸어가서 앞을 향해 돌아선 후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법정에 나온 사람들이 안녕할 리 있겠는가. 입가에 미소를 띠지도 않는다. 물론 눈웃음을 치거나 손을 흔들지도 않는다. 장례식에 조문 온 사람같이 엄숙한 표정을 유지한다.

이런 식의 인사가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다. 친근감 없이 인사한다는 것이 분노 없이 화내는 것처럼 이상했다. 그럼 판사가 친근하게 인사하면 되지 않으냐, 인상 쓰고 앉아 있는 것보다 친절할수록 좋지 않으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적어도 형사법정에서는 판사가 친절한 것이 어색할 때가 많다. 가령 판사가 친절하게 강간 사건을 재판한다고 가정해보자. 피고인이 들어오면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 한껏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어서 오십시오, 피고인.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간죄 저지른 거 인정하십니까. 네,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해자에게 사과를 드리고 용서를 구하면 더 멋진 분이 되지 않을까요. 아, 싫으시다고요? 미안합니다. 괜한 오지랖이었군요. 그럼 징역 10년에 처합니다. 지금부터 법정구속하겠습니다. (감옥으로) 안녕히 가십시오. (감옥에서) 잘 지내시고요. 다음에 또 뵙길 바랄게요….

인사를 마치면 검은 의자에 앉는다. 자동안마 기능이나 호신용 전기충격 기능 따위는 물론 없다. 다만 발밑에 지압판이 있는 경우는 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한여름에 선배들은 두꺼운 법복이 주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찬물이 담긴 대야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고 한다.

검은색 서류 홀더를 펼치고 메모지 뭉치를 끄집어낸다. 오른편에 놓인 필통에서 연필을 꺼낸다. 플라스틱 필통에는 연필 네댓 자루가 키 순서로 가지런히 들어 있다. 연필심은 막 이발을 마친 머리칼처럼 단정하게 깎여 있다. 꽁무니에는 동그란 지우개가 매달린 연필들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글쓰기로 유혹해왔다.

필통에 든 파란색 골무도 왼손 엄지손가락에 끼운다. 골무는 연필과 함께 판사의 양대 장비다. 골무는 지문이 있는 쪽에 수십 개의 돌기가 도돌도돌 붙어 있어서 기록지를 촤악, 촤악, 촤악 흥이 나도록 빠르게 넘기면서도 딱 한 장씩만 넘어가도록 제어해준다.

법대는 독서대처럼 판사 쪽을 향해 조금 경사져 있다. 그 위에 노트북, 모니터, 마이크, 대법전 등이 놓여 있다. 노트북을 자주 사용하는 판사도 많지만 나는 급히 판례를 찾을 때를 제외하면 열지 않는다. 논리적 필연성은 없지만 왠지 온라인 접속이 오프라인으로 직접 대면하는 것을 산만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어서다. 대신 증인신문을 할 때에는 노트북 오른쪽 옆에 비스듬히 세워진 모니터를 자주 본다. 속기사가 타이핑을 하는 화면이 그대로 뜨기 때문이다.



탕, 탕, 탕

한복 단추만한 마이크는 기린의 목처럼 쭉 뻗은 받침목 끝에 매달려 있다. 받침대 위 스위치를 누르면 검정 마이크의 테두리를 따라 빨간불이 켜진다. 나는 목소리가 낮고 쉽게 잠기는 편이라 마이크 성능에 예민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까지 들리는 마이크라면 옥타브 폭이 넓은 가수가 된 것처럼 목소리만으로도 현장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대법전은 법대 양편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대법전은 머그잔 높이보다 두껍고 무게는 덤벨 정도 되는 하드커버 책이다.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가장자리에 있어 사용할 때에는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어 들고 와야 하는 만큼 (그러면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란다) 잘 쓰지 않는다. 사실상 장식용인 셈이다.

드라마 속 판사들은 판결을 선고하고 난 뒤에 반드시 망치질을 한다. 탕, 탕, 탕.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 번씩 친다. 그러나 진짜 법정에는 망치가 없다. 진짜 검사에게 권총이 없는 것과 같다.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면 망치를 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판결문의 주문과 낭독한 주문이 불일치할 때에는 판결문이 아니라 실제 낭독한 대로 효력이 생긴다. 가령 판결문에 “피고인을 징역 10년에 처한다”고 써서 보냈다고 해도 법정에서 판사가 실수로 “피고인을 징역 10개월에 처한다”고 말하면 실제 형기가 징역 10개월이 되는 것이다. 사건이 워낙 많다보니 간혹 이런 실수가 생길 때도 있다. 피고인으로서는 횡재한 셈이지만 일주일 이상 좋아하기 어렵다. 검사가 반드시 항소기간 일주일 내에 항소하기 때문이다.



정 재 민
●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연수원 수료(32기)
● 前 舊유고유엔국제형사 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   
● 제10회 세계문학상, 제1회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 수상
● 저서 : ‘보헤미안랩소디’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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