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주상복합아파트 시장 10년 입체분석

‘동네 아파트’에 KO패… 타워팰리스만 독야청청

  •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7-07-09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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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자릿수 평형’ 있어야 가격 오른다
    • 타워팰리스 옆 주상복합 시세가 50~70%인 까닭
    • “사람 사는 곳 맞아?”…‘주상복합 안티’의 등장
    • 평당 관리비 1만7000원…‘세금+유지비’ 연 1억원도
    • 첨단 복합상가? 중개업소와 먹을거리 체인만 가득
    • 백화점 명품관 입지와 밀접한 상관관계
    • 분양가 규제, 땅 부족…주상복합 시대, 뜨자마자 저무나
    주상복합아파트 시장 10년 입체분석
    한집이지만 1가구 2주택으로 분류되는 이상한 집이 서울에 있다. 강남구 도곡동의 대표적 주상복합인 타워팰리스의 124평형이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여파로 인해 최근 30채 중 3, 4채가 슬금슬금 매물로 나와 있다고 한다.

    왜 2주택이냐면 전용면적 74평이 넘으면 ‘호화주택’으로 분류되는 현행법 때문이다. 일반주택은 취득가액의 2%를 취득세로 내지만 호화주택은 1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이 집은 법적으로는 32평형+92평형 두 채로 구성돼 있다.

    현관도 두 군데이고, 화장실은 4군데나 있다. 최초 분양가가 25억원이었으며 현재 호가는 75억원이다. 32평형을 12억원에 먼저 팔고 약간의 시차를 둔 다음 92평형을 63억원에 파는 것이 이 집 거래의 정석이다. 처음 32평형에서는 취득이익의 50%가 양도세로 중과세되지만, 다음 92평형에서는 취득이익의 36%만 양도세로 내면 되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박중훈씨, 가수 주현미씨,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등이 이곳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최고경영자나 재벌 2, 3세가 거주한다. 지하주차장에도 가구당 4대의 주차대수가 배정된다. 약속이나 한 듯 벤츠나 마이바흐, BMW 7시리즈 등 최고급 세단 한 대씩과 람보르기니, 페라리 같은 스포츠카 한 대씩이 ‘기본적으로’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띈다.

    인근 중개업소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보여주는 사람들도 독특한 방식을 선호한다. 집을 보러 사람이 오면 가사 도우미만 남기고 가족들은 모두 단지 내 다른 곳으로 가 있다는 것이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노출을 싫어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터다.



    타워팰리스 124평형은 ‘1억을 깔고 앉아 있는 집’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올해 부과된 종합부동산세가 8100만원인데다, 대략 평당 1만7000원선인 관리비를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1년에 1억원을 ‘유지비용’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상복합의 시대

    타워팰리스 1차 꼭대기층에 있는 30가구의 팬트하우스처럼 ‘세 자릿수 평형’은 주상복합의 필수 성공 방정식 중 하나다. 아파트 단지 안에 20평형대가 없고 60평형대가 있어야 대우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가구 수는 적어도, 일단 그런 최고급 가구들이 입주해 살고 있다는 것이 그 주상복합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구실을 한다. 이는 주상복합이 단순한 거주지나 주택의 의미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명품 핸드백처럼 총체적인 이미지에 가격이 좌우되는 ‘소비재’로서의 가치도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주상복합(住商複合)’이란 말 그대로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혼합된 건물을 뜻한다. 일반 아파트가 주택법에 의해 건축규제를 받는 데 비해 주상복합은 오피스텔처럼 건축법 적용 대상이고, 이런 이유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파트보다는 오피스텔 같은 이미지가 더 강했다.

