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벼랑 끝 崔·朴 게이트

이재용 영장 매달리다 권력 압박은 뒷전 돼버려

종점 치닫는 특검 막전막후

  • 특별취재팀

    입력2017-02-21 18: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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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은 2월 28일 종료된다. 박 특검은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에게 수사 기간 연장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황 대행이 허락하면 한 달 연장된다.

    야당은 수사 기간을 연장하라고 황 대행을 압박한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특검 연장을 거부하면 그때부터 민주당은 황교안 대행과의 무한투쟁을 할 것이다. 대통령 출마는 물론 총리로서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 대행은 2월 10일 국회에서 “지금 단계에선 연장을 검토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특검이 연장을 요청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의에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20일 동안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생각 아니냐. 그렇게 할 일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특검에 대한 질책성 발언으로 들린다.

    탄핵-대선 정국에서 특검 수사 기간 연장 여부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황 대행이 연장을 거부하면 ‘촛불 민심’은 분노하고 ‘태극기 민심’은 환호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숨을 돌릴지 모른다. 황 대행이 연장을 받아들이면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황 대행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는 보수진영 지지율 1위인 그의 여론 지지율 추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웬만큼 다 수사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특검 수사에 대해 “중립성이 현저히 결여돼 있다” “웬만큼 다 수사했다” “우병우 등에 대해 수사가 미진한 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증거가 없어서다” “피의사실 언론 유포 같은 절차적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는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친박근혜계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특검을 해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재벌 측에게 ‘대통령과 대화한 내용을 자백하면 불구속 수사를 해주겠다’고 제안해놓고 구속영장을 신청해 피조사인들을 우롱했다. 거의 매일 브리핑을 하면서 피의사실에 해당하는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검과 청와대의 대통령 대면조사 합의는 깨졌고, 청와대는 특검이 약속과 달리 조사 시점을 언론에 흘렸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어찌 됐든 특검과 청와대는 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황 대행이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을 불허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촛불과 태극기를 모두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연장 수용이든 거부든 그 이유가 설득력이 있으면 된다”고 내다봤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최근 ‘특검이 속으론 수사 기간 연장 불허를 원하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상식을 깨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이 관계자의 말이다.

    “특검은 야당과 촛불시위대의 눈치를 봐야 하므로 황 대행에게 수사 기간 연장을 요청할 것이다. 황 대행이 기간 연장을 불허하면 특검은 ‘황 대행 때문에 수사를 더 못하게 됐다’면서 황 대행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홀가분하게 수사에서 손을 뗄 수 있다. 특검 수사를 한 달 더 끌어봐야 중대한 진전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부실 수사에 대한 비난이 더 높아질 것이다.”   

    한 여권 인사도 이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뒷받침했다.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1월 19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정유라 입시비리나 블랙리스트는 특검 발족 이유인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의 연계성이 떨어진다. 또한 특검은 사안의 핵심인물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소환 조사를 계속 미루고 있다. 자신이 없다는 반증이다.”

    수사 전문가들은 “이재용 영장 기각으로 특검의 대기업-대통령 관련 수사 일정이 다 꼬인 것 같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대통령의 죄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특검이 자초한 일”이라고도 했다. ‘특검이 내심 수사 기간 연장을 원하지 않는 듯하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까지 나오면서 ‘특검 연장에 얽힌 정치게임’은 흥미를 더하고 있다.

    특검은 2월 13일 이 부회장을 재소환해 뇌물공여 혐의를 조사한 뒤 다음날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특검 관계자는 사석에서 취재진에게 “어떻게 400억 원이 넘는 뇌물 범죄 혐의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고 갈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1월 영장 기각과 관련해 법원에선 “기각당할 만했으니까 기각된 것”이라는 반응이 많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는데, 이 문장은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빼 줄 생각 애당초 없었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박영수 특검의 수사 방식을 보면 충분히 예상된 결과다. 특검이 내놓은 증거자료가 너무 부실해 영장전담 판사가 당황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다른 관계자도 “고위 법관들 중에는 6대 4 정도로 영장 발부를 예상하는 이가 더 많았다. 그러나 전담 재판부가 법리에 입각해 판단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뇌물죄가 성립되려면 대가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대가성 부분에 대한 증언이나 증거가 부족했다는 게 법원 측 이야기다.

