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더십 부족으로 떠나는 사람들
- 실행방안 없는데 “나는 잘할 수 있어요” 강요
- 도대체 새 정치는 뭔가…국민적 피로감
- 7년차 참신성 떨어져…박찬종 문국현 뒤안길
그러나 한때 그도 ‘대세’였고, 대선이라는 시험에선 ‘재수생’이며, 20대 총선이라는 큰 무대에서 당 대표로 38석의 제3당을 이뤄냈다. 제1야당 대표를 지낸 정치 지도자이자 명실상부한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서 대선 승리를 자신하고 있으므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라도 삐딱한 시선으로 날카로운 검증의 칼날을 들이댈 필요가 있다.
2012년 첫 도전에서 대선 정국을 주도했던 안철수가 왜 2017년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제18대 대선 1년여 전인 2011년, 서울대 교수(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신분이던 안철수의 실질적 정치행보가 시작됐다. ‘국민 멘토’라 불리며 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엄청난 기대와 지지가 생겨났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었다.
사람 이름 뒤에 ‘현상’이 붙는 초유의 상황은 가히 ‘안철수 신드롬’이라 할 만했다. 그해 가을 안철수는 오세훈의 사퇴로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로 거론된다. 지지율 ‘5% 박원순’에게 ‘45% 안철수’가 양보하면서 일약 대선주자로 발돋움한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한 2012년 9월까지 현실정치에 발을 들이고도 그는 1년여간 정당에 몸담지 않았고, 어떤 정치적 방향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그를 아끼던 원로 멘토들은 “정치를 하려거든 국회의원부터 해보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대선에 출마했고, 무소속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선거 당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뒤 4개월 만에 노회찬의 지역구였던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당선돼 정치에 복귀한다. 단순한 초선이 아닌 ‘유력 대선주자의 복귀’였기에 그에겐 많은 질문이 따라다녔다. ‘누구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독자 창당을 할 것인가?’ ‘기존 정당에 몸담을 것인가?’
‘새 정치를 하겠다’는 한마디로 버티기엔 정치적 무게감이 컸고, ‘애매모호함’은 안철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후 독자 정당 창당 선언→새정치추진위원회 발족→창당 작업이 진행될 무렵 갑자기 2014년 4월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했고, 김한길과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에 취임하고는 7·30 재보궐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던졌다.
그로부터 1년 반 뒤인 2015년 12월 13일 탈당 선언과 두 번째 창당 착수를 감행한다. 천신만고 끝에 이듬해 2월 국민의당을 창당, 4·13 총선에서 38석의 제3당과 정당투표율 2위(26.74%)의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총선 과정에서 벌어진 ‘홍보 리베이트 사건’의 어정쩡한 대응으로 지지율은 급락했고, 결국 6월 말 ‘책임지는 정치’를 명분으로 대표직에서 내려오면서 대선주자 지지율도 바닥을 친다. 2016년 11월 1일 10.7%, 12월 1일 8.0%, 2017년 1월 1일 6.5%, 2월 1일 10.9%를 기록 중이다(리얼미터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고).
2016년 하반기부터,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휘몰아치며 대선 시계가 빨라진 2월 현재까지 안철수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필자는 오랫동안 그가 보여온 정치행보를 되짚어보며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 또는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즉, ‘안철수 불가론’의 근거를 몇 가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안철수에게는 사람을 끄는 리더십 또는 매력이 약하다. 본인이 성취한 의사, 벤처기업가, 대학교수로서의 다양한 업적,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양보정신 등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그것은 뛰어난 개인으로서 안철수의 능력이었다. 정치의 공간에서 성공은 혼자만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룰 수 없다. 사람, 인사를 통해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그와 함께했던 사람 중에는 그를 등지거나 그에게 비판적으로 바뀐 사람이 꽤 많다.