    건설업체들에 따르면 고층 주상복합아파트로 첫선을 보인 것은 1996년 입주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롯데타워다. 서울시가 보라매공원 앞 신대방동 상업지역 개발을 앞두고 재원 확보를 위해 체비지로 매각한 땅에 롯데건설이 1동짜리(90가구)로 지었다. ‘빌딩에 사람이 산다’는 인식 때문에 수요층이 두껍지는 않았지만, 중소형 평수 없이 60~80평형대만 배치했다거나, 지상에 주차장 없이 지하에만 주차시설을 설치한 것 등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주택공급촉진법 시행령을 바꾸면서 200가구 미만의 주상복합에 대해서는 분양가 규제를 폐지하고 용적률 제한도 대폭 완화한 데 따른 결과였다.

    물론 주상복합이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1967년 서울 종로4가에서 퇴계로를 잇는 지역에 건설된 연면적 5만평 규모의 세운상가가 그 효시다. 전문 도·소매 상가뿐 아니라 호텔과 극장이 있었고, 소규모나마 주거시설까지 겸비했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 마포, 서대문 등지에 고려빌딩, 피어리스 등 현대적 개념의 주상복합에 가까운 건물이 드문드문 들어서긴 했으나 주거지보다는 오피스로 보는 시각이 대세였다.

    대림아크로빌의 파격

    주상복합아파트 시장 10년 입체분석

    화려한 마감재, 입주민 전용 헬스클럽, 자연 친화 조경 등은 이제 필수조건이다.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만 주상복합 브랜드의 ‘내일’이 보장된다.

    고층이면서 프리미엄급인 주상복합 시대를 연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 평당 무려 1400만원대에 분양한 강남구 도곡동 대림아크로빌로 보는 게 정설이다. 1999년에 분양한 타워팰리스(평당 1100만~1300만원대)보다 비싼 것은 물론, 분양가 자율화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웬만한 수도권 아파트 분양가보다 비싸니 얼마나 강력한 초고가 정책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주상복합 초기에는 건물에 상업시설이 30% 이상 의무적으로 설계돼야 했으나, 대림아크로빌을 기점으로 10% 미만으로 축소됐다. 이 10%마저도 사무실 대신 오피스텔로 채우면 됐기에 일반 아파트와의 차별성은 거의 없어졌다.

    이 조치는 또 당시 화려한 마감재와 자유자재 대형 평형 구성으로 인기를 끌던 고급빌라 수요층을 주상복합으로 끌어오는 기능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후 현재까지 10여 년새 250여 곳의 주상복합 단지가 서울에 입주했거나 건축허가를 얻은 상태다. 이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에 있다.

    당시 대림산업은 대림아크로빌을 최고급으로 짓기 위해 대량의 외국산 자재를 사용했고 감리도 외국인 최고 전문가에게 맡겼다. 30도 경사로밖에 열리지 않는 여닫이 창문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고가의 강제환기 시스템은 지금의 타워팰리스 시설보다 낫다는 평을 듣는다.

    건물 안에는 국내 최초로 3레인짜리 실내 수영장이 들어섰고, 식기세척기 냉장고 같은 부엌기구도 이례적으로 빌트인 시스템으로 제공됐다. 재난에 대비해 헬기 전용 승강장을 옥상에 마련한 것도 이색적인 시도였다.

    무엇이 시세를 결정하나

    그렇다면 요즘 시세는 어떨까. 72평형의 호가가 19억원선으로, 타워팰리스 1차 72평형(약 32억원)의 6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두 주상복합 단지의 거리는 50m가 채 되지 않으며 같은 블록에 있다. 한 단지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도곡동에는 타워팰리스말고도 타워팰리스 반경 50m 주위에 신식 주상복합 단지 여러 곳이 포진해 있다. 대림아크로빌, 아카데미스위트, 우성캐릭터빌, 현대비전 21 등등. 타워팰리스와 학군, 쇼핑단지 등 모든 것을 공유하지만, 타워팰리스 외에는 집값 상승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아니, 높은 것은 고사하고 20, 30년 된 인근 일반 아파트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가 있다.

