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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육 농가는 빚더미, 업주는 전과자 전락

말[言] 많은 ‘말산업’의 허상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사육 농가는 빚더미, 업주는 전과자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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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1년 특별법 만들어 미래 유망 축산업 권장
  • ● 농어촌형 승마시설, 농지법에 가로막혀 고사 위기
  • ● 불법 체육시설로 무차별 고발, 벌금형 선고
  • ● 한국마사회, 매년 경주 퇴역마 풀어 시장 혼란
"축산농민들은 정부의 말산업 육성 의지를 철석같이 믿고 여태껏 생소했던 말 사육에 뛰어들었고, 승마체험 등을 통해 말산업에 동참했다. 결과는 잔인했다.”

2월 8일 오후 2시,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자리한 ‘주몽승마장.’ 1000평 대지에 비가림막이 씌워진 채 덩그러니 놓인 원형 마장(馬場)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마장엔 단 한 마리 말도, 찾는 사람도 없다. 낯선 방문객을 향한 개 짖는 소리만 쩌렁쩌렁. 스산한 겨울바람이 휑하니 지난다.  

이곳 최기영(55) 대표가 키우는 말은 7마리. 품종은 제주 한라마(토종 제주마와 경주마인 서러브레드(Thoroughbred) 사이에서 태어난 제주산 말)다. 그가 말을 사육하기 시작한 때는 2007년. 당시 한국검도 도장을 운영하던 최 대표는 말산업 전문가 양성교육 신청자를 모집한다는 충북도의 권유를 받고 말과 승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곤 그해 조선의 국방무예인 24반무예 중 마상무예를 복원하려 승마시설을 짓고 전통무예 공연 및 일반인 대상 승마체험 영업을 개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련이 닥쳤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체시법)을 위반했다며 말 사육 농민을 줄줄이 고발했고, 이들 대다수가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아 하루아침에 전과자 신세로 전락한 것. 승마 활동이 주가 되는 일반 승마장에 대해 규정한 체시법을 소규모 영세 말 사육농가의 승마시설에까지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최 대표도 2012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1년 ‘말산업 육성법’ 시행 후론 사정이 더 나빠졌다”며 “말산업이 미래 유망 축산업이라 한껏 떠들던 정부가 되레 말 사육 농민을 범법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계 최초 ‘말[馬]’ 특별법

정부는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대응 산업의 하나로 마필(馬匹)산업을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각 광역자치단체를 통해 전국농업기술자협회가 실시하는 말산업 전문가 양성교육 신청자를 모집했다. 더불어 승마사업 희망자에게 국비·지방비 포함 4억 원 무상지원, 1~2%의 저리융자 3억 원, 자부담 3억 원 등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였다. 지원 대상은 땅 2000평 이상과 은행 잔고 3억 원 이상인 사람으로 한정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 축산업 여건상 이만한 요건을 충족하는 축산농민이 많을 리 없었다. 게다가 승마시설 관련법은 정비되지 않은 채여서 영세 말 사육 농민들이 체시법 위반 상황에 놓이는 부작용은 여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야심만만하게 내놓은 게 2011년의 ‘말산업 육성법’ 제정, 시행이다. 단시일 내 말산업 선진국과의 격차 해소, 농어촌 경제활성화, 국민 삶의 질 향상 등을 명목으로 한 세계 최초의 특별법이다. 말산업은 말의 생산·사육·조련·유통·이용 등에 관한 산업. 자연히 말 사육에 대한 축산농가의 관심은 높아졌다. 2010년 11월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이듬해 4월까지 장장 143일간 전국의 축산농가를 초토화하며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기에 더욱 그랬다. 피해 농가엔 통굽이라 구제역에 걸리지 않고 전염병에 강한 말을 사육하는 게 매력적으로 비친 것. 하지만 ‘우사(牛舍)’의 ‘마구간’ 변신은 미미했다. 그 까닭은 최 대표가 겪은 잇단 수난과도 무관치 않다.

말산업 육성법 시행 후, 최 대표는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입법 취지가 ‘농어촌형 승마시설’ 지원이기 때문. 그런데 2014년 농어촌형 승마시설 신고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그는 다시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말산업 육성법상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체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돼 있지만, 막상 관할 지자체에 신고를 하려니 ‘승마장은 체육시설에 해당하므로 해당 농지를 체육시설용지로 변경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은 것. 담당 공무원이 농어촌형 승마시설 설립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직접 현장을 실사한 뒤 곧 신고필증을 교부할 것이라고 했음에도 신고서가 반려된 것이다.

체시법상의 ‘승마장’은 허가제. 반면 말산업 육성법상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되는 신고제다. 일정 면적 이상의 가축 운동장과 마사(馬舍),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에 등록된 말 3마리 이상 보유 등의 기준을 갖추면 신고 가능하다.


