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노무현 정신 이어받기
- 다윗 캠프지만 비전과 소신으로 도전
- 균형감, 안정감으로 점수 얻어
-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야권 대선후보가 되려면 호남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역대 4번의 대선에서 호남 1위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안 지사가 주말 목포·광주 지역을 1박 2일 일정으로 찾은 이유도 호남 지지세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이날 오전 목포시 삼학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안 지사에게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호남 돌풍을 일으키며 승리했다. 그것을 연상하고 왔는가”라고 물었더니 ‘민주당의 DNA’론을 폈다.
“민주당 역사는 언제나 도전과 기적의 역사였다. 1971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주류에 도전한 김대중 정신, 그리고 2002년 이인제 대세론에 맞서 정말 미미하던 지지율의 노무현이 도전을 통해 기적을 만들었고, 그 기적을 통해 민주당이 발전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진일보할 수 있었다. 2017년 그 기적과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한 걸음 전진이 바로 저 안희정의 도전이다. 이것은 민주당의 DNA다. 역사적 진실 속에서 제 도전은 그 역사와 함께하겠다.”
‘목포의 눈물’과 김대중 정신
안 지사는 자신의 정치적 ‘베이스캠프’에 온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의 역사와 정통 그 자체이고, 그 역사를 이어 한국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 이곳은 정치적 고향이자 영원한 출발선일 수밖에 없다.”기념관에서 안 지사는 벽에 걸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만으로는 안 되며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갖춰야 한다.’ 한때 혁명가를 꿈꿨던 혈기 왕성한 청년이 수많은 정치적 곡절을 겪고 노련한 현실 정치인으로 국민 앞에 섰다. 과연 그는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같은 날 오후 목포시 부주로 시민문화체육센터 소강당(400석 규모)에서 열린 ‘안희정, 목포에 심쿵하다-즉문즉답’ 행사에서 안 지사는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다시 한 번 김대중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희망이라는, 우리 모두의 자산이 고갈되고 있다. 이것이 가장 큰 위기다. 목포 시민 여러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품은 희망, 그것을 다시 한 번 잡아보지 않겠나”라고 힘주어 말했고, “호남의 한, 눈물은 과거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동등하고 공정한 기회 속에서 힘을 모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자치 분권의 나라로 가야 한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안 지사는 목포에 이어 광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행사와 촛불집회에 참가해 줄곧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과 정책 이어받기, 그리고 자신의 충남도지사 경험을 통해 다시 확인한 자치분권·내각 중심의 정치 비전을 강조했다.
전략적 ‘다윗’ 캠프
하지만 아직까지 안 지사에 대한 호남 민심은 그리 뜨겁지 않다. 같은 날 오후 6시께 광주 동구 금남로 촛불집회 현장. 금남로 거리를 가득 메운 5만여 명의 시민이 줄지어 앉았다. 정치인들도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묘하게도 단상에서 떨어진 거리가 지지도 순서와 같았다. 맨 앞줄 한쪽에 ‘문재인은 호남의 영웅’이라는 큰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문 전 대표는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있었다. 문재인 플래카드가 있는 곳에서부터 20번째 줄 정도 뒤에 안희정 충남지사가 앉았다. 다시 거기서 50번째 줄 정도에 박지원 대표 등 국민의당 의원들이 줄지어 앉았다.
안 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신의 정치적 뿌리라고 내세우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예컨대 최근 국민의당이 ‘노무현 정부가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공격한 것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고 지적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대북송금 특검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다수당의 요구였다. 이것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분열하고 미움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국민의당 대변인은 안 지사의 이 발언에 대해 “교활하고 유치하다. 궁지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팔 수 있다는 것이며 앞으로 얼마든지 제2, 제3의 대북송금 특검이 있을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즉문즉답 행사에서는 조직력 부족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이 되려면 우선 민주당 경선을 통과해야 하는데, 당내 조직이 없는 것 같다. 경선 대책은 뭔가”라는 객석의 질문에 안 지사는 조직보다 비전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현재 도전을 하고 있다. 대선후보 캠프가 선거대책위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키우면 캠프 사람들의 정권이 된다. 정책과 홍보를 돕는 캠페인 스태프만 두고 조직을 만들지 않고 있다. 안희정의 비전과 소신으로 도전하겠다.”