    2005년 입주한 아카데미스위트는 타워팰리스 1차보다 2년이나 입주가 늦은 ‘신식’이지만 53평형 시세는 14억원 선으로, 타워팰리스 같은 평형에 비해 3억원 이상 싸다. 우성 캐릭터빌 또한 50평형이 12억7000만원 수준으로 평당 2500만원선이다. 특히 최근에 입주해 내부 마감시설 및 헬스클럽 등의 편의시설 수준이 높은 아카데미스위트 시세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의아할 정도다.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면적 25.7평을 보면 대림아크로빌과 아카데미스위트(각 34평형)는 7억3000만원선, 타워팰리스(35평형)는 13억원대, 일반 아파트인 도곡렉슬은 14억4500만원대다. 이렇듯 타워팰리스를 제외한 일부 주상복합은 이 지역 일반 아파트 시세의 반값에 머물기도 한다.

    주상복합의 시세는 특히 각종 부동산 규제가 가해진 최근 1, 2년간 일반 아파트에 비해 횡보를 거듭했는데, 그 이유로는 주상복합 예찬론 못지않게 ‘안티’ 계층이 양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세금 탓에 1주택만 보유한다고 할 때 주상복합을 일반 아파트보다 먼저 매물로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도 있다.

    ‘안티’ 층에서 주상복합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은 통풍이다. 40층 이상은 안전 문제를 고려해 여닫이 창문이 30도 이상으로는 열리지 않게 돼 있다. 창문을 활짝 열 수가 없기 때문에 된장찌개 한 번만 끓여도 몇십분씩 ‘강제 환기’ 장치를 돌려야 하는데 이게 고역이라는 얘기다.

    2009년 2월 입주예정인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롯데캐슬 프레지던트는 그래서 지상 40층짜리지만 주상복합 중에는 처음으로 미닫이문을 도입한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고층 주상복합의 한계인 ‘30도 창문’을 뛰어넘어 일반 아파트처럼 발코니를 미닫이식으로 여닫을 수 있게 한 것. 이에 따른 안전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했다는 게 롯데건설 측 주장이다. 통풍과 환기에 대한 수요자의 누적된 반감을 누그러뜨리려는 포석이다.

    주상복합아파트 시장 10년 입체분석

    주상복합 30평형대는 의외로 수요가 많다. 양질의 ‘어린이 놀이방’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입주한 지 5년째라는 타워팰리스 주민 박모씨는 “요즘은 면역이 돼서 괜찮지만 ‘윙’하는 환기 소리가 처음에는 많이 거슬렸다. 이 동네가 구룡산, 청계산, 양재천 영향으로 원래 바람이 많은데, 실내에선 바람을 쐬지 못해서인지 저녁 시간에 단지 내에서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용적률도 문제다. 일반 아파트가 250% 안팎인 데 비해 주상복합은 800%, 심지어 1000%까지 늘어날 수 있다. 600% 수준인 분당 파크뷰만 해도 비교적 쾌적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 이상인 경우는 ‘좁은 땅에 층수만 높게 지었다’는 원성을 피하기 어렵다.

    헬스클럽, 수영장, 어린이 놀이방, 사우나, 학생독서실, 전용 커피숍 등 각종 편의시설이 지닌 희소성도 점차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용적률이 낮은, 쾌적한 일반 아파트이면서 이런 주상복합용 편의시설을 갖춘 아파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적률 298%로 일반 주상복합의 3분의 1 수준이면서 각종 편의시설을 다 갖춘 삼성동 아이파크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는 전기세를 포함한 각종 관리비를 들 수 있다. 여름이면 창문을 여는 데 한계가 있기에 장시간 에어컨을 켜야 하고, 이 때문에 누적 사용량에 비례해 부과되는 전기세 누진제도의 희생양이 된다.

