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고 5년 전 대선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노무현 정부 출신 측근들이 일제히 빠진 건 아니다.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경수 의원, 경선 룰 협상에서 대리인 노릇을 한 황희 의원 등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이다. 박범계·전재수 의원, 최재성·노영민·오영식 전 의원 등도 ‘노무현의 사람들’이었다.
문 전 대표는 이들을 중용하면서 다른 계파도 포용했다. 정세균계 전병헌 전 의원, 박원순계 임종석 전 서울시정무부시장, 손학규계 전현희 의원, 이해찬 의원과 가까운 김태년 의원 등을 끌어들였다.
윤곽이 드러난 문재인 캠프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당 중심이다. 2012년 대선 때 ‘용광로 캠프’를 지향했지만 실제론 캠프 내 ‘비선(秘線)’ 논란이 일어났던 점을 의식한 결과다. 둘째, DJ(김대중 전 대통령) 계열 전진 배치다. 지지율 확보가 급선무인 호남의 민심을 얻기 위한 전략이다. 셋째, 전문가 그룹으로 대규모 자문단을 꾸렸다. 정책에 약하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서다.
‘문재인 캠프’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비선의 존재 여부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선 ‘3철 논란’이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실세’로 통했던 이호철·전해철 전 민정수석,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의 입김이 캠프의 방향을 좌우했다는 지적이었다.
부산 챙기는 이호철과 정재성

문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들 중 한 분(이호철 전 수석)은 여러 해 전에 부산으로 내려가 지내고 있다. 제게 비선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3철 중에서 이호철 전 수석을 제외한 ‘양철’은 여전히 문 전 대표의 문고리 실세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전해철 의원은 당 최고위원으로서 캠프에 합류하지 않은 채 문 전 대표와 당 지도부의 가교 노릇을 한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경선 캠프 비서실 부실장 자리를 맡아 문 전 대표의 메시지를 관리한다.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직 주요 당직자 A씨는 “이호철 전 수석은 정치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2012년에도 캠프 일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 문재인을 깎아내리기 위해 일부러 ‘3철’ 프레임을 만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은 완전히 손을 뗐다. 전해철은 최고위원, 양정철은 비서실에 공식적으로 들어갔으니 ‘비선’이란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호철 전 수석이 문 전 대표 캠프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에 머물면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게 문 전 대표의 측근 B씨의 귀띔이다. 최근엔 부산지역 경선을 총괄해줄 사람을 물색하기도 했다고 한다.
B씨는 “문 전 대표가 가장 믿고 신뢰하며 가장 어려울 때, 중대 결심을 할 때 의논하는 인물은 부산에 있는 비정치권 인물 두 사람”이라며 “바로 이호철과 정재성 변호사”라고 했다.
당 중심으로 꾸려진 선대위
이 전 수석은 부산 해운대의 ‘바보주막’을 아지트로 삼아 부산의 선거조직을 막후에서 챙기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보주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과 야당 성향 인사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만든 것으로 전국 곳곳에서 문을 열고 봉하 막걸리를 판다. 상호 ‘바보’도 ‘바보 노무현’에서 따왔다.정재성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다. 문 전 대표가 변호사 시절 만들었고, 노 전 대통령도 일했던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변호사로 있다. 정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막후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 전 대표가 부산에서 행사를 치를 때 정 변호사의 부인이 의상 코디를 해준 적도 있다고 한다.
야권 인사 C씨는 “문재인의 막후 조력자라면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영화배우 문성근 씨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문성근 ‘백만송이 국민의명령’ 상임운영위원장은 지금은 정치권을 떠났지만 외곽에서 조용히 문 전 대표를 돕는다고 한다.
문 위원장은 2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반기문, 황교안 3행시 3종’이라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삼행시를 각각 두 편씩 공개했다. 그가 공개한 삼행시는 야권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를 밀어주자는 내용을 담았다.
대선후보 경선을 준비하면서 온전히 공적 라인에만 기댈 수는 없다. 문 전 대표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그룹, 외곽 지원그룹을 꾸려나가고 있다. 공적 라인의 핵심부는 경선 선거대책위원회다. ‘문재인 대선후보 경선 캠프’의 주요 인사는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 공식 발표된 내용도 있지만, 취재 결과 선대위 참여가 확실한 인물들도 포함됐다.
◇ 선거대책위원장 전윤철 전 감사원장,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 선거총괄본부장 송영길 의원
◇ 상황실장 강기정 전 의원
◇ 공보라인 김경수 대변인, 박광온 의원, 김종천, 조한기
◇ 비서실 임종석 비서실장, 양정철 부실장
◇ 메시지 신동호 전 당대표실 부실장
◇ 일정관리 송인배 전 양산지역위원장
◇ 전략본부 전병헌 본부장, 최재성(온라인전략)
◇ 조직본부 노영민 본부장, 백원우
◇ 정책본부 홍종학 본부장
◇ 홍보본부 손혜원 본부장
◇ 소셜미디어본부 정청래 본부장
전윤철 전 원장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노무현 정부에서 감사원장을 역임했다. 광주 출신인 김상곤 전 교육감은 문 전 대표가 당 대표일 때 혁신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송영길 총괄본부장은 전남 고흥 출신의 4선 의원으로, 당내 86 출신 의원들의 맏형으로 꼽힌다.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김용익 원장과 진성준 부원장이 이끈다.
“2012년엔 얼떨결에 후보”