안 지사의 선거 캠프는 매머드급인 문재인 전 대표의 선거 캠프에 비하면 ‘다윗’ 수준이다. 캠프 좌장으로 노무현 정부 때의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있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 등 원조 친노 인사들이 포진해 있고, 백재현·정재호·김종민·박완주 의원 등이 안 지사를 돕고 있다. 대변인은 박수현 전 의원이, 공보특보는 김진욱(전 민주당 부대변인)·권오중(전 서울시장비서실장)·김익점 등이 맡고 있다. 메시지, 정책, 홍보, 캠프 일정 등을 맡는 실무진은 40여 명 규모다. 안 지사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실무진은 한 달 가까이 거의 쉬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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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2012년 경선을 반면교사로 삼아 ARS투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ARS투표 검증단’도 운영하기로 했다. 제주에서 시작한 2012년 8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바로 다음 지역인 울산에서 파행을 겪었다. 제주 경선 투표율이 예상보다 저조했는데 그 이유가 모바일 투표에서 발생한 무효표 때문이라고 일부 후보들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안 지사 측에서는 알려진 것 이상으로 조직 표가 단단하다고 말한다. 직업 정치인으로 생활한 지 30년 가까이 돼 어느 후보보다 정치 내공이 깊고 각계각층에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이 물밑 네트워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만큼 ‘차차기 프레임’이 깨지고 후보로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 당원들의 표심도 움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병완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경선 선거인단이 200만 명 가까이 된다면 당내 조직력이 큰 의미가 없어 평균적 국민 여론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조직력 부족이 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게인 2002 전략’
특히 최근 들어 민주당 내 비문(非 문재인)계 인사들이 안 지사에게 호의적인 언급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점은 향후 비문계가 안 지사와 결합할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권을 향해 하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박영선·이종걸 의원도 안 지사의 ‘대연정론’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한편으로 안 지사 측에서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높은 일반 유권자의 민주당 경선 참여를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문 전 대표가 당내에 30% 안팎의 강고한 조직력을 갖고 있는 만큼 ‘문재인표’를 잠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당 밖의 표가 얼마나 자신을 실제적으로 지원하느냐가 경선 승리를 가를 관건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자신의 정책·비전을 알릴 청년자원봉사단 ‘청년크루’를 적극 모집하고 있고, 원조 ‘노사모’ 인사들로 구성된 지지자 모임인 ‘안희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안지사)에도 참석하는 등 전방위로 움직이는 이유다.
특히 안 지사 측에서는 ‘어게인 2002년’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2002년 ‘노풍’(노무현 바람)의 진원지인 호남에서 ‘안희정 바람’을 일으켜 세력의 열세를 딛고 대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내겠다는 프로젝트다. 호남에서 시작하는 경선은 충청으로 이어지는 만큼 첫 번째 경선지인 호남에서 문 전 대표를 앞설 수 있다면 본거지인 충청에서 바람을 이어가 경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관문은 결선 투표까지 갈 수 있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의 과반 득표를 저지하고 결선 투표까지 갈 수 있다면 안 지사의 대선후보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도전과 시련 속에서만 역사는 진보한다”며 ‘김대중의 40대 기수론’ ‘노무현의 2002년 노풍’에 이은 도전의 역사를 만들겠다는 안희정 지사의 담대한 도전 결과가 주목된다.
인터뷰 |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선 변수는 후보 간 토론”◆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안희정 충남지사와 ‘30년 지기’다. 대학 재학(서울대) 시절 고려대 운동권 학생이던 안 지사를 만나 이후 정치적 동지로서 한길을 걸어왔다.
▼ ‘인간 안희정’과 ‘리더 안희정’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인간 안희정은 누구에게나 마음이 열려 있는, 늘 다른 이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리더 안희정은 용기 있는,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늘 함께 가는 리더다.”
▼ 대선주자로서 안희정 지사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강점은 정치철학이 분명한,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약점은 원칙과 소신이 국민에게 전달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마치 구들장이 달궈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단 달궈지면 오래간다.”
▼ 안희정 지사의 상승세가 무섭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이론이나 이념, 진영 논리, 개인의 경험과 지식에 빠지지 않고, 늘 국민 상식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말하기 때문이 아닐까.”
▼ 안 지사의 지지도와 관련한 향후 전망과 그 근거는.
“20%대까지 갈 것이다. 문재인 후보와 한 자릿수 차까지 간다고 본다. 격차가 한 자릿수로 줄면, 호남과 2040 젊은 층 등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의 지지율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층이다. 안 지사의 지지율이 20%를 넘기면 문재인만이 아니라 안희정으로도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문재인과 안희정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후보 간 토론과 메시지 경쟁에서 결판난다. 과연 누가 국정을 잘 운영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면서 대대적인 토론이 진행될 것이다.”
▼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나.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문재인 대세론의 핵심은 정권교체 대세론이다. 문재인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따라서 안희정을 통해서도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면 상황은 크게 변화할 것이다. 대세가 누구냐가 아니라, 누가 더 나은지로 관심이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 민주당은 경선 규칙으로 완전국민경선제, 결선투표제, ARS 도입 등을 확정했다. 조직력 등에서 문재인 전 대표에게 밀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문재인’을 넘어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안 지사도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막강하다. 후보 개인의 네트워크만 본다면 민주당 30년 역사를 통해 전국 각 지역에 네트워크를 쌓아온 안 지사가 더 강력하다. 남은 경선 동안 조직력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다.”
▼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변수가 있다면.
“후보 간 토론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네거티브 캠페인 여부다. 누가 네거티브를 하지 않고 인내하느냐도 승부를 가를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 안 지사가 만들려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는 나라다. 민주주의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이 함께 사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래서 공화국이다. 그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게 안 지사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