최근 문재인 캠프 선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린 전 감사원장 전윤철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공천관리위원장 겸 윤리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목포 출신 전윤철을 영입한 것은 문재인 캠프의 호남 대응 전략으로 분석된다. 인재 영입 분야에서도 공성전(攻城戰)을 전개해야 할 안철수 캠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당 장악 실패
둘째, 소통 능력과 정치력이 부족하다. 안철수가 대통령 박근혜와 더불어 문재인 세력을 비판할 때 흔히 ‘패권정치 청산’을 내세우는데, 이것은 ‘공정’이라는 화두와 함께 안철수의 대표적 구호다.따라서 안철수는 누구보다 ‘반패권 정치’에 앞장서야 하고, 계파정치를 배격해야 한다. 그럼 무엇으로 당내 입지를 다지고 대선주자로서 자리매김할 것인가. ‘소통’에 기반을 둔 정치적, 정책적 공감대를 높여나가는 길밖에 없다.
지난 연말에 치러진 국민의당 경선 과정은 ‘안철수 정치’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안철수는 그와 가까운 김성식을 정책위의장으로 밀었고, 결과는 대패였다. 그와 호남 의원들의생각과 갈 길이 다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안철수도 충격을 받았던지 칩거설이 불거졌다.
1월 15일 전당대회 이전에 있었던 시·도당위원장 경선 과정에서도 당 조직의 중·하부를 담당하는 시·도당 위원장들 중 안철수 측근 인사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안철수의 당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창당 후 1년 동안 안철수의 당을 만드는 데 실패한 셈이다.
최근 통합한 손학규는 이런 틈을 파고들 게 분명하다. 안철수는 이재명의 돌풍, 안희정의 도약에도 결국 문재인이 당내 경선에서 이길 것이라 보고 ‘안철수 vs 문재인’ 대결을 상정했다. 민주당의 구조가 ‘문재인의 당’임을 알고 있는 안철수로서는 당 장악력이 뼈아픈 대목이자 안철수의 정치력 부재 증명서다.
‘호남 의원’들의 생각
안철수의 이력에서 강조하는 것이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다. 반면 민주당에서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밀린 호남세력이 안철수를 ‘이용’ 해 독자 생존의 길을 확보했다는 비판도 있다. 안철수로서는 그런 비판을 불식하면서 호남 민심을 업고 호남 의원들을 묶어서 가야 한다.그러나 안철수와 호남 의원들은 고비마다 생각과 지향점이 달랐고, 이제 당내 호남세력은 손학규를 보고 있다. 손학규와의 예선은 안철수의 목표 달성에 1차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어차피 차기 정권은 연정(聯政)이 필수이고 보면 당내 소통은 물론 ‘적과의 동침’에도 능한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안철수가 지난해 연말 주승용을 직접 만나 자신이 지지하는 김성식과의 원내대표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출마 포기’를 종용했다는 보도(2016년 12월 31일 채널A 보도)가 사실이라면, 타도의 대상인 ‘낡은 패권정치’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전직 당 대표 자격으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대선 공약성 정책을 쏟아낸 2월 6일, 당 소속 교육문화관광위원장인 유성엽은 관례에 없는 안철수의 연설에 대해 “손학규, 정운찬 등에게 문호가 열려 있다고 공언한 것과 모순된다”고 그 부적절성을 비판했다.
또한 전 의원 장성민이 평당원으로 입당해 당내 대선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당은 입당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어느 지지자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재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은 안 대표의 측근인 초선의 비례대표 김삼화 의원이다. 누구에게나 당의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는 선언이 궁색해 보인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안철수의 정치’가 국정을 감당할 만한 그릇인지에 대한 국민적 평가의 근거들이 될 것이라 본다.