    서울 강남권 주상복합의 관리비는 대개 평당 1만5000~1만7000원선. 강남의 일반 아파트는 그 절반 수준인 평당 7000원~1만원이며, 최고가 일반 아파트인 삼성동 아이파크의 평당 관리비도 1만3000원 언저리다. 주상복합 60, 70평형대라면 월 관리비 100만원은 기본으로 나가는데, 과연 그처럼 허공에 돈을 뿌려댈 만큼 만족도가 높은지에 대한 의구심이 주상복합의 인기 하락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몇몇 메이저 주상복합아파트의 가격이 횡보를 거듭하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주상복합의 메카나 다름없는 강남구 도곡동, 대치동에서는 2003년경부터 주상복합급 편의시설을 갖춘 일반 아파트들이 가격 면에서 주상복합아파트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묻지마 주상복합’은 없다

    동부센트레빌 53평형은 26억원, 개포우성 1, 2차 아파트 45평형은 22억5000만원선으로 평당 5000만원에 육박하는데, 이 가격대면 타워팰리스는 10평, 대림아크로빌이나 아카데미스위트라면 20평 이상 늘려 옮길 수 있다. 타워팰리스만 평당가가 3500만~4000만원대이며, 나머지 주상복합 아파트들의 평당가는 2200만~2800만원대이기 때문이다. 같은 평형을 비교하면 일반 아파트의 전용면적률이 높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 평당가격을 계산해봐도 여전히 일반 아파트 시세가 높다.

    상업지구가 많아 계속해서 주상복합이 지어지고 있는 잠실이나 여의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2002년 분양 당시만 해도 ‘타워팰리스를 누를지 모른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돌던 송파구 잠실역 사거리의 갤러리아팰리스 48평형의 호가는 14억원 정도로 5평이나 작은 일반 아파트 레이크팰리스 43평형(15억원대)에 비해 1억원가량 싸다. 갤러리아팰리스가 백화점에서 5분 거리인데다 잠실역을 끼고 있는 입지를 감안하면 좀체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사로부터 디자인 콘셉트를 전수받았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여의도 트럼프타워의 시세 변화는 더 드라마틱하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55평형의 평균 시세는 2003년 7월 8억1500만원이었으나 2007년 6월 11억1000만원으로 만 4년 동안 3억원이 채 오르지 않았다. 반면 비슷한 수준의 여의도 일반 아파트인 서울아파트 50평형은 같은 기간 9억1500만원에서 20억원으로 11억원 이상 올랐다. 투자수익으로 본다면 3.5배 이상의 차이가 난 셈이다.

    2004년 2월, 7조원이 넘는 청약금이 일시적으로 몰리며 부동산시장에 ‘광풍’이라는 말을 등장하게 했고, 급기야 노무현 정부가 잇따라 부동산 규제정책을 발표한 직접적 계기가 된 용산구 한강로의 주상복합 ‘시티파크’도 요즘 들어선 속빈 강정이라는 말이 나돈다.

    오는 7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55평형 로열층의 시세는 14억9000만원 정도. 3년 전 분양가 9억4500만원에 비해 5억원가량이 오르긴 했으나, 인근의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55평형과 비교하면 수익률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3년 전 9억2000만원으로 시티파크 분양가와 거의 비슷했던 서빙고 신동아는 현재 17억2500만원선으로, 시티파크에 비해 같은 기간 2억5000여 만원이 더 올랐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에 따르면 분양 당시만 해도 고품격 주상복합이라면 ‘묻지마 청약’에 나서는 분위기가 대세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투자자들이 옥석 가리기에 나선 게 원인이라고 한다. 현대백화점과 한 건물을 쓰는 양천구 목동의 하이페리온도 비슷하다. 56평형의 경우 4년새 7억원 가까이 올랐지만 신시가지 6단지 55평형은 같은 기간 10억원이 올랐다.

