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부터 드라마나 영화에
- 국선변호인이 종종 등장해 일반인의
- 호기심을 자아낸다. 한편으로
- ‘국선(國選)’이라는 수식어에선
- 왠지 형식적 변호인일 것 같은
- 선입관도 든다. 기자 출신
- 국선전담변호사가
- 말하는 그들만의 보람과 애환.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피고인이 구속돼 있거나, 미성년자 혹은 70세 이상이거나, 농아자 또는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등의 경우) 혹은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변호인이 있어야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건에서 피고인이 변호인을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을 때 국가에서 피고인에게 변호인을 붙여준다. 그런 변호인을 국선변호인이라고 한다. 국선변호인 중엔 국선전담변호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반 국선변호인도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국선 사건만 전담하도록 각급 법원이 위촉하는 변호사다. 위촉 기간에는 원칙적으로 일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 반면 일반 국선변호인은 다른 사건도 수임하는 보통의 변호사가 국선 사건도 하는 경우인데, 소속 지방변호사회를 통해 국선변호사 예정자 명부에 등록해 당번처럼 국선 사건을 배당받아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수행하는 사건 수에 관계없이(그러나 적정 건수가 정해져 있긴 하다) 일정 금액을 법원에서 월급으로 받는 반면(그렇지만 공무원은 아니다), 일반 국선변호인은 자기 사건을 하면서 국선 사건당 소정의 금액을 받는다.
국선전담 vs 일반 국선
‘피고인’에서 딸과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검사 박정우(지성 분)를 돕는 서은혜 변호사(유리 분)가 일반 변호사로서의 국선변호인이 아니라 국선전담변호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서 변호사가 재위촉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설정 때문이다. 국선전담변호사로 선발되면 각급 법원에선 그들을 2년 계약직으로 위촉하고, 계약이 끝난 후 다시 계약을 2년 연장할 수 있는데 이를 ‘재위촉’이라고 한다.매년 법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에 대한 평가를 해서 변론이 불성실했다든지 국선전담변호사로서 품위를 잃은 행동을 했다든지 등의 이유로 평가가 좋지 않으면 재위촉 심사에서 탈락한다. 재위촉은 두 번 할 수 있고, 그래서 총 6년(2년+2년+2년)을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할 수 있다. 반면 일반 국선변호인은 개별 국선 사건을 맡는 것에 불과하기에 ‘위촉’이라는 게 없다.
한편 드라마에서 서 변호사가 재위촉 심사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한 건 변론이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되레 그 반대였기 때문으로 그려진다. 열정과 정의감이 넘치다 못해 좌충우돌하는 캐릭터인 서 변호사는 억울해하는 피고인을 위해 검사실에 몰래 들어가 자료를 훔치기도 하고, 단순 절도사건을 5시간째 변론하기도 한다. 서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진행하는 재판장들은 그가 필요 이상으로 증인을 신청하는 등 재판 진행을 방해한다고 여겨 나쁜 평가를 한다. 그러다 어떤 변호사도 맡지 않으려는 박정우의 국선변호인을 맡게 되면서 재위촉 심사를 간신히 통과한다는 게 드라마의 설정이다.
일반인에겐 그럴듯해 보일 수 있으나 현직 국선전담변호사가 보기엔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적지 않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서 변호사가 피고인 박정우로부터 변호사 선임계를 받는다는 설정이다. 박정우는 처음엔 서 변호사가 가져온 변호사 선임계에 서명하길 거부하다 서 변호사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사건을 맡긴다. 이런 설정이 현실과 맞지 않는 이유는 국선변호인은 선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에게 자기 사건을 맡기는 것을 변호사 ‘선임(選任)’이라고 하는데, 선임은 개인이 원해서 선택한 사선(私選)변호인에게 해당되는 말일 뿐이다. 국선변호인은 선임할 수 없고, 선정(選定)될 뿐이다.
피고인이 자기가 원하는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달라고 요구할 순 있지만 법원은 재판부 사정에 따라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되고, 현실적으로는 피고인의 국선변호인 선택권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령 자신이 원하는 변호사를 법원이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준다 해도 그것은 선정이지 선임은 아니다.
국선변호인에겐 피고인 선택권이 아예 없다. 피고인을 만나보고 그 사건을 맡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없고, 견해와 소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임하는 등의 권한이 사실상 제약된다(피고인이 국선변호인을 모욕하거나 해서 신뢰관계가 깨진 경우 등 극히 예외적으로 선정 취소를 요청할 수 있다). 그래서 국선변호인에겐 의뢰인이란 게 없다. ‘피고인’에서 박정우가 검사 시절 서 변호사에게 “서 변호사가 왜 만날 지는지 알아요? 바로 의뢰인 말을 믿기 때문이죠”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대사도 현실과 맞지 않는 셈이다.
‘선임’과 ‘선정’
이처럼 쌍방 의사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채 만나는 국선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에선 일반 사선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그 관계에선 피고인 측이 변호인을 선택할 수 있다)에서보다 신뢰가 덜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의 의사가 배제된 관계라는 틀이 오히려 법률전문가로서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수임료를 받지 않기에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법률전문가의 지위에서 사건에 대해 자유롭게 전문가다운 의견을 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내가 아는 변호사 중에 검사 전관 변호사 밑에서 고용 변호사로 10년 정도 일하다 국선전담변호사가 된 분이 있는데, 그분이 “국선전담변호사가 돼보니 이제야 정말 변호사가 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 인기가 높아진다고는 하지만(2016년 국선전담변호사 선발 경쟁률은 10대 1에 달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형사사건만 하는 단점을 지녀 변호사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지는 않기에 나는 그분의 말이 의아하게 들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사선변호인으로 일할 때는 수임료를 받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자백을 권유하기 어렵고 피고인이 원하는 대로 재판 진행을 해야 했는데, 국선전담변호사는 법률전문가로서 냉정하게 수사기록을 평가한 의견을 피고인에게 얘기해주고 그 의견을 토대로 재판 진행에 관해 논의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었다. 의뢰인 처지에서 변호사란 한편으로는 ‘내게 없는 전문성을 지니고 내 일을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내 돈을 받고 내 일을 해주는 사람’이기도 한데, 전자보다 후자의 지위가 더 높은 경우가 많은 최근 변호사업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 그분의 말이 전혀 과장은 아니다.