농지법 적용의 모순

걸림돌은 농지 보전과 관리를 우선하는 농지법. 말산업 육성법상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말 위탁관리, 승용말 생산·육성 등의 사업과 말 이용업(체시법에 따른 승마장이 아닌 장소에서 승용말 임대, 말 트레킹, 승마체험 등 말을 이용한 용역을 제공하는 사업)을 겸영(兼營)하는 시설로서 체육시설인 일반 승마장과 유사하며, 농업진흥지역 밖·농업보호구역 농지, 초지 및 준보전산지·임업용 산지에서 농지전용 허가 절차를 거쳐야만 설치할 수 있다는 게 말산업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다. 즉, 농지에 승마시설을 설치하려면 체육시설용지로 전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농지법상 규제와 말산업 육성법상 농어촌형 승마시설 기준의 충돌에 대해 법제처가 2014년 12월 내린 유권해석은 다르다. 말산업 육성법상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말 이용업을 겸영하는 시설이고, 말 이용업은 체시법에 따른 일반 승마장이 아닌 장소에서 하는 사업이므로 체시법에 따른 일반 승마장 등 생활체육시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농림축산식품부 입장엔 변함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과 관계자는 ‘신동아’의 농어촌형 승마시설 관련 질의에 대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말을 비롯한 가축 사육시설 및 그 부속시설(가축 운동장 포함)은 농지법에 따라 농지의 범위에 해당돼 농지전용 허가 없이 설치 가능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활용하는 체육시설인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축사 부속시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농지법에 따라 농지전용 허가를 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법제처 해석과 관련해서는 “체시법에 따른 승마장은 농어촌 지역 외에도 설치할 수 있고 승마활동이 주가 되는 반면,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농어촌 지역에서 말 위탁관리, 승용말 생산·육성 등의 사업과 말 이용업을 겸영하는 복합시설이므로 양자 간에 승마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적용 법률, 운영 범위 등의 사유로 다른 시설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농지를 체육시설용지로 전용하려면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해당 농지의 개별 공시지가 범위(30%)를 적용해 산정한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만 한다. 농지의 보전·관리 및 조성을 위해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사업자에게 부담시키는 농지보전부담금이다.



승마인구 저변 확대도 요원

이어지는 최 대표의 말이다. “농어촌형 승마시설을 설립하려면 축사를 짓고 말을 구입하고 토목공사를 하는 데 많은 돈이 든다. 그런데 거기에 땅까지 막대한 농지보전부담금을 내고 체육시설용지로 전용해야 한다면 수억 원의 자본이 투자돼야 한다. 영세한 대다수 축산농가로선 언감생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산업이 농어촌에 뿌리내릴 수 있겠나.”

이처럼 복잡한 절차와 규제로 인해 축산농민들은 말산업 참여를 꺼린다. 신규 소득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농어촌형 승마시설 제도가 도입됐음에도 농지전용 허가를 받지 않고는 말 사육만 가능할 뿐 승마체험 영업은 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농지보전부담금을 내기 힘든 상당수 축산농민은 승마시설을 짓고도 일부러 신고를 하지 않고 승마체험 영업을 하는 실정이다. 이는 곧 관할 지자체의 고발로 이어져 말산업 발전은커녕 각종 규제로 인한 악순환의 반복을 낳고 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의 ‘최근 3년간 말산업 현황’ 자료를 보면, 2016년 현재 전국 479개 승마시설(일반 승마장 포함) 중 미신고 승마시설이 157개에 달한다.

최 대표는 2015년 1월 전국말축산농민협회를 결성해 관계부처 및 기관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하는 등 농어촌형 승마시설 관련 규제의 모순점을 개선하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말산업?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건 승마인구의 저변 확대다. 최 대표는 “말 사육을 통한 실질소득은 소·돼지 등 일반 축산물과 달리 승마체험과 말 위탁관리에 한정된다. 즉, 말 이용업을 하지 못하면 말을 길러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없다. 그래서 대다수 말 사육 농민이 생활고를 겪는다. 나도 말의 대체재로 염소와 닭을 키우고 전통무예 공연으로 생계를 잇는다. 승마시설 설립에 2억 원을 들였는데, 부채가 7000만 원이다. 지금과 같은 규제를 풀지 않는 한 말산업의 미래는 없다”며 허탈해했다.

현재 최 대표에게 말은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사료·톱밥 구입비 등으로 1마리당 월 40만 원씩 든다. 승마체험 영업을 못하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다.   

주몽승마장에서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의 옛 ‘청마농원.’ 구환회(50) 씨가 경마장 기수 출신 친구와 공동 운영하던 이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8년부터 경주 퇴역마 10~15마리를 키우다 2013년 미신고 승마시설로 고발돼 벌금을 내고 농원 문을 닫았다. 구씨는 “2015년까지 청주에 10여 개소의 말 사육농가가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폐업했다. 이는 전국적 현상으로, 대개 2~3년이면 밑천이 거덜 나 폐업한다. 말 키우다 망해 대리운전 하는 이도 있다. 말산업 얘기만 들어도 진절머리 난다. 말을 키워 돈 벌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말산업 육성 전담기관인 마사회가 경주 퇴역마를 풀어 시장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경기?파주시?파평면 ‘치마대목장’ 류명삼(52·파주시승마연합회?부회장) 대표는 “승마체험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니 말을 자체 생산해 시장에 내다팔 수라도 있어야 하는데, 수요가 적은 데다 마사회의 경주 퇴역마가 연간 1100~1300마리씩 쏟아져 나와 그마저 여의치 않다”며 “승용말을 키워내려면 조련과 순치(馴致)를 해야 하니 현재 인근 군부대에 무상으로 승마체험·교육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말을 키워온 류 대표가 현재 소유한 말은 제주 한라마 22마리. 그나마 여름부터 가을 중반까지는 사료 대신 임진강변의 풀을 먹일 수 있어서 근근이 버틴다. 하지만 말 관련 설화와 역사적 흔적이 많은 파주지역과 말을 결부시켜 문화관광콘텐츠사업을?하려던 그의 꿈은 점점 멀어져간다.

마사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말산업 규모는 2014년 말 기준 3조2303억 원. 이 중 경마 부문이 2조5974억 원으로 80%를 차지(생산 부문은 1394억 원)하는 기형적 구조다. 경마 중심에서 승마 중심으로 옮겨가겠다면서도 말?사육은 ‘축산’으로 허용되고, 승마체험은 ‘체육’에?해당돼 엄격한 규제로 가로막히는 희한한 현실. 누구를 위해 말은 달리나. 정부의 말산업 육성엔 ‘채찍’만 있고 ‘당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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