    아파트가 아니라 시스템을 사라

    그나마 가격이 오른 건 다행이다. 아무거나 일단 사기만 하면 다 오른다던, 최근 수년간의 과열된 부동산시장에서 은행이자율을 밑도는 상승률을 기록한 주상복합들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마포구 도화동의 트라팰리스다. 트라팰리스는 2003년 분양 당시 타워팰리스 후광 효과 덕분에 청약률 40대 1, 당첨자 발표 뒤 이틀 만에 계약률 100%를 기록했다. 하지만 40평형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4억3000만원이었으나 4년이 지난 현재는 불과 5000만원가량 오른 4억8250만원선이다. 비슷한 시기 인근의 삼성아파트 43평형이 3억6000만원 오른 데 비하면 상승률이 그 7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아울러 제2금융권의 정기예금 연리 5%대에도 못 미치는, 연리 3%의 수익률에 머물렀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성공한 주상복합’의 선결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1동짜리’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3동 이상, 700가구 이상의 규모여야 자체 브랜드로 구실을 할 수 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기둥이 3개 이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하에서는 한 동으로 이어지더라도 밖에서 보이는 타워가 3개 이상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편의시설 아케이드나 대단위 보안시설을 들인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는 필요하다.

    둘째는 5층 이하에 들어오는 상업편의시설의 질이다. 이 시설들의 간판이 곧 주상복합의 대외적 이미지로 귀결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성공한 주상복합’으로 꼽는 타워팰리스는 상가 임대를 에버랜드가 직영 관리하며, 신규 업체가 들어오려 할 때는 요즘도 심사위원회를 연다. ‘물관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복되는 업종이 거의 없고, 브랜드 파워가 있는 외국계 프랜차이즈 업체 위주로 입주한다.

    그러나 바로 앞의 아카데미스위트에는 1층 전면에만 부동산업소 5개가 눈에 들어온다. 상가도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분양을 해버렸기 때문에 ‘관리’할 여지가 없고, 이러다 보니 당장의 수요가 많은 중개업소들만 자리를 메우게 된다. 궁극적으로 거주민이 원하는 편의시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잠실 갤러리아팰리스, 마포 트라팰리스, 여의도 롯데캐슬 등도 상가들을 서둘러 분양처분하는 바람에 중개업소와 고만고만한 먹을거리 프랜차이즈가 건물을 휘어잡고 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를 ‘상가의 난개발’이라 부른다.

    분당 신도시에서 유일하게 평당 3500만원대를 넘보는 ‘파크뷰’ 역시 대단지라는 프리미엄 외에 상업편의시설을 당초 시행사인 씨알씨개발에서 꾸준히 임대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명품관 경쟁력’ 있어야

    셋째,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지 내 세 자릿수 평형이 있느냐 없느냐다. 백화점 명품관 중에서도 에르메스, 샤넬, 여기에 한 개를 더 쳐준다면 루이비통의 존재 여부에 따라 수준이 결정되는 것처럼, 가구 수는 적더라도 얼굴마담 격인 대저택들이 있어야 전체적인 가격과 보안 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이 3대 명품 브랜드를 다 갖춘 곳은 신세계 본점에 불과하며, 두 개를 갖춘 곳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점 등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조망권 유무다. 용적률이 높고 환기가 안 돼 쾌적성이 떨어질수록, 얼마나 멀리, 넓게, 화끈하게 밑을 내려다볼 수 있는지에 주상복합 브랜드와 시세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광진구 자양동의 일반 아파트보다 평당 1000만원가량이 더 비싼 2500만원대의 ‘스타시티’가 대표적인 경우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지만, 25층 이상에서는 건국대 안에 있는 호수 일감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도저도 아니지만, 비슷비슷한 주상복합이 모여 있어 결과적으로 큰 주상복합촌을 형성하는 분당 정자동의 시세는 특이하게도 꾸준히 상승세다. 개별 단지 차원의 상업편의시설은 부족해도 단지들이 모이면서 집적효과를 냈고, 자연스레 카페골목, 부티크골목처럼 수요자의 니즈에 맞는 상권이 형성될 수 있었다.

    수도권 아니면 논하지 말라?