매월 25~28개 사건 배당
사건을 맡아 변호하다보면 드라마 속 박정우 사건처럼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건이 있다. 시간과 에너지는 제한돼 있으니 그 사건과 다른 사건을 똑같은 강도로 열심히 할 순 없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대충 한 다른 사건의 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이 성의가 없다는 둥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국선변호인이 항상 성의 없는 변호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떤 피고인에겐 정말 열심히 해서 무죄를 받아준, 자기 일처럼 온몸을 내던진 그 국선변호인이 다른 어떤 피고인에겐 한두 장짜리 부실한 변론요지서만 내고 사건을 끝내는 성의 없는 변호인일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늘 두려움이 있다. “이건 간단한 사건이야, 피고인이 억울하다고 하지만 증거가 확실하잖아”라고 판단해 대충 변론한 사건인데, 진실이 그 반대에 있는 경우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말이다.
실제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위험한 물건으로 폭력을 행사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피고인이었는데, 그 사건에 적용된 법률 조항엔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만 있었다. 피고인은 집행유예 결격자라 유죄로 인정되면 실형을 선고받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증거를 보니 유죄가 확실한 것 같아 첫 상담 자리에서 “부인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 자백하고 반성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형(刑)이라도 좀 적게 받자”고 했는데, 피고인은 화를 내며 나가 사선변호인을 선임했다. 수개월간 증거조사를 한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기억이 선하다. 그 피고인이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능력이 되고 그 변호사가 열심히 했으니 망정이지 내가 그 변론을 맡았다면 억울한 옥살이를 시킬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그 피고인에겐 내가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국선변호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일명 ‘장발장법’으로 불리던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중 상습절도 가중처벌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변호사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내가 맡은 국선 사건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해 최종적으로 위헌 결정을 받은 사건이었다. 언론에선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변호사가 국선전담변호사라는 사실을 내세워 ‘10초 변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성의한 국선변호인은 옛말이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앞서 얘기한 그 피고인이 언론 보도에 나온 국선변호인이 자기 사건을 그렇게 성의 없이 대하던 그 변호사인 걸 알면 뭐라고 할까. ‘대충 해도 되는 사건이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피고인을 떠올려보면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저절로 자세가 고쳐지곤 한다.
기자와 법조인
나는 대학 졸업 후 지방 일간지에서 15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출범한 2010년 로스쿨에 입학했다.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된 사람 중엔 나이가 많고 과거에 다른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꽤 많은데, 나도 그중 한 명인 셈이다. 종종 “왜 법조인으로 변신했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사실 무슨 대단한 배경이 있었던 건 아니다. 종이신문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나이 들어서도 안정되게 직업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로스쿨 제도가 생긴다고 하니 큰 고민 없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에 진학한 것이다. 어찌 보면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해야 하겠다.법조인이 되고 보니 기자와 법조인은 ‘팩트(사실)’를 좇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기자가 좇는 사실과 법조인이 밝히려고 애쓰는 사실은 여러 면에서 다르긴 했다. 예컨대 사실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가 달랐다. 기자에게 사실은 ‘찾아내야’ 하는 것인 반면 법조인에게 사실은 법적 가치와 논리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사실을 다루는 시간의 차이도 극과 극이다. 기자는 사실을 손에 넣은 후 가능한 한 빨리 알려야 하므로 때론 분초를 다투며 사실에 접근하는 반면, 법조인은 기본적 사실이 충분히 알려진 후 법적 책임을 따지는 뒷수습 과정에서 사실을 정립한다. 탐구하는 사실의 종류도 다르다. 기자는 사회적 파장이 큰 일의 사실에 관심을 두지만, 법조인은 개인의 사적인 사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런 차이점이 있지만, 기자로서 팩트를 탐구하던 습관이 변호사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점에서도 나는 시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변호사 업무 중에서도 국선전담변호사를 하게 된 건 공익적인 일을 한다는 ‘고매한’ 가치도 물론 마음에 들었지만 ‘영업에 자신이 없어서’라는 현실적 이유도 컸다. 국선전담변호사를 해보니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 외에도 늦은 나이에 변호사가 된 나 같은 사람에게 국선변호인 업무는 매우 잘 맞는 일이어서 더 다행스러웠다. 젊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바로 변호사가 된 엘리트보다 15년간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이다.
국선전담변호사가 만나는 피고인 중 상당수는 합리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고, 억지 주장을 늘어놓으며,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이다. 교육 수준이 현저히 낮고(문맹인 사람도 여럿 만났다), 어려울 때 부탁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전혀 없고, 그렇게 경제적·사회적 불안이 계속되다보니 타인과의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분노 조절이 잘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국선전담변호사에게 애환을 얘기해보라면 소통이 힘든 사람을 대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것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러나 국선변호인으로서 느끼는 그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국선전담변호사가 갖는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니라면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국선전담변호사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어느 대선배 국선전담변호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외로움과 고단함의 밑바닥에 떨어진 백성들’의 변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