2012년 대선 당시 선대위 기획본부 상임부본부장을 지낸 이재경 전 대변인은 “그때와 지금의 문재인 캠프는 인적 구성이나 운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4·13 총선 당시 김종인 비대위 대표체제에서 당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결국 김종인 전 대표도 문재인 캠프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 정권교체에 기여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 2012년과 2017년의 문재인 대선 캠프는 뭐가 다를 것 같은가.
“사실 2012년에는 당 중심으로 대선을 치른 게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건 확실하다. 문 전 대표도 의지가 확고하다. 자문단은 말 그대로 자문만 하는 거고.”
▼ 당 중심이라는 건 결국 선대위 중심으로 가고 비선, 이런 건 안 만든다는 의미인가.
“그때도 당내 캠프, 선대위 외에 다양한 형태의 캠프들이 밖에서 만들어졌다.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났다. 당에서 총력전을 펴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번엔 본선에 들어가면 당이 무조건 앞장서는 방향으로 문 전 대표가 구상하고 있다고 직접 들었다.”
▼문 전 대표가 2012년과 달라졌다고 보나.
“이제는 문재인 자기 역량으로 자기 정치를 하는 쪽으로 확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엄밀히 말하면 2012년엔 얼떨결에 후보가 되어버린 거 아닌가. 그때는 이해찬 전 총리가 역할을 많이 했다고 봐야겠지. 혁신과통합 이런 쪽에서 온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많이 했다. 그때는 본인의 정치력이나 리더십이라기보다는 친노와 가까운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구도였다. 지금은 다르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대표를 영입한 일에서도 변화된 모습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반대했지만 본인이 결단을 내리고 동시에 전권을 줬다. 이게 본인 정치를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었다.”
문 전 대표 진영에선 공약 개발 등 정책 입안을 주도할 별도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구성도 완료 단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소장을 맡았고,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자문위원장으로, 한완상 전 한성대 총장이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900명에 달하는 싱크탱크

여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인사 60여 명으로 구성된 문 전 대표의 자문그룹 ‘10년의 힘 위원회’도 2월 14일 출범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가 상임고문을 맡았다.
문 전 대표는 출범식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갔던 분들이 정권교체와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대의 앞에 다시 모였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내고 정권을 맡으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무게감 있는 장·차관 출신급으로 자문단을 구성함으로써 문 전 대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준비된 대통령’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겠다는 전략이 묻어 있다. 문 전 대표가 “우리가 정권교체로 만든 새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잇는 제3기 민주정부”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현직 장관급 인사들도 속속 합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윤덕홍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변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 조연환 전 산림청장, 오정희 전 감사원 사무총장, 안종운 전 농림부 차관, 김칠두 전 산업자원부 차관, 이진순 전 한국개발연구원장, 김대유 전 경제수석, 조순용 전 정무수석, 김진우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김세옥 전 경호실장, 문원경 전 소방청장, 김창순 전 여성가족부 차관,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 서범석 전 교육부 차관, 김흥걸 전 국가보훈처 차장,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 김성진 전 여성부 차관, 이삼걸 전 행정안전부 차관, 염상국 전 경호실장, 남영주 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사무처장.
1차로 발표된 이들과 함께 새로 21명이 ‘10년의 힘 위원회’에 동참할 예정이다. 문 전 대표 측은 “추가 자문단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 인사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라며 “당사자들과 조율이 끝나는 대로 추가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2차 발표를 위해 문 전 대표 측에서 접촉 중인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 박경재 전 서울교육청 부교육감, 최경수 전 국무조정실 정책차장, 오영호 전 산업자원부 차관,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 이명수 전 농림부 차관, 최정섭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김호영 전 외교부 차관,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 양천식 전 한국수출입은행장, 강대형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이승우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곽결호 전 환경부 장관, 문창진 전 보건복지부 차관, 우형식 전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남인희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남기명 전 법제처 처장, 박재영 전 국민권익위원회 사무처장, 박봉규 전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진익철 전 서초구청장
야구인에서 만화가까지 외곽 지원

그러나 지금의 문재인 캠프는 1차 캠프다. 민주당 경선에서 문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된다면 캠프가 다시 꾸려진다. 이때는 지금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선 캠프에 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원조 친노들이 속속 가세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선 노무현의 사람들이 문재인 캠프와 안희정 캠프에 각각 갈라져서 들어가 있지만 그들이 다시 합류할 수 있는 셈이다.
지금 안희정 캠프의 주축은 2002년 대선 당시의 ‘부산팀’과 여의도 금강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금강팀’이다. 15년이 지났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안희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으론 이병완 전 비서실장, 윤태영 전 대변인, 황이수 전 행사기획비서관, 여택수·윤원철·이정민 전 행정관 등이 포진해 있다. 노무현의 오른팔로 불린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참여하고 있다. 서갑원 전 의원도 ‘노무현 맨’이다. 친노 인사 상당수가 문재인보다는 안희정을 돕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들이 경선 후 문재인 캠프에 합류할 경우 ‘도로 친노’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안희정 캠프 사람들은 선별해서 받아들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아울러 문 전 대표가 공을 들여 영입한 인사들이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있기 때문에 추가 인물 영입에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4·13 총선 당시 영입 1호였던 표창원 의원은 박 대통령 누드 패러디 파문으로 당직권 정지를 당했다. 대선을 앞두고 1호로 영입했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부인(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의 유죄판결과 5·18 발포명령 관련 발언으로 자문단에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