    부동산시장에선 ‘주상복합은 수요자가 이미 결정돼 있다’는 말이 통용된다. 똑같이 50억, 100억대 자산가라 해도 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주상복합을 선호하지만, 은퇴자는 일반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말도 있고, 혼기를 앞둔 자녀가 있는 경우 주상복합 선호도가 더 높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망이나 편의시설뿐 아니라, 이런 심리적인 측면도 주상복합 수요심리를 자극하는 요소다. 아파트는 아직도 아파트가 소재한 ‘동네’의 종속변수로 취급되지만, 주상복합은 브랜드를 앞세운 단독변수로 인식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광진구 자양동 스타시티 거주민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자양동’이란 답 대신 ‘건대 앞 스타시티’라는 대답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도권과 지방 간에 차이가 발생한다. 지방에는 절대적인 수요층 자체가 두껍지 않다는 뜻이다. 명품관 백화점이 별도로 있는 서울, 경기, 부산을 제외하면 주상복합에 대한 기본 수요를 찾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신영이 올해 초 의욕적으로 분양한 청주 지웰시티는 예전 대농 부지 15만평에 37~45층 총 17동, 430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을 비롯해 백화점, 복합쇼핑몰, 병원, 미디어센터 등이 들어설 ‘중부권 미니 신도시’로 분양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인근 아파트보다 30% 이상 비싼 평당 1140만원에 분양됐으나 분양 4개월이 지난 6월 중순 현재 회사에서 밝힌 계약률은 50% 남짓하다.

    예전 엑스포 부지를 개발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대전 도룡동의 스마트시티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5년 112대 1이라는, 당시 경기 이남 지방 부동산 청약 경쟁률 사상 최고기록에다 98% 분양률 기록을 세운 바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때는 60, 70평형대를 중심으로 프리미엄이 2억, 3억원까지 붙었지만, 지금은 최초 분양가 수준으로 내려간 물량도 눈에 띈다고 한다.

    부산 주상복합은 그나마 극심한 미분양에 시달리는 지역 내 일반 아파트에 비해서는 선전하는 형국이다. ‘태평양 조망’까지 가능한 덕분에 해운대구 수영만 매립지 내 ‘더 샵 센텀파크’ 69평형은 3년 전에 비해 3억원 가까이 수익을 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광역시와 달리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수도권 거주자, 해외교포 중에서도 투자 수요가 있다는 점이 차별화된다. 또한 외관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부산 전문직, 상류층들의 눈높이에도 호소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땅이 좁고 각종 규제가 많은 서울보다 오히려 실험정신 가득한 자유로운 콘셉트의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평. 6월 중순 분양에 들어간 부산 서면의 더 샵 센트럴스타는 도심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스카이 라운지를 설치하기도 했고, 65평형의 경우 방 4칸에 모두 개별 화장실을 설치했으며, 그림 전시관을 아파트 안에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정보분석팀장은 “경기도, 좀더 엄밀하게는 화성시 밑으로 주상복합을 분양해 성공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경기 다음으로 주상복합이 많다는 부산도 물량을 해소할 만큼 수요층이 두껍지 않다. 유휴 부지도 넓은 다른 지방이라면 더더욱, 굳이 초고층으로 높이 세우는 게 수요자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될지 재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동산컨설팅사 RE멤버스의 고종완 대표는 “아파트와 주상복합의 수요층은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조망권과 편의시설을 좋아하는 계층 중에서도 ‘아파트는 모름지기 통풍이 잘 돼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는 계층은 주상복합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아직 주상복합 수요층은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중화한 상태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상복합은 독립적인 브랜드에 의해 시세가 결정되는 수가 많아 아파트보다 가격을 예측하기 힘들다. 아파트처럼 동네와 건설사만 좋으면 저절로 브랜드 가치가 형성되는 게 아니라, 거주민의 수준과 편의시설에 대한 입소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입주 후에도 브랜드 가치를 적극적으로 창출한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의 주상복합