금기어 된 ‘새 정치’
셋째, 확실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가 한동안 주창했던 ‘새 정치’는 이제 정치권의 금기어가 됐다. 아직도 안철수의 새 정치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안철수의 정책적 지향은 ‘공정경제’를 거쳐 ‘4차 산업혁명’과 ‘교육 혁명’으로 뻗어가고 있으나 ‘어떻게 하겠다’는 실행 방안보다는 사회적 요구 과제를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고 강요하는 측면이 강해 보인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구호를 통해 초기 정치적 방향을 심플하게 설명했지만, 정작 사드 배치 반대 당론을 관철했다가 슬그머니 ‘사드 배치 결정을 돌이키기 어렵다’고 입장을 선회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넷째, 국민적 피로감이다. 안철수는 정치 ‘외부인’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정치인이다. 외부인사로 정치권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았다가 실패하고 사라져간 정치인은 ‘우유 같은 남자’ 박찬종과 ‘유한킴벌리’ 문국현을 들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등장 당시에는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으나 확고한 지지 기반과 정치 자산을 만들지 못하고 쓸쓸히 정치 무대에서 내려갔다.
안철수가 정치 언저리에 나오기 시작한 지도 어언 7년째다. 한국 정치는 늘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아 새 인물에 열광했다. 최근 안철수의 낮은 지지율은 국민의 피로감이 반영된 결과다. 안철수는 늘 진지하고 열심히 하지만, 우리 국민은 한 정치인에게 그렇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도 이제 기성 정치인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다섯째, 정치적 기본기 부족이다. 정치 영역에서 안철수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대선주자로 등장해 국회의원이 됐고, 창당을 추진하다 민주당과 합당해 당 대표가 됐고, 4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기간 안철수는 “한 달이 10년 같다”고 했다. 박찬종은 안철수에 대해 ‘웃자랐다’고 평했다. 재선 의원에 불과하지만 그는 국회의원이 아닌 당 대표나 대통령후보로 지내왔다. 박찬종은 일갈했다.
“국회의원이면 대정부 질문이나 법안 발의 등 의정활동을 통해 경륜을 쌓아야 한다. 참모가 써준 것을 읽는 수준, 즉석 질문을 받고 답변할 배짱과 순발력이 없는 것은 문제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안철수는 기자들의 즉석 질문에 잘 답하지 않는다. 말실수에 대한 두려움이나 개인의 스타일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언론을 통해 본인의 진심과 실력을 알려야 할 절박함이 있는 대선주자의 행동은 아니다.
‘정치는 생물과 같다’
대선 시계가 빨라지면서 안철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준비의 핵심은 교육이며 교육혁명 추진을 위해 학제 개편을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교육정책을 대선의 주요 정책적 포인트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교육문화관광위원으로서 안철수 ‘의원’에 대한 출입기자들의 평은 박하다. 지난 가을 국정감사 때 미·K재단 설립을 통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정유라 이화여대 특혜입학,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 정국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교문위에서 ‘교문위원’ 안철수는 보이지 않았다.‘회고적 투표’인 총선에 비해 ‘전망적 투표’ 성향을 보이는 대선이라지만, 그가 걸어온 발자국을 살피는 것은 2017년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을 선택하는 주요 기준일 것이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오를 때도, 내릴 때도 있다. 신경 쓰지 않고 최종 승리를 자신하는 안철수의 배짱과 부지런히 대권행보를 하는 모습은 훌륭하다. 정의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은 안철수를 평하길, ‘거의 정치인이 다됐다’고 했다.
2011년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었을 때 안철수는 누구와의 가상대결에서도 진 적이 없는 천하무적이었다. 그때의 선거 구도는 상식 대 비상식이었고 안철수 강세의 원인은 도덕성, 배려, 진정성,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열정, 공동체에 기여하는 봉사정신 등이었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촛불 집회에 참석한 민심은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상식 대 비상식’이다.
안철수는 국민의당 예선을 거쳐야 한다. 본인이 만든 당의 대선주자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안철수가 이겨내고 ‘안철수 대 문재인’의 본선 구도를 만들어 최종 승리를 거둘지는 지켜볼 일이다. ‘정치는 생물과 같다’, 박지원이 즐겨 쓰는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