    사실 삼성의 대응은 특검팀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삼성은 박 대통령의 강요에 못 이겨 최순실 씨 측에 지원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에게 협박·강요죄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준 셈이다.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협박·강요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려 한 것이다. 박성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 등은 “박 대통령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면서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적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특검팀은 삼성과 이재용을 피해자로 빼줄 생각이 애당초 없었다. 이 같은 진술을 들은 특검팀은 오히려 ‘대가성이 명백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433억 원대 뇌물을 건넨 혐의를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횡령과 위증 혐의도 추가했다. 어떻게든 영장을 받아내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영장 기각으로 이 부회장을 잡고 박 대통령을 겨누는 수사의 큰 줄기가 꼬였다. 특검은 반격을 시도했다. 2월 3일 특검팀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위원장실과 기업집단과를 압수수색했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건과 관련해 새 혐의를 포착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측이 이 부회장과 면담한 후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준 개념으로 판단한 것이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도 일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문제 될 사안이 아니며 이런 점을 충분히 소명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특검이 이재용 구속에 ‘다걸기’하다시피 하면서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칼날은 무뎌지고 있다. 특수 수사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디지털 자료를 포렌식(digital forensic·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 하고, 분석하고, 참고인과 피의자를 소환하기까지 적어도 1주일은 걸린다. 이번 청와대와 삼성 관련 압수수색은 특검팀이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벌이지 않고 삼성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을 구속한 뒤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 등에 돈을 준 다른 대기업들을 수사하려던 계획은 틀어졌다. SK, CJ, 롯데 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원점인 삼성 주변에서 맴돌게 됐다.  

    수사 기간이 한 달 더 연장되면 롯데 정도만 수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검팀 관계자는 “롯데에 대한 수사 부분은 앞선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자료를 정리해 다 넘긴 상황이다. 추가 수사 없이 곧바로 기소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태원 회장 사면 로비 의혹이 있는 SK도 우선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피로 누적… 의지 크지 않아”

    그런데 청와대 관계자 외에 특검팀 내·외부 인사들도 “수사 기간 연장에 대한 특검팀의 의지가 크지 않다”고 말한다. 특검팀 관계자는 “설 연휴 때도 거의 모든 팀원이 하루만 쉬고 출근할 정도로 강도 높게 수사해왔다. 피로 누적 때문에 수사 기간 연장에 대해 내부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도 “특검팀은 ‘명예’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임시조직이라 승진 같은 ‘실질적 혜택’을 받긴 어렵다. 수사 기간 연장 문제에 관해 특검팀 내부에서 의견이 나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일단 이재용 영장 재청구 문제만 보고 간다”고 말하지만 법원은 갸우뚱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속영장에 적시한 금액이 크겠지만, 삼성은 ‘피해자’라는 것 아니냐. 이 부회장이 구체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최지성 사장 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것이다. 여전히 방어권이 필요해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특수수사 검사도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도 없지 않나. 특검은 구속해야 할 만큼 범죄 혐의가 중한지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중앙지검 검사도 “일부 친(親)기업 성향 언론매체들이 삼성을 옹호하는 점도 법원에는 ‘한 번 더’ 불구속을 결정하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번째는 법원이 영장을 내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법원이 법리 문제가 아닌 정치 문제로 판단하면 영장을 발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천 명 블랙리스트라더니…”

    특검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는 블랙리스트 건과 관련해 “블랙리스트에 ‘리스트’가 빈약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검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김 전 실장 관련 공소장의 범죄일람표 명단 목록에서 374건의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등을 첨부했다.  

    이에 대해 한 여권 관계자는 “언론에선 ‘수천 명 블랙리스트’라더니 왜 374건밖에 안 되느냐. 더구나 374건 중 325건은 특정 지원사업 선정에서 배제된 신청자들을 기록한 목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지원사업 탈락자들을 나열한 목록은 블랙리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건은 정부가 사전에 수많은 진보좌파 문화예술인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뒀다가 이 리스트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실제로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므로, 지원사업 대상자 선정 이전에 작성된 다량의 리스트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리스트는 없거나 내용이 빈약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특검 공소장의 범죄일람표 명단 목록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했거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사람들도 들어 있었다. 공무원이 이런 활동을 한 사람들을 정부예산 지원사업에서 배제한 행위를 설령 했다고 해도 과연 공무원의 이 행위가 사법처리 될 정도의 잘못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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