    규모나 관리면에서 앞서 언급한 주상복합의 ‘성공 방정식’을 충족시킬 만한 단지들이 수도권 주요지역에 추가로 공급될 것이냐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수도권이라면 일단 일정 규모 이상의 단지를 구축할 만한 땅이 없고, 또한 올 9월부터 분양가 규제가 시행돼 표준건축비에 준해서만 집을 짓게 되면 특히나 내부 마감재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은 주상복합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동탄2’라 불리는 초대형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는 바람에 포스코건설이 동탄 신도시에 짓는 메타폴리스는 청약률이 100대 1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대 1에 그쳤다. 동탄이라는 물리적 거리에 압도당한 서울 수요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이 본격적인 흥행을 일으키지 못한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메타폴리스는 주상복합을 중심으로 백화점, 컨벤션센터, 학교, 센트럴파크 등을 주변에 포진시키는, 이른바 ‘직주(職住)복합단지의 중심’을 표방한다. 화성시와 포스코에서는 주거비율 51%를 넘기지 않도록 합의했는데, 문제는 ‘주’가 아니라 ‘직’에 있다.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갤러리아백화점 등이 들어설 계획이긴 하지만, 건설사와 지자체의 공언처럼 주변에 미디어, 정보통신 기업들이 밀집하는 ‘미디어타워’가 과연 이른 시간 내에 들어설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사실상 서울 강남권과 차이점이 거의 없는 분당 정자동도 ‘IT단지’가 조성되는 데 계획부터 실행까지 10년 이상이 걸린 점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우려는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009년 1월 입주 예정으로 2005년 분양한 인천 연수구 송도 신도시의 포스코 더샵 퍼스트 월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시세가 치솟다 최근 들어 잠시 횡보하고 있다. 분양권 전매제한으로 인해 대외적인 시세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지만, 평당 3000만원까지 올라 있다는 게 인근 중개업자들의 설명. 이곳에서는 그래서 “‘동탄2 신도시’ 발표 이후 진짜 강남 대체지는 이미 분당 시세로 접어든 송도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65층 높이에서 인천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인천공항까지 10분이면 닿을 수 있어, 인근에 세워질 외국인학교에 통학할 외국인 학생들 거주지로 선호받을 것이라는 게 포스코측의 전망. 하지만 이곳 역시 지금의 ‘분당 시세’유지는 1611만평 신도시 부지에 목표대로 260억달러 투자유치에 성공할지, 이에 따라 외국계 금융사의 아시아 본사가 상하이, 홍콩 등지에서 이주해 올지 여부에 달려 있다.

    판교·용산이 마지막?

    부동산 컨설팅사 닥스플랜 관계자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라는 신중론도 많다. 외국인 투자가 여의치 않으면 결국 상업시설이나 직장은 빼고 주거지만 남게 될 텐데, 이렇게 되면 서울 통근이 어렵기 때문에 그저 ‘인천 연수권 신도시’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우려했다.

    판교 주상복합은 이런 면에서 보면 위험요소가 다소 덜하다.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공사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09년 하반기에는 분양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1266가구에 40, 50평형대로 지어질 이 주상복합은 신분당선 판교역을 중심으로 상업, 업무, 문화시설이 밀집되는 중심상업지구 내에 건립된다. 민관합동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비용만 2조4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며, 신세계 현대 롯데 등이 벌써부터 백화점 유치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분당선 강남역까지 13분이면 주파할 수 있어 대기업 본사 및 정보통신기업들의 이주도 예상된다.

    판교 신도시의 1차 입주가 이미 완료되는 시점에 분양되는 모양새는 마치 분당의 파크뷰 분양 때와 닮아 있어 경쟁률 또한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더라도 예상 분양가가 2000만~2200만원선은 될 전망. 부동산 전문가들은 “타워팰리스 수준의 주상복합 개발이 가능한, 수도권의 마지막 지역”이라고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 개발계획이 가시화되진 않았지만 용산의 이전 미군부대 대상지 중 하나인 1만6000평 면적의 ‘캠프 킴’도 주상복합아파트 건립 가능지로 꼽힌다. 용산민족공원 조망권 보유와 주변 노후주택 재개발 등의 호재를 감안할 때 분양만 한다면 ‘시티파크’ 때 이상의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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